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찌개의 현주소 : 합정동 의정부 부대찌개 [이용재의 식당 탐구 -2]

이용재 음식평론가는 한국 식문화를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비평가입니다. 식재료, 조리도구, 조리 문화, 음식과 관련한 문화 콘텐츠까지 우리가 잘 몰랐던, 혹은 우리가 쉽게 지나쳤던 것들을 친절하게 설명해 줍니다. 앞으로 이용재 평론가가 격주로 더농부에 ‘식당과 음식 이야기’를 펼칩니다. 맛있는 한 끼에서 그가 얻은 통찰을 함께 나눠 보실까요?


이름이 슬픈 한식이 둘 있다. 닭도리탕과 부대찌개다.

전자는 어원을 의심받아 이미 억지로 순화되어 버렸다. ‘도리’가 새를 의미하는 일본어 ‘토리’에서 왔을 거라는 논리를 내세워 닭’볶음’탕으로 바뀐 것이다. 물론 ‘도리’가 일본어 ‘토리’에서 왔다는 정확하고 확실한 근거는 없다. 게다가 닭’볶음’탕은 이름과 달리 닭을 볶아서 만드는 음식도 아니다. 닭과 감자, 당근 등의 채소에 국물을 자작하게 붓고 약한 불에 끓여 익히니 찜에 가깝다. 실제로 이런 음식을 ‘닭찜’이라 일컫는 지방도 있다. 1990년대에는 양념만 간장 바탕으로 바뀐 ‘찜닭’이 등장해 전국적 외식 메뉴로 자리를 잡았다.

확실하지 않은 근거만 놓고 탁상공론을 통해 음식의 정체성을 아예 뒤틀어 버린 꼴이다.

의정부 부대찌개에 각종 사리를 먹음직스럽게 담았다. ⓒ이용재

그런 면에서 부대찌개는 사정이 한결 낫기도, 또 나쁘기도 하다. 나쁜 이야기부터 하자면 이름에 우리의 아픈 과거가 배어 있다. 잘 알려져 있듯 부대찌개는 6.25전쟁 직후 탄생한 음식이다. 굶주림을 면하고자 미군부대에서 나온 음식물 쓰레기를 끓여 만든 음식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이빨 자국이 남은 소시지가, 더 끔찍하게는 담배꽁초가 나왔다는 이야기가 늘 붙어 다닌다. 이런 부대찌개의 기원과 과거가 닭도리탕의 ‘도리’와 비슷한 맥락에서 부끄러워하는 이들이 있다. 이름을 어떻게 ‘순화’할 방도가 없느냐는 물음이 인터넷을 떠다닌다.

하지만 다행-그렇다, 다행이라 여긴다-스럽게도 대안이 없다. 햄찌개? 소시지찌개? 주재료를 이리저리 둘러 붙여 보아도 ‘부대찌개’ 만큼의 함축적인 의미를 품지 못한다. 비단 한식이 아니어도 국물 음식은 재료를 한데 아우르는 조리 문법이다. 말하자면 소시지와 햄, 경우에 따라서는 치즈며 베이크드 빈(baked bean, 콩 통조림) 등 여러 재료가 ‘부대’라는 말의 지붕 아래 한데 모여 화합의 맛을 이루는 음식이 부대찌개다.

단지 우리의 아픈 과거를 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름을 바꾸려 들면 정체성 역시 붕괴돼 버릴 것이다. 게다가 적절한 대안도 없다. ‘닭볶음탕’이 적절한 대안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부대찌개에게는 억지로나마 그만한 구실도 없다. 무엇을 가져다 붙이더라도 말맛이 현재의 명칭인 부대찌개의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부대찌개가 닭도리탕의 기구한 팔자를 답습할 가능성은 아직 낮아 보인다.

역설적으로 부대찌개는 이미 ‘부대’에서 자유로워졌다. 그렇기에 명칭 또한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어졌다. 물론 의정부나 평택 등 미군 주둔지가 여전히 성지 대접을 받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굳이 부대 근처가 아니더라도 맛있는 부대찌개를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내가 처음으로 가장 맛있게 부대찌개를 먹었던 곳은 뜬금없게도 인사동이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의정부 부대찌개’도 상호에서 풍기는 느낌과는 달리 서울 서교동에 있다.

식당 내부는 왠지 모르게 깔끔하고 정돈이 잘 되어 있다. ⓒ이용재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일단 분위기가 남다르다. 크게 외양에 신경 쓰지 않는, 평범한 한국의 여느 밥집 같지만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한다. 가격대가 높은 레스토랑처럼 인테리어가 두드러지는 건 전혀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깔끔하고 정돈이 잘 되어 있다. 내가 지금 맞게 느끼고 있는 걸까? 의구심은 주방과 일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보면 단박에 잦아든다.

처음 가보는 바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바의 구성이랄지 정돈된 상태, 거기에 바텐더의 움직임을 보면 대강이나마 감이 온다. 아, 오늘은 맛있고 즐겁게 술을 마실 수 있겠구나. ‘의정부 부대찌개’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감출 것 하나도 없는 열린 주방에서 재료를 냄비에 나눠 담는 움직임이랄지 접객의 흐름, 심지어 좌식 자리 손님을 위한 신발을 돌려놓는 움직임마저 물 흐르듯 유연한 가운데 절도가 있다.

이곳에선 끓을 때까지 뚜껑을 열지 말고 두는 것이 정석이다. ⓒ이용재

분위기는 음식을 다루는 태도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주문을 받으면 깔끔하게 넘긴 머리에 늘 똑같은 연어색 티셔츠와 진한 감색 바지 차림의 주인이 냄비를 가져와서는 불에 올리고 말한다. “끓을 때까지 뚜껑을 열지 말고 그냥 두세요.” 자칫 잘못하면 ‘오, 주인 마음대로 하겠다는 말인가?’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말투가 그런 염려를 덜어준다. 종종 고깃집을 필두로 한 유명 맛집에서 그런 태도를 내세워 방문객을 불편하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곳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내가 책임질 테니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기다렸다가 먹으라’는 의미이며 그렇게 받아들일 만큼 말투와 목소리가 점잖다.

그런 말투와 목소리에 이끌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기다린다. 이곳에서는 모든 구성 요소가 익을 때까지 센불을 고수한다. 조리의 원리를 따져보면 사실 그럴 필요가 없고, 일단 끓으면 불을 줄여도 되지만 왠지 주인의 의사를 존중해 줘야 할 것 같아서 그냥 둔다. 그 탓에 숟가락을 들기 시작할 무렵에는 사뭇 졸아 있는 국물에 육수를 보충해 균형을 맞춰 준다. 그때쯤 되면 당면이 다 익으니 주인이 드디어 오케이 사인을 내려 준다. “당면부터 건져 드세요.”

노란 조가 섞인 밥은 온도와 찰기가 절묘하다. ⓒ이용재

그렇게 잔치가 시작된다. 부들부들한 당면부터 꼬들꼬들한 라면사리, 야들야들한 두부와 햄, 말랑말랑한 소시지에 부슬부슬한 간 고기까지 다양한 질감의 잔치가 밥 위에서 벌어진다. 노란 좁쌀이 심심치 않게 눈에 들어오는 밥은 온도와 찰기가 절묘하다 싶을 정도로 찌개에 딱 맞게 조정되어 있다. 너무 뜨겁지도 차지도 않으며 질지도 되지도 않은 것이 많은 미세조정을 거친 듯한 느낌이다. 가볍게 얼어 얼음 알갱이가 간간이 씹히는 동치미와 더불어 온도의 삼각관계를 확실하게 일궈낸다.

맛의 차원에서는 햄과 소시지를 잔뜩 넣고 빨갛게 끓인 찌개치고는 드물게 균형이 잘 잡혀 있다. 빨갛다 싶으면 맵고, 매우면 자극이 강해 짠맛의 균형이 맞지 않는 경우가 한식에서는 흔하디흔한데, 간이 참으로 적절하다. 되려 우리의 기준에서 확실히 짠 수입 햄과 소시지를 쓴 것치고는 차분하게 잘 맞는 균형이다. 이래저래 요즘 음식의 기준에서는 순하다고 할 수 있는 국물의 사이사이로 잘 익은 배추김치를 씹으면, 신맛이 마지막으로 균형을 한 번 더 잡아준다.

식당 간판을 보니 여태껏 열심히 먹은 찌개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용재

늘 아무 생각 없이 밥만 열심히 먹고 나오던 어느 날, 문득 가게의 간판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흰 바탕에 너무 굵지도 가늘지도 않은 빨간색과 검은색의 고딕체 글꼴이 여태껏 열심히 먹어왔던 찌개와 너무 닮아 있었다. 요란과는 거리가 아주 멀고, 어찌 보면 무심한 것 같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전반적인 균형 감각이 그렇지도 않다. 그 어떤 것도 애써서 드러내려고 하지 않지만, 세부사항에 신경을 많이 썼기에 그냥 묻어 가지도 않는다. 생존을 위한 눈물겨운 궁여지책에서 여러 맛과 질감이 한데 어우러지는 한 끼의 훌륭한 식사가 되기까지, 부대찌개가 참으로 먼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노라는 생각이 사무치게 들었다.

오늘 탐구해 본 식당

1. 의정부 부대찌개

02-338-6820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10길 36

<가격>

부대찌개 1만원

햄사리 6000원

쏘세지사리 6000원

햄+쏘세지사리 6000원(추천)

라면사리 1000원

당면사리 1000원


글·사진=이용재(음식평론가·번역가)

정리=더농부


▽클릭 한 번으로 식탁 위에서 농부들의 정성을 만나보세요!▽

▽농촌 V-LOG부터 먹거리 정보까지 꿀잼 영상 가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