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국수의 두 얼굴 : ‘꼬이’와 ‘고수 한잎’ [이용재의 식당 탐구 – 6]

이용재 음식평론가는 한국 식문화를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비평가입니다. 식재료, 조리도구, 조리 문화, 음식과 관련한 문화 콘텐츠까지 우리가 잘 몰랐던, 혹은 우리가 쉽게 지나쳤던 것들을 친절하게 설명해 줍니다. 앞으로 이용재 평론가가 격주로 더농부에 ‘식당과 음식 이야기’를 펼칩니다. 맛있는 한 끼에서 그가 얻은 통찰을 함께 나눠 보실까요?


퍼(Pho, 베트남 쌀국수)는 1998년 미국 여행길에서 처음 먹어보았다. 많은 이들이 경험을 바탕으로 예상할 수 있듯 잘 먹지 못했다. 원인은 당연히 고수였다. 국물에 피어오르는 그 알 수 없는 향이라니…. 내 의지대로 식사를 선택할 수 없는 정황이었기에 그 뒤로도 몇 번 퍼를 먹으러 갔고, 그때마다 끼니를 거의 거르다시피 하는 작은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4년 뒤인 2002년 미국을 다시 찾았을 때 나는 달라져 있었다. 그 이후 먹어본 적도 없었는데 고수가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곧 퍼에 중독되다시피했다. 매주 적어도 한 번은 국물에 고수 잎을 잔뜩 더해 향을 즐기지 않으면 삶이 허전하다 느끼곤 했었다. 그래서 2009년 귀국하고 나서도 꾸준히 퍼를 찾아 나섰드랬다. 그런데 한 번은 아주 엉뚱한 돌연변이를 만났다. 고수 대신 쑥갓을 얹은 것이었다. 쑥갓 나름의 향도 좋기는 좋지만 짐짓 무거울 수 있는 고깃국물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15년 가까이 지났지만 슬픈 퍼의 사례로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2022년, 퍼는 상당 부분 대중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아무래도 뜨끈한 고깃국물이 바탕을 이루는 데다가, 낯설 수 없는 쌀면을 만 음식이다 보니 고수에 대한 호불호와는 무관하게 끼니로 선택을 받는다. 흔히 ‘현지인’이라 부르는 이들이 자리를 잡은 경우가 대다수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한국인이 차린 가게도 눈에 들어오는데 현지화를 거쳤다. 상호부터 맛까지 ‘한국적’이라는 형용사가 아니면 딱히 묘사할 수 없는 자기만의 틈새를 만들어 음식을 내놓는다. 그런 퍼와 베트남 사람들이 내는, 말하자면 전통적인 퍼는 어떻게 다를까? 둘을 비교할 수 있을까? 이번에는 그렇게 서로 다른 서울 마포구의 두 퍼 가게를 비교해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꼬이의 전통적인 퍼

베트남 국수 전문점 꼬이 전경 ⓒ이용재

김이 가볍게 피어오르는 대접을 받아든다. ‘가볍게’가 중요하다. 애초에 퍼의 국물은 엄청나게 뜨겁지 않다. 받자마자 바로 국물을 떠 먹더라도 입천장이나 혀가 무리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물론 퍼의 국물에서는 김만 피어오르지 않는다. 태우다시피 구운 양파나 생강 같은 향신채의 향기도 함께 피어오른다. 여기에 고수를 더하고 라임(이곳에서는 레몬을 낸다)의 즙을 최대한 짜 더한 뒤 남은 라임 조각도 국물에 퐁당, 던져 넣는다. 그렇게 향과 맛, 질감의 삼박자가 대접이라는 작은 우주에서 완성된다.

꼬이의 쌀국수는 향, 맛, 질감이라는 삼박자를 갖췄다. ⓒ이용재

핵심은 나중에 첨가하는, 눈에 보이는 재료들이다. 고수와 라임(혹은 레몬)은 일단 미약하게나마 원래 높지 않았던 국물의 온도를 조금 더 편하게 낮춰준다.

그런 가운데 원래 있던 향과 손 잡고 후각의 즐거움을 극대화한다. 향이 살아나 춤을 춘달까? 코로 향을 만끽하게 국물을 떠 마시면 시트러스의 신맛이 고깃국물의 균형을 완벽하게 잡아주니 한두 입으로 멈출 수 없도록 사람을 잡아 끈다. 이처럼 붙임성이 좋은 국물이라니. 시트러스의 산이 없었더라면 닿을 수 없는 영역이다.

꼬이에서 내어주는 고수와 레몬 ⓒ이용재

마지막으로 그 모든 것의 질감이 서로 조화와 대조를 이루며 매 젓가락 조금씩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숙주를 비롯한 채소의 아삭함과 고기의 야들야들함, 그리고 쌀면의 하늘하늘함이 이합집산하며 즐거움을 자아낸다.

늘어 놓고 나니 일반적인 감상 같지만 그대로 꼬이에서 먹을 수 있는 퍼의 즐거움이다. 메뉴판과 간판의 설명에 의하면 ‘꼬이’란 뿌리(根)를 의미한다는데, 바로 이 한 대접이 퍼가 한국 땅에도 뿌리를 잘 내렸음을 입증해 준다.

고수 한잎의 한국식 쌀국수

고수 한잎 입구 ⓒ이용재

‘고수 한잎’이라니 일단 상호부터 ‘꼬이’와 다른 방향으로 믿음이 간다. 이왕 할 현지화라면 정말 확실하게 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달까? 그런 의지가 국물에서부터 확실하게 드러나니, 일단 온도가 사뭇 높다. 끓는 국물을 담아 한 김 정도 식힌 느낌으로, 입에 넣으면 바로 먹기가 살짝 부담스럽다는 느낌을 받을 만큼 뜨겁다.

입천장이 데지 않을 만큼만 아슬아슬하게 뜨거웠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시행착오를 겪어 딱 이 수준으로 맞춘 것이겠구나. ‘광화문국밥’이 돼지국밥을 선보였을 때 박찬일 셰프는 ‘식기를 온장고에 보관해 최초 온도를 65도에 맞춰 놓고, 100도의 끓는 육수를 부으면 딱 85도가 된다. 이걸 손님 상에 올려 놓으면 80도 안팎이 유지 되는 정도로 설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바로 그러한 의도가 느껴지는 온도였다.

고수 한잎의 국물은 선이 굵은 느낌을 지녔다. 신맛이 배제됐기 때문이다. ⓒ이용재

그런 온도와 궤를 같이 하기라도 하듯 국물은 꼬이의 것보다 선이 굵게 다가온다. 이유는 무엇보다 신맛이 일단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퍼와 달리 라임이나 레몬을 내지 않으며, 어느 정도 맛을 보다가 식탁에 놓인 마늘 식초를 쓰라고 안내해 준다.

이런 설정은 장점과 약점을 동시에 품는다. 일단 장점부터 말하자면 밥을 말아 먹기에 정말 완벽에 가까운 국물로 완성이 되어 나온다. 베트남이 고향인 쌀국수에 밥이라니!’라는 생각도 할 수 있겠지만 의구심은 셰프의 안내 또는 권유에 따라 밥을 말아 먹어보면 싹 가신다. 알알이 잘 살아 있는, 잘 지은 밥이 국물과 고스란히 어우러져 그제야 정녕 완성된 음식처럼 느껴진다. 이럴 거면 아예 설렁탕처럼 처음부터 밥을 말아서 면과 밥의 서로 다른 질감을 동시에 즐기는 게 좋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고수 한잎에서는 국물에 밥을 말아야 완성된 맛을 느낄 수 있다. ⓒ이용재

반면 단점은, 국물 맛이 아무래도 단조롭게 느껴진다. 애초에 신맛이 새롭게 정리해 주는 맛이기 때문인데 그 뉘앙스가 시트러스 생과일의 즙일 때와 식초일 때는 아무래도 다를 수 밖에 없고, 전자가 더 상큼하게 제 역할을 한다. 신맛이 없지는 않지만 마늘식초만으로는 체면치레만 하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한국 음식과 베트남 음식의 절묘한 경계선에 서 있기에 김치가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어 이 신맛의 공백은 좀 더 두드러진다. 밑반찬으로 생강절임을 내주지만 정확하게 가셔주는 역할은 하지 못한다. 어차피 익어 제대로 신맛을 내기에는 시간이 늘 걸리는 김치의 단점을 감안할 때 이런 음식점에서 적극적으로 좇기 어려운 목표라는 점은 감안해야 겠지만 그래도 아쉽긴 아쉽다.

1998년 처음 퍼를 먹었을 때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퍼의 인기가 높아져서 이제 한국인 이민자들이 음식점을 내기 시작했노라고. 30년 가까이 세월이 흘러 한국의 ‘고수 한잎’을 당시의 한국 이민자들이 냈을 만한 퍼 전문점과 비슷하게 여길 수 있을까? 현지화의 징후 또는 방증으로 말이다.

아무래도 퍼는 베트남 음식이기에 둘을 병치하면 고수 한잎을 꼬이에 자꾸 비교하게 되지만 그게 굳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둘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각자의 탄탄한 완성도를 일궜고, 그 결과는 먹는 우리들에게 어쨌든 이익이기 때문이다.

오늘 탐구해 본 식당

1. 꼬이

02-715-4095

서울 마포구 독막로9길14 1층

<가격>

퍼 보(쇠고기 쌀국수) 9000원

2. 고수 한잎

010-3918-0246

서울 마포구 성암로15길 1층

<가격>

쌀국수(돼지고기) 9000원


글·사진=이용재(음식평론가·번역가)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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