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진의 귀촌일기 35] 옛 친구가 찾아왔다

옛 친구로부터 반가운 전화가 왔다. “요즘도 바쁠 때냐?”

봄에 놀러 오겠다는 것을 농사철이라 바쁘다고 퇴짜를 놓았더니만 이번에는 단도직입적으로 지금도 바쁜지 확인부터 하려는 것 같다. “바쁜 것은 끝났고 이제는 일상적인 일들만 남았어.”

급한 일이 끝났으니 조금은 한가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실제로는 요즘이 더 죽을 맛이다. 숨이 턱턱 막히는 뜨거운 날씨 속에서 풀과의 전쟁을 한창 치르고 있으니 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독한 가뭄으로 물을 퍼 나르느라 힘을 뺐는데, 이제는 고온다습한 날씨로 땀을 쏟는다. ‘풀 깎고 돌아서면 다시 풀이 자라있다’는 말을 온 몸으로 실감하고 있다. 집 주위와 텃밭, 과수원의 풀을 예초기로 깎으려면 보통 3일은 걸린다. 며칠 만에 처음 풀을 깎던 자리로 되돌아오면 이미 파릇파릇한 풀들이 솟아나 있었다.

요즘은 잦은 비로 풀만 자라는 것 같다. 깎고 돌아서면 또 자라 있는 풀. ⓒ윤용진

내가 살고 있는 지역만 하더라도 서울에서 두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또 서울만 벗어나면 길이 막하는 법도 없으니 당일치기로 여유 있게 다녀갈 수도 있다. 그 때문인지 시골로 내려온 초기에는 찾아오는 지인들이 많았고, 주말이면 집안이 장날처럼 북적대곤 했다. 그랬는데, 세월이 흐르며 조금씩 그들의 방문이 뜸해지더니만 코로나가 유행하고부터는 아예 발길이 뚝 끊겼다.

도시나 시골, 그 어느 곳에 살든 누구에게나 바쁜 세상이고, 인간관계라는 것은 자주 만나지 않으면 잊히기 마련이다. 자연스럽게 예전에 알던 많은 사람들과 연락이 끊겼고, 친했던 옛 친구 몇 명만이 아직까지 우리 집을 찾아오고 있다. 그들에게 시골에 사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고향처럼 느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언제든지 마음 편히 찾아갈 수 있는 곳.

주렁주렁 매달린 방울토마토가 익어가고 있다. ⓒ윤용진

친구들이 놀러 온다고 하면 우리 부부는 분주해진다. 아내는 미루었던 집안 청소를 해야 하고, 나는 텃밭과 과수원의 풀들을 깎아야 한다. 화단의 풀도 뽑아주어야 한다. 꽃들이 풀들에 묻혀 꽃밭인지 잡초 밭인지 구분하기도 어려우니까. 평상시야 무시하고 산다지만 손님이 온다는데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다. 더구나 우리 집 텃밭은 친구들이 놀러 오면 으레 찾는 명소이니까 말이다.

이때쯤이면 텃밭에는 토마토와 오이가 주렁주렁 열려있다. 올봄에 특별히 심은 애플수박도 비닐하우스 안에 대롱거리며 매달려 있다. 밭에서 직접 수확하여 먹는 짙은 향의 토마토 맛은 어떻고! 이럴 때는 감탄하는 표정으로 한껏 찬사를 보내주어야 한다. 그래야 신이 난 집 주인이 과일이며 채소를 잔뜩 싸 줄 테니까.

텃밭의 작물들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날마다 조금씩 열려주면 좋으련만, 나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한꺼번에 익어버린다. 문제는 대부분의 채소나 과일은 냉장고에서도 오래 보관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어차피 다 먹지도 못하니 수확한 텃밭 작물들은 때맞춰 우리 집을 찾아오는 분들의 차지가 되곤 한다. 물론 우리 집만 그런 건 아니고, 대부분 텃밭 재배를 하시는 분들에게 공통되는 말이다.

친구가 온다고 하니 텃밭에서 챙겨줄 것이 없는지 둘러본다. 오랜만에 집에 온 자식들에게 무엇이라도 챙겨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처럼, 혹시 나누어줄 게 없는 지 여기저기를 뒤져본다. 조금만 더 있으면 옥수수도 수확할 수 있을 테고, 우리 집 귀한 자두도 맛볼 수 있을 텐데…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시기가 조금 이른 것 같다.

무슨 애플 수박이 축구공 크기만 하다. ⓒ윤용진

친구 부부에게 내가 즐겨 찾는 몇몇 곳을 구경시켜 주기로 했다. 어디를 가든 우리 집 주위와 별반 다를 게 없는 경치이지만, 그래도 초록으로 물든 자연에 파묻히면 마음이 편안해 지는 법이니까. 특히 이슬비라도 내릴 지라면 촉촉이 젖은 초록빛 세상에 더욱 마음이 포근해 진다. 때맞춰 비도 멈추었고, 나도 오랜만에 한적한 시골길을 달려보고 싶었다.

당연히 차도 사람도 뜸한 곳으로 코스를 정했다. 하천을 지나다가보니 많은 차들과 텐트들이 모여 있었다. 요즘 ‘차박’이 유행이라고 하더니만, 한적한 시골이라 하더라도 물가에는 으레 차와 사람들이 모여들기 마련인가 보다. 특히 오늘 같이 흐린 날, 물가에 텐트 치고 있는 모습이 더욱 운치가 있어 보였다.

물가에 차와 텐트가 모여 있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니 더 운치가 있다. ⓒ윤용진

“난 이제 차박은 하지 못할 것 같아!” 물가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을 부러운 듯이 쳐다보던 친구가 말을 했다. “예전에는 캠핑도 많이 다녔는데 언젠가 부터는 텐트에서 자는 게 힘들어 지더라구.” “나도 그래. 이제는 텐트는 커녕 잠자리만 바뀌어도 잠을 설치기 일쑤거든!” 마지막으로 텐트에서 잠을 잔 게 언제인지, 하도 오래전의 일이라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도시에 살고 있는 친구 몇몇은 아직까지도 차박을 하거나 텐트 여행을 다닌다. 이따금 그들은 나에게도 같이 여행을 가자고 하지만, 나는 온갖 핑계를 대며 한 번도 따라나선 적이 없다. “넌 아직 힘이 넘치는 모양이네!” 라거나 “우리 집 주위에 보이는 게 온통 숲과 나무들뿐이거든!”이라고 둘러대고 있다.

하지만 더 솔직하게 말을 하자면 내가 싫어하는 것은 ‘여행’이 아니라 바로 ‘불편한 여행’이다. 젊었을 때는 불편함도 낭만이 될 수 있다지만, 지금은 불편함이 힘들게만 느껴진다. 그리고 불편함이 힘들다는 건 바로 나이가 들어간다는 말일 게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새로움보다는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더 선호한다고 하더니만, 지금의 내가 그렇게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아직까지 물가에 발을 담그고 노는 것은 좋지만,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와 편히 쉬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 같다.

손님 온다고 마당의 풀을 깎았다. 풀이 마당의 절반을 점령해버렸다. ⓒ윤용진

즐거웠던 하루를 보내고 친구 부부는 돌아갔다. 문득 이곳에 홀로 남겨진 내 자신을 돌이켜보게 된다.

삶의 터전이었던 도시를 떠나 귀촌을 한다는 건 또 다른 삶의 시작이었다. 익숙해져 있던 생활 방식이 바뀌고 가까웠던 사람들과는 점차 멀어진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새로 만난 사람들로 서서히 채워져 간다. 살다 보면 언젠가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마련이라지만,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 어쩌다 한 번이지만 옛 친구가 찾아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내일이면 또다시 나는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풀들과 전쟁을 하고 텃밭과 과수원을 가꾸며 살아가겠지. 또 그들은 그들대로 도시의 바쁜 일상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각자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사는 거라지만, 앞으로도 가끔은 이렇게 옛 친구들을 만나며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람 사는 게 뭐라고…. 그리 길지도 않은 인생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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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윤용진(농부·작가)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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