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진의 귀촌 일기 37] 어라, 애플수박도 괜찮은 것 같은데?

씨 없는 청포도를 키워 보겠다고 비닐하우스까지 만들었는데 해마다 청포도는 겨울을 이겨내지 못했다. 난방시설이 없어 얼어 죽고, 낮과 밤의 급격한 기온차로 죽고, 심지어는 예초기 날에 잘려서 죽었다. 허송세월로 10여 년을 보내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다시는 청포도를 심지 않기로 했다.

어렵게 아내의 승인을 받아 비닐하우스를 만들 때 은근히 걱정이 앞섰더랬다. “혹시 비닐하우스 안에서도 청포도가 죽는 거 아냐?” 그간 시설재배 경험이라고는 전혀 없으니 걱정이 될 수밖에. 그런대도 일을 밀어붙인 이유는 ‘청포도가 죽더라도 비닐하우스는 남는다!’는 얄팍한 생각에서였다. 적어도 내가 밑지는 장사는 아니니까. 요즘은 내가 무슨 일을 벌이려고만 하면 아내는 입바른 소리를 하며 나를 막아선다. “이제는 뭐든 늘리지 말고 버리며 살아야 할 나이라니까!”

비닐하우스 안에 심은 청포도. 이 때만 해도 청포도 먹을 생각에 부풀어 있었다. ⓒ윤용진

죽은 청포도를 뽑아버리고 나니 텅 빈 비닐하우스만 남았다. 아내 눈치는 둘째 치고라도 시설 투자한 비용이 아까우니 무엇이든 심어야 한다. 더욱이 비닐하우스 안에는 지지대도 세워져 있으니 넝쿨을 뻗는 작물도 키울 수가 있다. 그래서 무엇이 좋을지 고민을 하다가 요즘 유행한다는 애플 수박을 심기로 했다. ​

애플수박은 처음이지만 예전에 수박을 재배한 경험이 있으니 그리 어려울 것도 없어 보였다. 일반 수박은 한 포기에 수박을 한 두 개씩만 남겨야 상품성 있는 큼직한 수박이 된다. 하지만 애플수박은 애플이란 이름답게 작게 열리는 것이니, 포기당 줄기 3개를 키우고 각 줄기마다 2~3개의 수박을 달면 된다고 한다.

계획대로라면 애플수박 두 포기만 심어도 최소한 12개의 수박을 수확할 수 있으니 그 정도면 우리 식구가 먹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양이다. 더 이상은 굳이 욕심을 부릴 필요도 없었다.

죽은 청포도를 뽑아버리고 심은 애플수박. 나중에 심은 2포기는 아직 작다. ⓒ윤용진

그랬었는데, 이미 텃밭 여기저기에 온갖 작물을 심어놨으니 비닐하우스의 빈 땅에 심을 마땅한 작물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땅 노는 꼴을 평화롭게 지켜볼 내 성격도 아니었고. 결국 남으면 인심이라도 쓰자는 생각에 애플수박 두 포기를 추가로 구입해 빈자리에 심었다.

청포도 가지를 유인해 주던 철사 줄이 이미 설치되어 있으므로 그곳에 오이 망을 걸어주었다. 작은 애플수박이니 오이 망이 수박 무게쯤은 충분히 견뎌낼 수 있어 보였다. 수박이든 애플수박이든 재배법은 아주 간단하다. 암꽃과 수꽃만 구분할 줄 알면 된다. 또 그냥 놔두어도 저절로 수정이 되기도 하지만, 혹시나 싶으면 인공수분을 시켜주면 된다. 다만 넝쿨이 너무 우거지지 않도록 마디마다 자라는 곁순(손자 넝쿨)들을 제거해 주어야 한다.

애플수박을 심고 어미 줄기가 조금 자랐을 때 줄기의 끝단을 잘라주었고, 새로 나온 곁순 3개(아들 넝쿨)를 골라 오이 망을 타고 오르도록 유인해 주었다. 수박은 원래 16마디 이후에 열려야 큼직한 수박이 되므로, 애플수박도 땅에서 1미터 이내에 핀 꽃들을 전부 제거해 주었다. 과연 내가 보기에도 전문가가 따로 없었다.

수확한 애플 수박. 농익어서 완전히 설탕 맛이다. ⓒ윤용진

우리 집을 방문하시는 분들은 선물로 무엇을 사서 가야 할지 고민이 많으신가 보다. 도시에 사시는 많은 분들도 시골집을 방문할 때면 비슷한 고민을 하시는 것 같다. “도대체 저 집은 없는 게 뭐야?” 여름철이면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과일인데, 시골에는 널려 있는 게 과일이니 마땅한 선물을 찾기가 어렵다. 더욱이 우리 집처럼 온갖 농작물과 과수를 재배하는 집이라면 선택의 폭은 더욱 좁아진다.

얼마 전에도 지인 한 분이 찾아 오셨는데 큼직한 수박을 사 오셨다. “이 집, 수박은 키우지 않죠? 텃밭에서 수박은 못 본 것 같아서요!” “아, 예!” 적당히 얼버무리기는 했지만 이미 비닐하우스 안에는 애플수박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뭐, 굳이 남 말할 것도 없다. 나 역시 예전에 배 즙을 선물로 사 간 적이 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배 농사를 짓고 계셨으니까.

꽃은 많이 피었는데 전부 수꽃들뿐이다. ⓒ윤용진

어라? 애플수박 넝쿨 속에 보이는 꽃들이 전부 수꽃들뿐이다. 옆에 심은 오이는 암꽃들만 피어 오이가 열리지 않더니만, 수박은 온통 수꽃들뿐이다. 기상이변이라더니 얘들도 정신이 없는가 보다. 거름이 세면 수꽃이 많이 핀다던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그래도 가끔은, 아주 가끔은 가물에 콩 나듯 암꽃이 하나씩 보였다. 계속되는 비로 벌들은 구경할 수도 없었다.

혹시나 그 귀한 암꽃이 수분이 되지 않을까 봐 새벽이면 제일 먼저 비닐하우스를 찾아 수분부터 시켜주었다. 내가 그렇게 공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심은 수박 두 포기에서 6개의 수박이 열렸다. 최소 12개는 열렸어야 하는 건데 반 토막이 났다. 영양분은 많고 수박은 3개씩만 열렸으니 수박 크기가 축구공만큼 커졌다. 애플수박에 애플은 보이지 않고 축구공만 보였다.

수박 줄기가 끊어지지 않도록 잘 매줘야 한다. ⓒ윤용진

나중에 심은 애플수박도 꽃이 피고 수박이 열렸다. 이 수박들도 약속이라도 한 듯 포기당 3개씩만 열렸다. 처음에는 망했다 싶었는데 그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처음 열린 수박을 수확할 때가 되어서도 계속 수박 꽃이 피고 있었으니까. 8월인 지금도 꽃이 피고 작은 수박이 달리는 것을 보면 전체 수확량이 20여 개는 충분히 넘을 것 같다. 수시로 따 먹고 선물하다 보니 정확히 몇 개나 열린 건지는 잘 모르겠다.

벌이 귀한 장마철만 아니라면, 굳이 인공수분을 시켜준다고 법석을 떨지 않아도 된다. 주위에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수꽃들로 온통 둘러싸여 있으니까. 애플수박이 내 관심 밖으로 밀려난 이후에 오히려 더 많은 수박들이 열린 것 같다. 그리고 시차를 두고 수박을 심는 것도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한꺼번에 수박이 익어서 처치 곤란으로 난감해 하는 일은 생기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먼저 열린 수박들이 너무 익었는지 갈라지기 시작하므로 재빨리 수확을 했다. 애플수박은 너무 커지면 수박 무게로 인해 줄기 끝이 (수박 꼭지 말고) 끊어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수박 줄기를 끈으로 묶어서 철사 줄에 고정시켜 주었다. 과연 이렇게 줄을 묶어준 이후로는 한 개의 수박도 떨어지지 않았다. 단 수박 줄기를 끈으로 묶는 방법은 줄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알아서 잘 매셔야 한다.

농사를 지을 때 많이 사용하는 몇 가지 매듭 법을 배워두면 상당히 편리하다. 그런데 그 방법을 글로 표현하기는 너무 어렵고, 각자 알아서 배우시기를!

​참, 그리고 이번에 수확한 애플 수박 맛은 농익은 탓인지 완전히 설탕 맛이다. 그런데 어쩌죠? 드릴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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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윤용진(농부·작가)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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