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가제 NO!···재료 본연의 맛으로 승부 보는 막걸리! <하영대 무원칙주의 양조장 대표>

경북 의성에는 홀로 유유자적 술을 빚는 청년이 있다. 하영대 ‘무원칙주의 양조장’ 대표(38)다. 그는 16평 남짓한 공간에서 소규모 양조장을 운영한다. 일요일과 월요일에는 7평 정도 되는 양조시설에서 막걸리를 빚는다. 화요일, 수요일에는 옆에 딸린 막걸리 카페의 문을 열고 고객들을 만난다. ‘무원칙주의’라는 상호에는 ‘인종, 나이 등 세상이 정한 기준에서 벗어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이자’는 뜻이 담겨 있다. 아직은 홀로 술을 빚고 있지만 모두가 인정하는 제품을 만들어 세상과 교류하고 공감하고 싶다는 하영대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하영대 무원칙주의 양조장 대표가 경북 의성에 있는 자신의 양조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하영대

운명처럼 만난 ‘무첨가제 막걸리’

키보드 팽개치고 술 빚으러 갔다!

하영대 대표는 6년간 IT(정보기술) 분야 엔지니어로 일했다. 서울에 있는 원격 소프트웨어 제조 업체에 다녔다. 컴퓨터나 노트북이 고장 나면 고객센터 상담원이 집에 있는 고객의 기기를 원격조종해 상담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일은 적성에 맞았지만 매일 새벽 1시 퇴근에 철야근무까지 하기 일쑤였다. 도시에서의 삶은 팍팍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퇴사를 입에 달고 다니던 어느 날 운명처럼 ‘느린마을 막걸리’를 만났다.

양조장 창업 이전 서울에서 IT엔지니어로 일하던 시절 하 대표가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에서 셀프로 사진을 찍고 있다. ⓒ하영대

‘느린마을 막걸리’는 대량생산되는 여느 제품과는 맛이 달랐다. 막걸리를 한입 머금은 순간 ‘그래, 이거다’라는 느낌이 전율처럼 온몸에 퍼져나갔다. 자세히 보니 첨가제가 없었다. 보통 막걸리는 단맛을 내기 위한 설탕, 아스파탐, 과당 등이 첨가된다. 술을 좋아하던 하 대표는 재료 본연의 맛보다 첨가제로 맛을 내는 요즘의 막걸리는 한계가 있다고 평소 생각해왔다. 우리나라 사람들만 즐기지 와인, 맥주처럼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주종이 될 수 없다고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무첨가제 막걸리의 진미를 맛본 그 순간 사업 아이템이 떠올랐다.

수제 맥주나 국산 와인은 다른 나라의 술을 현지화한 것이니 만큼 본고장의 맛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막걸리는 이야기가 다르다. 우리 땅에서 자란 재료로 우리 민족이 만들어온 술이니 제일 잘 만들 수 있는 곳도 한국이라는 판단이 섰다. 결혼자금으로 모은 1억 원을 들고 길을 떠났다. 첨가제 없이 재료 본연의 맛으로 승부를 보는 막걸리를 빚기 위해서였다.

큰 돈 없이도 지을 수 있어요!

소규모 양조장 창업기

도시의 복잡한 삶에서 벗어난 하영대 대표가 경북 의성에 정착한지는 5년째다. 의성에 정착한 이유는 간단하다. 의성군에서 도시 청년들을 유입하려 만든 지원 사업에 선정됐기 때문이다. ‘도시청년 시골파견제’라는 이름을 가진 지원 사업은 당시 의성군에 전입신고를 한 예비 창업자들에게 2년간 매년 3천만 원씩, 총 6천만 원의 사업화 자금을 지원했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 결혼자금을 해결하고자 차곡차곡 모은 목돈 1억 원이 있었지만 초창기 2년간은 지원받은 금액으로만 알뜰하게 썼다.

양조장이 들어설 상가를 임대하고 술을 빚는데 필요한 장비들을 샀다. 중고 장비를 구매할 수도 있었지만 균에 예민한 막걸리 주조에 쓰일 장비는 새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모두 제값을 주고 새로 샀다.

소규모 양조장을 운영하기 위한 모든 준비가 완성됐으니 이제 자신의 손끝에서만 빚어낼 수 있는 술의 맛을 찾을 차례였다.

창업 초기 무원칙주의 양조장의 양조시설. ⓒ하영대

술 빚기 독학하며 보낸 인고의 시간

제품에 꾹꾹 눌러담은 자부심 되다!

양조장을 차리고 2년쯤 지난 즈음 하영대 대표는 조급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같은 지원 사업에 선정된 동기들은 벌써 카페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거나 사과즙을 열심히 판매하는 성과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술맛을 선보일 수 없었던 터라 계속해서 제품개발에 몰두했다. 학창 시절에도 해볼 수 있는 공부를 모두 해본 뒤 안 되면 학원을 찾았던 그의 성격대로 술을 다른 사람에게 배우지는 않았다.

독학으로 술을 빚고 먹어보길 반복하던 어느 날 ‘아이보리컴플렉스’라는 제품의 맛을 찾아냈다. 무원칙주의 양조장의 대표 제품인 ‘아이보리컴플렉스’는 부드러운 목 넘김이 특징이다. 술을 마실 때 목에 걸리는 느낌이 없어야 한다는 하 대표의 양조 원칙과도 딱 맞아떨어졌다. 술을 빚으려 쌀을 씻을 때마다 즐기던 쌀알들의 고운 빛깔을 그대로 전달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아이보리 컴플렉스’를 만들었다.

무원칙주의 양조장의 ‘아이보리컴플렉스’ 막걸리. ⓒ하영대

쌀과 비슷한 ‘아이보리’색에 ‘컴플렉스’라는 단어가 붙은 까닭은 뭘까? 일단 아이보리는 하얀 빛을 띤 노란색을 말한다. ‘컴플렉스’라는 말은 복잡한 심경이 모여 만들어진 하나의 강박관념을 뜻한다. 첨가제 없이 신맛, 쓴맛을 잡기 위해 삼켜냈던 인고의 시간들을 누룩에 눌러 담아 붙인 이름이다. 이름은 무원칙주의 양조장이지만 막걸리의 참맛을 내기 위한 그의 노력은 요령 없는 원칙투성이다.

소규모 양조장 창업이 꿈이라고?

모르면 낭패 보기 십상인 이것

하영대 대표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든 것은 제품개발뿐이 아니었다. 여유로운 시간의 흐름을 만끽할 수 있는 의성에 정착한 것을 후회하지 않지만 어려움은 있었다. 바로 불법으로 지어진 건축물 때문이다. 법령의 깐깐한 규제를 받기 전 지어진 옛날 건물들은 적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홀로 술을 빚어 마을 주민들에게나 판매할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소규모 주류 제조 면허만 받으면 되기 때문이다. 탁주의 경우 1㎘ 이상 5㎘ 미만의 저장 용기 등 기본적인 장비만 갖추면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는 면허다.

하영대 대표가 처음 무원칙주의 양조장을 시작한 상가 건물. ⓒ하영대

판로가 다양해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새로 생겨날 수 있는 판로는 크게 두 가지다. 지역특산주 제조면허를 취득해 인터넷으로 직접 판매하거나 갖가지 전통주 제품들을 모아 판매하는 전통주 바틀샵에 입점하는 경우다. 이때 불법건축물은 문제가 된다. 식품의약처의 꼼꼼한 확인 절차 때문이다. 유통되는 식품이 안전한 곳에서 생산됐는지 꼼꼼하게 확인한다.

하영대 대표는 믿고 계약한 상가가 불법 건축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머리 뒤를 뭔가로 두들겨 맞은 느낌이 들었다고 표현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후 법적으로 모든 문제가 없는 상가로 이사를 온 후에야 인터넷 판매, 바틀샵 입점을 준비했다. 하 대표는 “소규모 양조장을 차리고 싶은 예비 창업라면 법적인 부분을 꼼꼼히 반드시 꼭 확인해야 한다”고 몇차례를 거듭 강조했다.

더 넓은 공간에서 양조장과 카페를 함께 운영하는 현재 양조장. ⓒ하영대

하 대표가 경험담을 이어갔다. “소규모 양조장을 시골에 지을 때는 넘어야 할 산이 있습니다. 내게 필요한 면허와 요건들을 꼼꼼히 확인하는 일이죠. 보통 식당 허가 업무만 처리해 본 지자체 공무원들도 정확한 정보를 주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간단하게 해결할 방법도 있어요. 제일 높은 기관에 문의하면 됩니다. 주류면허 취득과 관련한 사항은 지역 세무서에서 처리하지만 담당자가 명쾌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면 제주도에 있는 국세청주류면허지원센터에 전화하면 됩니다. 많은 케이스들을 다룬 전문 인력이 상주해 있기 때문이죠. 영업 등록 같은 경우도 원래 군청 위생과에서 답을 얻어야 하지만 저는 대구지방식품의약국안전청에 물어봤어요. 며칠 동안 끙끙 앓았던 문제들이 한순간에 해결됐습니다. ”

이 맛에 겨우 이 가격을 받고 판다고?

이런 말 듣는 럭셔리 막걸리 만들고파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만들다 포즈를 취하고 있는 하영대 대표 ⓒ하영대

하영대 대표는 무원칙주의 양조장을 ‘럭셔리 데일리 막걸리’ 브랜드로 성장시키겠다는 포부를 다졌다. 막걸리 애호가들이 믿고 찾는 술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막걸리 맛을 아는 사람들이 항상 비싼 제품만 소비할 수는 없잖아요. 가격에 거품이 없지만 품질만은 당당히 내세울 수 있는 막걸리를 만들고자 합니다. 아주 최상급의 재료를 사용할 수는 없더라도 저급의 재료는 사용하고 싶지 않아요. 물론 앞으로 우수한 품질만큼의 가격이 매겨진 프리미엄 제품도 만들 예정이지만 기본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맛있게 소비할 수 있는 막걸리를 만들려고 합니다. ‘이런 맛이 이 가격밖에 안 한다고?’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하 대표가 빚어내는 막걸리는 현재로선 그가 의성에서 운영하는 막걸리 카페에서만 맛볼 수 있다. 점차 판로를 늘릴 계획이다. 느리지만 우직한 원칙으로 빚어진 술이 세상에 드러날 때다. 요즘 전통주 바틀샵으로부터 입점 문의가 여럿 들어오고 있다며 행복한 미소를 띤 하영대 대표가 말했다. 인터넷 판매를 위한 준비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무첨가제 막걸리의 진미를 선보이고 싶다는 하영대 대표의 막걸리는 어떤 맛일까. 막 추수한 햅쌀만으로 밥을 지어 먹을 때 느껴지는 쌀알 특유의 고소함과 담백함이 담긴 맛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더농부 에디터 장지영

nong-u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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