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흑돼지야. 넌 어디서 왔니? 왜 이렇게 맛있는 거니?[재미있는 농업 이야기 16]

제주재래흑돼지는 윤기나는 흑색 털에 위로 쫑긋 솟은 귀, 작고 귀여운 몸집을 가지고 있다. 동작이 빨라 흔히 떠올리는 돼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외모만 다른 게 아니다. 선명한 붉은 육색에 씹는 맛과 고소한 맛을 가진 지방에 많은 이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제주의 솔푸드, 제주 흑돼지 고기는 이제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고기가 됐다. 관광객 대상으로 제주 전통음식 선호도 조사에서 매년 제주 흑돼지 고기가 최상위에 선정된다. 제주 흑돼지는 일반 돼지고기보다 30~40% 정도 비싸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다.

시중에 판매되는 제주 흑돼지와 제주재래흑돼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제주재래흑돼지는 어디서 왔는지, 왜 맛있는지 알아보자.

제주재래흑돼지 사진. ⓒ국립축산과학원

제주재래흑돼지의 사육 역사

제주재래흑돼지는 제주도에서 오랫동안 사람들과 동고동락 해왔다. 제주도에서 돼지 사육은 서기 0~400년경에 야생 멧돼지를 사육하면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방 계열의 재래돼지는 대체로 소, 말과 함께 북방으로부터 고구려 시대에 유입되어 남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맷돼지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문헌상으로 나타나는 본격적인 도입 시기는 고려시대다. 대동여지도 주석에 따르면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서 사육되던 재래돼지 소형종 (성숙 체중 30㎏ 정도) 계통이 이 시기 우마(牛馬)와 함께 유입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이전부터 돼지가 사육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제주의 곽지리, 금성리, 종달리 유적지 등에서는 초기 철기시대(B.C.200년)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유물들이 잇따라 출토됐다. 또 우제목에 속하는 소, 멧돼지, 사슴류(Cervus spp.)의 일종 등의 유골들도 다량으로 발굴되었다. 하지만 이 유적에서 출토된 우제목이 사육화되었는지, 아니면 야생 멧돼지인지는 구분되지 않는다.

제주재래흑돼지와 제주도 문화

제주의 흑돼지는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제주의 기후와 풍토 조건에 잘 적응해 자연선발되고 사육돼 왔다. 제주재래흑돼지는 육지와 격리된 제주도의 지리적 여건상 고유한 특성을 간직하게 됐고 제주 지역의 생활, 민속, 의식주 등과도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게 됐다.

알려진 대로 제주에서는 오래전부터 돌담을 둘러 터를 잡고 변소에 흑돼지를 함께 두어 길렀다. 이를 ‘돗통’이라고 부른다. 인분을 돼지의 먹이로 쓰는 사육 방식은 적도 지역인 남아시아, 아프리카, 중앙아메리카, 중국 동쪽 지방 유구성 지역 그리고 한국 회령, 양구, 통영, 거창, 광양 등에서 볼 수 있는 형태다. 독사나 독충에 강한 돼지를 아래층에 키우고 위층을 주거 공간이나 화장실로 구성하는 생활양식에서 비롯되었다.

돗통시 사진. ⓒ국립축산과학원

토양이 척박해 농사를 짓기 힘든 화산섬 제주에서 농사의 일등 공신은 ‘돗거름’이라 부르는 돼지거름이었다. 물이 귀해 논은 없고 밭농사로 보리와 조를 주로 재배했는데, 돗통시에서 키운 돼지의 분뇨와 인분, 지푸라기를 섞은 돗거름을 썼다. 돗거름 양으로 한 집안의 농사 규모를 가늠했을 정도다. 이렇게 인분과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면 투수성이 강한 제주 땅에서 지하수도 지킬 수 있었다.

돼지고기는 혼례, 상례 등 제주의 큰일에 빠질 수 없는 음식 재료다. ‘돗수애’(돼지순대), ‘돔베 고기’(돼지수육), ‘돗새끼회’(암퇘지 자궁 속의 새끼 돼지로 만든 회) 등이 제주 향토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마을굿이나 집안 굿에서도 공양물의 핵심은 돼지다.

제주 흑돼지 산업의 발전과 제주재래흑돼지의 복원

제주도 고유의 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제주재래흑돼지에게도 멸종의 위기가 찾아왔었다.

일제강점기인 1908년을 전후하여 생산능력이 낮은 재래돼지를 개량할 목적으로 다양한 개량종들이 유입돼 재래돼지와의 잡종화가 많이 일어났다. 한국전쟁 후 선교사인 맥그린치 신부는 제주도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버크셔(Berkshire)와 요크셔(Yorkshire) 품종의 개량종 돼지들을 도입했다. 1961년에는 성이시돌 양돈 목장을 설립해 개량종 돼지 사육을 통해 제주도 근대 목축업의 기반을 마련했다.

버크셔 돼지 사진. ⓒ동아지엔이㈜

다수의 개량종들이 사육되면서 제주재래흑돼지의 개체 수가 급감했다. 재래종에 대한 관심과 유전자원에 대한 인식이 고조되면서 재래종에 대한 조사와 수집 활동이 연구 측면에서 시작됐다. 제주특별자치도 축산진흥원은 1986년 우도 등에서 원형에 가까운 재래종 돼지 5마리(암컷 4마리, 수컷 1마리)를 확보해 순수 혈통의 제주재래흑돼지를 사육, 관리해 왔다. 이후 2015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제주축산진흥원 내에서 사육돼 표준품종으로 등록된 개체는 260여 마리로 한정된다.

제주재래흑돼지 맛의 비밀

제주재래흑돼지는 왜 맛있을까? 그 비밀은 유전적인 차이다. 외국의 품종들은 오랜 세월 동안 잘 크도록 덩치를 키우는데 초점을 맞춰 개량되어 왔다. 하지만 제주재래흑돼지는 그 자체로 보존되어 왔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다양하게 유지되어 온 것이다.

국립축산과학원 난지축산연구소에서는 2005년 제주도 재래종 흑돼지와 랜드레이스 품종 간 교배를 통해 1400여 마리의 참조축군을 조성하였다. 참조축군을 대상으로 육질에 미치는 유전자와 흑돼지의 검은색을 조절하는 핵심 유전자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 고기 맛을 좌우하는 유전자를 발견하였다. Myosin Heavy Chain 3(MYH3)라고 불리는 유전자를 구성하는 수 만개의 염기 중 제주 재래 흑돼지는 개량종인 랜드레이스 품종과 달리 6개의 염기가 없는 염기 결손 상태인 것을 확인하였다. 즉 제주 재래 돼지가 다른 종의 돼지와 다르게 염기 결손으로 인한 변이 MYH3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제주재래흑돼지 중 근육 내 지방량과 적색육이 일반 돼지보다 3배 이상 높게 나타나는 등 맛이 좋다는 결과들이 여러 연구 결과 나온 바 있다.

제주재래흑돼지를 활용한 신품종 ‘난축맛돈’

유전적으로도 맛있는 제주재래흑돼지가 멸종 위기까지 간 이유는 무엇일까? ‘작고 귀여운 몸집’ 때문이다. 재래돼지는 출하일령이 230일이다. 175일에서 185일인 백돼지에 비해 훨씬 길다. 재래돼지는 번식력도 약한 편이다. 한 번 새끼가 태어나는 수는 7마리 정도다. 반면 백돼지는 10마리를 넘게 낳는다. 생산성 측면에서 재래돼지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난축맛돈 사진. ⓒ국립축산과학원

국립축산과학원 난지축산연구소에서는 국산품종 개발을 통한 종자주권 확립과 돼지고기를 구워서 먹는 것을 즐기는 국내 소비자 선호도를 감안해 앞다리 살, 뒷다리 살, 등심 등 흔히 말하는 ‘소비자 비선호 부위’ 적체 2가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제주재래흑돼지를 기반으로 ‘난축맛돈’을 개발하였다.

제주재래돼지의 맛 관련 유전자를 분석하고, 개량돼지에 접목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가축의 경우 유전자 수준에서 품종 개발을 한 사례가 전무한 상황에서 형질 관련 원천기술을 독자 개발해 특허등록(개량된 돼지 및 그의 제조방법)도 완료했다. 연구진은 이를 바탕으로 2013년 세계최초로 유전형질과 흑모색 유전자를 고정한 신품종 흑돼지 ‘난축맛돈’을 개발하고, 2014년에는 생축 자체를 특허 등록한 후 제주도 내 흑돼지 농가에 분양을 시작했다. 아울러 ‘난축맛돈’에 대한 상표등록도 마무리했다.

‘난축맛돈’은 개발 목적처럼 뛰어난 육질을 가진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보통 육질의 우수성응 이야기할 때 ‘근내지방(마블링)’ 비율을 따진다. 근내지방이 제일 없는 부위 중 하나인 등심의 경우 일반 백돼지는 근내지방 함량이 평균 2~2.5%에 그친다. 반면 난축맛돈 등심의 근내지방은 평균 10.5%로 최소 4배 이상 높다. 출하일령의 경우 180일 정도로 일반 개량종 백돼지에 근접한 상태다.

난축맛돈 고기 사진. ⓒ제주드림포크

‘난축맛돈’은 생산과 유통, 판매까지 어느 정도 체계적인 틀을 잡아가고 있다. 현재 삼호농장을 비롯한 5개의 전용 난축맛돈 농가에서 사육되는 ‘난축맛돈’은 전량 ‘난축맛돈’ 전문 유통 업체인 ‘㈜제주드림포크’를 통해 전국 20여 개 음식점에 공급하고 있다. 입소문을 통해 소비자 비선호 부위인 앞다리살과 뼈 등심까지 구이용으로 활용하는 ‘난축맛돈’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공급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난축맛돈’ 연구진과 사육농가들은 ‘어떻게 하면 고기를 보다 안정적으로 더 많이 공급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기 위해 생산량을 어떻게 늘릴 것인가’라는 과제를 해결하려고 부심하고 있다.

제주의 상징적인 동물이자 주요유전자원인 제주재래흑돼지는 역사가 깊은 만큼 우여곡절도 많은 품종이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제주재‘래흑돼지, 앞으로 제주도 여행에 난축맛돈 식당을 들려보는건 어떨까?


글=신문철 국립축산과학원 난지축산연구소 농업연구사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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