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한 초봄, 보리에 치명적인 ‘이 병’…중일전쟁 중 발견한 종자가 ‘해결사’ [재미있는 농업 이야기 67]

때는 중일전쟁 시기, 장소는 중국 후베이성 근처이다. 말을 타고 보리가 익어가는 밭을 지나가던 한 일본군의 눈이 갑자기 반짝였다. 보통 사람에게는 그저 평범한 보리에 불과하였지만 보리를 연구하다 전쟁터로 나온 그에게는 밭에서 익어가던 보리에서 비범함을 느낄 수 있었다.

보리밭 ⓒ게티이미지뱅크

반가운 마음에 급히 말에서 뛰어내려 보리를 꺾어 종이봉투에 조심스레 담은 후 겉에는 지역명인 ‘대석항(大石港)’을 흘려 적고, 봉투를 반으로 접었다. 이렇게 일본으로 보낸 종이봉투는 접힌 자리가 더러워지며 대(大)라는 글자가 목(木)자로 읽힌 모양이다. 봉투에 담겨 있던 보리는 ‘목석항(木石港)3호’로 이름 붙여졌다.

전쟁 중에도 가는 곳마다 보리 종자를 수집하였던 이 사람이 보리 유전학자로 명성을 얻게 되는 다카하시 류헤이 박사였다. 이후에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지에서 재배종 4000점, 야생종 200점이 넘는 보리 유전자원을 수집하였다.

맥주보리 ‘흑호’ ⓒ농촌진흥청

1950년대 일본에서는 맥주보리를 중심으로 보리누른모자이크병의 피해가 커져갔다. 이 때 수집한 유전자원 중에서 저항성을 나타낸 것이 ‘목석항3호’였으며 이를 활용하여 저항성 품종을 만들었기에 맥주보리를 계속 재배할 수 있게 되었다.

목석항3호의 저항성 유전자는 유럽은 물론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나는 보리 품종에도 도입되어 아직까지도 누른모자이크병을 이겨내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찰보리 ⓒ뉴시스

여담으로 다카하시 류헤이 박사는 우리나라 찰보리 육성에도 도움을 주었다. 1974년 작물시험장(식량과학원의 전신)을 방문한 후 찰성을 지닌 우리나라 재래종 마산과맥과 일본 재래종 요네자와모찌 등 7종의 찰보리 유전자원을 분양해 주었는데, 이 품종들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찰보리 품종이 탄생하게 되었다.

보리는 맥주를 만드는 맥아, 식혜를 만드는 엿기름으로 쓰인다. 여름철에는 시원하게 목을 축여주는 보리차로 끓여 마시기도 하고, 밥에 섞어 보리밥을 해 먹기도 한다.

보리밥 ⓒ게티이미지뱅크

우리나라에서 보리는 대부분 가을에 파종하여 어린 식물체 상태로 겨울을 나고 봄에 수확하는 작물이다. 보리는 추운 겨울 생장을 멈추고 때를 기다리다가 봄철이 돌아오면 다시 생육을 시작하는데, 보리를 감염시키는 바이러스는 아직 날이 쌀쌀한 초봄부터 보리에 침입하여 병을 일으킨다. 오늘의 이야기는 보리 바이러스에 대한 것이다.

보리에 치명적인 보리누른모자이크병

농민의 마음은 언제나, 아무런 피해 없이 작물이 잘 자라주기를 바라지만 식량작물을 기르는 것은 환경, 병해충과의 계속되는 싸움이다. 농민이 방심하거나 병해충 발생에 적합한 환경이 되면 병해충이 크게 나타나서 피해를 준다.

보리누른모자이크병에 의한 모자이크, 황화증상 ⓒ농촌진흥청

보리누른모자이크병은 보리를 괴롭히는 대표적인 바이러스병으로, 잎이 누렇게 변하고 흰색 점무늬가 생기며, 심한 경우 점무늬가 길게 이어져 줄무늬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한 보리의 키가 자라지 않고 심한 경우 이삭이 생기지 않아 수확을 할 수 없을 정도의 피해를 입힌다.

보리누른모자이크병은 1950년대 일본에서 주로 맥주보리에게 큰 피해를 입히기 시작하여,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말부터 피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보리누른모자이크병을 일으키는 것은 보리누른모자이크 바리이러스(Barley Yellow Mosaic Virus)다. 이 바이러스는 홀로 보리를 감염시키지 못하고 땅속에 사는 곰팡이 매개균(Polymyxa graminis)을 통해 주위로 퍼져나간다.

맥주보리 ‘흑호’ 밭 ⓒ농촌진흥청

보리누른모자이크병 매개체 토양곰팡이

바이러스는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체로 스스로 이동하여 병을 일으킬 수 없으므로 병을 퍼뜨리기 위해서 여러 조력자들이 필요하다. 종류에 따라서 곤충이 식물체를 먹을 때 곤충의 입을 통해 퍼져나가거나, 땅속의 선충이 식물체를 찔러 즙액을 먹을 때 식물체 사이를 옮겨가거나 혹은 사람의 손을 통해 이동한다.

놀랍게도, 담배모자이크바이러스의 경우는 담배잎을 찌고 분쇄하여 만든 담배 속에서도 살아남아서, 흡연자의 손을 통해서도 새로운 식물체로 침입하기도 한다.

담배잎 ⓒ게티이미지뱅크

보리누른모자이크병은 토양에 사는 곰팡이인 Polymyxa graminis의 유주자가 보리 뿌리로 침입할 때 유주자에 있는 바이러스가 병을 감염시킨다.

쌀쌀한 초봄 위력 떨치는 보리누른모자이크바이러스

보리누른모자이크병은 흙 속에 존재하는 곰팡이인 Polymyxa graminis가 바이러스를 흙 속에 있는 보리 뿌리 속으로 넣어주어 병이 퍼지므로 단순히 병든 식물체를 뽑아내거나 농약을 친다고 해도 병을 없앨 수 없다.

이렇게 땅 속에서 일어나는 바이러스 감염과 토양곰팡이의 생명력은 땅 속이 꽁꽁 어는 겨울이 지나 아직은 추운 초봄부터 더욱 빛을 발한다. 일반적으로 식물체가 잘 자라지 못하는 10-15도 사이의 저온에서 보리누른모자이크병을 옮기는 곰팡이는 가장 큰 활력을 나타내어 널리널리 병을 퍼트릴 수 있다.

보리누른모자이크병에 의한 위축증상 ⓒ농촌진흥청

겨울철 땅이 꽁꽁 어는 추위에도 얼어죽지 않으며 오히려 15도 이상으로 온도가 높아지면 병을 퍼트리는 능력이 낮아지는 등 초봄의 추운 날씨일수록 뜨겁게 생명력을 뽐내는 존재가 바로 보리누른모자이크와 이를 전달하는 곰팡이인 Polymyxa graminis 이다.

저항성 종자로 보리누른모자이크병에 반격

보리누른모자이크바이러스는 일단 발생하면 그 이후 보리를 재배하지 않아도, 흙 속에서 20년 이상을 살아남을 수 있으므로 한번 병이 발생한 곳에서는 그 피해를 줄이거나 예방하기가 어렵다.

그렇기에 일단 보리누른모자이크병이 발생하면 보리 외에 밀, 호밀같은 다른 동계작물을 재배하거나 수량 감소를 감수하고 파종을 늦춰 병 발생시기를 피해가는 등의 재배적 방법으로 피해를 줄여왔으나, 이는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않는다.

보리 ⓒ게티이미지뱅크

근본 대책은 보리누른모자이크병에 걸리지 않거나, 걸리더라도 그 피해가 적은 보리를 심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보리누른모자이크병에 저항성을 나타내는 품종을 만드는 것이 제일이며, 저항성 품종을 만들기 위해서는 보리누른모자이크병에 저항성을 나타내는 보리를 찾는 것이 먼저다. 인류가 처음으로 찾아내어 사용한 저항성 보리가 바로 앞서 이야기한 ‘목석항3호’다. 저항성 유전자인 rym1과 rym5가 들어있던 ‘목석항3호’를 이용하여 저항성 품종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보리누른모자이크병 발생과 저항성 육종

우리나라에서 보리누른모자이크병 저항성 검정은 병 발생이 잘 되는 밭에 종자를 심은 후 병이 걸리는 정도를 평가하며, 이를 위해 익산에 근 30년동안 유지되어 온 바이러스병 저항성 검정포가 있다. 이 곳 토양에는 보리누른모자이크병을 일으키는 BaYMV과 이를 매개하는 Polymyxa graminis가 흙 속에 높은 밀도로 존재하기에 오직 저항성을 가진 보리만이 큰 피해 없이 자란다.

국립식량과학원에서 선발한 색깔보리로 만든 가공식품 ⓒ국립식량과학원

현재 식량과학원에서 만드는 보리들은 보리누른모자이크병 저항성 여부를 검정하여 품종으로 만드므로 최신 품종을 재배한다면 보리누른모자이크병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보리재배지에는 보리누른모자이크병이 발생한다. 토양 곰팡이가 바이러스병을 운반하고, 곰팡이의 휴면포자 속에서 오랜 기간동안 생존하므로 일단 한 번 병이 발생하면 매년 지속되며, 장화나 농기구에 묻은 흙을 통해서도, 병 발생이 없는 깨끗한 토양을 오염시킨다.

보리누른모자이크병 발생 포장 ⓒ농촌진흥청

아직까지는 ‘목석항3호’ 등 저항성 유전자원에서 도입한 저항성 유전자가 병을 잘 막아내고 있다. 그러나 저항성을 극복하는 새로운 바이러스 계통이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 그래서 병이 심하게 발생한 곳에서 사용한 농기구를 씻지 않은 채로 다른 곳에서 곧바로 사용하거나, 장화를 그대로 신어 흙을 옮기는 등의 감염원 전파는 매우 유의해야 한다. 무엇보다 보리 재배 포장을 깨끗하게 유지해야 한다.

추운 늦겨울~초봄, 땅속에서 벌어지는 뜨거운 전쟁

보리누른모자이크병은 보리의 새로운 뿌리가 자라나기 시작하는 생육재생기인 2월 하순부터 감염되기 시작한다. 아직은 날이 추워 활동이 움츠러드는 2월이지만 땅속에서는 보리의 새 뿌리가 자라기 시작하고 이에 발맞추어 보리 바이러스가 감염되고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보리밭 ⓒ게티이미지뱅크

보리의 새로운 뿌리 속으로 곰팡이가 침입하여 바이러스를 뿌리 속으로 전달하면 보리 속에서 바이러스가 보리 전신으로 퍼져나가 병징을 나타내며 피해가 나타난다.

하지만, 기온이 15℃ 이상 올라가기 시작하면 보리누른모자이크병의 전파속도는 느려지고, 온도가 더욱 더 올라가면 보리에 나타나는 병징도 점차 사라지게 된다.

추운 날씨에서만 모습을 드러내고 피해를 주는 보리누른모자이크병은 완연한 봄이 오기 전 잠시 모습을 드러내는, 초봄의 전령이므로 겨울이 막 지난 시기에 보리밭에 귀를 기울인다면 땅속에서 벌어지는 뜨거운 생명력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글=김상민 국립식량과학원 작물기초기반과 농업연구사

정리=더농부


▽클릭 한 번으로 식탁 위에서 농부들의 정성을 만나보세요!▽

▽더농부 구독하고 전국 먹거리 정보를 확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