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꿔진 정원을 품은 전원주택, 자연과 함께하는 여유로운 삶, 복잡함에 부대끼지 않는 생활…. 많은 이들이 귀촌을 꿈꿀 때 그리는 이상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일 뿐이다. 당장의 먹고 사는데 필요한 돈을 벌어야 하는 수입 걱정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마을에 정착하기, 앞으로 먹고 살 궁리하기까지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누구나 꿈꾸지만 섣불리 도전을 외치면서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도시에서의 안정적인 삶을 모두 내려놓고, 강원도 횡성군의 작은 마을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부부가 있다. 도시에 살던 사람에게 ‘귀촌’은 어떤 의미일까. ‘무모함’을 ‘가능성’으로 바꿔가고 있는 신준규(35) 씨와 고송은(34) 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결혼 5년차 신준규,고송은 씨
강원 횡성서 ‘제2인생’ 찾다!
부부는 2018년, 서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맞벌이 부부들이 보여주는 그렇고 그런 평범한 삶이었다. 평일에는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는 전국 방방곡곡 캠핑하러 다니며 소소하지만 부족함 없는 행복한 일상을 보냈다.
신준규 씨는 가구 제조업체인 현대리바트의 영업팀에서 9년 동안 근무했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주로 사무 공간을 컨설팅하며 즐겁게 일했다. 고송은 씨는 중국어를 전공했다. 전공을 살려 어학 관련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에 근무했다. 경력 7년 차. 지금도 자기 분야에서 커리어를 차근차근 쌓아가는 중이다.
직장 생활을 한 곳에서만 했던 준규 씨는 하나둘 회사를 떠나는 선배를 보며 “앞으로 60년은 살아야 하는데 직장은 수명이 짧고,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40~50대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엔, 아무래도 20대처럼 능력을 펼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실패하더라도 지금이 새로운 변화에 도전하기에 가장 적기라 판단한 이유다.
처음부터 ‘귀촌’을 목표로 한 건 아니다. 창업에 대한 꿈이 피어오를 때쯤, 취미로 다니던 캠핑은 ‘농촌 생활’에 눈을 뜨게 해줬다. ‘그저 꿈에만 머물렀던 창업을 농촌에서 실현해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준규 씨는 아내와 함께 계획을 구체화해 나갔다. 그렇게 1년의 세월이 흘렀다.
새하얀 도화지에 색을 입혀준
6개월간 ‘농촌에서 살아보기’
귀촌을 결심한 부부는 ‘정착할 곳’을 찾아 나섰다. 완전히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데 목적이 있었기에 지역이 어디든 상관없었다. 지금 당장은 아이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선택의 폭이 넓었다. 그러던 중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주관하는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알게 됐다.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도시민이 최장 6개월까지 농촌 생활을 체험하고 지역 주민과 교류하는 프로그램이다.
부부는 신청하기 전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마을 30여 곳을 직접 둘러봤다. 누구보다 진지하게 귀촌을 계획하던 중이라 궁금한 점이 많았다. 이장님이나 마을 담당자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눠보기도 하고, 전체적인 마을 분위기를 눈과 마음으로 체험했다.
전국 8도 가운데 부부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강원도’였다. “저희 부부 모두 서울에 연고가 있다 보니 아무래도 강원도가 그나마 서울에서 가깝고, 그중에서 가장 시골 느낌이 났죠”
강원도에는 총 7개 마을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그중에서 횡성군에 있는 ‘산채마을’을 택했다. “다른 마을은 집들이 따닥따닥 붙어있는데, 이 마을은 간격이 떨어져 있어서 프라이버시가 보장되고, 무엇보다 마을이 예뻤어요” 마을을 정한 순간, 곧바로 신준규 씨는 회사에 사표를 냈고, 고송은 씨는 재택근무로 번역 업무를 하는 프리랜서가 됐다.
“사생활 보장된 예쁜 마을이었죠”
그런데 ‘살 집 마련+수익원’이 고민
2022년 3월, 강원도 횡성군 산채마을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6개월 동안 부부가 이루고자 했던 목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살 집 구하기’, 다른 하나는 ‘사업 구체화’하기. 말 그대로 먹고 살 방법을 찾아야 했다.
참가자 중 30대 젊은이는 부부뿐이었다. 대부분은 50~60대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퇴직 연금 등 다양한 이유로 기본적인 수익이 있었다. 참가자들이 당연히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보다 어떻게 하면 재밌게 살까를 고민했다.
부부는 달랐다. 다달이 월급이 나오던 회사는 그만뒀고, 당장의 수익을 고민해야 했다. 사표를 내던지던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내가 미친 거 아냐’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돌아갈 길이 없어지니 목표는 점점 확고해졌다. 농산물 가공, 민박 운영 등 농촌에서 돈을 벌어 생활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을 지금도 끊임없이 구상 중이다.
“저희 부부는 굉장히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생각해요. 6개월 동안 강원도에 살면서 직접 여유롭게 임장을 다닐 수 있었고, 지역 주민들의 따듯한 조언들 덕분에 좋은 집을 구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농사의 ‘농’자도 몰랐었는데, 이젠 마스터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떻게 하면 농사를 지을 수 있는지 정도는 알게 됐죠.”
마을 사람들과의 교류는 큰 자산이 됐다. “시골에 오기 전에는 막연히 ‘농촌 사람들은 당연히 서로 대화도 많고 친하겠지’라고 생각했어요. 막상 오니까 대화의 기회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더라고요. 프로그램 덕분에 6개월 동안 농촌에 살아보면서 주민들과 교류할 기회가 많았고, 인맥도 쌓을 수 있었어요.”
연습 종료, 이제는 실전이다!
영농 1년차, 부부의 계획은?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 기간, 부부는 프로그램 지원금 월 30만원과 준규 씨의 퇴직금, 송은 씨의 번역 업무로 발생한 수익으로 생활했다. 6개월간의 연습 게임이 끝나고, 참가자는 체험 마을에 정착할지 아니면 떠날지 결정한다. 부부는 강원도 산채마을에 정착하기로 마음먹고 주택도 매입했다. 그다음 중요한 것은 바로 ‘수입원’을 만드는 일이다.
부부가 ‘농촌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구상할 때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4가지다. 첫째, 수익성이다. 얼마를 벌 것인가. 둘째 효율성. 어느 정도 시간을 투자해서 얼마를 벌 것인가. 셋째는 진정성이다. 부부가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인가. 넷째가 체계성이다. 앞으로 추진할 여러 사업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할 것인가.
이 기준에 부합하는 어떤 계획을 세웠을까.
부부가 가장 처음 실행에 옮긴 계획은 민박이다. 당초 산채마을이 숙박을 위해 매입한 건물 5개동 가운대 2개동을 리모델링해 이름붙인 ‘1765삽교 스테이’ 관리를 맡았다. 민박 홍보와 관리, 운영이 주된 업무다.
두번째 세번째 계획도 세워뒀다. 농산물&가공 브랜드, 온오프라인마켓 개설, 문화콘텐츠 개발 등을 준비 중이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에서 배운 농사 기술을 활용해 조금씩 농사를 지어 수확한 작물을 내다 팔고 있다. 부부는 당장의 수익은 단기적인 일거리로 해결하되,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며 체계적으로 중장기적인 사업 계획을 쌓고 있다.
젊은 부부의 시골살이는?
‘어딜 가든 관심의 대상’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어요, 이 마을에는 없던 젊은이들이 왔으니까 어딜 가든 관심의 대상이었죠. 이 마을 평균 연령이 60대 초중반인데, 저희가 딱 아들, 딸뻘이잖아요. 그러니까 오히려 잘 챙겨주시더라고요. 마을 분들이 보내주신 애정과 관심 덕분에 잘 정착할 수 있었어요.”
불편한 점도 많다. 분리수거하거나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상적인 것부터 맛집, 영화관 같은 문화생활까지 도시에 비해 접근성이 떨어진다. “시내에 한 번 나갈 때 모든 스케줄을 다 해야 해요. 아무래도 인프라를 누릴 수 없다는 게 가장 불편하죠. 하지만 이건 바로 적응할 수 있어요. 애초에 가능성이 사라지니까 아예 포기하게 돼요. 하하”
그 대신 부부는 다른 즐거움을 찾았다. “남편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배우고 싶은 걸 배우고 미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실행에 옮기죠.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교육을 들어요.”
귀촌 청년, 농부 된 사연은?
‘귀촌’과 ‘귀농’의 연결고리
부부는 귀촌해서 귀농인이 된 사례다. 귀촌 이전에는 만약 작물을 기른다면, 텃밭을 가꾸는 정도로 생각했다. 현실은 ‘텃밭’ 정도로 충분하지 않았다. “농촌에서 받을 수 있는 핵심 지원제도 중 ‘귀촌인’만을 위한 것은 없어요. 귀농을 해야만 받을 수 있는 것들이 전부예요”
귀촌은 자연스럽게 귀농으로 연결된다. 부부는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에서 간단한 교육이지만, 6개월 남짓 농사법과 과정을 배우기도 했고, 구상했던 사업 아이템이 ‘농산물 가공’이었던 만큼 농산물을 직접 길러보겠다는 도전으로 이어졌다.
“귀농·귀촌은 용기도 필요하지만, 현실적인 고민도 필요해요. 도시에서의 삶을 모두 포기해야만 할 수 있어요. 귀촌에서의 삶도 소중한 나의 삶이잖아요. ‘이거 하다가 안 되면 저거 해야지’라는 생각이면 온전히 자리 잡기 어려울 거예요. 일단 마음먹었다면 ‘올인’하세요”
우당탕탕 현실판 귀촌 일기,
‘팔팔팔구’ 채널에서 만나요!
부부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다. 채널명 팔팔팔구는 88년생인 남편과 89년생인 아내를 뜻한다. 부부의 새로운 도전기를 영상으로 담았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수많은 정보 가운데, 부부가 직접 경험한 내용을 알려주는 것이 목표다.
“귀촌을 결심했다면 마음과 머리는 따로 놀아야 해요. 귀촌했을 때의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모습을 마음속에 그리되, 머리로는 수익 구조를 계속 생각해요. 앞으로 저희 부부는 스트레스 없는 하루하루를 만드는 게 목표고, 또 하나는 회사 다닐 때보다 더 많이 벌고, 적게 일하는 게 꿈입니다.”
더농부 에디터 김이슬
제작 총괄 : 더농부 선임에디터 공태윤
nong-up@naver.com
더농부
▽클릭 한 번으로 식탁 위에서 농부들의 정성을 만나보세요!▽
▽더농부 구독하고 전국 먹거리 정보를 확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