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연구로 ‘꿀벌실종 막기’나선 20代 양봉인[박혁진 선인양봉종봉원 대표]

꿀벌이 사라졌다. 꿀벌이 사라졌다니, 무슨 말일까? 겨우내 단잠을 자고 깨어나야 할 벌들이 벌통 속에서 자취를 감추었다는 소리다. 꿀벌이 사라지면 생기는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단순히 꿀 생산량만 줄어드는 게 아니다. 식물 생태계 자체가 큰 타격을 입는다. 유엔환경계획(UNEP)의 분석에 따르면 세계 식량의 90%를 제공하는 100종의 작물 중 70종 이상이 꿀벌 덕분에 열매를 맺는다.

꿀벌이 멸종하면 한 해 142만 명의 사람들 또한 사라질 것으로 2015년 하버드 공중보건대 연구팀은 예측했다. 과거 독일의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꿀벌이 멸종하면 인류도 4년 안에 사라진다”라는 경고를 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가 직접 한 말이 맞는지 그 여부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꿀벌이 우리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기에 부족하지 않다. 꿀벌은 지구 생태계의 대들보이기 때문이다.

충북 괴산에는 젊은 감각과 끈질긴 연구로 꿀벌을 지켜내는 25세 청년농업인이 있다. 박혁진 선인양봉종봉원 대표다. 주변 양봉인들의 평균 나이대는 60세를 훌쩍 넘긴다. 그럼에도 20대 박 대표는 그 누구보다 양봉업에 진심이다. 꿀벌을 기르는 청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담아 일한다. 박 대표가 꿀벌들과 함께 그리고자 하는 궤도는 어떤 것인지 들어봤다.

박혁진 선인양봉종봉원 대표가 채밀 중인 꿀 소비(巢脾)를 들고 웃고 있다. ©박혁진 대표

2년차 양봉인이 전하는 양봉업의 매력은…

자본·힘 적게 들어 도전해 볼 가치 충분!

박혁진 대표는 2년 차 양봉인이다. 2021년 11월 충북 괴산에서 선인양봉종봉원을 열었다. 양봉은 꿀벌을 길러 꿀을 따는 곳에 붙이는 이름이고 종봉원은 여왕벌을 길러 다른 양봉원에 판매하는 곳이다. 그는 벌꿀을 따기도 하고 여왕벌을 다른 농가에 판매하거나, 봄철 수정에 필요한 벌통을 채소농가에 빌려주기도 한다. 벌통을 채소농가에게 빌려주면 한 해 소득의 20% 정도를 번다고 하니 꽤나 쏠쏠한 수입원인 셈이다.

농업·농촌의 고령화가 문제라지만 양봉업에 비하면 다른 작물을 기르는 농가의 상황은 양반이다. 새로 진입하는 청년이 거의 없다. 양봉업이 활성화된 괴산에서도 20대 양봉인은 박혁진 대표가 유일하다. 이쯤에서 왜 젊은 사람들이 양봉업에 도전하지 않는지, 꿀벌을 기르는 게 힘든 일인지 사뭇 궁금해진다. 박 대표의 설명이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양봉업입니다. 은퇴 후 적은 자본으로 쉽게 뛰어들 수 있는 농업 분야로 유명한 것이 양봉업이죠. 아무래도 벌에 쏘이는 게 무섭거나 양봉업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보니 젊은 친구들이 유입되지 않는 것 같아요. 수입은 꿀뿐만 아니라 화분, 프로폴리스 등을 생산하며 얻을 수도 있어요. 저는 하고 있지 않지만 로열젤리도 하나의 수입원이죠.”

나이는 어리지만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일하는 박 대표. 주변 선배 양봉인들의 칭찬이 자자하다. ©박혁진 대표

최근 꿀벌이 사라져 걱정은 없는지도 물었다. “다행히 제 양봉장은 큰 피해가 없었어요. 다만 주변 농가들의 꿀벌 개체 수가 크게 감소한 것은 사실입니다. 기후변화 등 갈수록 나빠지는 여건 때문에 꿀벌이 더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상황이긴 합니다. 올해는 벚꽃이 빨리 피고 금방 져버려 꿀벌들이 왕성하게 활동을 시작할 시기가 짧아진 것도 걱정이긴 하죠.”

그럼에도 박혁진 대표는 양봉업은 꽤나 매력적인 사업이라고 한다. 농사를 짓는데 큰 힘이 들지 않고 자본이 적게 드는 양봉업은 청년농업인이 도전해 볼 만하다고 느낀다. 젊은 나이에 자리를 잡으면 승산이 있다는 생각이다.

꿀벌 기를 생각으로 대학 진학

남다른 탐구심으로 특허 등록

박혁진 대표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진로 선택에 대한 고민했다. 선택지는 농업계 공무원과 농업인이라는 두 가지였다. 아무래도 공무원은 적성에 맞지 않겠다 싶었다. 문득 퇴근하면 항상 신나는 얼굴로 집에 돌아오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의 아버지는 일찍이 양봉업을 시작한 선배 농업인이다. 박 대표가 아버지에게 궁금증을 털어놨다. “딱 두 가지를 여쭤봤어요. 양봉업을 추천하는지, 솔직히 얼마를 버는지…. 아버지 말씀을 들어보니 괜찮겠다 싶었어요. 제대로 매달렸죠. 지금 매출을 시작할 때와 비교하면 2배 정도 성장했어요.”

그는 선인양봉종봉원을 운영하기 전 한국농수산대학교 산업곤충학과에 진학했다. 산업곤충학과는 이 대학에서도 새로 생긴 과였다. 1기 학생으로서 과대표를 지내며 수업 내용을 하나라도 놓칠까 열심히 공부했다. 2학년 때는 농촌진흥청 양봉생태과에서 8개월간 실습을 했다. 이때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박 대표의 목소리에 신바람이 묻어났다. “그때는 ‘왜 이런 것까지 연구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농사를 시작하고 나니 농촌진흥청에서 경험한 연구의 중요성을 알게 됐죠.”

박혁진 대표가 졸업한 한국농수산대학교는 2학년 때 선진농업현장, 농업기관 등으로 실습을 나간다. ©박혁진 대표

꿀벌에도 여러 품종이 있다. 박 대표는 어떻게 하면 꿀벌 품종이 잡종화되지 않도록 관리할 수 있는지를 실습을 통해 고민하고 연구했다. “벌이 없는 외딴섬에 가서 여왕벌과 수벌을 교미시킨 적이 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만 배가 드나드는 인적이 드문 곳이었죠. 함께 간 박사님들과 동고동락하며 이런저런 지식들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에도 연구를 이어나갔다. 그 결과 등록해 놓은 특허만 벌써 2개나 된다. 꿀벌 실종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꿀벌 응애를 친환경 약제로 방제하는 방법에 대한 특허들이다. 그의 노력 덕분인지 여러 약제를 번갈아 쓴 그의 농장에서는 꿀벌 응애 피해가 적었다. 꾸준한 연구는 월동 피해를 최소화하는데도 한몫을 했다. 올해 12월 말에서 1월 초 벌들을 깨워 죽은 벌들의 수를 파악하고 일찍 대처에 나선 결과다. 젊은 감각에 더해 끈질긴 연구를 이어나간 그의 경험이 ‘꿀벌 실종 사태’의 피해를 줄인 것이다.

꿀벌과 함께 사계절 날아오르는 삶…

더 많은 청년들 도전하게 돕고싶어요!

한 해 꿀벌 농사를 짓는 과정에 대해 물었다.

겨울이 끝나갈 때쯤 잠을 자고 있는 벌들을 깨운다. 봄은 꿀벌의 세력이 커지는 시기다. 벚꽃이 피고 산과 들에 이런저런 모양의 꽃들이 피면 벌들은 산란을 이어나가고 꿀을 만들기 시작한다. 5월이 되면 아카시아꽃이 피는데 양봉업은 주로 아카시아 나무가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6월이 되면 야생화, 즉 여러 종류의 꽃들에서 나오는 꿀을 따고 밤꿀도 딴다. 박혁진 대표는 여왕벌을 주변 농가에 판매하는데 이때쯤 여왕벌만 따로 생육해 여름부터 9월까지 판매한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꿀벌들은 꽃이 피면 바삐 움직인다. ©박혁진 대표

박 대표는 사계절의 각 시기마다 벌통을 다르게 쓴다. 귀찮아도 벌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나무, 스티로폼 등의 재료로 만들어진 벌통을 바꾸어준다. 여름에는 환기가 잘 되는 나무 벌통을 쓰고 겨울에는 스티로폼이나 친환경 플라스틱인 EPP 소재의 벌통을 쓴다. 보온성이 좋기 때문이다. 어디서 좋은 벌통이 새로 나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한 번씩 써보기도 한다.

벌통의 종류에는 나무 벌통, 스티로폼 벌통 등 다양한 것들이 있다. ©박혁진 대표

한 해 가장 보람찬 순간은 언제일까?

“제가 직접 생산한 꿀을 그동안 감사했던 분들에게 선물로 드릴 때가 가장 보람차죠. 대학교, 농촌진흥청에서 배운 지식을 가지고 따낸 꿀이니까요. 요즘은 더 많은 청년들이 양봉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노력도 하고 있어요. 모교의 후배들이 실습생으로 우리 농장에서 양봉을 배우고 있기도 하죠. 앞으로는 함께 일할 청년농업인에게 도움이 될만한 일을 하면 가장 보람차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박 대표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니 ‘양봉업은 가치와 매력을 놓치지 않을 산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꿀벌이 국내 생태계에 미치는 경제적 가치는 약 5조 9000억 원으로 추산된다. 꿀벌이 사라지지 않도록, 더 많은 청년들이 꿀벌과 힘찬 비행을 함께하길 바라본다.


더농부 에디터 장지영

nong-up@naver.com

더농부

참고=

SBS 뉴스, <[마부작침] 꿀벌 실종 사건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은?>

인사이트, <“꿀벌 멸종하면 4년 안에 인류 사라진다”…천재 아인슈타인이 한 경고>

한국뉴스투데이, <[인터뷰] 벌 한 마리가 세상을 바꾼다…박진 어반비즈 서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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