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개의 달’ 아래서 추는 ‘한치 블루스’ : 제주도 [시인 이병철의 ‘길에서 부르는 노래’ – 6]

이병철 시인은 2014년 문예지 『시인수첩』의 신인상 시 부문, 『작가세계』의 신인상 문학평론 부문에 각각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젊은 문학인입니다. 그는 시 쓰기와 문학평론 외에도 강의, 낚시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창작의 고통과 삶의 무게가 다가올 때 어디론가 훌쩍 여행을 떠납니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자연을 만나고, 여행지의 정서와 감동을 사진과 글로 담고 있습니다. 더농부는 그가 풀어내는 ‘길에서 부르는 노래’를 격주로 전해드립니다. 젊은 시인이 한국의 명소와 맛집을 다니며 보고 느낀 것들을 함께 즐겨보시면 좋겠습니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우리들의 블루스>는 정말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드라마다. 나는 정규 방영 때 못 보고 얼마 전 한 번에 몰아서 봤는데, 너무 많이 울어 베개를 몇 번이나 뒤집었는지 모른다. 특히 15, 17, 20화는 수도꼭지 아니 소방호스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울어도 울어도 또 눈물이 줄줄 흐르니 인체에 수분이 이토록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17화에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불의의 사고로 의식을 잃은 채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아빠를 낫게 해달라고, 어린 은기(기소유 분)가 할머니 춘희(고두심 분)와 함께 ‘백 개의 달’을 보며 기도하는 대목이다. 어린 아이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제주도 선장들이 일제히 바다에 배를 띄운다. 낚싯배들이 밝힌 집어등 불빛이 수평선 위에서 정말 백 개의 달처럼 환하게 떠오를 때,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은 물론 티브이로 그 장면을 보는 시청자들도 감동의 ‘폭풍눈물’을 흘렸다.

제주 바다에 뜬 백개의 달 ⓒ이병철

제주도의 여름밤은 한치, 갈치 낚싯배들이 켜둔 집어등 불빛으로 장관을 이룬다. 제주 사람들은 세상살이가 힘들 때 수평선을 수놓은 그 불빛들을 보며 위로를 얻는다고 한다. 7월 1일부터 7월 31일까지 갈치 금어기이기 때문에 요맘때 제주 바다를 대낮처럼 밝히는 불빛들은 모두 한치 잡이 등불이라고 보면 된다.

제주의 여름은 수국, 그리고 한치와 자리돔으로 아름답다. 드라마 인기 덕분인지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들이 급증했는데, 식당마다 한치물회를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한다. 제주 현지에서 한치는 요즘 1㎏에 5만~6만원쯤 한다. 그야말로 귀하디귀한 ‘금치’라고 할 수 있다. 올 여름 제주를 찾는다면 식당에서 한치 요리를 맛보는 것도 좋지만, 직접 잡아서 먹는 건 어떨까?

밤바다에 휘영청 뜬 백 개의 달을 밟고 서서 짜릿한 손맛과 입맛을 동시에 즐겨보는 거다. 초보자도 금방 배워 할 수 있는 낚시가 한치 낚시다. 처음 낚시를 해보는 사람도 요령만 익히면 하룻밤에 10킬로쯤은 잡을 수 있다. 놀러 가서 돈 버는 게 바로 한치 낚시다. 예년에는 하룻밤 한치 낚시 비용이 10만원 정도였는데, 최근 면세유 가격이 세 배 오르면서 낚싯배들도 어쩔 수 없이 선비를 올리게 됐다. 요즘은 12만~13만원쯤 한다. 그래도 한치만 좀 잡는다면 남는 장사다.

한치 낚싯배 위에서 바라본 제주 석양 ⓒ이병철

차로 네 시간쯤 가서 먼바다까지 또 두세 시간을 나가야 하는 통영, 부산, 여수권보다 제주도에서 한치 낚시를 즐기는 게 덜 피곤하다. 항에서 배로 10~20분만 나가도 좋은 포인트들이 널렸기 때문이다. 제주도 한치 낚시는 여름 바캉스 일정으로 왔다가 반바지에 슬리퍼 신고 쉬엄쉬엄 할 수 있는 낚시다. 그만큼 쉽고, 재밌고, 마음도 여유롭다.

다양한 에기 루어 ⓒ이병철

한치는 ‘에기’라고 부르는 새우 모양의 인조미끼(루어)를 사용해서 잡는다. 어두워지기 전에는 수심 70~80m권까지 채비를 내려 에기가 살아 있는 새우처럼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내도록 낚싯대를 흔들어준다. 그러다 보면 한두 마리쯤 잡히는데, 그건 맛보기에 불과하다. 본격적인 낚시는 집어등에 불을 밝힌 후, 그러니까 ‘백 개의 달’이 떠오른 후부터 시작된다.

환한 불빛에 멸치, 고등어, 전갱이 등 작은 물고기들이 몰려들면 한치와 갈치 등 포식자들도 함께 수면 가까이 올라온다. 45m 권에서 시작해 30m, 20m, 급기야 ‘피딩타임’(낚시 대상어의 먹이활동)이 제대로 붙으면 10m권 이내에서 그야말로 ‘느나’(넣으면 나온다는 뜻의 낚시 은어)다.

사이즈가 좋은 녀석은 ‘대포 한치’라고 부른다. ⓒ이병철

조금 전문적인 얘기를 하자면, 요즘 제주 한치 루어낚시는 기존의 ‘이카메탈’ 다단채비보다 삼봉 오모리리그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중간봉돌을 달고 단차를 준 뒤 삼봉에기라 부르는 생미끼 부착용 루어에 학공치포를 매다는 채비다. 삼봉 오모리리그 채비를 캐스팅해 수심층에 안착시켜 액션을 준 뒤 에기가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스테이(멈춤 동작)를 길게 주는 게 요령인데, 불필요한 동작을 없애려면 액션을 주고 나서 아예 로드를 거치대에 꽂아버리는 게 낫다.

제주 한치 낚싯배들은 아이스박스, 얼음, 구명조끼, 낚싯대 거치대 등을 기본으로 제공한다. 낚싯대와 릴 대여는 물론 채비도 현장에서 구입할 수 있으니 정말 몸만 가면 된다.

차곡차곡 쌓인 한치들. ⓒ

한치 낚시는 서귀포 쪽보다 제주 북부권에서 주로 이뤄지는데, 제주항 서부두 압둘라호, 방탄어부호, 빅히트호, 도두항 스텔라호, 뉴그린호, 화북항 해성피싱호, 만마린호, 빅보스호 등이 유명하다. 다들 베테랑 선장들이라 날씨와 물때만 받쳐준다면 어떤 배를 타도 좋은 조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식사만 놓고 보자면 화북항 해성피싱호가 단연 최고다.

해성피싱호의 저녁 식사. 선상에서 찹스테이크라니 선상 레스토랑이 따로 없다. ⓒ이병철

여름밤 제주 한치 낚시의 즐거움은 잡는 손맛에만 있는 게 아니다. 먹는 기쁨을 빼놓을 수 없다. 해성피싱호에 타면 석양이 바다를 금빛으로 물들일 무렵, 저녁 식사가 제공된다. 찹스테이크나 제육볶음이 나오는 날도 있고, 돈까스와 새우튀김, 함박 스테이크가 나오는 날도 있다. 언제나 나오는 고정 메뉴는 제주도 전통 제사 음식인 돼지고기 산적이다.

김상근 선장과 스태프들이 손수 돼지고기를 꼬치에 꽂고 양념을 발라 팬에 굽는다. 거기에 잘 익은 김치와 각종 밑반찬, 그리고 시원한 냉국까지, 푸짐하다. 저녁을 먹고 집어등 불빛 아래서 부지런히 한치를 뽑아 올리다 보면 금방 입이 심심해진다. 군것질거리가 당길 때쯤 한치 버터구이를 내준다. 또 조금 있으면 커피와 도넛이, 자정쯤 되면 한치를 통으로 넣고 끓인 라면이 제공된다. 이쯤 되면 그야말로 ‘선상 코스요리’라 부를 만하다. 혹여나 한치를 넉넉히 잡지 못한다 하더라도 밤바다 위에서 이런 만찬을 즐겼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새벽 놀이 꽃물을 들이는 항구로 돌아와 숙소에서 싱싱한 한치를 회 떠먹는 기쁨을 무엇에 비할까. 그리고 통한치라면은 최고의 야식이다. ⓒ이병철

여름철 제주 한치 낚싯배들은 오후 5시쯤 출항해 새벽 4~5시 전후로 입항한다. 도착할 때 픽업해 주고, 낚시 마치고 아침 비행기로 올라가는 손님들을 또 공항까지 태워다 준다. 낚시를 마치고도 며칠 더 제주에 머무른다면 잡은 한치를 가지고 여러 요리를 해 소중한 이들과 함께 먹는 것도 대단한 기쁨이다. 한치는 회, 통찜, 숙회, 파스타, 물회, 초밥, 순대, 오삼불고기, 튀김, 회덮밥 등 어떻게 요리해먹어도 맛있다.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하루쯤 말려 반건조한치를 만들면 최고의 맥주 안주다.

낚시로 잡은 한치는 제주항 서부두 수협이나 동문수산시장에 맡기면 손질은 물론 택배까지 해준다. 아니면 스티로폼 아이스박스를 하나 사서 넣고 숙소에 가져온 다음 몇 마리씩 지퍼백에 소분해 냉동실에 넣어두면 된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와서도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1년이고 2년이고 꺼내 해동만 시키면 생물의 싱싱한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건 수돗물 등 민물이 닿지 않게 하는 것이다. 먹물이 천연 방부제 역할을 하니 먹물이 묻은 상태로 냉동시켜야 장기 보관이 가능하다.

한치는 통찜, 물회, 초밥, 먹물 파스타까지 다양한 요리 재료로 쓸 수 있다. ⓒ이병철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김국환, ‘타타타’)라는 노랫말이 실감 나는 세월을 살고 있다면, 지금 당장 제주도로 가라. 그리고 한치 낚싯배에 올라라.

세상살이는 한치 앞도 모르지만, 낚시를 하면 적어도 한치만큼은 알게 되지 않겠는가. 세상살이 고달픔이라는 것들이 사실 한치물회 한 사발이면 사르르 녹아 없어지는 게 대부분이다.

한삼불고기, 한치먹물빠에야, 한치튀김, 한치충무김밥, 삽겹살까지. 삼겹살을 구울 때 기름에 한치를 함께 구우면 별미다. ⓒ이병철


글·사진=이병철(시인·문학평론가)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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