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시인은 2014년 문예지 『시인수첩』의 신인상 시 부문, 『작가세계』의 신인상 문학평론 부문에 각각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젊은 문학인입니다. 그는 시 쓰기와 문학평론 외에도 강의, 낚시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창작의 고통과 삶의 무게가 다가올 때 어디론가 훌쩍 여행을 떠납니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자연을 만나고, 여행지의 정서와 감동을 사진과 글로 담고 있습니다. 더농부는 그가 풀어내는 ‘길에서 부르는 노래’를 격주로 전해드립니다. 젊은 시인이 한국의 명소와 맛집을 다니며 보고 느낀 것들을 함께 즐겨보시면 좋겠습니다.
나에게 ‘겨울 통영’은 각별한 고유명사다. 가까운 부산보다는 조용하고, 마산보다는 작고 섬세하며, 거제보다는 부드럽고, 남해나 사천보다는 장쾌한 느낌의 항구 도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니 세계에서도 꼽힐 만한 미항(美港)은 푸른 물빛과 낭만적인 이야기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품고 있다.
서울은 혹독한 추위에 얼어붙은 이 계절, 나는 통영으로 피한(避寒)을 떠난다.
‘옛날엔 통제사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엔 오전 내내 ‘김냄새 나는 비가 나렸’(백석, 「통영 1」)다. 김냄새 나는 비가 내리는 낡은 항구에선 항상 고민이 깊어진다.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골목들을 지나,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백석, 「통영 2」) 서호시장에 가 ‘만성복집’ 졸복국을 먹느냐 아니면 그 옆 ‘원조집’이나 ‘훈이네’에 가 시락국을 먹느냐의 문제다. 한참을 갈팡질팡하다 만성복집 문을 연다. 참복지리와 졸복지리, 그리고 복 매운탕을 판다.
고민 없이 한 그릇 1만3000원 졸복국을 주문한다. 생긴 건 앙증맞지만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인 졸복 여러 마리와 미나리, 콩나물이 들어간 게 전부다. 아주 약간의 간만 되어 있는데도 바다 향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맛이 깊다. 국에 풍미를 더해주고, 졸복 살을 보다 탱탱하게 해줄 식초 몇 방울을 뿌린 후 한 숟갈 뜬다. 해장하러 왔다가 술을 더 마시게 되는 그런 집이다. 지역 소주인 화이트를 한 병 시켜 곁들인다.
졸복국도 일품이지만 밑반찬 또한 황홀하다. 말린 장어 강정, 오징어젓갈, 멸치회무침, 갈치속젓 등 맛깔난 반찬들이 밥맛과 술맛을 돋운다. 바닥까지 싹싹 비우고 나설 때, 원조 시락국집 앞에서 괜히 아쉬운 입맛을 다신다. 둘 다 먹을 수 있다면 좋겠는데, 내 저장 용량이 충분치 않다.
하지만 밥배 따로, 빵배 따로다. 충렬사 옆에는 충렬초등학교가 있고, 충렬문구사가 있고, 충렬도너츠 가게가 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 노포 빵집은 옛 스타일의 정통 도너츠를 바로바로 구워내 판다. 꽈배기, 찹쌀도너츠, 소세지빵 등 보기만 해도, 냄새만 맡아도 군침이 도는 빵들이 모락모락 김을 낸다.
종류별로 하나씩 담았는데도 7000원이다. 7300원인데 아저씨께서 300원을 깎아주신다. 깎은 금액으로 카드 결제도 해주셨다. 흰 우유도 한 통 사서는 길 건너 정자에 앉아 충렬사를 바라보며 도너츠를 먹는다. 겨울 오후지만 따사로운 햇살이 맨발을 간질인다.
정자 옆에는 백석의 「통영 2」 시비가 세워져 있다. 바로 여기, 충렬사에서부터 나의 통영 기행은 제대로 시작된다. 백석의 본명이 ‘백기행’인데, 나의 통영 기행은 곧 백기행 기행이다. 백석은 1936년에만 세 번 통영에 왔다. 1월, 3월, 12월. 짝사랑하는 여인 박경련을 만나러. 세 번 다 얼굴은커녕 그림자도 못 봤다. 세 번째는 무작정 그녀 어머니에게 딸을 달라고 떼쓰러 간 것이었다.
1936년 3월 바보 같은 스물다섯 백석이 박경련(시에는 ‘난’으로 썼다)을 못 만나고 슬퍼서 슬퍼서 낮술 먹고 ‘옛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어서 나는 이 저녁 울듯 울듯’ 「통영 2」를 쓴 충렬사 돌계단에 나도 한참 앉아본다. 86년 전 백기행아, 너나 나나 참 한심하다.
‘난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는데/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 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통영 2」 부분)
백석은 조선일보 기자 시절인 1935년 친구 허준 결혼식에서 신문사 동료 신현중에게 열여덟 이화여고생 박경련을 소개 받고 사랑에 빠져버리는데, 김건모 ‘잘못된 만남’이 벌써 그 시절에 있던 얘기다. 신현중이 뒤통수를 쳐버린 것. 백석이 딸과 결혼하겠다 하니 박경련 집에서 신현중에게 백석에 대해 물었다. 박경련은 신현중 누나의 제자였다. 신현중은 “백석 어머니가 기생 출신”이라 일러바치고는 백석 대신 자신과 혼인시켜달라고 해서 승낙 받는다. 이는 잘 알려진 얘기인데, 상상력을 발휘해 다른 설을 제기하자면, 기생이 아니라 무당이라고 했고, 기독교 신자였던 박경련 부모가 그래서 백석을 마뜩찮게 여겼을 것이다. 백석 시에는 평안도 샤머니즘, 특히 가신신앙이 자주 묘사된다. 백석 시에 나오는 ‘가즈랑집 할머니’처럼 관서지방 집집마다 여인들이 가신을 모시는 ‘무녀’이기도 했으니 신현중이 없는 말을 한 건 아니다.
시 쓴 대로 현실에서 이뤄지는 걸 ‘시참(詩讖)’이라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다’고 쓰니까 그대로 되었잖아. 백석, 이 바보야! 백석이 「통영 2」를 쓴 그 이듬해,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1937년 4월 7일 박경련은 신현중과 결혼한다. ‘남쪽 바닷가 어떤 낡은 항구의 처녀 하나를 나는 좋아하였습니다. 머리가 까맣고 눈이 크고 코가 높고 목이 패고 키가 호리낭창 하였습니다’(산문 「편지」 부분)던 그녀를 백석은 영영 잃어버린 것이다.
훗날 ‘하이얀 자리 위에서 마른 팔뚝의 새파란 핏대를 바라보며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 것과 내가 오래 그려 오던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그렇게 살뜰하던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내가 생각하는 것은」)고 질척거려보기도 하지만 놓친 사랑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이다.
요정 대원각을 법정스님에게 시주해 지금의 길상사가 되게 한 자야 여사가 “백석의 나타샤는 나야 나!”라고 강력히 주장했고 그래서 사람들도 그렇게 알고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타샤는 자야가 아니라 ‘난’, 바로 박경련이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고 했을 때, 이건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상상이 아닌가? 꿈에 그려보는 것이다. 박경련과의 산골살이를. 아니 왔으므로 아니 올 리 없다고 계속 무모하게 믿는 것이다.
백석의 통영 연작에 나오는 충렬사, 명정 샘, 통제영은 모두 서피랑에 있다. ‘피랑’은 벼랑의 순 우리말이다. 동피랑이 벽화마을로 유명하다면, 서피랑은 백석의 애절한 사연이 숨쉬는 곳이다.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다’고 썼더니 정말 그렇게 되어버린, 죽은 사람의 살아있는 마음과 만나자 햇살이 우물물 위에 글썽였다. 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 앞, 노란 깃발을 들고 아이들을 지키는 어르신이 옛 장수 같았다.
통영에는 연화도, 사량도, 곤리도, 풍화리 등 이름난 낚시 포인트가 많이 있다. 사철 내내 전갱이 낚시가 잘 되는데, 겨울에는 수심 20~25m권의 깊은 곳에서 큰놈들이 입질을 한다. 낮에 입맛을 충분히 봤으니 이번엔 손맛을 볼 차례.
산양읍에서 출항하는 낚싯배에 올랐다. 저녁 6시부터 밤 12시까지 6시간 동안의 전갱이 낚시, 기대했던 ‘슈퍼돼지전갱이’는 만나지 못했지만, 전갱이 특유의 ‘우다다다’ 하는 질주를 손으로 만끽하며 30여 마리쯤 낚아 올렸다. 배에서 피 빼고 빙장한 전갱이를 숙소로 가져와 회와 초밥으로 맛있게 먹었다. 찬바람이 불 때 물고기들은 지방을 축적해 맛이 기름지다. 같이 간 친구는 “전갱이가 이렇게 맛있는 생선이었냐”며 앞으로 고등어는 쳐다보지도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새벽에 잠들어 점심 무렵까지 늦잠을 잤다. 전날 잡은 전갱이로 제주식 ‘각재기국’을 끓여 속을 풀었다. 카페에 가 커피를 한잔 마시고, 동피랑 구경을 갔다. 강구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벽에는 이곳 출신인 김춘수의 시가 적혀 있다. 통영은 박경리, 유치환, 김춘수, 윤이상, 유치진 등 뛰어난 예술가들을 배출한 고장이다. 백석이 왜 여기 통영에 이끌렸는지 알 만하다.
동피랑을 걷다가, 청마문학관에 가 ‘동물성의 땅의 집념을 떠나서 모든 애념과 인연의 번쇄함을 떠나서 사람이 다스리는 세계를 떠나서 그는 저만의 삼가하고도 방담한 넋을 타고 저 무변대한 천공을 날기’(「소리개」)를 소망한 유치환의 정신과 만났다. 청마문학관을 견학하고 나오자 일찍 어두워지는 겨울 오후가 내 안에 “소리 없는 아우성”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저 푸른 술상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는 것이었다.
통영 향남동의 ‘순반다찌’로 갔다. 통영은 예전부터 ‘다찌’집이 유명한데, 다찌만큼 한상 가득 나오지는 않지만 합리적인 가격으로 다찌 기분을 낼 수 있는 ‘반다찌’도 있다. 문어, 게, 멍게, 소라, 가리비, 고둥, 참돔, 개불, 해삼, 호래기 등 신선한 해산물 회와 함께 가자미조림, 바지락국, 박대구이 등이 상에 오른다. ‘반다찌’라고 하지만 이것은 ‘반’이 아니라 ‘전부’다. 술 한 잔, 안주 한 점에 통영을 먹고 마시면서 밤이 깊었다. 그날 밤에는 꿈결이 온통 푸른 물빛으로 환했다.
다음날, 서울에 올라가기 전 주변에 나눠준다고 통영 꿀빵을 잔뜩 사는 친구를 보며, ‘에이 무슨 꿀빵이야, 우리 엄마는 저런 거 안 좋아해’ 생각했는데, 친구가 엄마 가져다드리라며 꿀 빵 한 상자를 내 손에 쥐어줬다.
그날 저녁, 신림동 집에 통영 굴과 멸치를 갖다 주러 갔는데 엄마의 첫마디가 “통영은 꿀빵이 맛있다던데” 하는 것이다. 머리를 한대 얻어 맞은 듯했다. 얼른 꿀빵도 사왔다며 주섬주섬 꺼냈다. 여섯 개 들이인데, 엄마 한 개 먹고, 남은 다섯 개는 동생과 조카 갖다 준다며 엄마가 뚜껑을 닫았다. “통영은 꿀빵, 여수는 거북선빵이 유명하대”라는 엄마의 말이 슬펐다. 우리 엄마, 신기한 것, 맛있는 것 너무 모르고 살았구나. 그깟 꿀빵이 뭐라고, 이럴 줄 알았으면 한 열 박스 사 오는 건데.
올 겨울 가장 추운 날이지만, 추운 날들이 계속 될 테지만, 꿀빵 딱 한 개만 집던 엄마의 손을 자꾸 생각하려 한다. 그러면 마음 어디선가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글·사진=이병철(시인·문학평론가)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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