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마음의 양식 만들다 몸의 양식 나르다…이병철의 신간 《시간강사입니다 배민 합니다》

이병철 시인의 새 책은 거리에서 보고 느낀 풍경이 담겼습니다. ⓒ걷는사람

더농부에 ‘길에서 부르는 노래’를 연재하는 이병철 시인이 최근 새 책을 냈습니다. 《시간강사입니다 배민 합니다》(걷는사람)인데요, 어떤 책인지 짐작이 가시나요? 문학박사이자 문학평론가인 이 시인은 기고, 강의 등 활동이 활발한 문학인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인 생활고 때문에, 온전한 나로 살기 위해 배달이라는 과감한 선택을 합니다. 시인은 ‘배달 라이더’ 생활을 하면서 거리에서 보고 느낀 여러 감정들을 이 책에 솔직하게 담았습니다.

“박사 후 국내 연수가 종료되면서 월 고정 수입의 60퍼센트가 없어졌다. 인문학 연구자들은 대학에 자리 잡지 못하면 그야말로 ‘잉여 인간’이 된다. 박사 학위까지 받느라 고생한 걸 생각하면 이제 와 다른 일을 할 수도 없거니와 이미 30대 중후반을 넘긴 나이다. (…) 이번 학기에는 세 학교에서 수업 다섯 개를 맡았는데, 시간당 강의료는 3만 5천원에 불과하다. 몇 군데 신문과 잡지에 글도 연재하고 있지만 강의료와 원고료를 다 합해도 월 20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12~13p ‘공부를 많이 해서’ 가운데)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시인은 왜 라이더가 됐을까요? 그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뉴시스

이 시인은 책을 내기 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틈틈이 배달 라이더로서의 인생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시간 강의로는 살기 힘든 인문학 전공자의 삶이, 이 세상이 환멸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그는 ‘이 일은 나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일’이라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이 시인은 소문난 낚시광이면서 뛰어난 아마추어 야구선수입니다. 더농부 독자들은 잘 아시다시피 실력 있는 여행 작가이기도 하고요. 이런 여가 생활을 하려면 필연적으로 비용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이 모든 것들이 자신의 삶이기에 포기하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 배달을 선택했다고 말합니다. 다른 일도 많은데 왜 배달이냐는 질문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아서’라고 쿨하게 답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당당하게 즐기기 위해 시작한 라이더 생활. 이 시인은 라이더만이 겪는 세상살이들을 유쾌하게, 때로는 가슴 찡하게 풀어놓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라이더 세계에는 ‘회수건’이라는 횡재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잘못 배달된 음식을 가지고 오는 것인데요, 회수에 들어간 운임은 운임대로 받고 음식이 상하거나 파손되지 않았으면 공짜로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부푼 기대를 안고 만난 회수건은…. 안타깝게도 호두과자였습니다. 당황스러움과 함께 옛 연애의 추억을 떠올립니다.

“가난한 연애의 시절을 함께 보낸 엣 연인은 호두과자를 참 좋아했다. 호두과자를 떠올리면 가진 것 없어도 행복했던 날들의 추억이 노릇노릇한 냄새를 풍긴다. 어디론가 떠나거나 혹은 집으로 돌아올 때 먹는 ‘설렘’의 음식이다.”

(71p ‘호두과자’ 가운데)

경기 수원 매탄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배달 라이더가 쪽잠을 자며 쉬고 있다. ⓒ뉴시스

이병철 시인은 에디터의 친구입니다. 문학 담당기자와 시인으로 만나, 나이도 같고 야구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금세 친해졌습니다. 책을 읽으며 이 시인의 성품을 알 수 있었던 대목이 있습니다. 자주 배달을 가던 족발집 사장님이 틈나는 대로 음료수를 건네주면서 친해졌는데, 그는 사장님의 마음을 잊지 않고 자신의 책 한 권을 선물했습니다. 작가인 것을 알게 된 사장님은 얼마 뒤 이 시인에게 전단지와 배달 애플리케이션에 넣은 홍보 문구를 부탁했죠.

이 시인은 돈은 필요 없으니 마감 때 족발이나 싸달라고 한 뒤 멋들어진 글을 써서 건넵니다. 사장님은 시인의 그 마음이 고마워 가게 문을 일찍 닫고 푸짐한 저녁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이로써 시인과 사장님은 진정한 의미의 식구가 되었죠. 작은 일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시인의 마음씨가 잘 드러난 한때였다고 생각합니다.

“사장님, 사모님, 그리고 중학생 아들딸과 나는 한솥밥을 먹은 ‘식구(食口)’가 되었다. 비록 짧은 두어 시간이지만, 나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식구들과 정답게 웃고 떠들며 영혼의 살을 찌웠다. 사람의 일생이란 따뜻한 밥 한 끼를 먹기 위해 온 세상을 떠돌아 헤매는 일이 아닌가.” (122p ‘위대한 밥상’ 가운데)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며 이 시인이 왜 배달을 하게 됐는지 알게 됐습니다. 본인은 아무런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일이어서라고 하지만 저는 이렇게 믿고 싶습니다. 시인의 시가 사람들의 마음을 살찌우듯,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전달해 주는 일도 숭고한 일이며 그 과정에서 마주치는 삶의 조각들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요.

라이더유니온 회원들이 2022년 4월 서울 잠실 쿠팡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라이더보호법 제정, 산재보험 보장 등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아무리 좋은 말로 치장을 한다 해도 오토바이 배달이 힘들고 위험한 일인 것은 사실입니다. 시인은 ‘딸배를 위한 변명’이라는 글에서 라이더들의 교통 위반 행위는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불법 주행에 내몰리는 현실도 개선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배달 라이더가 평소 20분 걸리는 길을 15분 만에 배달하면 인공지능 시스템은 다음 라이더들이 어떤 예외 없이 15분 안에 배달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지요.

문학인이자 배달 라이더라는 두 개의 정체성을 가진 시인은 이상과 현실 속에서 이따금 갈등을 겪는 것처럼 보입니다. 원고지 20매 쓰면 20만원을 버는데 성취감과 죄책감을 동시에 받는다고 합니다. 급기야 문학이라는 것 자체가 거대한 다단계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하네요.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문단과 교단의 한계에 아쉬움을 토로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 콜도 줄고 단가도 내려갔지만, 배달이 주 수입원이다. 수입으로만 치자면 배달이 주업, 대학 강의가 무업, 시나 평론 등 문학 집필은 용돈벌이(혹은 재능 기부?) 수준이다. 따스한 봄날 하루라도 배달 더 나가야 하는데… 노동 시간 대비 보수로 보면 배달이 평론 원고 쓰는 것보다 10배쯤 낫다. 그러니 원고 청탁이 안 들어오는 게 나로서는 더 좋은 일이다. 이렇게 멀어지는 거겠지. 다들 이렇게 멀어졌겠지.”

(157~158p ‘이렇게 멀어지나 봐’ 가운데)

이렇게 젊고 성실한 시인이 자신의 재능을 100% 살리지 못하고 생업에 몰리는 현실이 정말로 아쉽습니다. 이러다 그가 영영 글쓰기를 놓아버리지는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그러나 4만원 밖에 되지 않은 첫 시집의 지난해 분 인세를 받고서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나서 김민섭 작가의 《대리사회》(와이즈베리)가 떠올랐습니다. 김 작가 또한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시간강사로 활동하다 대리운전 경험을 책으로 펴냈죠. 세상에서 지식인이라고 부르는 직업이 있었지만 이 시인과 김 작가의 삶을 지켜준 것은 거리였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합니다. 이들이 본업에서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지 못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되, 성실한 작가들이 길에서 보고 들은 것을 전해준다는 사실은 독자들에게는 기쁜 일이겠지요.

앞으로는 이 시인이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더 활발한 글쓰기를 하고 그 일만으로도 행복한 삶을 살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러려면 독자 여러분들이 이 시인의 책을 많이 사주시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더농부 에디터 박상익

nong-u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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