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진의 귀촌일기 33] 농사는 하늘이 도와줘야 한다!

2022년 6월 중순. 지독한 가뭄이 계속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지난 겨울 강수량이 평년의 10%에 그쳤고, 5월에도 7㎜ 내렸다고 한다. 내가 체감하는 강수량은 그보다도 더 적은 것 같다. 일주일쯤 전에 땅 표면이 약간 젖을 정도로 빗방울이 떨어진 게 전부이니까…. 워낙 물을 얻어먹지 못해서인지, 마늘은 줄기를 굵게 만들지도 못한 채 누렇게 잎이 시들어버렸다. 올해는 씨알 좋은 마늘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우리 동네는 특히 비가 오지 않기로 소문난 곳이다. 다른 곳은 비가 와도 이곳은 먼지만 풀풀 날린다. 시내에 외출했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져 널어놓은 빨래나 고추 걱정에 급히 집으로 달려와 보면, 우리 집 앞 도로는 뽀송뽀송하기만 하다. 이런 지역에 살고 있으니 올해와 같은 가뭄에 넋 놓고 있다가는 우리 집 텃밭과 과수원이 어떻게 망가질지 불 보듯 뻔해 보였다.

물을 못 얻어먹으니 마늘대가 굵어지기도 전에 잎이 시들기 시작했다. ⓒ윤용진

요즘은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가 망가져가는 농사 얘기뿐이다. “그래, 가뭄에 농사는 괜찮은가?” 올해와 같은 가뭄에는 물을 주는데도 한계가 있으니 나오느니 한숨만 나온다. “옥수수가 말라 비비 꼬여가고 있어요.” “평생 농사지으며 감자밭에 물 퍼주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니까요.” 너도나도 죽는소리뿐라서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 모든 게 다 날씨 탓이니까!

그런데 이렇게 비가 오지 않을 줄 누가 알았을까? 작년 가을, 양파와 마늘 밭을 만들 때 관수시설을 해줄 것인지 잠시 고민을 했다. 하지만 작년만 해도 비가 많이 와서 관수시설을 사용할 일이 거의 없었으니, 마음은 굳이 힘들여 설치하지 않는 쪽으로 기울었다. ‘설마 지독한 가뭄이야 오겠어? 또 가뭄이 온다고 해도 물뿌리개로 물을 퍼 나르면 되지!’ 양파와 마늘 밭이라고 해봤자 세 이랑밖에 되지 않으니 그 정도쯤이야 운동 삼아 물을 길어 날라도 될 것 같았다.

가뭄으로 잎이 비비 꼬인 옥수수들. ⓒpixabay

올봄에 완두콩을 심을 때도 그랬다. ‘관수시설? 그까짓 것 필요 없어. 물뿌리개로 두 번만 나르면 될 테니까!’ 그렇게 하나둘씩 관수시설 없이 만든 밭이 마늘, 양파, 완두콩, 땅콩, 토마토, 브로콜리, 감자 등등이다. 가만히 보니 고추밭과 비닐하우스 안에만 관수시설을 했고, 나머지는 전부 그냥 심었다. 지나고 보니 무슨 배짱이었는지 다시 생각해 봐도 기가 막힌다. “당신도 늙었나 봐. 판단력이 그렇게 떨어지다니….” 한숨을 쉬고 있는 나에게 아내가 해 준 말이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봄부터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었다. 이랑 한두 개라면 몰라도 어쩌다 보니 거의 밭 전체에 물을 길어다 주어야 한다. 날마다 물 쓰듯 시간을 쓰며 물을 주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햇빛이 조금 누그러지는 늦은 오후가 되면 텃밭에 물을 주기 시작하는데, 그나마 아직까지는 모기가 없기에 망정이다. 하지만 아무리 물을 준다 해도 비 한번 오는 것만 못한 법이니 더욱 애타게 비가 기다려진다.

여과기를 설치한 점적호스. 과수원에는 점적호스를 설치했다. ⓒ윤용진

물뿌리개나 호스로 물을 뿌려주면 대부분 겉으로 흘러버리고 땅속으로 스며드는 양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서 물을 흠뻑 준 것 같아도 막상 땅을 파보면 겉흙만 조금 적셔졌다. 물뿌리개나 호스로 물을 주는 방식은 물 소비량만 많지 정작 농작물에게는 그다지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효율적으로 물을 주려면 점적호스나 점적 테이프를 설치하는 방법이 최선인 것 같다. 점적호스는 두꺼운 호스에 점적관수 장치 (물이 조금씩 나오는 장치)가 붙어 있는 것이고 점적 테이프는 얇은 비닐 호스에 점적 장치가 되어 있다. 당연히 점적호스(과수원에서 사용)가 수명이 긴 대신에 값이 비싸고 점적 테이프(비닐하우스나 텃밭에서 일회용으로 사용)는 값이 싼 대신 수명이 짧다. 둘 다 좋긴 한데, 초기 투자비용이 들어가니 작은 텃밭에서는 설치하기가 어렵다.

텃밭에 설치한 점적 테이프. 여과기는 필요한 경우에만 설치를 하면 된다. ⓒ윤용진

하루하루를 이렇게 보내고 있으니 올봄에 만든 화단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보는 것보다는 먹는 게 더 중요한 나에게, 화단의 꽃보다는 텃밭의 고추와 토마토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꽃이야 필 때가 되면 피고, 질 때가 되면 지는 법이니까. 이런 나의 무관심 속에서 작약과 아이리스가 꽃을 피우는가 싶더니만 지고, 이름도 모르는 꽃들(내가 아는 꽃 이름이 워낙 없어서)도 조금 보이는 듯싶다가는 사라져버렸다. 나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며칠 전 이웃에 사시는 형님 부부가 놀러 오셨다. 마당에 들어서며 꽃밭을 훑어보신 형수님은 “애고, 이 집 꽃들은 불쌍하네!” 하신다. “왜요? 화단도 만들어 주었는데….” “물을 못 얻어먹어 꽃이 제대로 피지도 못 했어” 하신다. 바쁜 와중에 그래도 물뿌리개로 물을 몇 번이나 길어다 주었는데, 꽃밭의 꽃들은 아예 물도 못 얻어먹은 것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어라, 물을 주었는데도 꽃들이 왜 이래?” “땅이 푹 젖도록 물을 충분히 줘요!”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이 화단의 흙이 푹 젖으려면 도대체 물을 몇 번이나 길어다 주어야 하나? 그것도 하루 이틀도 아니고…. 더구나 이 화단은 수돗가에서 제법 떨어져 있다. 꽃이 보기에는 좋아도 손이 너무 많이 가는 것 같다. 괜히 화단을 만들었나? 귀찮으니 별의별 생각을 다 하게 된다.

문득 점적호스 생각이 났다. 그래서 창고에 남아있는 자재를 찾아 작은 화단에도 관수시설을 해 주었다. 앞으로는 과수원에 물을 줄 때마다 이 작은 화단의 꽃들도 덩달아 물을 얻어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대신 이 화단의 꽃들에게는 한 가지 의무가 생겼다. 이 무더운 날에 특별히 물을 얻어먹고 있으니, 앞으로는 화사한 꽃들을 피워야 한다. 밥값도 못하면 성미 급한 주인이 확 다 뽑아버릴지도 모르니까!

내 협박이 통했는지 꽃을 피웠다. 별로 화사하지는 않지만. ⓒ윤용진

요즘은 워낙 변수가 많아 날씨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한다. 하물며 기상청도 못하는 날씨를 내가 예측할 리가 없으니, 앞으로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며 농사를 지어야 한다. 올해의 쓰디쓴 경험으로 내년에는 밭 전체에 관수시설을 해 줄 테고, 그러면 농사도 틀림없이 잘 될 것만 같다. 하지만 막상 내년이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 수 있을까? 이래서 농사가 어렵다.

새벽에 빗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비록 잠시이긴 했지만 오랜만에 반가운 비가 쏟아졌다. 이미 6월 중순이니 이제 가뭄이 끝나고 장마가 시작되는 건가? 혹시 이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폭우로 물난리가 나는 거 아냐? 요즘은 한 번도 기상이변 없이 지나가는 해가 없으니, 비가 반가우면서도 은근히 불안한 생각도 든다.

농사는 유난히도 날씨에 의해 좌우되는 것 같다. 늦서리에 가뭄, 폭우. 긴 장마. 만만한 게 하나도 없다. 그래서 농사는 하늘이 도와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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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윤용진(농부·작가)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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