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복순대국 수육과 원조호남순대국 간 [이용재의 식당 탐구 -1]

이용재 음식평론가는 한국 식문화를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비평가입니다. 식재료, 조리도구, 조리 문화, 음식과 관련한 문화 콘텐츠까지 우리가 잘 몰랐던, 혹은 우리가 쉽게 지나쳤던 것들을 친절하게 설명해 줍니다. 앞으로 이용재 평론가가 격주로 더농부에 ‘식당과 음식 이야기’를 펼칩니다. 맛있는 한 끼에서 그가 얻은 통찰을 함께 나눠 보실까요?


서울 등촌동 오복순대국에서 내놓는 순댓국. ⓒ이용재

뜨겁지 않거나 따뜻하지 않은 고기가 갈수록 드물어진다. 상온 혹은 그 이하의 온도로 고기를 먹는 식문화가 희귀해졌다는 얘기다. 쇠고기야 부위 상관없이 대부분 직화구이로 소비된다 쳐도 돼지고기마저 이렇다 보니 먹는 재미가 갈수록 떨어진다.

돼지고기 맛의 열쇠는 비계가 쥐고 있다. 비계는 상온이나 그 이하의 온도에서 특유의 부드러운 감촉이 살아나고 한결 고소해진다. 샤퀴테리 문화가 돼지고기를 중심으로 발달했다는 사실에는 시사점이 있다. 세계적 별미 대접을 받는 프로슈토(이탈리아)나 하몽(스페인)은 돼지 뒷다리를 통으로 염장해 상온에서 먹는다. 다릿살이나 비계의 켜가 만만찮게 두껍지만 그렇기에 더 맛있다. 맛의 열쇠는 언제나 지방이 쥐고 있어서다. 돼지비계만 염장한 살로(러시아) 같은 가공육도 있을 정도다.

양식 가공육은 유행을 타면서 전문점이 많이 생겼다. 한식은 조금씩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 족발이 상온 돼지고기로서의 명맥을 이어왔지만 10여년 전부터 장조림처럼 따뜻해지면서 완전히 대세로 자리 잡았다. 따뜻한 족발을 파는 가게에 가서 “최대한 식은 것을 달라”고 하면 “음식 좀 드실 줄 아시네요. 원래 차갑게 먹는 건데…”라는 말을 듣는다.

어느 곳보다 상온 돼지고기가 어울릴 법한 평양냉면 전문점에서도 온장고에서 꺼낸 듯한 따뜻한 편육을 낸다. 그나마 머릿고기가 시장이나 마트에서 분투하고 있지만 정육과 껍질 등 기타 부위의 균형이 안 맞아 뻣뻣하거나 질긴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가운데 참으로 신기한 사실이 있다. 따뜻할 때 맛있도록 조리한 돼지고기는 식으면 맛있지 않다는 점이다. 부드럽지 않거나, 뻣뻣하거나, 젤라틴 때문에 엉겨 붙어 떼어내기 어렵다. 고기를 충분히 식히지 않으면 비계가 입에 착착 감기도록 얇게 저미지 못한다.

따뜻한 고기가 유난히 느끼하게 느껴진다면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고기와 비계 비율을 최적으로 조정할 수 없어서였을 것이다. 따뜻하기 때문에 두껍게 썬 고기를 먹으면 느끼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오복순대국 수육은 살코기와 비계, 귀까지 모여 질감의 잔치를 이룬다. ⓒ이용재

서울 강서구 등촌동 오복순대국 수육을 처음 받아들고 놀랐다. 요즘도 돼지고기를 따뜻하거나 뜨겁지 않게 내는 곳이 있구나 싶어서였다. 부위에 따라 온기를 살짝 머금은 경우도 있다. 그래도 요즘 기준으로 치자면 차갑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만큼 상온에 가깝게 나온다.

비계는 비계대로 매끄럽게 입에 착착 감기고, 살코기는 퍽퍽하지 않고 촉촉하다. 돼지는 소처럼 근섬유 사이의 지방, 즉 마블링이 발달하지 않았다. 살코기는 살코기대로, 비계는 비계대로 켜를 이루고 있으니 이 둘을 동시에 최적의 상태로 익히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 최고의 고기라 할 수 있는 삼겹살만 봐도 그렇다. 워낙 비계 층이 두꺼워 전체가 촉촉한 것 같지만, 살코기는 굉장히 빨리 익어 뻣뻣해진다. 그래서 많이, 열심히 먹지만 잘 먹기가 의외로 까다로운 게 돼지고기다. 오복순대국 수육은 모범답안 같은 느낌을 준다.

살코기와 비계 말고도 껍질 사이로 오독오독 씹히는 귀마저 함께 나와 입안에서는 ‘질감의 잔치’가 벌어진다. 수육은 2~4인이 각자 순댓국을 하나씩 시켜 놓고 나눠 먹기 좋은 양이고, 혼자 식사한다면 건더기가 많은 순댓국(특)보다 맛보기로 한 접시를 따로 주는 정식을 권한다. 같은 고기라도 국에 담겨 있는 건더기와 견줘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느낌을 맛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오복순대국 수육은 맛있지만 지나치게 익숙한 맛이다. ⓒ이용재

수육 다음엔 순대가 있다. 순댓국집인데 왜 순대 이야기부터 하지 않느냐면, 솔직히 수육이 훨씬 훌륭하기 때문이다. 물론 순대가 별로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당면 순대도 아니고 업장에서 직접 만드는 것이며 촉촉한 질감도 좋은데, 지나치게 익숙한 맛이 난다. 말하자면 한국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는, 다소 들척지근한 만두소 맛이다.

왠지 따로 먹기에는 허전하고 심심한 가운데, 순댓국에서는 정말 균형이 딱 맞는 국물 덕분에 딱 적당한 만큼 자기 목소리를 낸다. 많은 순댓국집이 담백하다기엔 밍밍할 정도로 묽거나 멀건 국물을 내는 데 반해, 오복순대국은 너무 가늘지도, 너무 굵지도 않은 균형감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부추전이 있다. 어린이 자전거 바퀴만 한 크기에 부추와 밀가루 반죽의 경계가 모호할 정도로 얇고 바삭하게 잘 부쳤다. 경우에 따라선 수육보다도 더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순댓국집에서 부침개라니, 내 돈 주고 사 먹는 거긴 하지만 왠지 보너스라도 얻어걸린 기분 아니겠는가.

부추전은 부추와 반죽 경계가 모호할 정도로 얇고 바삭하다. ⓒ이용재

이 부추전을 먹기란 의외로 쉬운 일이 아니다. 메뉴판에도 버젓이 실려 있으니 절대 ‘히든 메뉴’는 아니다. 다만 손님이 많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계속 지어야 하는 밥에 화로를 양보해서 주문을 받지 않는다. 꼭 부추전을 먹어보고 싶다면 식사 시간대는 피해 갈 것을 권한다. 그렇게라도 한 번은 먹어봐야 할 메뉴다. 부추전을 넉넉하게 떼어 수육과 배추김치를 한 점씩 싸서 먹으면 정말 맛있다.

서울 중구 약수동에 있는 원조호남순대국에서 간을 먹으면 돼지 간의 참맛을 알 수 있다. ⓒ이용재

이처럼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오복순대국 수육에 서울 중구 약수동 원조호남순대국의 차가운 간을 더하면 완벽한 돼지고기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당면 순대를 내는 가운데 놀랍게도 간이 별도 메뉴다. 그럴 정도면 뭔가 특별한 게 있겠지 싶어 시켜보면 상온도 아니고 차가운 간이 한 접시 수북이 쌓여서 나온다. 우리가 여느 순대 가게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촉촉하다.

거위나 아귀 간은 별미로 취급을 받으면서 돼지는 의외로 인기가 없어 의아한데 이곳 간을 먹으면 지금껏 우리가 잘못 먹은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촉촉하고 고소하다. 순댓국은 국물이 좀 멀겋지만, 무엇보다 아주 부드럽게 이에 전혀 저항이 없도록 삶은 내장이 아주 훌륭하다. 내장은 그야말로 운동을 많이 하는 소화기관이니 부드럽게 익혔다고 하는 곳들에서도 최후의 저항은 남아 있게 마련인데, 이곳에서는 예외다. 따라서 순댓국 주문도 내장 위주로 할 것을 권한다.

오늘 탐구해 본 식당

1. 오복순대국

02-3661-6611

서울 강서구 공항대로45길 5

<가격>

순댓국 9000원

순대정식 1만2000원

수육 1만5000원

부추전 8000원

2. 원조호남순대국

02-2233-0755

서울 중구 동호로 163

<가격>

내장순대국 9000원

간 7000원


글·사진=이용재(음식평론가·번역가)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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