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토랑 운영, 메뉴 개발, 도자공예 기능사, 드로잉 강사, 작가 데뷔…. 모두 송보라 비알에스푸드서비스(BRS Food Service) 대표(41)가 걸어온 길입니다.
송보라 대표가 직접 그린 책자 표지를 들고 환히 웃고 있다. ©더농부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좋아한다는 송보라 대표는 도자기, 그림, 음식 등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입니다. 이번에는 송 대표의 손끝에서 탄생한 머위 요리를 만나러 더농부가 2023년 2월 9일 전라북도 진안군 농업기술센터를 찾아갔습니다.
송 대표가 팀원들과 함께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더농부
팀원 조정윤(1982년생), 정하윤(1986년생) 셰프와 함께 분주히 음식을 만들고 있는 송 대표. 전라북도의 지원을 받아 머위를 주제로 관광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진안군 능길 마을의 러브콜을 받고 머위를 활용한 메뉴를 개발했습니다. 모두 여섯 가지 머위 요리가 이날 시연∙시식회에서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현장에 모인 30여 명 시식단의 연령대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했습니다. 송 대표의 요리는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았죠. 역시 2016년부터 국내 농∙축산물 활용 메뉴 개발을 지속해온 베테랑답습니다.
시식 참가자가 머위 새우 크림 파스타를 먹고 있다. ©더농부
지금까지 송 대표의 손길을 통해 멋진 요리로 변신한 지역 농∙축산물은 △무주 더덕, 사과, 머루(전북)△안동 마∙사과, 울릉도 눈개승마 (경북), △의령 삼채∙토마토(경남) 등 전국 각지에 수십 가지가 있습니다. 요리를 통해 지역 상생을 실천하고 있는 송 대표,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됐을까요?
Q : 국내 농∙축산물을 활용한 요리 개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조리복을 만드는 ‘븟’이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븟의 배건웅 대표님과 함께 농∙축산물 생산지를 다니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LISS(Local Ingredients seasonal simple)라는 단체가 있는데요. 이곳에서 셰프들과 함께 전남 장흥, 충남 논산∙천안, 제주도 등을 방문했습니다.
송 대표가 자신의 약력을 소개하고 있다. ©더농부
산지에서 직접 생산자의 고충을 듣고 지역 농∙축산물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의논했죠. 함께 음식을 만들어보기도 하면서 국산 농∙축산물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활동이 시작점이었습니다.
Q : 그래서 해외 경험이 많으신데도 국내에서 국산 농∙축산물을 다루고 계시는군요.
지금까지 34개국 정도를 다녀봤는데요, 저는 어떤 음식이든 알레르기가 없고 향신료도 가리지 않아요. 어느 나라를 가든 현지 음식에 입맛이 맞춰져요. 해외에서 요리를 배운 경험도 있고, 국내에서도 프랑스계 셰프님들과 일하면서 양식을 주로 배웠습니다. 여러모로 양식과 인연이 깊죠. 그래서 양식과 한식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송대표가 머위 흑돼지 스테이크를 굽고 있다. ©더농부
하지만 아무래도 현지 환경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만큼 서양 요리를 깊게 이해하고 만들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나는 국산 식재료를 내 식대로 요리에 녹여보자고 생각하게 됐어요.
이렇게 결심한 이후로 직접 국내 농가를 돌아다니면서 식재료를 경험해봤어요. 예를 들어 표고버섯 농가에서 버섯을 바로 따서 먹어본 적이 있었는데요. 입에서 여운이 사라지질 않더라고요. 이런 긍정적인 경험이 쌓이면서 국내에서 활동하는 방향으로 길이 잡혔어요.
Q : 새로운 방향을 잡는 과정이 힘들진 않으셨나요?
무주 협업 프로젝트를 하는 중에 2017년쯤 슬럼프가 왔었어요. 이때 저 자신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어요. 나는 어떤 음식을 하고 있나.
저는 한식 재료로 양식화 표현을 한다고 생각해요. 담음새는 양식이지만 먹어보면 한식이 느껴져요. 오늘 선보인 머위 뇨끼도 들깻가루로 소스를 만들었기 때문에 모양은 양식인데 먹어보면 친숙한 맛을 느낄 수 있어요. 이런 식으로 남들과는 조금 다른 요리를 해보고 싶었어요. 도전을 많이 했죠.
이탈리아 음식인 뇨끼에 들깻가루 소스를 더했다. ©더농부
그러던 중 아는 기자님이 “보라 셰프 음식을 먹으면 보라 셰프 음식인 걸 알 것 같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때 “아 그래 내가 그래도 괜찮게 하고 있구나”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어요.
Q : 계속 이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요리하기 싫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봤어요. 누군가를 위해서 요리를 하는 일 자체가 행복하고 즐거워요. 설거지를 안 해도 될 것 정도로 비워진 접시를 보면 에너지가 충전돼요. 함께하는 팀원과 좋은 에너지를 공유하면서 선순환도 되고요. 요리 자체를 계속 하는 이유는 이거예요.
송대표가 완성된 요리를 전달하고 있다. ©더농부
그리고 요리 활동 중에서도 이 분야를 계속하는 이유는 농가 상생과 지속 가능한 발전에 기여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지역 농∙축산물을 활용할 수 있는 레시피를 개발해서 ‘이렇게 만들어 보세요’ 하면 사람들이 따라서 만들어볼 수 있잖아요. 일단 먹어봐야 맛을 알 수 있거든요. 먹어보고 좋다는 생각을 하면 다음 구매로 이어질 수 있고요.
우리 팀원들도 여기 와서 진안 블랙을 처음 마셔봤는데요. 마셔보니 너무 좋아서 두 박스나 구매했어요.
또 레시피를 본 사람들끼리 ‘이런 게 있더라’ 하면서 이야기하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죠. 입소문이라는 게 진짜 크잖아요. 이런 식으로 지역 농∙축산물 소비를 장려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이 분야에서 계속 일하고 있습니다.
Q : 진안군과의 협업은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박영복 능길머위산업 대표가 머위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더농부
박영복 능길머위산업 대표님이 먼저 연락을 주셨어요. 예상치 못한 일이라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해보고 (웃음) 전화를 드렸더니 능길 마을에 관해 설명을 해주셨어요. 그다음에 제가 내려와서 미팅을 하게 됐죠. 인연은 어떻게든 생기는 것 같아요.
Q : 이번 프로젝트 전에 개인적으로 진안군을 방문하신 적이 있나요?
LISS에서 마이산 쪽을 한번 왔었어요. 그리고 진안이랑 가까운 무주에서 일을 했었기 때문에 진안이 친숙했습니다.
저는 어떤 프로젝트를 맡든 간에 지역 자치단체 홈페이지를 방문해서 지역에 대한 공부를 해요. 진안 흑돼지도 진안이 산간 지역이라서 논밭에서 농사를 짓기보다는 흑염소나 흑돼지를 많이 키우게 됐다는 내용의 글로 먼저 접했어요. 그래서 낯설지 않았죠.
Q : 행사를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 쓰신 점은 무엇인가요?
음식을 어떻게 따뜻하게 드릴지를 가장 신경 썼습니다. 여기(진안농업기술센터 농산물가공교육장)는 실습을 위한 공간이라서 음식을 따뜻하게 내드리기 어려운 공간이거든요. 그래서 식기 전에 빨리 드시기 좋게 드리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죠.
머위 뇨끼 반죽은 미리 준비돼있었다. ©더농부
요리를 미리 준비해두는 방식으로 해결했어요. 스테이크는 염지를 먼저 해놓고, 뇨끼도 어제 미리 만들어서 현장에서는 데우기만 하면 되게끔 준비했습니다. 양념 정도만 좀 더 추가했죠.
Q : 셰프로서 머위라는 식재료의 어떤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드셨나요?
저는 채소를 워낙 좋아해서 비빔밥이나 김치볶음밥도 상추에 싸 먹어요. 머위도 채소라는 자체만으로도 좋았는데요, 씹었을 때 쌉시래한 맛이 좋았어요.
머위를 다듬어 잎 부분만 남겨 놓았다. ©더농부
그리고 머위 잎은 수분과 식이섬유가 많기 때문에 살짝 익히면 수분은 빠져나가고 아삭아삭한 식감이 살아요. 그래서 잎 부분이 좋았습니다.
Q : 오늘 공개한 메뉴 중 가장 애착이 가는 메뉴는 어떤 것인가요?
전부 다요. (웃음) 그래도 하나 꼽자면 흑돼지 스테이크입니다. 진안 흑돼지를 양념한 스테이크에 진안 머위와 블루베리를 곁들여 먹을 수 있도록 만든 메뉴인데요, 진안에서 만드는 전통 소주와의 조화도 고려했습니다.
머위 흑돼지 스테이크는 식어도 퍽퍽하지 않고 부드럽다. ©더농부
제가 원하는 상생과 지속 가능성을 많이 녹인 메뉴라고 할 수 있죠. 식어도 맛있게 드실 수 있도록 고기를 재울 때 올리브유를 넣었어요. 이런 부분까지 연구했기 때문에 더 애착이 갑니다.
Q : 앞으로 메뉴를 개발해 보고 싶은 다른 지역 특산물이 있나요?
제주도 해산물을 활용한 메뉴를 개발하고 싶습니다. 제주도 하면 귤을 많이 떠올리지만, 귤은 메인 음식보다는 디저트를 만드는 데 더 어울리잖아요? 저는 디저트를 전공한 사람은 아니라서 제주도의 신선한 해산물을 활용한 주메뉴를 만들고 싶습니다.
Q : 가장 좋아하는 식재료는 무엇인가요?
채소를 가장 좋아합니다. 알 배추도 생으로 먹으면 달잖아요. 그 자체 맛이 좋아요. 종교는 없지만 사찰 음식이 채소를 다채롭게 활용하고 먹은 뒤에 속도 편해서 좋아합니다. 우리나라만큼 산나물과 채소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곳이 없는 것 같아요. 이런 환경에서 태어나 너무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농가가 다양한 채소 품종을 많이 재배하셨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어요. 예를 들어 감자가 26종 정도 되는데 생산성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수미 감자를 비롯한 몇 가지 품종만 재배하거든요. 외국처럼 시장에 가면 감자 종류를 10가지씩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Q :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디자인을 전공하셔서 식재료를 보는 시각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저는 시각적인 정보를 특정 형상으로 빠르게 전환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서 오일이 두 방울이 떨어져 있으면 동그라미 두 개가 눈 같다는 생각을 해요. 하늘에 구름을 볼 때도 강아지처럼 보인다든가. 이렇게 바로바로 형상화되는 식이에요.
송 대표가 시연 중에 요리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더농부
식재료를 설명할 때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으면 모양이 비슷한 다른 식재료를 바로 떠올려서 설명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생강 꽃대는 아스파라거스와 비슷하다고 설명해 드리는 식으로요. 그림을 그리는 작가이기도 하니까 그림을 통해 설명해 드릴 수도 있죠.
송 대표는 2018년에 그림 작가로서 개인 전시를 열었다. ©송보라
시각적 정보를 잘 기억하기 때문에 음식을 만들 때도 음식의 색이나 형태까지 바로 생각하게 돼요. 이번에 맛보시라고 드린 머위 스콘도 색을 고려해서 만들었어요. 블루베리를 넣어보려 했지만, 블루베리는 색깔이 너무 어둡고, 붉은빛이 있어야지 예쁘니까 건 체리로 바꿨어요. 이런 식으로 맛은 기본으로 고려하고 전체적인 담음새를 한 번에 생각하죠.
디저트로 제공된 머위 체리 스콘
그래서 개발할 때 시간이 오래 걸려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머릿속에서 몇 시간씩 고민을 하거든요. 그러다가 한 번 만들기 시작하면 결과물이 조금 빨리 나와요. 많은 생각을 한 뒤에 만드니까요.
Q : 국산 농∙축산물이 해외 시장에 진출하려면 어떤 매력을 포인트로 잡아야 할까요?
한식에는 정말 다양한 맛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이탈리아나 프랑스 음식도 훌륭하지만, 한식에는 이런 게 있잖아요. 아 오늘 매운 거 먹고 싶어! 그러면 떡볶이를 먹고. 또 감칠맛 나는 어떤 음식을 먹고 싶으면 또 다른 걸 먹고요. 우리 음식의 다채로운 맛을 소개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송 대표가 채소를 볶고 있다. ©더농부
다채로운 매력을 뽐낼 수 있는 우리 농∙축산물로는 산나물과 채소가 매력적이에요. 오늘 머위 행사라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고요, 우리나라에 훌륭한 향 채소가 많아요. 쑥갓이나 깻잎 같은 것들이요. 한국의 허브라고도 할 수 있죠.
우리에게는 너무 친숙해서 특별함을 잘 모를 수 있어요. 하지만 해외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아서 외국인이 접해보지 못한 채소나 산나물이 많거든요. 이런 것들을 중심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하면 좋을 것 같아요.
Q :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이번 행사도 저희 팀원들 덕분에 잘 할 수 있었습니다. 능길머위산업 대표님들께서 저에게 이런 제안을 주신 덕분에 머위에 대한 지식도 한 스푼 더 쌓을 수 있었어요.
송 대표가 요리하는 모습을 박 대표가 카메라에 담고 있다. ©더농부
진안군 머위로 제가 오늘 소개한 것처럼 다양한 음식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많이 찾아 주시고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더농부 인턴 방정은
제작총괄: 더농부 에디터 나수연
nong-up@naver.com
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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