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쌤, 초코파이 많이 드세요. 시골에서는 초코파이 많이 못 먹잖아요.” 우리 아이들이 나와 마지막 수업 시간을 보내고 나에게 자그마한 송별식을 해줬다. “쌤 군대 가는 거 아닌데?” 하며 웃었지만, 아이들은 시골을 마트 하나 없는 어느 깊은 산골 정도로 알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남편의 오랜 꿈이었던 귀농을 결혼 5년 후에 결정하고 재배할 작물로 딸기를 골랐다. 딸기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나는 남편에게 딸기를 선택해서 고맙다며 열심히 해보겠다고 했다. 시골에 대한 이해가 없던 아이들처럼 농사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던 결정이었다.
1년 정도 농사를 배우러 내려간 남편과 나는 주말 부부로 보냈다. 그리고 2017년에 그렇게도 기다리던 딸기 농사를 기대하며 경남 거창 가조면에서 귀농 생활을 시작했다. 소똥 냄새 나는 도로를 달리며 논과 밭이 보이는 그 길로 다닐 때마다 어릴 적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 온 기분 같아 많이 설렜다. 그러나 그 설렘은 얼마 가지 않았다. 곧 혹독한 시간이 이어졌고, 눈물겨운 외로움 속에서 지내게 됐다.
처음으로 딸기 정식을 하는 날, 설레는 맘으로 모종을 하나하나 꽂고 한참을 심었다. 그러나 한 동에 90m 베드 5줄이 어찌나 야속한지 손목이 아렸다. 하루 종일 몸으로 움직이는 일을 안 해본 나로서는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다음 날 새벽같이 일어나 같은 일을 반복 또 반복. 결국 온 몸살을 앓으며 침대에 누웠을 때 차라리 며칠 계속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정식한지 며칠 안 됐는데 옆 귀농 동기분께서 “형수님 지금 이렇게 꽃대 나온 건 떼어줘야 해요. 지금 나온 꽃대는 딸기가 열려도 상품성이 없어요”라고 귀띔해줬다. ‘그렇구나’ 하며 꽃대 나오면 꺾어야지 마음을 먹었다. 한 달 뒤쯤에 꽃대가 또 보이기 시작하길래 ‘딸기는 12월에 나오는 거니까 지금 10월에 나오는 꽃대는 꺾어야지’하고 야무지게 꺾었다. 그런데 이 꽃대가 심상치 않게 다 붙어있길래 더 꼼꼼하게 떼어냈다. 옆 귀농 동기분이 다시 방문했을 때 꽃대를 보고 놀라셨다. “형수님 지금 나오는 꽃대는 꺾으면 안 돼요.” 함께 놀란 남편이 이거 다 꺾었냐면서 물었다.
“조금.” 시무룩하게 대답하니 서러워지기 시작했다. 아무도 안 가르쳐줬으면서…. 그렇게 나는 하우스 출입 금지를 당했다.
농사용어도 모르고 연장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손에 익지 않은 농사일을 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런 와중에 꼼꼼하게 계획적으로 실수 없이 일하려는 남편의 수고에 속도를 맞출 수 없었던 나는 남편의 잔소리만 메아리쳐 오는 모든 상황이 서운하고 속상했다. 그의 잔소리가 어찌나 서럽게 들리던지 어디 가서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남편이나 나나 모두 경남 거창이라는 이곳에 아무 연고도 없이 와서 의지할 곳이 없었다. 그래서 홀로 산에 올라가 한참을 울고 내려오기도 했다. 아이가 없는 나는 또래 엄마들과 교류할 기회도 없었고 마을과도 떨어진 농장에 살았기에 점점 나는 이곳에서 소외되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남편의 마음에 들게 일도 할 수 없었으니 답답할 때마다 산으로 계곡으로 올라가 울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마음을 다스렸다.
이제 제법 꽃이 피고 나서 숫자를 세어가며 7개를 남기고 솎으니 개수는 정확해졌다. 그러나 속도가 전혀 나지 않아 일이 진행되지 않았다. 결국 서러움이 원망이 되고 나중에 모든 화풀이가 딸기에 가고 말았다.
좀처럼 예쁘지 않은 딸기들….
딸기들이 나에게 사랑스러운 존재로 느껴지기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5년 전 작황에 큰 위기를 맞았을 때 딸기를 다루는 나의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아이들을 엄마의 마음으로 보듬어 챙기고 사랑으로 키우는 것과 같다. 이 사실이 피부와 마음으로 절실하게 와닿았다
자식 농사라는 표현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빨갛게 익은 딸기들에 마음을 전해본다. “미안하다. 너희들을 엄마의 마음으로 잘 돌봐야 했는데. 너희들은 내가 힘들다며 원망하는 모든 소리를 다 받아내고도 이렇게 귀한 열매를 맺어 주었구나. 고맙고 미안해.”
10년 차. 이제야 딸기들이 자식처럼 느껴진다. 여전히 아기천사를 기다리는 나에게 먼저 딸기 엄마로서 자격을 주었으니 그 사명에 책임감을 느끼면서 딸기를 통실하고 맛깔스럽게, 사랑스럽게 키워보리라 다짐해 본다.
※ 위 작품은 아그로플러스와 농촌진흥청이 공동주최한 ‘제6회 추억의 우리 농산물 이야기 공모전’ 수상작입니다.
글 = 이은진 씨(추억의 우리 농산물 이야기 공모전 장려상)
정리 = 더농부
nong-u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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