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꾸미, 좋아하세요? : 충남 보령 오천항 [시인 이병철의 ‘길에서 부르는 노래’ – 10]

이병철 시인은 2014년 문예지 『시인수첩』의 신인상 시 부문, 『작가세계』의 신인상 문학평론 부문에 각각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젊은 문학인입니다. 그는 시 쓰기와 문학평론 외에도 강의, 낚시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창작의 고통과 삶의 무게가 다가올 때 어디론가 훌쩍 여행을 떠납니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자연을 만나고, 여행지의 정서와 감동을 사진과 글로 담고 있습니다. 더농부는 그가 풀어내는 ‘길에서 부르는 노래’를 격주로 전해드립니다. 젊은 시인이 한국의 명소와 맛집을 다니며 보고 느낀 것들을 함께 즐겨보시면 좋겠습니다.


9~10월 충남 보령 오천항엔 ‘쭈갑 낚시’ 인파가 몰린다

낚시 인구가 1000만에 육박하고 국민 취미활동 1위라는데 잘 와 닿지 않는다. <도시어부>를 비롯한 낚시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요즘 여러 지방자치단체에 유행병처럼 번지는 ‘낚시금지’ 광풍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만만한 게 낚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낚시는 마이너리티이고 언더독이다. 낚시금지와 관련한 포털사이트 기사에 달린 네티즌들의 댓글을 보면 서글퍼진다. 낚시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매년 9월 1일이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날로부터 한두 달은 낚시가 국민 취미활동 1위의 위엄을 사정없이 뽐낸다. 주꾸미 금어기가 해제되면서 본격적인 ‘쭈갑(쭈꾸미, 갑오징어) 낚시’ 시즌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낚시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주변 사람들도 “주꾸미 갑오징어 잡으러 간다”고 하면 너나 할 것 없이 “나도 좀 달라”며 손을 내민다. 그들의 이중성에 기가 차다가도 ‘그래, 야들야들한 햇주꾸미 맛은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큼 환상적이지’ 혼잣말하면서 너그러이 이해하고 만다.

낚시인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가을 오천항. 텐트를 치고 밤샘을 하는 진풍경도 펼쳐진다. ⓒ이병철

주꾸미 시즌에 배를 예약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주말 출조의 경우 이미 몇 개월 전에 예약이 마감된다. 주꾸미 금어기가 해제된 9월 1일 새벽 2시의 보령 오천항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주차장엔 빈자리가 없고, 곳곳에 텐트가 쳐져 있기까지 하다. 배에 오르기 전 출출함을 달래려는 낚시인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펴고 앉아 라면을 끓이고, 김밥과 삶은 계란을 나눠먹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새벽 출정을 기다리는 낚싯배들 ⓒ이병철

몇 해 전 9월 1일, 서해바다를 빽빽하게 수놓은 주꾸미 낚싯배들의 장관을 보면서 장석남 시인은 “1592년 부산 앞바다의 왜적선들보다 더 많을 것”이라는 농담을 했다. 한 배에 대략 스무명 정도씩 타는데, 오천항에서만 적게 잡아 100척이 출항한다고 해도 2000명이다. 2000명이 낚싯대 하나를 칼처럼 들고 누가 더 많이 잡는지 진검승부를 펼친다.

쭈갑 낚시는 먹는 맛도 황홀하지만 무엇보다 낚는 재미가 쏠쏠하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마릿수를 올릴 수 있는 낚시라서 가족 단위 출조객이 많다. ‘주꾸미 200마리’니 ‘백갑’이니 하는 목표를 설정해놓고 개인 기록 경신을 위해 저마다 자신만의 올림픽을 벌인다. 요즘은 낚시인들이 아예 계수기를 들고 다니면서 마릿수를 또박또박 기록하기도 한다.

어느새 파랗고 말간 얼굴을 내 보이는 천수만 바다 ⓒ이병철

인천과 남해권에서도 주꾸미 출조가 이뤄지지만 주꾸미 낚시의 양대 산맥이라면 역시 보령 오천항과 군산 비응항이다.

주꾸미는 ‘에기’라는 인조미끼로 잡는다. 일본어로 ‘먹이 나무’라는 뜻이다.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부터 에기가 보급되면서 국내 에깅 낚시 전성시대가 열렸다. 에기는 옛 류쿠왕국인 일본 오키나와 아마미 섬에서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어부가 횃불을 밝혀 고기를 잡다가 떨어져 나간 나무 조각에 오징어가 달려드는 걸 보고서 나무 조각에다 바늘을 달아 사용한 것이 최초의 에기다. 그것이 300년 전 가고시마 지방에 전해졌고, 1990년대 일본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게 됐다.

「약 200년 전인 19세기 초반 조선 순조 때 쓰인 백과사전인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4권 ‘전어지’에는 ‘漁人以銅作烏賊形 其鬚皆爲鉤 眞烏賊見之 自來罹鉤(어인이동작오적형 기발개위구 진오적견지 자래리구)’라는 문구가 있다. 번역하면 이렇다. ‘어부는 구리로 오징어 형태를 만들되, 그 수염을 모두 낚싯바늘로 한다. 그리하면 오징어가 그것을 보고 스스로 달려들어 낚싯바늘에 걸린다.’ 서유구는 이 문구 다음에 출전(出典)을 <화한삼재도회>라고 해 놓았다. <화한삼재도회>는 1712년 출간된 책으로 일본의 의사 데라지마 료안이 지은 일종의 백과사전이다. 즉 일본에서 18세기 초에 이미 루어로 오징어를 잡았다는 이야기다.」

문학평론가이자 출판사 휴먼앤북스 대표로서 책 ‘나는 낚시다’의 저자이기도 한 ‘전조선문학가조사동맹’ 하응백 서기장의 글에서 발췌한 대목이다. 전조선문학가조사동맹은 문학가들의 낚시 모임이다. 에깅의 역사는 일본이 우리보다 수백년 앞섰지만, 두족류 낚시에 대한 열정, 특히 주꾸미와 갑오징어를 향한 애타는 순정은 이미 극일(克日)을 하고도 남는 것이다.

나는 쏘가리 낚싯대에 소형 스피닝릴, 그리고 가벼운 봉돌과 국산 에기를 쓴다. ⓒ이병철

일본산 에기가 거의 점령했던 에깅 낚시 시장에 요즘 우리 낚시 환경과 현장 특성에 맞는 국산 제품들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국면이 열렸다. 일본 제품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수평 유지와 바늘의 예리함, 야광 등 기능을 겸비한 국산 에기들의 역습이 시작된 것이다. 이를 두고 하응백 서기장은 “‘이제 에기도 독립했다’고 선언해도 된다”고 말했다. “애국이 별 겁니까? 예? 우리가 일본을 뭐라도 이겨야 될 거 아닙니까?”라던 영화 ‘범죄와의 전쟁’ 속 최민식의 명대사가 떠올랐다. (최민식은 훗날 ‘명량’에서 이순신 역할을 맡는다!)

2022년 10월 전조선문학가조사동맹의 가을 정기 출조가 있었다. 하응백 선생님을 비롯해 소설가 조용호, 백가흠, 시인 장석남, 여영현 선생님, 그리고 나까지 오천항 밥말리호에 올랐다. 밥말리호는 ‘낭만과 힐링의 배’다. 출항하는 순간부터 입항할 때까지 송인호 선장의 쉴 새 없는 입담과 다채로운 음악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선실에는 아메리카노 커피 머신이 마련돼 있고, 선수와 선미, 데크 및 통로에는 폭염과 비를 피할 수 있는 어닝까지 설치돼 있다.

첫 포인트에 도착해서부터 꾸준히 주꾸미가 올라왔다. 무게감 파악과 챔질에 대한 감만 익히면 남녀노소 누구나 즐겁게 손맛을 보고, 입맛까지 풍성하게 즐길 수 있는 낚시가 주꾸미, 갑오징어 낚시다. 1000만 낚시 인구라는 통계에서 가을철 쭈갑 낚시 출조객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이상일 것이다. 연중 오직 이 시기에만 낚시하는 분들이 많다. 그만큼 재밌고, 잘 잡히고, 맛있는 인기 만점의 낚시다.


주꾸미 쌍걸이! 씨알 좋은 갑오징어도 올라온다. ⓒ이병철

전조선문학가조사동맹이 결성된 지는 7년 정도 됐다. 쭈갑 낚시를 갈 때면 중간에 물이 멈춰 조과가 뜸해질 쯤 주꾸미와 갑오징어 몇 마리씩 각출해서 회와 통찜으로 요리해 먹는다. 낚시도 좋지만 선상에서 즐기는 싱싱한 미식의 기쁨이 조사동맹의 존재 목적이다.

살아 있는 주꾸미를 깨끗하게 씻은 후 다리만 썰어 참기름에 버무려서 소금 찍어 먹으면 산낙지보다 열 배는 더 맛있다. 나만 알기엔 너무 아까운 맛이라, 나는 주꾸미 낚시에 꼭 기포기를 챙겨가 낚시 후반에 잡은 열댓마리를 살려서 가져 오곤 한다. 이날도 주꾸미 탕탕이와 함께 다양한 요리가 입맛을 돋웠다. 대가리는 따로 모아 갑오징어 통찜과 함께 쪄내고, 주꾸미 라면도 넉넉하게 끓였다.


주꾸미와 갑오징어로 푸짐하게 차린 한 상. 주꾸미 먹물라면이 빠질 수 없다. ⓒ이병철

새벽 출조를 위해 전날 밤부터 꼬박 샜더니 몹시 졸려서 점심 먹고 선실에 누워 한 시간쯤 낮잠을 잤다. 그랬는데도 최종 조과는 주꾸미 200여마리, 갑오징어 40마리쯤 해서 총 7㎏정도 됐다. 조사동맹원들 모두 그만큼씩은 잡았다. 대호황이었다. 밥말리호 뿐만 아니라 이 배 저 배 할 것 없이 손님들 표정이 환했다.

망태기에 점점 조과물이 채워져간다. ⓒ이병철

어느덧 철수 시간이 됐다. 밥말리호는 늦은 오후의 햇빛이 부드럽게 스며든 물살을 가르며 오천항에 접안해 손님들을 내려놓는다. 장비를 차에 싣고, 복잡한 항구를 빠져나가 서쪽 국도를 달리면, 짧아진 해가 쓸쓸한 노을을 부려놓는다. 이렇게 또 한 해가 가는구나. 이 늦가을 감정만큼 깊고, 차갑고, 울컥한 마음이 또 없다.

아까시가 피고 지고, 장미가 피고 지고, 수국이 피고 지고, 장마와 태풍이 지나가고, 거리에 은행잎이 수북이 쌓이는 동안 몇 사람을 만났고, 몇 사람과 헤어졌다. 사람이 들어왔다가 나간 마음의 방은 이제 텅 비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긴 겨울을 기다리고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길은 열리고, 여행을 멈추는 순간 또 다른 여행이 이미 시작되는 법인데, 마음에는 작은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갈수록, 일월(日月)이여/ 내 마음 더 여리어져/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시간을 견딜 수 없네/ 시간의 모든 흔적들/ 그림자들/ 견딜 수 없네/ 모든 흔적은 상흔(傷痕)이니/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

멀리 천수만을 향해 날아오르는 역광의 새들을 바라보며 정현종 시인의 시 <견딜 수 없네>를 중얼거렸다. 하루는 이다지도 긴데 생은 짧기만 하구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생애 동안 있었던 “변화와 아픔들”을 생각했다. “흐르고 변하는 것들”과 “아프고 아픈 것들”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저 하늘과 바다가 나를 안아주었다. 저 노을이 내 생의 가장 뭉클한 위로라고, 견딜 수 없는 빛에 얼굴을 씻으며, 고속도로를 달렸다.

언제나 마음 겸허해지는 입항길 ⓒ이병철

후배 몇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집으로 소집 명령을 내렸다. 나를 포함해 장가도 못 가고 돈벌이도 시원찮은 사내 넷이 주꾸미와 갑오징어를 안주 삼아 소주부터 와인, 위스키까지 대취했다.

나는 낚시가 얼마나 아름답고 위대한 취미 활동인지 열변을 토했다. 주꾸미 샤부샤부와 갑오징어 회, 통찜, 쭈삼 볶음이 푸짐하게 차려진 술상에서 내 말에는 강한 설득력과 호소력이 생겼다. 가을이 다 가기 전 함께 쭈갑 낚시를 가기로 했다. 그렇게 후배 세 놈을 낚시인으로 만들었다. 국민 1위 취미활동에 동참하게 된 그들에게 축하의 의미로 국산 에기 몇 개 선물로 줬다.

주꾸미볶음과 소면, 갑오징어통찜, 주꾸미 돼지고기 소금볶음, 주물럭까지. 환상적인 맛이다. ⓒ이병철


글·사진=이병철(시인·문학평론가)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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