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으로 변하는 더덕이 있대.”…약초에 얽힌 재밌는 이야기들 [재미있는 농업 이야기 81]

인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치거나 아프면 약을 찾았다. 식물, 동물, 광물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경험을 바탕으로 처방을 내렸다. 그중 가장 오래, 널리 사용된 것이 약초다. 인간의 역사에서 약초를 이용하기 시작한 시기는 고대 기록에 잘 드러난다.

인류는 선사 시대부터 지금까지 약초와 함께 살아왔다. ⓒ게티이미지뱅크

선사 인류 네안데르탈인은 지금으로부터 60000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네안데르탈인의 무덤에서 오늘날에도 향료와 약초로 쓰이는 식물이 발굴됐다. 3000년 전의 고대 이집트 벽화에서는 각종 약초를 이용해 환자를 치료한 기록이 발견됐다. 그리스에는 2400여 년 전에 버드나무 잎을 약물로 사용한 기록이 존재한다. 히포크라테스가 산모에게 진통제로 버드나무 잎을 씹게 한 기록이다.

이런 근거로 미루어보아 약초의 이용은 인간이 자연에서 식량을 얻기 시작한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신농씨, 디오스코리테스, 이시진…

약초 정보·사용법 널리 알린 인물들

한국 건국 신화 속 단군과 비슷한 존재로 중국 고대 전설엔 ‘삼황’이라는 세 명의 임금이 등장한다. 삼황 중 한 명인 신농씨는 약초와 독초를 구별하는 법과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4500년 전부터 전해진 이 전설 때문에 중국 사람들은 신농씨를 농업과 의학의 신으로 숭배했다.

한국 삼국유사 기록에서는 환웅이 곰과 호랑이에게 쑥 한 줌과 마늘 20쪽을 주며 삼칠일 동안 기도하라고 말했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성이 강한 식물을 치료에 사용한 의학 체계가 동양에서도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양에서 약초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사람은 기원전 400년경 현대 의학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히포크라테스였다. 이후 그리스, 로마 시대의 군대를 중심으로 약초를 활용한 치료가 발달했다. 약 1세기경 디오스코리테스라는 그리스의 약학자가 있었다. 그는 로마 군의관으로 일했는데, 추후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600여 종의 약초정보를 모아 ‘약물지(De materia Medica)’를 저술했다.

중세에는 약초를 약의 재료로 쓰기도 하고 가벼운 두통을 치료하기 위해 차로 마시기도 했다. 귀족은 약초에서 기름을 뽑아 입욕제로 썼다. 중세에는 이렇게 약초를 일상 속에서 다양하게 활용했다. 유럽인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후 신대륙으로 이주할 때도 허브 종자를 챙겨갔다.

동·서양에서 모두 약초 사용법을 책으로 엮어 후대에 남겼다. ⓒ게티이미지뱅크

1700여 년 전 도홍경이라는 학자가 중국 최초로 ‘신농본초경’이라는 약물 전문 책을 저술했다. 이 책은 후대에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계속 보완됐다. 명나라 시대에 이시진이라는 학자가 신농본초경을 ‘본초강목’으로 완성했다.

561년 고구려 평원왕이 중국에서 의서를 들여와 일본에 전해줬다. 한국 최초의 의학 관련 기록이다. 백제에서는 독자적인 의서인 ‘백제신 집방’을, 통일신라에서는 ‘신라법사방’이라는 의서를 발간한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의 ‘향약구급방’과 조선 세종 때 발간된 ‘향약집성방’을 거쳐 한국은 중국과 다른 독자적인 약물치료 체계를 확립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동·서양 모두 약초 활용 관련 역사 기록을 남겼다. 이 기록들은 현대에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한국의 갖가지 약초 이야기는 유구한 역사를 따라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영원한 사랑을 품은 꽃

도라지 이야기

옛날에 도라지라는 아리따운 처녀가 살았다. 어려서부터 양가 부모님이 정해놓은 약혼자가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둘은 결혼할 나이가 됐다. 그러나 총각은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며 중국으로 떠났다. 도라지 처녀에게 꼭 기다려 달라는 말만 남겨놓은 채.

그러나 한 해, 두 해가 가도 총각은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대신 중국에서 살림을 차렸다는 나쁜 소문만 무성했다. 처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닷가에서 약혼자가 떠나간 서쪽 하늘만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이었다.

도라지 꽃은 보라색이나 흰색으로 핀다. ⓒ농촌진흥청

시간은 무심히 흘러 도라지 처녀는 할머니가 됐다.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바닷가로 나가 약혼자를 그리워하다가 그곳에서 꽃이 됐다. 그래서 도라지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이다.

도라지는 꽃이 피면 수술의 꽃가루가 먼저 터져 날아간다. 암술은 그다음에야 고개를 내민다. 꽃 한 송이 안에서는 수정할 수 없는 구조다. 도라지 꽃말의 유래는 꽃의 생리를 관찰해 얻어낸 것 아닐까. 도라지의 쌉쌀한 맛은 도라지 처녀가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아픔 때문일지도 모른다.

‘천년 묵은 더덕’의 전설

거제 장생 재밌는 이야기

경남 거제에는 천년 묵은 장생 더덕 이야기가 있다. 동부면 갈곶이 해금강은 수려한 절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이름만 들으면 한강, 금강 같은 강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바위섬과 곶으로 이루어진 해안 명승지다. 남방의 삼신산으로도 부른다. 해금강 노자산에 올라와 주위를 살펴보면 넝쿨같이 뻗어 내린 산줄기를 볼 수 있다. 칡뿌리 같기도 하고 용이 바다 깊숙이 잠겼다가 치솟으며 여의주를 문 듯도 하다.

이곳에 천년 묵은 더덕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 천 년이나 된 더덕은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능력이 있었다. 사람으로 변하기도 하고 새 같은 짐승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이 더덕이 삿갓과 삼베옷으로 상주(喪主)처럼 변장한 뒤 거제 읍내에서 장을 보고 간다는 소문이 있었다. 상주로 변한 더덕을 잡으면 팔자를 고치거나 불치병이 낫는다는 말이 돌았다. 길 가던 상주(喪主)가 더덕으로 오해받아 봉변당하기도 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겨울 더덕은 가장 귀하고 영양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촌진흥청

더덕은 약효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맛도 좋다. 섬유질이 풍부하고 식감이 탄탄해 ‘산에서 나는 고기’로 부른다. 생김새는 인삼이나 도라지와 비슷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친숙한 약초이다.

태후를 낫게 한

기특한 약초, 황기

황기에 얽힌 이야기도 있다. 당나라의 선종이 즉위한 초년에는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의 삶도 평안했다. 그런데 태후가 병에 걸려 몸이 점점 약해졌다. 기가 허해져 탈진 증상을 보이고 땀을 비 오듯이 흘렸다. 맥도 약하고 정신도 잃어 위급한 상태가 됐다. 상황이 급해지자 당선종은 초조하고 불안했다.

시름에 빠져있던 어느 날 당선종은 눈에서 번쩍 빛을 내더니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큰 소리를 질렀다. “맞아! 있다 있어!” 예전에 책에서 읽었던 황기의 신비로운 효능이 생각났던 것이다. “한 번 시험을 해보자. 황기는 기력을 보충하는 작용이 탁월하니 효과가 있을 거야.” 당선종은 어의에게 일러 태후가 황기 탕을 복용하도록 명했다.

황기는 약초로 오랫동안 사용되어 신농본초경에도 등장한다. ⓒ농촌진흥청

어의는 명령을 따르려 했지만 태후가 입을 꽉 다물고 있었다. 어의는 고심하다 황기를 오랫동안 달이기로 결정했다. 달인 황기 탕을 태후의 침상 밑에 두고 향과 기운이 코와 피부를 통해 들어가게 만들었다. 그랬더니 황기가 태후의 위를 튼튼하게 만들어줬다. 비 오듯 흐르던 땀도 멈췄다. 이후 꽉 다물어져 있던 태후의 입이 벌어지고 몸이 차차 호전됐다. 건강을 회복한 태후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단너삼’으로도 불리는 황기는 백본(百本), 왕손(王孫) 같은 별명이 있다. 백약의 근본, 황실의 귀인으로 불리다니. 이런 귀한 별명이 붙은 걸 보면 황기는 분명 예로부터 사람 몸에 좋은 약재였을 것이다.


글=허목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약용작물과 농업연구사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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