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진의 귀촌일기 40] 이젠 배추김치가 먹고 싶다니까!

예전에 사람들이 나에게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난 주저 없이 ‘오이소박이김치’라고 대답을 하곤 했다. 지독히도 토속적인 입맛을 가지고 있는 나는 아무리 진수성찬을 차려 주어도 김치가 없으면 별로다. 반면에 맛있는 김치만 있으면 다른 반찬은 없어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오죽했으면 장기 출장을 다녀오는 나를 위해 아내가 특별히 준비한 음식이 바로 오이김치와 콩나물 두부 된장국이었으니까.

지금도 김치를 무척이나 좋아하고는 있지만, 요즘은 이것저것 먹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탈이다. 책상 빼고 네발 달린 것은 다 먹는다고, 어느새 내 입맛도 그렇게 변해버렸다. 세월이 지나면 입맛도 변한다.

오이는 모종을 심고 한 달쯤 지나면 벌써 열리기 시작한다. ⓒ윤용진

김치 중에서 내가 제일로 치는 건 오이소박이김치다. 익은 오이김치의 새콤한 냄새가 솔솔 풍길 때면 입안에는 저절로 침이 솟는다. 한 여름 텃밭에서 수확한 싱싱한 오이와 부추로 담근 오이소박이는 여름 내내 내 입맛을 돋우는 최고의 음식이 되어주었다.

이런 입맛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 집 텃밭에는 한 해도 오이나 부추를 심지 않은 해가 없다. 그것도 아주 많이…. 어차피 텃밭에서 채소를 심고 가꾸는 것이 내 일이었으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잔뜩 심는다고 해서 뭐라고 따질 사람도 없었다.

오이는 5월 초순에 심는데, 심고 나서 한 달쯤 지나면 오이가 열리기 시작한다. 오이는 익은 후에 수확하는 작물도 아니니 큼직하게 자라기만 하면 무조건 따도 된다. 또 성장 속도도 엄청 빨라서 새끼손가락 만하던 오이도 하루 이틀만 지나면 수확할 때가 되어있다. 빨리 오이김치를 담가달라는 나의 등쌀에, 아내는 6월 중순이면 그동안 모아놓은 오이들로 제일 먼저 오이소박이김치부터 담가주었다.

더 이상 오이김치를 담그지 않아 오이를 내버려 두었더니 노각이 되었다. ⓒ윤용진

처음에는 오이김치의 새콤한 맛에 중독되어 식사시간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맛있는 것도 하루 이틀이라고, 그렇게 석 달쯤 지나면 오이김치가 쳐다보기도 싫어진다. ​여름 내내 줄기차게 오이를 먹어댔으니 질릴 만도 하다. 단순히 계산을 해 봐도 하루에 세 끼씩 90일이면 270번을 먹었다는 말이니, 내가 고개를 젓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왜 안 먹어? 오이김치가 좋다며?” 아내가 실실 웃으며 날 밀어붙였다. “아직 오이김치가 한 통이나 남았거든!” “애고, 미치겠네!”​ 저절로 한 숨이 나왔다.

난 음식에 그다지 까다로운 편이 아니다. 물론 아내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조금만 신경을 쓰지 않아도 순식간에 늘어나는 몸무게를 보면 내 말이 맞다. 하지만 아무리 음식에 까다롭지 않더라도, 누구든 같은 음식을 몇 개월째 계속 먹어야 한다면 언젠가는 물릴 수밖에 없다. 물론 몇 달만 지나면 옛 맛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되겠지만.

조금만 더 기다리면 이 총각무가 우리 집 식탁을 채워줄 것이다. ⓒ윤용진

아내에게 항의를 했다. “나도 이제는 배추김치가 먹고 싶다니까!” 아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을 했다. “요즘 배춧값이 얼마인 줄 알아? 배추 한 포기에 8000 원이래!” 아내는 폭등한 채솟값에 감히 배추김치를 담글 엄두가 나지 않는 모양이다.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갈아엎던 그 흔한 배추가 금 배추가 되다니 참으로 요지경 속 세상이다. 그래도 추석이라고 어렵게 배추김치를 한 번은 담가주었는데, 평소에는 떼어버렸을 파란 잎까지도 모조리 넣고 담근 김치였다. ​

그런데 그 배추김치마저도 거의 떨어져가고 있었다. “지금은 배추 한 포기가 만 원이 넘는대!” 아내는 묻지도 않은 말을 친절히 나에게 전해 주었다. 이제 와서 나에게 돈을 벌어오라고 무언의 압력을 넣는 건지, 텃밭에 자라는 배추가 클 때까지는 배추김치 먹을 생각을 아예 하지 말라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요즘 채솟값이 정상이 아니다. 아내를 따라 장 보러 가면 폭등한 채소 가격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우리 집 텃밭에 아직 몇 개 매달려 있는,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오이도 한 개에 천오백 원씩이나 한다. 이럴 때 농사를 잘 지으면 꼭 떼돈을 벌 것만 같다. 하지만 제 철도 아닌 데다 변덕스러운 날씨로 너도나도 농사를 망쳤기 때문에 가격이 폭등한 거고, 다시 농산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 가격은 순식간에 폭락할 것이다.

올 가을에는 마음대로 먹지도 못하는 배추김치. ⓒpixabay

점심 식사를 하러 아내와 오랜만에 단골로 가는 칼국수 집에 갔다. 자그마한 식당인지라 장년의 남자 주인이 서빙을 하는 곳인데, 내가 비슷한 연배처럼 보였는지 갈 때마다 유난히도 친절하게 말을 건네곤 한다.

칼국수는 원래 싱싱한 겉절이 김치를 곁들어 먹어야 제 맛이 난다. 김치를 워낙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식사 중에 김치가 모자라 한 두 번은 더 가져오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채소 가격을 아는지라 감히 김치를 더 가지러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왜 김치 더 갖다 드시지 그러세요?” 미적거리는 우리를 보고 주인아저씨가 말씀하셨다. “글쎄, 야채 가격이 웬만큼 올랐어야죠.” “괜찮아요. 더 드세요!” 아무래도 이 식당은 오랫동안 우리 부부에게 단골로 남아있을 것 같다.

텃밭에 자라고 있는 배추. 공을 많이 들여서인지 배추가 제법 커졌다. ⓒ윤용진

해마다 이때쯤이면 김치가 귀해진다. 서늘한 고랭지가 아니면 배추를 제대로 키울 수 없는 시기이니, 묵은 김장김치를 먹거나 새로 배추김치를 담가서 먹곤 했다. 아쉽게도 작년에 담근 김장김치는 물러져서 다 버렸고, 올해는 배춧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으니 대안이 없다. 그렇다고 다시 오이김치를 먹고 싶은 마음도 없다.

요즘은 텃밭에 공을 많이 들이고 있다. 이럴 때는 텃밭에 심어 놓은 채소라도 잘 키워야 한다. 텃밭에 액비를 뿌려주고 있는데 지나가시던 옆집 아주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이렇게 공을 들이니 배추가 잘 자라나 봐요. 볼 때마다 배추가 쑥쑥 커져 있어요!” 그러고 보니 며칠 사이에 텃밭의 채소들이 부쩍 자란 것 같다.

“배추 가격이 워낙 비싸서요. 그래서 텃밭에 신경이 더 쓰이나 봐요!” 내 말에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떡이며 말씀하셨다. “맞아요. 요즘 채소 가격이 완전히 미쳤다니까요!”

올가을에 심은 배추는 아직 수확하려면 갈 길이 멀고, 그나마 가까이 10월 중순이면 수확할 수 있는 총각무를 날마다 째려보고 있다. 꿩 대신 닭이라고, 총각김치만 있어도 행복할 것 같다. 고춧가루에 버무린 빨갛게 물든 총각김치를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입맛이 돋는다.

오늘도 텃밭에 김을 매고 액비를 뿌려주었다. 내가 부지런해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잘 키워 볼 욕심으로. 농사란 게 항상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라지만, 올 가을에는 내가 들인 노력만큼이라도 잘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김장철이 되면 채솟값이 좀 떨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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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윤용진(농부·작가)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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