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 귀촌 : 100만원으로 아내 고향에 동심 속 ‘트리하우스’ 지은 일본인

트리하우스는 나무 위에 지은 집을 말한다. 밀림이 있는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에선 흔한 주거 형태 중 하나지만, 한국에서는 ‘동심 속의 집’에 가깝다.

김제 ‘미즈노씨네 트리하우스 카페’ ⓒ미즈노 마사유키

동심 속의 집을 이국땅에서 지은 사람이 있다. 일본인 미즈노 마사유키(55)다. 한국인 아내와 결혼해 김제에서 ‘미즈노씨네 트리하우스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트리하우스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카페로 사용하고 있지만, 본래 트리하우스는 미즈노씨네 가족들이 생활하던 공간이었다.

‘동심 속의 집’을 현실로 이루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100만원으로 트리하우스를 지은 미즈노씨의 얘기를 들어보았다.

미즈노씨네 가족. ⓒ미즈노 마사유키

‘뭔가 만들어야 행복한 사람’

귀촌 이유는 “만들고 싶어서”

미즈노씨는 ‘만들어야 행복한 사람’이다. 하지만 자신의 행복보다 남을 위해 사는데 익숙했다. 학생 때는 부모님의 반대로 미대 진학의 꿈을 접었고, 한국인 아내와 결혼 후 다섯 명의 자녀가 생겨서는 돈을 버느라 만드는 행복을 누릴 수 없었다.

결핵에 걸려 일본 회사에서 퇴직하고, 아내는 우울증에 걸리자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억울함을 못 견뎌 죽을 시도도 했는데 아내의 도움으로 고비를 넘겼다. ‘죽지 않고 살아남았으니 이제는 만들면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도시에서 만드는 활동을 하는 건 어려워요. 소리도 나고, 먼지도 나고, 자재도 비싸죠. 만들면서 살기로 마음을 먹은 이상 도시를 떠나야 했어요.”

미즈노씨 아내가 아기를 안고 방치됐던 집을 둘러보고 있다. ⓒ미즈노 마사유키

2004년 미즈노씨는 김제에 있는 아내의 처갓집으로 갔다. 장인, 장모가 세상을 떠나면서 빈 집으로 남아있던 곳이었다.

쓰레기장과 공사 현장에서 폐자재를 주워 나르고, 산에서 쓰러진 나뭇가지를 가지고 와서 ‘만들기’에 전념했다. 사람들은 마당에 쓰레기를 쌓아놓는다고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미즈노씨네는 10년 동안 안 나오던 웃음이 터졌다.

“내가 웃음이 나니까 옆에 있는 집사람도 웃게 되더라고요. 아빠, 엄마가 웃으니까 아이들도 따로 웃고요. 돈은 없었지만 웃음이 나는 생활을 하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살고 싶어서 시골에 왔구나’ 생각이 들었죠.”

각박한 생활 탓에 잊고 살던 동심

처가 옆동네 느티나무가 되살려

50년 넘도록 방치되어 있던 한옥. ⓒ미즈노 마사유키

2009년 아내의 큰 오빠가 김제에 내려오면서 다른 보금자리를 찾아야 했다. 미즈노씨 눈에 들어 온 건 옆 동네에 방치되어 있던 50년 넘은 한옥이었다.

“만드는 걸 잘하니까 ‘이 집을 살릴 수 있겠다’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한국에 사니까 한옥에 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요. 비싸기만 한 요즘 한옥이 아니라 흙도 보이고 서까래도 보이는 오리지널 한옥이요. 한옥 짓는 분이 이런 얘기를 했어요. 김제에서 산다면 김제에 있는 흙과 나무를 이용해야 김제에 맞는 집이 된다고요.”

미즈노씨는 한옥이 있는 400평 땅을 4100만원 주고 샀다. 추위를 막기 위해 천장을 막아놓은 합판과 벽지를 빼는 일부터 시작했다. 원래 이 집이 가진 흙과 나무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옥을 수리하는 미즈노씨의 모습. ⓒ미즈노 마사유키

수리 후 한옥의 모습. ⓒ미즈노 마사유키

밖에서 보면 오래된 한옥인데 안으로 들어오면 묘한 느낌을 풍기는 집이 완성됐다. 한옥이지만 일본 느낌이 나면서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 속 집 실사판’으로 화제가 됐다. 취재하러 온 방송국도 많았다.

다큐멘터리를 함께 찍게 된 PD가 미즈노씨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당신의 만들기 인생에 영향을 줬던 사람이 있나요?” 그때 생각난 사람이 일본 트리하우스의 일인자 ‘고바야시 타카시’였다.

미즈노씨가 고바야시 타카시를 알게 된 건 일본 서점에서였다. 우연히 한 잡지를 보게 됐는데 잡지 표지에 트리하우스가 있었다.

“깜짝 놀랐어요. 이런 걸 실제로 만드는 사람이 있구나. 어릴 때 한 번쯤 ‘허클베리 핀의 모험’, ‘톰소여의 모험’ 속에 나오는 나무 위의 집을 꿈꾸잖아요. 잊고 지냈던 꿈에 불씨를 지핀 느낌이었지요.”

트리하우스. ⓒ미즈노 마사유키

다큐멘터리 제작팀의 지원을 받아 일본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고바야시 타카시를 만나고, 축제에서 트리하우스를 만드는 체험도 할 수 있었다.

“트리하우스를 완성하고 올라갔던 그 느낌을 잊을 수 없어요. 지상에서 3m 올라온 것뿐인데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요. 제 속에 숨어있던 소년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트리하우스는 ‘보여주기 위한 집’이 아니라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집’이에요. 몇 억 투자해도 내가 생각했던 집이 아니라서 불만이 많은 집이 되어버리곤 하잖아요. 내가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고, 동심이 움직이니까 누군가의 평가가 필요한 게 아니더라고요.”

트리하우스 카페 팻말을 만들고 있는 모습. ⓒ미즈노 마사유키

미즈노씨는 한국에 들어와서 곧장 트리하우스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트리하우스를 지으려면 제일 필요한 것이 나무지만, 제일 구하기 어려운 것이 적당한 나무다.

집 옆에 300년 된 느티나무가 있었지만, 미즈노씨가 구입한 땅에 있던 나무가 아니었다. 오랜 세월 동안 마을을 지켜준 당산나무와 같은 나무기도 해 제멋대로 나무를 활용할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의 동의부터 받았죠. 다행히 우호적이었어요. 이전부터 저희를 위해 폐자재를 갖다 주던 분들이었죠. 땅 주인과는 얘기해 저희가 가지고 있던 땅과 바꿔치기했어요. 그분이 농사짓기에는 나무가 있는 땅보다는 저희가 가지고 있던 땅이 더 좋았다고 해요.”

나무는 구했으니 다음 순서는 자재였다. 다큐멘터리 제작팀에게 100만원을 지원받아 필요한 자재를 구입하고 나머지는 폐자재를 활용했다. 만들기 좋아하던 미즈노씨의 경험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만들 때 가장 행복한 미즈노씨의 모습. ⓒ미즈노 마사유키

트리하우스 Q&A

Q. 트리하우스 지으려면 허가가 필요한가요?

저희 트리하우스는 김제의 관광자원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허가도 받은 상태지만, 트리하우스를 짓는데 꼭 허가를 받아야 하는 건 아니에요.

트리하우스를 6평 이하 원두막으로 짓는다면 허가가 아니라 신고만 하면 돼요. 하지만 조건이 있는데요. 원두막이니까 벽이 있으면 안 되고 뚫려있어야 해요.

처음 트리하우스를 짓는 사람들에게는 나무 옆에 높은 원두막처럼 짓는 것을 추천해요. 나무 위에 짓기에는 적당한 나무를 찾기 어렵고, 절차도 복잡하니까요.

트리하우스 내부 모습. ⓒ미즈노 마사유키

트리하우스를 짓는데 비용이 어느 정도 들까요?

지금은 절대 100만원으로 지을 수 없어요. 저는 폐자재를 활용하니까 가능했던 것 같아요. 작은 걸로 만들어도 1000만원은 들 것 같네요.

트리하우스에서 거주도 가능한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못 잘 거예요. 벌레가 많이 나와요. 비가 오면 빗물이 나뭇가지를 타서 안에까지 들어오고, 바람이 불면 흔들리기도 하죠. 외국에는 욕실도, 화장실도 있는 트리하우스도 있지만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를 활용해 짓지 않는 이상 거주는 힘들어요.

쉴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고민이 있으면 트리하우스에 올라가거든요. 제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장소라고 생각해요.


트리하우스 풍경. ⓒ미즈노 마사유키

미즈노씨는 트리하우스 카페를 운영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트리하우스에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트리하우스에는 아직 마법이 남아있다고 믿는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트리하우스에 올라가면서는 소년, 소녀의 미소를 짓는다.

트리하우스를 짓고 싶은 사람들에게 조언을 달라는 질문을 하자 “집은 추억을 남길 수 있는 타임캡슐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부동산 가치는 오르락 내리락하지만, ‘내가 만족하는 집은 영원하다’는 미즈노씨의 가치관이 담긴 말이다.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아이템 중 트리하우스가 있다고 생각해요. 각자 스타일로 만들 수 있는 트리하우스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더농부 에디터 나수연

nong-u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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