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온 식구가 점심을 먹으러 갔다. 단 세 명뿐인 식구인데도 함께 식사한 지 제법 오래된 것 같다. 평일이야 바쁜 직장 때문에 그렇다 치지만, 주말에도 아들 녀석은 얼굴 구경하기가 힘들다.
“도대체 뭐가 그리 바쁜 건지….” 내 푸념에 옆에 있던 아내가 말을 했다. “당신도 젊었을 때 그랬으면서 뭘!” 아내는 항상 아들 편이다.
오랜만에 집에서 뒹굴고 있는 아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네 엄마 밥하기 싫다는데 외식이나 하러 가자!”
역시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는 법이다. 즐겁게 식사하다가 문득 내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이런 중요한 날은 식구들이 잊지 않도록 미리 알려주어야 한다. 혹시라도 잊고 지나가면 나만 손해니까!
예전에 아내 생일을 잊고 지나갔다가 ‘남편이고 자식이고 다 소용없네!’라는 아내의 푸념을 두고두고 들은 적이 있다. 그 이후 아내는 무심한 남편과 아들에게 잔소리해 봤자 그때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몇 번 당하더니만, 이제는 한 달쯤 전부터 본인 생일이 다가오고 있음을 수시로 식구들에게 주지시켜준다.
요즘은 외식할 때 가급적 채식 위주로 한다. ⓒPixabay
시골에는 별의별 모임이 다 있다. 내가 시골에 와서 처음 들어본 모임에는 ‘동갑내기 모임’과 ‘맏며느리 모임’이 있다. 자고로 이름이란 건 갖다 붙이기 나름인가 보다. 우리 지역에는 ‘베이비 붐 세대’인 같은 연령대의 분들이 10여 명 계신다. 지금도 각 마을의 주력이신 이분들이 모여 ‘동갑내기 모임’을 만드셨다고 한다. 그리고 환갑이 됐을 때, 이분들은 무려 네 차례에 걸쳐 환갑잔치를 하는 기록을 세우셨다.
일단 생일날에는 각자 집에서 생일상을 받으셨다. 물론 가까운 친척이나 지인들을 불러 함께 축하했다. 두 번째는 마을 단위로 마을회관에서 합동으로 환갑상을 다시 받으셨다. 그 자리는 자식이 없는 친구들을 위한 환갑잔치라고 했다. 덕분에 그날은 온 동네가 잔칫날이 됐다.
가을걷이가 끝날 무렵, 이번에는 몇 개의 마을에서 모인 동갑내기들이 뷔페식당을 빌려 합동으로 환갑잔치를 했다. 수명이 많이 늘어난 요즘은 환갑잔치를 거의 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도대체 몇 번을 우려먹는 건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고, 단체로 해외여행까지 다녀오셨다. 여행을 떠나기 전, 지인 한 분이 말씀하셨다. “그동안 모아둔 기금이 제법 많거든! (평생을 모았으니까!) 해가 바뀌기 전에 얼른 여행을 다녀와야지.” 환갑상을 네 차례나 챙기신 그분들은, 지금은 얼마 남지 않은 칠순 잔치를 위해 다시금 기금을 모으고 계신다. 그분들에 비하면 내가 내 생일을 챙기는 것쯤은 애교로 봐줄 수 있을 것 같다.
생일 선물로는 현찰이 최고라는 분들이 제일 많은 것 같다. ⓒPixabay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아빠 생일 다가오는데 뭐 사줄 거야?”
조금 뻔뻔해 보일지 몰라도 이런 질문은 단도직입적으로 해야 한다. 물론 아내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서로 다른 지갑을 차고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같은 지갑에서 나오는 그 돈이 그 돈이니까! 선물은 현찰이 최고라는 분들도 계시지만 내 경우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주머닛돈이 쌈짓돈이라고, 기껏 현찰로 받아봤자 순식간에 생활비로 모두 뜯기고 만다.
“또 공구 사드려요?” 아들 녀석이 물어왔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도 생일 선물로 전동드라이버를 받았던 것 같다.
“아니!” 요즘은 목공 작업도 별로 재미가 없다. 또 웬만한 공구는 다 갖추고 있으니 특별히 사야 할 것도 없다. 예전에 아마추어 목공의 특징은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는데, 지금의 내가 바로 그렇다. 더구나 작업장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니, 날씨가 추워진 이후로는 목공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지낸다.
그렇다면 생일 선물로 뭐가 좋을까? 뭔가 말은 해야겠는데 갖고 싶은 게 별로 없다. 분명히 내가 물욕에서 해탈했기 때문은 아닐 테고, 시골서 오래 살다 보니 보는 게/아는 게 별로 없어서 갖고 싶은 것도 별로 없는 게 틀림없다. 내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동안 아내가 잽싸게 끼어들었다. “난 노트북 PC!” 생일 되려면 아직 반년이나 남았는데?
예전에는 밭에서 일을 할 때면 무조건 장화부터 신었다. ⓒ윤용진
문득 낡은 등산화가 떠올랐다. 나는 등산화를 구입해도 보통 2-3년을 넘기지 못한다. 등산은 몇 년에 한 번 가물에 콩 나듯 가지만, 밭에서 줄곧 등산화를 신고 일을 하니 빨리 망가지는 것 같다.
물론 시골에서 농사를 지을 때는 장화가 필수품이다. 가성비를 따져도 장화만 한 것이 없다. 보통 한 켤레 구입하면 10년은 신을 수 있으니까. 더구나 장화를 신으면 풀이 우거진 곳에서도 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장화는 바람이 통하지 않으니 오래 신으면 발에 문제가 생긴다.
나도 처음에는 줄곧 장화만 신고 살았다. 그러다가 발에 무좀이 생겨 고생한 이후로는, 지금은 되도록 등산화를 신고 일하고 있다. 더구나 하루 종일 과수원에서 사다리를 오르내릴 때면 밑창이 두꺼운 등산화를 신어야 발바닥이 아프지 않다. 그리고 등산화는 밭에서 신을 목적이니 굳이 좋은 것을 살 필요도 없었다.
“그냥 등산화나 한 켤레 사줘라!” 조금은 억울했지만, 올해 생일선물은 그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경제도 어렵다니까!
새로 구입한 등산화. 등산화치고는 제법 날렵하다. ⓒ윤용진
등산용품을 파는 매장을 찾아갔다. 매장에 진열된 등산화들을 보고 있노라니, 눈에 확 띄는 등산화가 있었다. 등산화는 투박하기 마련인데 어째 디자인부터가 날렵해 보였다.
“어라? 등산화가 멋있는데!” 무심결에 가격표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엥! 이렇게 비싼 등산화도 다 있네!” 내가 시골에만 살아서 너무 세상 물정을 모르나 보다.
견물생심(물건을 보면 그것을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는 뜻)이라고, 멋진 등산화를 보고 나니 자꾸 마음은 그곳에 가 있었다. 역시 내가 물욕으로부터 해탈한 건 아니었나 보다.
이런 나를 보고 눈치를 챘는지 아들 녀석이 말을 했다. “아빠! 마음에 들면 그 등산화 사드릴게요!”
“글쎄, 제법 비싼데 그래도 되나?” 체면상 몇 번 빼다가, 못 이기는 체하며 비싼 등산화를 얻어 신게 됐다. 만약 내가 그냥 쌈 직한 등산화를 샀더라면, 억울해서라도 올해 아내와 아들 생일에는 국물도 없을 게 분명하다.
새 등산화 때문이라도 앞으로는 산에 자주 다녀야 할 것 같다. 아니면 적어도 여행이라도 많이 다녀야겠다. 새로 산 등산화를 만지며 히죽거리는 나에게 아내가 딱하다는 듯이 한마디 했다.
“아들 등쳐먹고 저렇게 좋아하다니….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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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윤용진
- 출판
- W미디어
- 발매
- 2022.03.19.
글·사진=윤용진(농부·작가)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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