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진의 귀촌일기 49] 요리도 못하는 남편

추운 겨울이 되면 아무래도 아내와 티격태격할 일이 많아진다. 날씨가 따뜻해야 밭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아직도 찬 바람이 쌩쌩 불고 있으니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내 역시 춥다고 시간을 대부분 집안에서 보내고 있다. 좁은 집안에서 하루 24시간 머리를 맞대며 살고 있으니, 아무리 사이좋은 부부라도 말다툼이 벌어지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하물며 결혼한 지 30년도 넘은 우리 부부는?

아내 입장에서 보면 겨울이라고 해서 하루에 밥을 두 끼만 먹는 것도 아니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해야 한다. 그런데 남편이란 작자는 컴퓨터 앞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청소기라도 돌려줬으면 좋으련만, 시키기 전에는 결코 먼저 알아서 하는 법이 없다. 그러면서도 사람들 앞에서는 자기가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한다고 큰소리를 친다. 한 달에 기껏 한두 번 하면서?

남편인 내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겨울만 되면 유난히도 아내 눈치를 보며 산다. 가을까지 농사짓느라 고생했으니 겨울에는 좀 쉬어도 좋으련만, 아내는 노는 꼴을 못 보는 것 같다. 때로는 요리도 하고 설거지도 해 주는데도 그렇다. 컴퓨터야 영화 보고 글 쓰는 용도일 뿐이고, 난 게임이란 건 할 줄도 모른다. 아! 이따금 청소기도 돌려주고 있다. 그런데도 아내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나?

작년 3월 중순. 날씨 풀렸다고 마늘밭 비닐을 걷어주었는데 눈이 왔다. ©윤용진

쌓일 대로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유일한 자리는 부부 모임인 것 같다. 시골에서도 친하게 지내는 몇몇 부부가 있는데 농한기인 겨울철이 되면 자주 만난다. 이분들과는 서로 형님 동생 하는 사이로 웬만한 친척보다도 가깝고, 집안일도 속속들이 알고 지낸다. 그러니 이런 모임에서는 굳이 잘난 체를 할 필요도 없고, 애써 감출 것도 아무것도 없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으레 누군가는 도마 위에 올라가기 마련인데, 제일 만만한 게 바로 남편들이다. 일단 이야기가 터지면 너나 할 것 없이 남편에 대한 성토로 분위기가 뜨거워진다. 다들 긴긴 겨울 동안 남편에게 쌓였던 감정이 한두 가지가 아닌가 보다.

물론 사람 나름이겠지만, 도시보다는 시골 분들이 상대적으로 더 보수적인 것 같다. (내 주위 분들만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시골 분들은 일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다. 집안일은 아내 담당이고, 힘을 쓰는 바깥일은 당연히 남편이 한다. 겉으로는 꽤나 공평해 보이는데 실제로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가 보다.

원래 농사란 게 1+1=2가 아닌 3 이상이라고, 함께 일을 해야 효율이 높아지는 법이다. 그러니 바쁜 농번기가 되면 수시로 아내를 밖으로 불러낸다. 더구나 요즘처럼 일손 구하기 힘들고 인건비 비쌀 때는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니까. 하지만 막상 집안일을 할 때가 되면 남편은 나 몰라라 한다. “바깥일 끝내고 집 안으로 들어오면 그것으로 끝이에요. 저이는 씻고 TV를 보지만, 저는 밥도 짓고 빨래도 해야 한다니까요!” 물론 도시에 계신 남편분들이야 알아서 잘하시겠지만….(정말 그런가?)

나도 가끔 아내를 밭으로 불러낸다. 도와 달라고. ©윤용진

나이 들면 부부 중 누가 먼저 갈지 모르는 법. 그래서 남자도 밥하고 요리하고 빨래하는 법을 미리 배워두라고 한다. 자생력이 있어야 만약의 경우에도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맞는 말이긴 한데, 다만 실천하기가 어렵다.​

몇 년 전, 아내가 넘어져 오른쪽 손목에 금이 갔다. 거의 두 달 동안 깁스를 하고 지냈는데, 오른손잡이인 사람이 왼손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래도 밥은 먹고 살아야 하니 아내가 시키는 대로 밥도 짓고 반찬도 만들어야 했다. 그때 본의 아니게 살림하는 법을 조금은 배우게 됐다. 사람들은 손에 깁스한 아내를 보면 힘들겠다며 위로의 말을 해줬다. 그런데 정작 두 달 동안 집안일을 도맡아 하던 불쌍한 나에게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요리 잘하는 남편도 많은가 보다.©Pixabay

요리 얘기로 화제가 바뀌었다. 그런데 요리 얘기가 나오자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봤다. 평소에 아내가 무슨 말을 하고 다녔는지는 몰라도, 왜 내가 요리도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이 찍혔는지 모르겠다.

“나도 요리할 줄 알아요!” 항의를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영 못 믿겠다는 표정들이다. “할 줄 아는 요리가 뭐요?” 다소 공격적인 질문이 들어왔다. “계란찜, 김치찌개,···” 갑자기 말을 하려니 떠오르는 게 별로 없다. “김치 담글 때 간도 내가 보고···.”

“그거야 옆에서 도와주는 거지 본인이 하는 게 아니잖소!” 마치 청문회에 끌려 나온 사람 같다. 그들 중에는 자기 일 아니라고 멀리 창문을 내다보며 모르는 체하는 사람도 있었고, 실실거리며 아내들보다 더 따지고 드는 얄미운 사람도 있었다.

얼큰한 해물찜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양념이 부족했는지 지난번만 못하다. ©윤용진

“아, 해물찜도 할 줄 알아요!”

해물찜이라는 말에 사람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평소 집에서 (특히 내륙 지방인지라) 해물찜을 해 먹을 일은 별로 없을 테니까. 그러자 내 말을 못 믿겠다는 듯이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었다.

“해물찜은 어떻게 하는 건데요?”

기억이 나는 대로 말을 시작했다. “일단 프라이팬에 기름을 몇 방울 떨어뜨리고 고추 양념장을 볶아요. 불맛을 내려면 먼저 볶아줘야 해요. 그다음 잘 익지 않는 꽃게를 먼저 넣고, 그다음 오징어, 새우, 홍합, 조개 등을 넣고 볶아줍니다. 좀 익었다 싶으면 녹말가루를 물에 풀어 넣고, 야채를 넣고, 콩나물을 넣고···” 사람들이 입을 딱 벌리고 있었다. 내 설명이 너무 구체적이고 적나라했나 보다. 그중에는 입맛을 다시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말로만 하지 말고 초대해서 해물찜 좀 해줘 봐요!” 취조하던 분위기는 어느새 사라졌고, 다들 내 비위를 맞추려 애쓰고 있었다. ‘뭐 예뻐 보여야 초대하지!’

결국 손님들을 초대해서 해물찜을 대접하게 됐다. 나는 요리사가 돼 명령을 내리며 음식을 볶기만 하면 됐고 (간도 내가 봤다), 아내는 주방보조가 돼 온갖 재료들을 손질해 줘야 했다. 어째 요리사가 보조보다 더 쉬운 것 같다.

사람들은 해물찜을 먹고 극찬했는데, 그날 내가 만든 해물찜을 마다할 사람은 없었을 것 같다. 맛은 둘째 치고, 그 귀한 해물들이 푸짐하게 들어 있었으니까. 아내들은 밥을 하지 않아도 되니 좋고, 남편들은 얼큰한 해물찜을 공짜로 얻어먹었으니 칭찬이라도 해 줘야 했을 것 같다.

요리도 못하는 남편? 더 이상 나와는 상관없는 말이다. 난 내 주위의 형님들과는 격이 다른 남편이니까!

나 같은 남편 있으면 어디 나와 보라고 그래?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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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윤용진(농부·작가)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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