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포도 암흑기가 준 뜻밖의 선물 [재미있는 농업이야기 29]

포도에는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하고, 노화를 막는 각종 황산화 성분이 가득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신이 내린 과일’로 불리는 포도! 포도는 맛도 좋지만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해 피로 해소에 효과적이다. 포도 껍질과 씨에는 우리 몸의 노화를 막는 각종 항산화 성분이 가득하다. 포도는 중동아시아에서 8천 년 전부터 재배되었는데 특히 와인을 좋아하는 유럽인들은 와인 양조를 위해 포도를 많이 생산해왔다.

이처럼 생과로, 또는 와인으로 두루 사랑받는 포도가 19세기 유럽에서 영원히 사라질 뻔했다. 19세기 유럽의 포도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인류의 첫 술, 포도 껍질 갈라지며 탄생

8천년전 석기시대부터 만들어 먹어

인류가 처음 마시기 시작한 술 중 하나가 와인이다. 8천 년 전 석기시대 농부가 포도주를 마셨다고 전해진다. ⓒ게티이미지뱅크

포도는 생과로 먹어도 맛있지만 다양하게 가공되어 상품화되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와인이다. 인류가 와인을 마셔온 역사는 수천 년이 넘는다. 8천 년 전 석기시대 농부들이 포도를 키워 포도주를 담가 마셨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7천 년 전 와인 담은 항아리도 발견되었다. ·

와인이 인류가 마시기 시작한 최초의 술이 된 이유는 포도껍질 안에 있는 발효물질 때문이다. 우연히 포도 열매 껍질이 갈라지면서 붙은 이스트가 포도를 발효시켜 와인을 탄생시켰을 것으로 추정된다.

첫 번째 위기, 1840년대 英·佛 포도 흰가루병

잎에 급속 확산돼 프랑스 와인 생산 80% 감소

1840년대 영국과 프랑스의 포도나무 잎에 하얀 가루가 생겼다. 흰가루병으로 프랑스 와인 생산이 80%나 감소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여느 작물처럼 포도에도 다양한 병충해가 발생한다. 1840년대 영국과 프랑스의 포도나무 잎에 하얀 가루가 생기더니 포도나무 잎 대부분을 뒤덮어버리기 시작했다. 금세 열매까지 하얀 가루가 지저분하게 생겨서 와인으로 쓸 수가 없었다.

이 병은 요즘도 포도나무 과수원에서 흔히 발생하는 흰가루병이다. 흰가루병은 살아 있는 식물체에만 기생하면서 살아가는 곰팡이인데 일단 감염이 되면 식물 표면에서 계속 퍼져나간다. 지금은 포도 흰가루병 방제 약제가 있지만 살균제가 없던 그 당시에는 흰가루병이 크게 발생하여 프랑스 와인 생산이 80%나 감소하게 되었다.

그러자 유럽인들은 흰가루병에 강한 포도나무를 찾기 위해서 여러 나라의 새로운 포도나무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두 번째 위기의 시작이었다.

두 번째 위기, 미국종 포도뿌리혹벌레

유럽에 넘어와 20년 동안 황폐화시켜

미국종 포도나무 뿌리에서 기생하는 뿌리혹벌레가 유럽으로 건너가면서, 20년동안 유럽 전역 포토밭은 황폐화됐다. ⓒ게티이미지뱅크

콜럼버스가 발견한 아메리카 대륙은 야생 포도나무 천국이었다. 그러나 여기엔 유럽에 없던 벌레도 있었다. 양쪽 대륙으로 포도나무 묘목이 왔다갔다 하면서 미국종 포도나무 뿌리에서 기생하는 포도뿌리혹벌레가 유럽으로 건너가게 됐다.

미국종 포도나무는 수천 년 동안 이 벌레와 같이 지내오면서 내성을 갖게 되었지만, 처음 접한 유럽종 포도나무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뿌리혹벌레는 흔히 ‘필록세라(Phylloxera vastatrix)’라고 불리는데 라틴어로 ‘파괴자’란 뜻이다. 프랑스는 물론 유럽 전역의 포도밭은 20년 동안 황폐화됐다. 바다 건너 남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까지 침투했으니 필록세라란 이름이 붙여질 만하다.

뿌리혹벌레는 포도의 뿌리와 잎에 붙어 즙액을 빨아먹는다. 그 결과 뿌리와 잎에 혹이 생기고 뿌리가 더 이상 영양분과 수분을 흡수할 수 없게 되어 나무가 말라 죽게 된다.

뿌리혹벌레 피해 해결 방법은 저항력 강화

미국종 야생 포도나무를 유럽 품종에 접목

학자들은 미국종 야생 포도나무가 뿌리혹벌레에 강하다는 것을 착안해 미국종 포도나무를 대목으로 사용해 유럽종에 접목했다. ⓒ뉴시스

뿌리혹벌레 때문에 프랑스 와인 생산량이 75%까지 감소할 지경에 이르니 프랑스 정부는 뿌리혹벌레를 해결하기 위해 엄청난 현상금까지 내걸었다. 하지만 아무도 해결하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뿌리혹벌레로 죽어가는 유럽 포도나무를 구한 것은 미국종 포도나무였다. 학자들은 미국종 야생 포도나무는 뿌리혹벌레에 강하다는 것을 착안해 미국종 포도나무를 대목으로 사용해서 유럽종 포도나무에 접목했더니 뿌리혹벌레에 대해 저항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유럽의 포도나무는 멸종을 피할 수 있었다.

1㎜ 크기 포도 뿌리혹벌레의 가공할 파괴력

세계 각국 식물검역 국제조약 체결 계기됐다

뿌리혹벌레 사태 이후 각 국가에서는 병해충 칩입을 막기 위해 식물검역에 대한 국제조약을 체결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칠레에는 16세기 중반 스페인 사람들이 유럽의 포도를 들여와 유럽종 포도가 자라고 있었는데, 동쪽의 안데스산맥과 서쪽의 태평양으로 둘러싸인 칠레에는 미처 뿌리혹벌레가 닿지 못했다. 그래서 칠레는 사라질 뻔한 유럽종 포도나무를 보존하고 와인 강국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또한 포도 뿌리혹벌레의 유럽 침입 후 각 국가에서는 외국으로부터 병해충의 침입을 막기 위해 최초의 식물검역에 대한 국제조약이 체결되었다. 몸길이 1mm의 포도 뿌리혹벌레가 세계 와인 지도를 바꾸어 놓았고 역사적인 식물검역의 시초가 된 것이다.

세 번째 위기 노균병은 보르도액이 막아

현재까지 가장 안전한 농약으로 알려져

보르도액은 여러 과수나 화훼작물을 보호하는 살균제로 사용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19세기 유럽 포도의 세 번째 위기는 노균병이다. 포도 뿌리혹벌레에 강한 미국의 포도나무 대목을 들여오면서 노균병도 유럽으로 같이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노균병은 흰가루병과 같이 살아 있는 식물체에만 기생하면서 살아가는 곰팡이인데 포도 잎의 앞면을 노랗게 변색시키고 잎의 뒷면에는 하얀 곰팡이를 형성시킨다. 병든 잎이 점차 갈색으로 변하면서 잎 전체가 말라 떨어지고 포도송이와 열매에 감염되면 갈색으로 변하면서 열매가 마르게 된다. 19세기 후반 유럽의 포도 노균병은 빠르게 확산되어 포도 생산량과 품질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프랑스 보르도 대학의 식물학 교수인 피에르(Pierre A. Millardet)는 노균병의 해결책을 찾는 도중에 우연히 푸른 용액이 묻은 포도나무의 잎은 건전한 반면 그 옆의 잎은 노균병에 감염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행인들이 길가의 포도를 훔쳐 먹는 것을 막기 위해 농민들이 포도에 푸른 용액을 뿌렸던 것이다. 푸른색을 띠는 황산구리와 잎에 잘 달라붙을 수 있게 생석회를 혼합하였는데 그 용액이 바로 보르도액이다.

현재까지도 보르도액은 여러 과수나 화훼작물에서 보호 살균제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포도 서리범 막으려다 농약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농약은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로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농약 사용으로 각종 병충해를 방제하여 수확량을 늘릴 수 있고 부족한 노동력도 덜어줄 수 있다. 현재까지 가장 안전한 농약으로 알려져 있는 보르도액은 19세기 온갖 병해충으로 고난을 겪은 포도나무에 준 선물이 아닐까?


글=이하경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원예특작환경과 농업연구사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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