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진의 귀촌일기 43] 단풍구경 다시 가면 안 될까?

평소와 달리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창밖이 아직 어두컴컴한 게 해가 뜨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할 것 같다. 가을이 깊어지니 해도 많이 짧아졌나보다. 이른 아침부터 내가 유난을 떠는 이유는 바로 오늘이 지인 부부와 함께 여행을 가기로 한 날이기 때문이다. 기껏 해봤자 당일치기 여행인데도 마음이 약간은 설레는 것을 보면 내가 너무 오랫동안 집안에만 갇혀 살았나 보다.

그동안 일이 많기는 했다. 안전지대라고 여겨졌던 시골에서 온 식구가 코로나에 감염된 이후 (도시에 다녀오고 걸렸다), 거의 한달 동안이나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겨우 몸이 회복되었다 싶으니 이번에는 가을 농사가 시작되었다. 정신없이 김장밭을 만들고, 무 배추를 심고, 텃밭의 채소를 갈무리하고 사과 과수원도 돌봐야 했다.

텃밭에 심은 김장배추가 제법 많이 자랐다. ⓒ윤용진

며칠 전 텃밭에서 총각무를 뽑던 아내가 한숨을 쉬었다. “애고 내 팔자야. 남들은 가을이면 단풍구경을 다닌다는데 우리 집은 날마다 일에 치여 사네!” 누가 들으면 우리 집이 마치 대농(대규모로 짓는 농가)인줄 알겠다. 하지만 정작 주위 분들은 우리 집 농사를 소꿉장난 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

‘꼭 멀리까지 가야 단풍 구경을 가야하나? 창문 너머로 보이는 언덕에도 단풍이 예쁘게 물들었는데….’ 목까지 나오는 이 말을 꾹꾹 참았다. 자칫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본전은 고사하고 며칠 간 밥을 얻어먹기도 힘들어진다. 내가 요즘 사는 게 이렇다. 그런데 나만 그런가?

우리 집 창문 너머 보이는 언덕에도 예쁜 단풍이 물들었다. ⓒ윤용진

친구나 지인들에게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면 대부분 ‘여행’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나 역시 올 가을걷이가 끝나면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다. 한 해 동안 매여 있던 일상을 훌훌 털어버리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떠나버린다는 것. 낯선 세계, 낯선 사람들 속에서 보내던 예전의 아련한 기억들이 이따금 떠오르기도 한다. 그 때는 몹시도 집을 그리워했는데, 지금은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처음에 시골로 가기 싫다는 아내에게 일 년에 한 번은 해외여행을 시켜주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물론 아내를 속이려던 건 아니고, 나 역시 그렇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현실 속에서 그 약속은 한 번도 지키지 못한 채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여행이 좋아 일 년에 몇 번은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기도 했는데, 점점 그 횟수가 줄어들더니만 코로나가 유행을 한 이후로는 거의 집안에서만 박혀 살았다.

오랜만에 보는 파란 바닷물. 나는 한적한 바닷가가 좋다. ⓒ윤용진

친하게 지내는 지인 부부를 만났다. “단풍이 한창이라는데 우리 집은 단풍구경도 못 갔어요.” 아내의 하소연이 시작되었다. “저희도 그래요. 남편이 도통 어디 갈 생각을 하지를 않아서요.” 나만 집돌이인 줄 알았더니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나보다. “이왕 말 나온 김에 어디라도 다녀왔으면 좋겠네요.” “좋아요. 우리 같이 여행가요!” 그렇게 둘이서 순식간에 결정을 내리고는 각자 남편들을 쳐다봤다. 이미 결정을 했으니 승낙을 받으려는 건 분명히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에서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겁 없는 남편은 없다.

그러면 여행을 어디로 갈까? 또 며칠 동안이나 여행을 다녀올까? 우리 집이야 며칠 쯤 농사일을 하지 않아도 될지 모르지만,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지인 부부는 한참동안이나 서로 머리를 맞대고 쑥덕거리더니 한숨을 쉬며 말을 했다. “아무래도 당일치기로 다녀와야겠네요. 요즘은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아서….” 갑자기 갈 수 있는 여행지가 좁혀졌다.

카페 창문너머로 파란 바다와 다리가 보인다. ⓒ윤용진

인생이란 게 원래 선택의 연속이라고 한다. 무슨 일을 하든 끊임없이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한다. 당일치기 여행이라면 어디로 가야할까? 남들처럼 단풍 구경하러 내륙 깊숙한 산골로 갈까?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곳도 단풍이 물들어 예쁜데, 굳이 또 다른 시골로 가야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당일치기이니 너무 먼 곳도 안 된다. 차 안에서 시간을 다 보내고 말테니까. 더구나 요즘은 오랫동안 밤 운전을 하기도 힘들다. 쉽게 찾아오지 않는 기회를 어설프게 보내지 않으려고 서로 머리를 쥐어짰다.

혹시 바닷가는 어떨까? 갑자기 아내가 머릿속으로 복잡한 계산을 하는 듯했다. 내륙으로 가봤자 산채비빔밥 밖에 없지만, 바다로 가면 싱싱한 회가 있다. 여행도 좋지만 무엇을 먹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니까 말이다. 단풍구경 가려던 계획이 순식간에 싱싱한 회를 먹는 바닷가 여행으로 바뀌었다.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현실과 타협하는 장년부부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단풍구경가면 사람들이 많아 북적거리겠지만, 바닷가는 한적할 거야!” 위안을 삼자고 한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떡거렸다. “코로나도 다시 유행하고 있대!”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물든 문경새재. ⓒ윤용진

코로나가 유행하기 전까지만 해도 마을에서는 일 년에 두 차례 봄가을로 관광을 다녀오는 것이 전통처럼 되어 있었다. 한 해 농사가 시작되기 전에 봄꽃 구경을 가고, 농사가 거의 마무리 되었을 때는 가을단풍 구경을 간다. 평생을 그렇게 보내신 때문인지 마을 어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전국 방방곳곳 안 가본 곳이 없으신 것 같다. 일 년에 두 차례 가는 여행이 그나마 고된 삶에 위안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옆 마을에서 단체로 단풍놀이를 다녀온 이후, 집단으로 코로나에 감염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여파인지 우리 동네는 아직까지 단풍놀이를 간다는 말이 없다. 가뜩이나 노약자가 많은 동네이니 아무래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나보다. 하긴 아직까지 우리 마을에서 코로나 걸렸던 사람은 우리 가족밖에 없다.

단풍도 이제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것 같다. ⓒ윤용진

예상대로 바닷가에는 사람들이 그리 북적거리지는 않았다. 우리가 주중에 여행을 떠난 이유도 있지만, 단풍철에 바닷가를 찾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을 테니까. 비록 울긋불긋한 단풍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보는 파란 바닷물과 약간은 짭짤한 바닷바람에 모두들 행복해 했다. “여행도 다리에 힘 있을 때 다녀야 한다니까요!” “앞으로도 자주 놀러가요!” 모두들 신이 나서 맞장구를 쳤다. 어째 다리 힘이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에 내색은 못하고 은근히 불안해졌다.

“역시 산 보다는 바닷가가 더 나은 것 같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말을 꺼냈다. 싱싱한 회를 실컷 먹었으니 당연히 바닷가가 더 나아 보였을 것 같다. “그런데 말이야, 사과 수확하기 전에 단풍구경 다시 가면 안 될까?”

며칠 후 단풍 구경하러 문경새재에 다녀왔다. 사과를 수확하려면 아내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니까. 더구나 다리에 힘 빠지기 전에 여행도 다녀야 한다.

이제 단풍도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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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윤용진(농부·작가)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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