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 더 맛있게 만드는 숙성기술, 한우산업 발전 이끈다 [재미있는 농업이야기 88]

일소에서 고기소가 된 한우

한우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육한 재래종 일소로, 멸종된 소과(科) 포유류 오록스가 북방계열로 진화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소를 키운 역사는 4000여 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김해패총에서 2000여 년 전의 소뼈가 발굴되기도 했다.

한국인에게 한우는 큰 재산이자 농경을 돕는 일꾼이다. 한우는 우직하고 순박한 성격으로 설화나 시, 그림 등 문화‧예술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이제는 일소에서 고기소로 변해, 귀하고 맛있는 식재료가 됐다.

한우는 가축 개량과 사양 기술 연구를 거쳐 일소에서 고기소가 됐다.ⓒ농촌진흥청

한우가 명성을 지킬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한우개량사업, 한국가축사양표준(한우) 개정, 유전체 기술 적용 등 수많은 가축 개량과 사양 기술이 있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가축을 크게 키우는 쪽으로, 2000년대 들어서는 소비자가 원하는 고급육을 만드는 쪽으로 축산 기술이 꾸준히 발전했다.

그렇다면 한우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1974년 약 358㎏이었던 한우 체중은 2021년 724㎏으로 2배 넘게 늘었다. 한우 육질 1등급 이상 비율은 1993년 10.7%에서 2021년 89.3%(거세우 기준)로 증가했다. 체계적인 한우 개량사업과 가축 사양 기술 발달로 거둔 성과다.

부위마다 다른 맛, 인기도 가격도 다르다

한우는 부위마다 맛이 다르다. 선조들은 ‘한 마리가 100가지 맛을 낸다’며 한우를 일두백미(一頭百味)라고 불렀다. 또 부위를 세밀하게 나눠 다양한 음식재료로 활용해 왔다.

한우 맛의 비밀을 과학적으로 밝히기 위해 수입 쇠고기와 한우고기의 성분 함량 차이를 연구했다. 그 결과 한우고기에는 맛을 결정하는 지방산인 올레인산이 수입산보다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 소비자들은 구이용으로 마블링이 많은 부위를 선택한다. ⓒ농촌진흥청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우고기를 구이용으로 가장 많이 즐겨 먹어 근내지방도(마블링)가 있는 고기를 좋아한다. 마블링이 좋으면 고기는 연하고 육즙이 많은 특징이 있다.

현재 쇠고기는 10개 대분할과 39개 소분할로 나뉜다. 구이용으로 먹는 특정 부위에 인기가 치우쳐 부위마다 가격이 크게 다르다. 등심, 안심, 갈비, 채끝 등 근내지방도(마블링)가 높은 부위는 구이용으로 인기가 많아 가격이 높게 형성된다. 반면 우둔, 설도 등 지방이 적은 부위는 탕, 국, 볶음, 조림 등에만 사용되면서 선호도가 낮고 가격도 구이용보다 낮게 형성돼 있다.

지방이 적은 부위는 선호도가 낮아 가격도 낮다. ⓒ농촌진흥청

한우는 약 48% 정도가 저지방 부위다. 암소는 약 42%가 2·3등급육이다. 한우 저지방 부위와 암소 고기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소비를 촉진시킬 수 있는 기술이 필요했다.

쇠고기는 숙성되면서 고기 내 단백질 분해효소(칼페인, 카뎁신)로 육질이 부드러워지고 맛이 좋아진다. 고기가 숙성되면서 연하고 맛있어진다면, 선호도가 낮은 한우고기 부위와 저등급 고기소비가 확대될 수 있다.

기다림의 미학 ‘숙성’

‘숙성(熟成)’은 쇠고기를 냉장 온도에서 일정 기간 보관해 맛을 좋게 하는 기술이다. 일반적으로 쇠고기는 도축하면 고기가 단단해지는 사후강직이 온다. 도축 후 24시간이 지나면 근육 안에 있던 효소가 근섬유를 서서히 분해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 육질이 부드러워지고 맛과 식감은 배가 된다.

쇠고기는 부위마다 육질이 다양하고 구성 성분에 차이가 있다. 숙성 기술의 핵심은 부위별로 보관 온도와 숙성 기간을 다르게 적용하는 것이다. 쇠고기 숙성 방식은 크게 건식 숙성과 습식 숙성으로 나뉜다.

건식 숙성으로 한우 저지방부위의 맛과 풍미를 향상시키는 연구를 했다. ⓒ농촌진흥청

건식 숙성(dry aging)은 고기를 포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숙성하는 방식이다. 포장재 없이 잡균 오염을 막으면서, 고기는 연해지고 맛과 풍미는 좋아져야 한다. 건조 과정에서 줄어드는 무게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적의 건식 숙성 생산 조건을 확립하기 위해 맛과 풍미 향상을 위한 미생물 2종을 선발하고, 미생물 처리 조건을 정립했다. 건식 숙성 단계별로 단단함과 맛, 향기에 관련된 성분 특성을 밝혔다.

습식 숙성은 고기를 진공 포장해 숙성하는 방식이다. ⓒ농촌진흥청

습식 숙성(wet aging)은 고기를 진공 포장해 온도는 –1~4℃, 습도는 75~85%로 숙성하는 방식이다. 습식 숙성 기술을 접목한 ‘한우고기 맛 예측(연도관리) 시스템’을 개발했다. 한국 소비자들의 입맛을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대표하는 데이터를 확보했다. 부위, 육질 등급, 숙성기간 등 맛을 결정하는 요인과 맛 결정 가중치(연한 정도 55%, 향미 27%, 다즙성 18%)에 따라 540종의 맛 점수 추정식을 확립했다.

소비자는 연도관리시스템 라벨을 보고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농촌진흥청

또 산업체에서 활용할 전산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도체 단계의 한우고기가 부분육 판매 시점에서 맛(연도)이 어떨지 예측할 수 있고, 예측 정보를 상품에 표시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을 적용하면 소비자는 라벨에 표시된 맛(연도) 정보에 따라 원하는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숙성 기술로 저등급 부위도 맛있게!

건식 숙성 기술을 확립하기 전에는 한우고기를 단기간(30일) 숙성하면 풍미가 약했다. 장기간(60~120일) 숙성하면 건조하면서 줄어드는 무게가 많고, 잡균에 오염되고 유해 미생물이 성장했다.

등급이 낮은 부위를 건식 숙성하면 육질은 연해지고 맛은 좋아진다. ⓒ농촌진흥청

건식 숙성 기술을 확립하면서 숙성기간은 40일 이내가 됐다. 건조 감량은 줄어들고, 육질은 연해지면서 좋은 풍미와 진한 맛을 내는 고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 구이용 상품에 적합한 고기 생산이 가능해진 것이다.

부위별 육질 특성을 고려해 습식 숙성하면 상품 관리가 편해진다. ⓒ농촌진흥청

습식 숙성 기술은 부위별로 체계적인 관리 기술이 없었는데, 부위별 육질 특성을 고려한 균일한 육질 생산에 필요한 적정 숙성기간을 제시할 수 있게 됐다. 한우고기는 숙성기간이 경과할수록 육질이 연해지고 감칠맛이 생긴다. 습식 숙성 기술을 확립하면서 진공포장한 고기를 판매할 수 있게 돼 유통 업체와 소비자들이 상품을 관리하기 편해졌다.

한우고기 숙성 기술 개발 연구 성과는 국내외 논문 9건으로 발표됐다. 관련 기술 3건에 대해 특허를 등록하고, 22개소에 26건 기술을 이전했다. 전국 29개소에 신기술 시범사업을 추진한 결과, 소비자 만족도는 93.7%로 높은 호응을 얻었다.

숙성 기술은 한우산업 발전으로 이어진다

한우고기 숙성 기술은 저지방 부위의 육질과 맛을 구이용 부위 수준까지 향상시켜 부가가치를 높이고 수요시장을 확대한다. 한국 소비자의 입맛과 요리 용도에 맞는 부위별 숙성 방법과 숙성기간을 설정해 소비를 촉진시킬 수도 있다. 한우고기는 숙성으로 고소하면서 감칠맛이 진해지면서, 수입육과의 경쟁력이 강화된다.

한우고기 저지방부위를 숙성하면 구이용으로 먹기에 좋다. ⓒ농촌진흥청

연 300마리 생산 판매장 20개소에 생산량 30%를 숙성육으로 바꿔 부가가치 상승효과를 계산하면 개소당 약 6억7천만 원의 매출을 기대할 수 있다. 저등급, 저지방 부위 숙성 기술을 보급하면 재고로 쌓였던 부위를 소진할 수 있다. 부위별 균형소비로 한우산업 발전이 기대된다.

최근 한우 사육 마릿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한우농가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국가는 사육 마릿수를 줄이기 위해 암소 출하를 장려하고 있다. 근내지방도(마블링)가 낮아 육질 등급은 낮지만, 숙성 기술을 적용해 연하고 부드러운 암소 한우고기를 생산한다면 모든 한우고기 부위의 소비 촉진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글=조수현 국립축산과학원 축산물이용과 농업연구관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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