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진의 귀촌 일기 38] 시골에서는 누구나 맥가이버가 된다!

시골에서 살면 부족한 것도 많고 불편한 일도 많으리라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다. 다 맞는 말씀이시다. 집 가까이에 마트도 없고, 필요한 물건 하나를 구입하려 해도 시내까지 차를 타고 다녀와야 하니까. 심지어는 시내에서조차 필요한 물건을 찾지 못해 빈손으로 돌아온 적도 있다. 이런 환경에서 살다 보니 무엇이든 쓸모 있어 보이는 물건이 있으면 미리미리 챙겨두는 습관이 생겼다.

요즘은 한 가지 버릇이 더 생겼으니 그럴듯해 보이는 물건이 있으면 온라인으로 구매까지 한다. 있으면 엄청 편해 보이지만 솔직히 없어도 되는 물건들이다. 자꾸 물건들을 사들인다는 아내의 핀잔에 변명까지 한다. “막상 필요할 때 찾으면 파는 곳이 없다니까!” 더구나 시내까지 다녀올 기름값이면 집에 편히 앉아서 물건을 받을 수도 있으니, 그 편한 맛에 자꾸 충동구매를 하게 된다.

매사에 준비성이 있어 좋기는 한데, 언제 사용할지도 모르는 물건들까지 챙기다 보니 살림살이가 자꾸만 늘어났다. 그간 집안 살림살이는 많이 줄어들었는데, 이상하게도 집 밖에서 사용하는 물건들은 도무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골에서는 깨진 바가지도 쓸모가 있다고, 살다 보면 꼭 필요할 것 같으니 차마 버릴 수가 없다. 언젠가는 그들 대부분을 버려야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이따금 중요한 역할을 해주고 있으니 그 정도로 만족하며 살아야 할 것 같다.

오래된 집은 계속 수리 해야 한다. ⓒPixabay

얼마 전에 과수원에서 방제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분무기가 작동을 멈추었다. 키가 큰 사과나무를 방제하려면 수압이 센 전기 동력분무기를 사용해야 한다. 두꺼운 방제복에 방독면까지 쓰고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하는데 갑자기 분무기가 작동을 멈추었으니 난감할 수밖에…. 원인을 찾고 보니 누전차단기가 고장 난 거였다.

예비로 구입해 놓은 누전차단기가 없거나, 차단기를 교체할 줄 모른다면 황당하기 그지없을 상황이었다. 커다란 고무통에 타 놓은 농약은 빨리 사용해야 하는데, 누전차단기를 구입하려면 시내까지 다녀와야 한다. 혹시 겁이 나서 전기설비에는 손도 대지 못하겠으면 전문가가 올 때까지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한다. 다행히 예비로 구입해 놓은 누전 차단기가 있어 곧바로 교체를 하고 무사히 방제를 끝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반 가정집치고 예비용 누전차단기를 보관하고 있는 집이 얼마나 될까?

봄에 방제복 입고 방독면 쓰고 방제하는 모습.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줄줄 흘러 내린다. ⓒ윤용진

내가 평소에는 삼식이(집에서 삼시세끼를 다 챙겨먹는 남편을 뜻하는 은어)인 터라 눈총을 받을지 몰라도, 이럴 때만큼은 아내도 나를 우러러본다. “와! 당신 대단한데. 이런 것도 고칠 줄 알고!” 아내는 분전반에 손댈 일이 생기면 먼저 기절부터 하려 든다. 분전반은 그렇다 치고, 심지어는 동력분무기의 전원 플러그를 꼽는 것도 무서워하니까. (접촉이 좋지 않은지, 이따금 동격분무기가 돌아갈 때 스파크가 일어나고 굉음이 들리긴 한다.) 지금이야 웬만한 물건은 직접 수리하고 있다지만, 나 역시 예전에는 형광등 하나도 제대로 갈아 끼우지 못하는 위인이었다.

도시의 아파트라면 굳이 집안에 모든 것을 준비하고 살 필요는 없다. 고장이 나도 본인이 직접 고치지 않아도 된다. 관리사무소에 전화 한 통만 하면 곧바로 전문가가 달려와 수리해 줄 테니까. 그러나 시골이라면, 그것도 오래된 단독주택에 살고 있다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한겨울에 갑자기 보일러 고장으로 난방이 되지 않거나, 추운 겨울에 펌프가 얼어붙어 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또 일하는 중간에 갑자기 전기가 끊어져 버린다면 누구든 처음에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기 마련이다.

이럴 때면 가능한 선택지는 둘 중 하나다. 전문가를 찾아 여기저기 전화하고, 전문가가 나타날 때까지 며칠이고 진득하게 기다리는 방법이다. 만약 참을성이 없고 수리 비용도 겁이 난다면 본인이 직접 달려들어 고치면 된다. 진득한 성격이 되지 못하는 나는 직접 부딪혔고, 무수한 실패를 통해 지금의 기술자가 되었다. 아쉬운 사람이 우물 판다고, 이렇게 변한 내 모습을 보면 역시 사람은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는 존재인가 보다.

동력분무기 덕분에 과수원에서는 무럭무럭 사과들이 자란다. ⓒ윤용진

요즘은 인건비가 너무 올랐다며 여기저기에서 아우성이다. 가만히 보면 인건비만 오른 게 아니라 자재비도 많이 오른 것 같다. 지은 지 15년이 넘은 단독주택이다 보니 여기저기 손 볼 곳이 생겨난다.

그 외에도 시골에서는 스스로 해야 할 일들도 많다. 개를 키우려면 개집도 지어야 하고, 빨간 우체통도 만들어야 한다. 온갖 잡동사니를 넣어둘 창고도 지어야 하고, 뜨거운 햇빛으로 뒤틀어진 데크도 보수를 해야 한다. 아내는 화장실 벽의 금이 간 타일도 교체하라고 야단이다. 하지만 손도 까딱하기가 싫다면, 그냥 돈으로 때우고 본인은 구경만 해도 된다. 내 팔자에 그런 일이 벌어질 것 같지는 않지만….

아내는 분전반을 만질 일이 생기면 먼저 기절부터 하려 든다. ⓒPixabay

본인이 직접 수리를 하려면 필요한 공구들이 있어야 한다. 공구 가격이 한두 푼이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요즘 인건비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더구나 한번 구입한 공구는 계속 남는다. 시골 살림살이란 게 한두 번의 수리로 끝날 일이 아니니, 돈이 많아 매번 전문가를 부를 게 아니라면 서툴더라도 직접 고쳐야 한다. 고장이 날 때마다 필요한 공구를 하나둘씩 사 모으니, 시골살이가 길면 길어질수록 보유하는 공구의 종류도 많아진다. 그래서인지 어느 시골집을 가더라도 으레 큼직한 창고가 있기 마련이고, 그 창고 안에는 웬만한 공구들을 다 갖추고 있다.

이렇게 몸으로 부딪치며 시골에서 살다 보면 누구나 다 맥가이버가 되어간다. 혹시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아직 한 번도 수리하는 것을 구경도 못 해봤거나, 지독히도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임이 틀림없다.

뒤 데크에 지붕을 만들 때였다. 지인 한 분이 도와주셨는데, 이런 일에 전혀 경험이 없으신 분이었다. 첫날은 내가 시키는 대로 일을 하시더니만, 둘째 날부터는 나에게 조언하시기 시작했다. ‘어라, 어떻게 된 거지? 기술자는 난데….’ 남자에게는 이상한 유전자가 선천적으로 내재되어 있는지, 옆에서 한 번만 구경해도 누구든 따라서 흉내라도 내는 것 같다.

내 공구창고, 이미 구입 한 공구들만 해도 만만치 않다. 나도 전문가니까! ⓒ윤용진

끝으로 시골에서 필요한 전문적인 기술 말고도, 은퇴한 남자들이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청소기 돌려주기’는 어디에 살든 상관없이 누구나 해야 하는 공통사항인 것 같다. ‘설거지’는 개인의 재량에 따라 빈도수가 달라진다. 그 외에도 ‘장 보는 데 따라가 주기’ (더 중요한 것은 아내가 물건 고를 때 방해하지 말고 잠자코 기다려주기다), ‘이따금 밥해주기’ 아니면 ‘외식이라도 시켜주기’ 등등 끝이 없는 것 같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은퇴한 남자로 살기도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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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윤용진(농부·작가)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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