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인머스캣도 흔하면 천하다?…‘포도계 에르메스’의 몰락

‘자식도 많으면 천하다.’ 아무리 귀한 것도 흔하면 대수롭지 않게 대하기 쉽다는 속담입니다. 이 세상 부모에게 자식은 천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존재지만, 형편이 어려울 땐 자식이 천덕꾸러기처럼 보이기도 하죠. 경제학개론 첫 장을 펼치면 나오는 ‘수요와 공급의 원리’, 우리 조상은 진작 깨우쳐 속담으로 만들었나 봅니다.

최근 국내 샤인머스캣 시장에서도 수요와 공급 원리를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샤인머스캣은 ‘포도계 명품’이나 ‘과일계 에르메스’ 등 애칭으로 불리며 소비자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품종인데요. 인기에 힘입어 재배농가와 면적이 늘고 생산량이 급증하자 1년 새 반값이 됐습니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는 어김없이 작동하면서 ‘샤인머스캣도 많으면 천하다’는 표현을 현실로 만든 겁니다.

“샤인머스캣 공급과잉인데 당국 뭐했나?”

“품질관리 소홀로 인한 고객 외면도 원인”

샤인머스캣 공급이 크게 늘어나면서 2022년 10월 서울 가락시장 판매가가 젼년 동기대비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게티이미지뱅크

서울 가락동 가락시장에서 2022년 10월 한 달 동안 샤인머스캣 2㎏ 평균 가격은 1만2107원. 2021년 같은 기간엔 2만486원에 거래됐죠. 2022년 10월 들어 41%나 떨어진 겁니다.

전문가들은 샤인머스캣 공급량이 늘자 가격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분석합니다. 재배 면적은 2016년 278㏊에서 2021년 12월 기준 4196㏊로 5년 새 10배 이상 넓어졌다고 추정되는데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 샤인머스캣 생산량은 2021년보다 48.9% 급증했습니다. 늘어난 생산량은 시장 반입량으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22년 10월 가락시장 반입량은 총 3229t으로 2021년 같은 기간(1951t)보다 약 66% 늘었습니다.

샤인머스캣이 인기를 끌면서 포도 농가는 앞다퉈 샤인머스캣 재배에 뛰어들었습니다. 2021년 8월 기준 샤인머스캣 2㎏당 소비자가격은 5만1000원이었습니다. 켐밸(2만원)보다 2.5배 이상 높은 값이죠. 이에 경북 상주시와 경북 영천시, 전북 김제시, 전북 남원시 등을 중심으로 샤인머스캣 농가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재배농가와 면적이 늘며 생산량도 폭발적으로 늘었죠.

샤인머스캣 재배 농가가 늘면서 생산량이 급증하자 가격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뉴시스

샤인머스캣 생산량 급증이 충분히 예견된 상황에서 수급 상황을 조절할 주체는 물론이고 대책이나 조치가 없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샤인머스캣 주산지 농협 관계자는 “관측 때마다 샤인머스캣 생산량이 가파르게 늘고 있었기 때문에 가격 폭락은 예견된 일이었다”며 “당국의 경고와 수출 지원 등으로 가격지지책 마련이 선행돼야 했다”고 전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샤인머스캣 생산을 유도한 경향이 있다는 설명도 나옵니다. 한 산지 관계자는 “샤인머스캣이 돈이 된다며 심으라고 서로 장려하는 상황에서,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련 기관이 ‘저온창고 지원사업’을 해 생산을 부추긴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저온창고 지원사업은 출하 수급조절을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오히려 농가들이 더 많은 샤인머스캣을 생산해 보관하도록 유인했다는 겁니다.

샤인머스캣 가격 폭락 문제를 단순 수요와 공급 논리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농가가 품질 관리에 소홀해 스스로 제 발등을 찍었다고 꼬집었습니다. 하규호 한국포도협회장은 “추석 명절을 앞두고 저품질 샤인머스캣이 시장에 나왔고, 이를 맛본 소비자가 더 이상 샤인머스캣을 외면한 게 현재 가격 폭락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상수 가락시장 서울청과 경매사는 “2022년엔 추석 대목을 겨냥해 제대로 익지 않은 샤인머스캣이 조기 출하됐고 이후 소비가 크게 줄었다”고 말했습니다.

한때 ‘반짝 유행’했던 아로니아와 거봉

수요-공급 원칙 못 이기고 애물단지로

‘반짝’ 주목받던 품목·품종이 한순간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린 일은 샤인머스캣이 처음은 아닙니다. 고소득 작목으로 관심 받던 아로니아도 생산량 급증 등 이유로 가격이 폭락했죠.

충북 단양군청 청사 정원에 있는 아로니아. 아로니아는 ㎏당 가격이 3만~4만원에 육박했지만 수요가 줄고 공급이 과도하게 늘어 가격이 폭락했다. ⓒ뉴시스

아로니아가 인기를 끈 것은 2013년 무렵. ‘왕의 열매’라는 별칭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간 아로니아는 ㎏당 가격이 3만~4만원에 육박했습니다. 안토시아닌 등 유효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돼 건강기능식품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지방자치단체가 농가에 아로니아 재배를 권유하기도 했는데요. 2013년 500곳 남짓이던 농가 수는 2017년 10배 넘게 늘었습니다.

하지만 인기는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아로니아 시장은 빠르게 침체됐습니다. ㎏당 가격이 1000원대로 떨어지더니 최근엔 아예 경매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농민들은 농사를 포기했고, 남은 아로니아는 처치 곤란 상태에 놓여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수요와 공급 원칙에 따라 아로니아 시장이 가라앉았다고 봅니다. 건강기능식품류는 유행이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수요가 줄고 공급이 과도하게 늘어난 아로니아 가격이 폭락했다는 겁니다.

샤인머스캣과 같은 포도 품종 가운데서는 거봉이 대표적입니다. 거봉은 한때 고급 포도의 대명사처럼 불렸는데요. 생산량이 급증한 데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까지 겹치며 가격이 급락했습니다.

숙성 덜 된채 유통된 신고배…“맛없다” 외면

저급품 출하 이어진 한라봉도 소비자 등돌려

추석 대목을 겨냥해 지베렐린(성장촉진제)을 많이 쓴 신고 배가 유통되자 시장 전체 침체로 이어졌다. ⓒ뉴시스

품질 관리에 실패해 소비자가 더 이상 찾지 않는 과일도 있습니다. 국내산 배의 약 80%를 차지하는 신고 배. 신고는 9월 말이나 10월 초 수확하는 만생종인데요. 추석 제수용 과일로 팔기 위해 지베렐린(성장촉진제)을 무리하게 쓰고 충분한 숙성기를 거치지 않은 채 유통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는 시장 전체 침체로 이어졌죠.

이동희 전남 나주배원예농협 조합장은 “지베렐린을 많이 써 ‘신고 배는 맛없다’는 인식이 생기기도 했다”며 “품질 관리에 신경 써야 시장이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라봉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감귤이 대부분이던 국내 시장에 만감류 열풍을 일으킨 한라봉. 특유의 달콤한 맛으로 소비자를 사로잡았지만 저급품 출하가 이어지며 외면 받기 시작했습니다.

농촌진흥청 감귤연구소 관계자는 “산도를 충분히 낮추지 않거나 선별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저급 한라봉이 시장에 들어오자 소비자는 구매를 꺼리게 됐고 이는 시장 전체 침체를 가져왔다”며 “천혜향이나 레드향 등에 프리미엄 자리를 양보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더농부 인턴 전영주

제작총괄: 더농부 에디터 박상익

nong-up@naver.com

더농부

참고=

KB스타 경제교실, <‘자식도 많으면 천하다’ – 공급>

농민신문, <샤인머스캣, 욕심이 부른 화…결국 부메랑돼 몸값 ‘반토막’>

농민신문, <‘거봉·아로니아·한라봉·신고’…눈앞 이익만 좇다 ‘왕위’서 내려온 품목들>

JTV, <포도 샤인머스캣 공급 과잉 ‘우려’>

한국경제, <“큰 돈 벌 수 있다더니”…‘왕의 열매’ 아로니아의 추락 [강진규의 농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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