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곤충이 주는 커다란 행복 [재미있는 농업이야기 24]

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여름이 다가올수록 가을이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뜨거운 한여름의 햇살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시원한 바람과 뒤섞여 흩어지는 상상을 하며 여름을 버틴다. 가을을 상상하는 것으로 여름을 무사히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밀린 일을 접어두고 주말에 가족끼리 캠핑장에 왔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저녁, 고기를 잔뜩 구워서 조카들과 배불리 먹는다.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놀고 나는 아이스박스에서 시원한 맥주를 집어 들고 목을 축인다. 이것이 진짜 가을에만 즐길 수 있는 재미다.

풀벌레 소리가 없는 가을 캠핑은 허전함을 준다. ⓒ뉴시스

아니, 무언가 빠졌다. 분명 맥주는 눈앞에 있고, 맛있는 고기는 입과 코를 즐겁게 해줬는데, 허전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가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찌르르르, 찌르륵-찌르륵.

이 소리다. 풀벌레 소리가 들려야 진정한 가을 저녁을 상상할 수 있다.

옛 선조들도 나처럼 여름이 빨리 가고 가을이 오기를 기다렸을까?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에 ‘궁중 여인은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즐겼다’고 썼다. ⓒ게티이미지뱅크

고려 중기의 문인 이규보는 자신의 저서 ‘동국이상국집’에서 ‘가을이 돌아오면 궁중의 여인들은 작은 금롱 안에 귀뚜라미를 잡아넣었다. 이 금롱을 베개 옆에 놓고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를 즐겼다’고 기술하고 있다.

왕이 나라를 지배하던 시절, 뭇 여인이 동경하는 화려한 궁중 생활이지만 실제로 궁녀가 살아가는 여인네들의 삶은 고단했다. 그래서인지 ‘또르륵 또르륵’ 울어대는 귀뚜라미 소리를 친구 삼아 “나 대신 네가 울어주는구나”라며 마음의 위안을 받았다.

이후 궁에서 즐기던 귀뚜라미 문화는 서민층에게까지 널리 퍼져나갔다고 하며, 조선 시대 김천택의 시조집 ‘청구영언’에는 떠나간 님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귓도리 저 귓도리’라는 애절한 시조가 실려 있다.

농촌진흥청은 선조의 지혜를 활용해 치유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선조들은 귀뚜라미가 자신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로 여겼던 것 같다. 선조들의 지혜를 바탕으로 최근에 농촌진흥청에서 정서곤충을 활용해 치유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정서곤충이란 돌보거나 관찰하면서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과 다양한 교감, 자극을 주는 곤충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곤충으로 청각을 자극하는 왕귀뚜라미, 시각과 후각을 자극하는 호랑나비, 촉각을 자극하는 누에, 아이들의 선호도가 높은 장수풍뎅이 등 4종이 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정서곤충들을 소개해 보겠다.

깊어가는 가을밤 내 마음 울리다

그 소리의 주인공은 왕귀뚜라미

수컷 왕귀뚜라미는 암컷을 향해 사랑을 고백할 때 양쪽 날개를 비비며 리듬을 만든다. ⓒ국립농업과학원 곤충양잠산업과

왕귀뚜라미는 수컷이 양쪽의 날개를 서로 비벼가며 리듬을 가지고 노는 재주가 있는 곤충이다. 수컷의 노랫소리는 암컷을 향해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다.

휴식을 취하거나 기분전환을 하고 싶을 때 아름다운 음악만큼 좋은 게 또 있을까? 눈을 가만히 감고 소리에 빠져보면, 왕귀뚜라미가 뭐라고 노래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한 살이가 변화무쌍 그 자체!

눈 호강 시켜주는 호랑나비

호랑나비는 애벌레, 번데기, 성충으로 탈바꿈할 때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해 자연의 신비를 학습할 수 있다. ⓒ국립농업과학원 곤충양잠산업과

호랑나비 돌보기는 먹이식물을 기르는 것부터, 어른벌레가 되어 자연으로 날려 보내기까지 한 살이 과정 전체가 흥미롭다. 애벌레, 번데기, 성충으로 탈바꿈을 할 때마다 변화하는 다양한 모습을 통해 자연의 신비함을 학습할 수 있다.

호랑나비의 애벌레는 새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두 가지 형태가 존재한다. 일정 기간 동안은 새똥 모양과 비슷하게 흉내낸다. 그 후 가짜 눈을 가진 초록색 애벌레가 번데기를 거쳐 어른벌레인 호랑나비가 된다.

또한 호랑나비의 애벌레는 공격을 받았을 때 냄새뿔을 내밀어 자기 자신을 보호한다. 애벌레의 이런 행동은 ‘곤충도 좋고 싫음이 분명하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생명 존중의 가치도 일깨워준다.

어렸을 적 한 번쯤 본 멋진 뿔

그 뿔의 소유자, 장수풍뎅이!

장수풍뎅이는 국내 딱정벌레 중 가장 크고 힘 센 곤충이다. ⓒ국립농업과학원 곤충양잠산업과

커다란 뿔이 멋진 장수풍뎅이는 아이들의 친구 같은 곤충이다. 국내에 살아가고 있는 딱정벌레들 중에서 가장 큰 곤충이며, 힘이 센 곤충이다.

장수풍뎅이 애벌레는 부엽토와 같이 잘 발효된 참나무 톱밥을 먹으며 생활하고, 어른벌레는 자연에서 참나무 진액을 먹으며 생활한다.

애벌레와 어른벌레의 먹이는 시중에 쉽게 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매력 덩어리 장수풍뎅이의 한살이를 배워가며, 내가 돌보는 장수풍뎅이가 얼마나 크고 멋지게 자랄지 또 힘은 얼마나 세고 강할지 기대가 된다.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다!

하늘이 내려준 곤충 누에

누에가 어떻게 성장하는지 지켜보면서 생명의 소중함과 책임감을 느낄 수 있다. ⓒ국립농업과학원 곤충양잠산업과

누에는 인류와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곤충이다. 우리가 옷을 입을 수 있게 실을 뽑는 누에나방 애벌레는 번데기가 되어 입을 즐겁게 해준다.

누에가 성장하면서 변하는 특성과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알고, 누에를 돌보는 과정 속에서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관찰할 수 있도록 한다. 누에의 먹이가 되는 뽕잎을 주면서 생명의 소중함과 책임감을 갖게 된다.

더욱 놀라운 점은 단순히 정서곤충을 활용한 치유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뿐만 아니라 효과까지 밝혔다는 것이다. 최근 농촌진흥청은 왕귀뚜라미를 이용한 치유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심리치유 효과를 확인하였다.

농촌진흥청이 노년층 대상 왕귀뚜라미 돌보기 프로그램을 진행한 결과 인지 기능과 정신적 삶의 질이 증가했고 우울증이 감소했다. ⓒ게티이미지뱅크

65세 이상 노년층을 대상으로 2개월간 왕귀뚜라미 돌보기 프로그램을 진행한 결과, 인지 기능은 1.4%, 정신적 삶의 질은 4.9% 증가하고, 우울증은 0.8% 감소했다.

또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분석으로 곤충 돌보기에 참여한 그룹의 뇌 활성화 정도와 수행 임무 정확도가 증가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왕귀뚜라미를 이용한 치유 프로그램 참여자들은 자신이 돌보는 왕귀뚜라미에게 이름도 지어주고 밥도 주면서, 울음소리가 자신을 반겨주는 소리 같다고 말한다.

곤충의 소리에는 각각의 리듬이 있어 계속 듣다 보면 곤충 소리에 맞춰 심박수도 안정을 찾는다. 그러면서 서서히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일종의 마음 치유인 것이다.

호랑나비 치유 프로그램을 경험한 어린이는 삶의 만족도가 6% 증가하고 스트레스 지수가 8.6% 감소했다. ⓒ뉴시스

초등학생 대상의 호랑나비 치유 프로그램에서도 왕귀뚜라미 치유 프로그램과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이 프로그램은 매주 1회씩 5회에 걸쳐 호랑나비가 알에서 깨어나 유충과 번데기를 거친 후 나비가 되는 단계별로 친구들과 함께 관찰하고 체험하면서 생명의 신비와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호랑나비 치유 프로그램을 체험한 어린이들의 심리적 치유 효과를 측정한 결과 삶의 만족도는 6% 증가하고 스트레스 지수는 8.6% 감소했다. 어린이들의 정서 함양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정신없이 살아가는 삶과 지쳐가는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치유 프로그램 개발은 한 줄기 희망처럼 느껴진다.

네덜란드, 독일 등 유럽에서는 1990년대부터 치유 농장이 형성돼 왔으며 건강 보험과 연계해 비용 부담 없이 치유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충북 청주시 상당보건소 회원이 치매 전문치유 농장에서 고구마 체험활동을 하고 있다. ⓒ뉴시스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자원이 있고 농촌진흥청은 이러한 자원들을 활용해 치유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특히, 농업·농촌자원이나 이와 관련한 활동을 이용해 국민의 신체, 정서, 심리, 인지, 사회 등의 건강을 꾀하는 활동과 산업을 의미하는 치유농업은 최근에 시행된 「치유농업법」을 통해 더욱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곤충은 이제 단순히 징그럽고 가까이하기 불편한 ‘벌레’가 아니다. 기르면서 먹이를 주고, 슬플 때 같이 울어주고 기쁠 때 함께 노래 불러주는 반려 생명이다. 정서곤충을 돌보면서 치유하는 것이 작은 곤충이 우리에게 주는 커다란 행복인 것이다.

무더위를 싫어하는 나는 왕귀뚜라미를 돌보면서 치유도 하고 가을의 소리도 들어 보려 한다.


글=지상민 국립농업과학원 곤충양잠산업과 농업연구사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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