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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고수로 김치와 겉절이 담근다고?

김희중 에디터 조회수  

모처럼 외식을 하는 날에 동남아시아 음식을 시켜봅니다. 이국적인 향이 침샘을 자극하네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한 입 먹는 순간…. “이게 뭐야!” 마치 비누를 먹는 듯한 이상한 향이 코를 강타합니다. 맛도 쌉싸름하니 영 이상한 것 같고요. 음식이 아니라 화학 물질을 입에 머금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동남아시아 음식에는 고수가 향신료로 자주 들어간다. ©게티이미지뱅크

미나리 같기도 하고 쑥갓 같기도 한 이 녀석, 고수가 범인이었네요. 젓가락으로 열심히 골라내니 목이 아파집니다. 어라,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니 고수를 아무렇지 않게 먹는 사람들이 있네요. 심지어 고수가 부족해 추가 주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는 데 반응이 이렇게 다를 수 있는 건가요? 혹시 저 사람들이 먹는 건 다른 고수일까요?

고수는 화장품∙비누 맛?

실제로 같은 성분 함유

고수는 같습니다. 다른 건 유전자입니다. 우리 몸속에서 맛을 받아들이는 유전자는 수십 가지, 냄새를 받아들이는 유전자는 400여 가지나 있습니다. 각 유전자는 정해진 냄새와 맛에만 반응하죠. 2016년에 출간된 과학 서적 다중감각적 풍미 지각(Multisensory Flavor Perception)에 따르면 사람마다 맛과 향을 감지하는 이 유전자들을 조금씩 다르게 타고납니다. 그래서 같은 음식을 먹어도 서로 느끼는 바가 다를 수 있습니다.

고수에서 비누 향이 나는 이유는 비누와 같은 성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유전자분석 업체 23andMe는 연구 끝에 400여 가지 유전자 중에서 고수 냄새를 담당하는 유전자를 알아냈습니다. 이 유전자의 이름은 OR6A2입니다. OR6A2가 변형된 사람들은 고수 속에 들어있는 ‘알데하이드’라는 성분을 강하게 감지합니다. 이 성분은 화장품이나 비누에 많이 들어가는 성분이죠. 고수 향을 화장품이나 세제, 비누 향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괜히 ‘오버’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느끼는 겁니다.

고수가 유난히 쓰다면…

인생 탓 아니고 유전자 탓

향만 이상해도 먹기 싫은 이유가 충분한데, 고수의 쓴맛을 더 강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번엔 쓴맛을 받아들이는 유전자 TAS2R1가 어떤 유형인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OR6A2와 TAS2R1가 모두 고수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도록 타고난 사람이라면 고수가 들어간 음식을 먹다 뱉어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수는 미나리과에 속하는 한해살이 식물이다. 사진 속 식물은 미나리. ©게티이미지뱅크

고수를 비누 냄새로 느끼는 사람은 전 세계인 중 4~10% 정도입니다. 한국인 중에는 특히 고수를 못 먹는 사람이 많습니다. 친척인 미나리나 쑥갓은 한식에 잘 넣어 먹는데 말이죠. 아무래도 고수가 외국 식물이다 보니 우리 조상님께는 고수를 잘 먹는 유전자가 없었던 걸까요?

고수는 동남아 음식?

고려시대에도 있었다

놀랍게도 고수는 고려시대부터 우리 땅에 존재했습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향신료 고추는 조선시대에 들어왔으니 고수가 훨씬 선배입니다. 우리 조상님은 고수 향이 곤충 빈대를 터뜨렸을 때 나는 냄새와 비슷하다고 여겨 ‘빈대풀’이라고 불렀습니다. 조선시대에 허준 선생님이 쓰신 동의보감에도 고수가 등장합니다. 매운맛을 가진 식물이라고 표현됐죠.

고수 효능으로는 소화를 비롯한 인체 신진대사를 돕는다는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실제로 고수는 몸속 활성 산소를 줄여주는 폴리페놀계 항산화 플라보노이드를 다양하게 함유하고 있습니다. 혈관 속 콜레스테롤을 줄여 심혈관 질환 위험을 낮추는 성분들이죠.

서양인도 예로부터 고수를 약으로 활용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항염증∙항균∙소염작용도 합니다. 이런 효능 때문인지 고수를 홍역∙마마 치료에도 썼다는 기록도 동의보감에 실려 있습니다. 각종 비타민까지 풍부하기 때문에 감기나 구내염 같은 가벼운 염증이 생겼을 때도 고수를 먹으면 도움이 됩니다.

한의학에서 고수 열매를 따로 부르는 말도 있습니다. 호유자라고 하는데요, 위 기능을 촉진하고 기침, 가래를 없애는 효능이 있어 약으로 썼다고 합니다. 고혈압에도 좋다고 하네요! 동의보감에는 치질을 치료하는 약재로 소개됐습니다.

가장 즐겨 먹었던 지역은 황해·평안도

고수로 김치 담그고 겉절이 무치기도

생각보다 오랜 시간 우리 민족과 함께한 고수! 어느 지역에서 많이 먹을까요? 옛날부터 고수를 가장 즐겨 먹었던 지역은 황해도와 평안도 지역입니다. 황해도와 가까운 인천 강화, 경기도 파주∙고양 지역도 고수 사랑으로 유명합니다. 고수로 김치까지 만들어 먹는다고 하니 말 다 했죠. 고수로 겉절이를 무쳐 먹기도 하고 배추김치 양념에 고수를 넣기도 합니다.

북한 사람들도 고수 김치를 만들어 먹는다. ©한식진흥원

고수를 좋아하는 또 다른 지역은 ‘무진장’으로 묶어 부르는 전라북도 무주∙진안∙장수군입니다. 이 지역에 있는 고깃집에 가면 상추, 깻잎과 함께 쌈 채소로 나오는 고수를 볼 수 있습니다. 고수는 고기 잡내를 잡아주면서 식이섬유가 풍부하기 때문에 고기와 궁합이 잘 맞죠. 장수군은 2021년부터 전라북도 농업기술원과 함께 고수 재배 연구를 시작해 농가를 직접 육성하기도 했습니다.

당근 김치는 러시아어로 ‘한국식 당근 샐러드’라고 불린다. ©더농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에 사는 우리 동포 고려인도 고수를 넣은 김치를 즐겨 먹습니다. 배추나 무가 자라기 어려운 지역이라 당근으로 김치를 담가 먹는데요, 주황색 당근 채 사이사이로 보이는 초록색이 고수입니다. 당근 김치는 상큼한 매력 덕분에 고려인뿐 아니라 전체 중앙아시아인에게도 인기가 많습니다.

내 입맛은 내가 정한다!

반복 학습으로 극복 가능

생물학적으로 어떤 유전자를 타고났는지가 음식 맛과 향을 받아들이는 데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 놀랍지 않나요? 태어날 때부터 고수를 잘 먹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가 이미 정해져 있는 거죠. 이제 옆 사람이 고수를 안 먹어도 편식쟁이라고 타박하지 마세요.

반대로, 고수를 잘 먹지 못하는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너무 좌절하지도 마세요. 처음으로 아메리카노를 마셔본 날을 기억하시나요? 대부분 “이렇게 쓴 걸 왜 마시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느새 나른한 오후나 달콤한 디저트를 먹을 때 아메리카노를 떠올리는 현대인으로 진화하게 되죠. 커피의 쓴맛을 참고 마셨을 때 보상으로 각성 효과가 따라온다는 것을 우리 몸이 반복 학습하면 커피 맛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특정 음식과 관련해 긍정적인 경험을 반복하면 감각도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처음 소주를 먹었을 때는 “이게 웬 알코올 맛이야!”라고 화들짝 놀라지만 나중엔 소주가 달게 느껴지는 날이 오는 것도 비슷한 이치입니다. 고수도 커피나 술처럼 긍정적인 경험과 계속 연결 지으면 향긋하게, 맛있게 느낄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더농부 인턴 방정은

제작총괄: 더농부 에디터 나수연

nong-up@naver.com

더농부

참고=

동아 사이언스, <[강석기의 과학카페] 왜 어떤 사람들은 오이를 싫어할까?>

헬스 조선, <오이와 고수 싫어하는데… '유전' 때문이라고?

레이디경향, <심혈관계 질환 위험 낮춰주는 ‘고수’>

농민신문, <류수연 기자의 잡·학·다·식(雜學多食)(19)고수>

노컷뉴스, < 장수군, 고소득 작물 '고수' 재배 확대>

프레시안, < [문상윤 식품전문기자의 '향기로운 허브이야기'] ① 강렬한 '고수'와 깊은 향기의 '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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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중 에디터
fv_editor@fastview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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