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플레이션’ 덮치나?…낙농가 vs 우유업계 갈등 장기화

‘런치플레이션’ ‘빵플레이션’ ‘배케플레이션’… 꼬리에 꼬리를 문 ‘플레이션’ 목록 가운데 이 단어에 주목할 시점입니다. 이름하여 ‘밀크플레이션’. 우유 원료인 원유 가격을 놓고 정부와 낙농가, 우유업계가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8월 우유대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데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밀크플레이션이란 흰 우유뿐 아니라 빵, 버터, 치즈, 커피, 아이스크림 등 우유를 쓰는 식료품 가격 전반이 오르는 현상이다. ⓒ뉴시스

지금까지는 ‘생산비 연동제’에 따라 원유 가격을 매겼습니다. 통계청이 5월 농축산물생산비조사를 발표하면 낙농진흥회가 1개월 내 낙농가, 우유업계 등으로 구성한 ‘원유 기본 가격 조정 협상 위원회’를 꾸려 원유 값을 의논했습니다. 합의안이 낙농진흥회 이사회를 통과하면 그해 8월 1일부터 원유 가격을 조정하는 구조였습니다.

2022년엔 원유 기본 가격 조정 협상 위원회가 출발조차 못했습니다. 우유업계가 참여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현행 원유 가격 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우유업계가 원하는 개편안은 ‘용도별 차등가격제’. 원유는 용도에 따라 마시는 우유 ‘음용유’와 분유, 치즈, 아이스크림 등을 만드는 우유 ‘가공유’로 나뉩니다. 음용유 가격은 지금 가격을 유지하되 가공유 값을 낮추자는 제도입니다.

용도별 차등가격제로 가격 경쟁력

“우유업계 이익 위해 낙농가 희생”

박영범 전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이 2021년 8월 25일 제1차 낙농산업 발전위원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용도별 차등가격제는 2021년부터 나온 이야기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원유 생산량은 2001년 234만t에서 2021년 203만t으로 줄어든 반면 수입 유제품은 65만t에서 251만t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이 기간 국산 원유 자급률은 77.3%에서 45.7%로 떨어졌습니다.

한국 원유가 가격 경쟁력이 낮기 때문입니다. 국산 원유 가격은 ℓ당 900~1100원. 국제 가공유 가격은 ℓ당 400원대로 국내 절반 수준입니다. 국내 우유업계는 이미 저렴한 수입품으로 옮겨가는 상황입니다.

2021년 농림축산식품부는 한국 원유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자 소비자, 낙농가, 우유업계, 전문가 등으로 구성한 낙농산업 발전위원회를 열었습니다. 생산비 연동제 대안으로 용도별 차등가격제가 나왔습니다.

정부는 가공유 값을 국제 가격 수준에 맞추는 안을 냈습니다. 음용유는 정상 가격인 900~1100원으로 유지하고 가공유는 800~900원으로 낮추는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국산 가공유를 사는 우유업계에 정부 보조금 100~200원을 지원해 실구매가격을 600~700원 수준으로 내리겠다는 계획입니다. 가공유 가격 인하에 따른 농가 소득 하락폭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는 원유 수매량을 늘리겠다고 설명했습니다.

낙농 단체가 용도별 차등가격제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우유업계 이익을 위해 낙농가가 희생한다는 입장이다. ⓒ뉴시스

다섯 차례에 걸쳐 회의했으나 의견을 모으지 못했습니다. 낙농가는 정부 개편안에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이승호 낙농육우협회장은 정부안을 “낙농산업 폐기 전략”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 회장은 “용도별 차등가격제로 원유 생산 기반이 악화될 것”이라며 “우유업계 이익을 위해 낙농가가 희생한다”고 말했습니다.

낙농 단체 “농가 소득 감소 우려”

농림부, 당근책으로 농가에 손짓

김인중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이 2022년 7월 8일 청년·후계 농업인과 낙농제도 개선 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용도별 차등가격제에 맞선 낙농 단체 농성이 150일 가까이 지속하자 대화의 장이 열렸습니다. 2022년 7월 농림축산식품부는 전국 낙농·축협 조합장과 머리를 맞대는 등 낙농가와 의견을 나누고 있습니다.

낙농가가 농가 소득 감소를 우려하자 농림축산식품부는 당근책을 제시했습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2022년 국내 원유 생산량을 195만t으로 전망했는데요. 제도 개편 초기인 2022년엔 정상 가격으로 거래되는 음용유 물량을 190만t에서 195만t으로 늘릴 계획입니다.

현행 제도에서는 우유 생산량 195만t 중 190만t은 정상 가격으로 거래되지만 나머지 5만t은 초가 원유 가격(1ℓ당 100원)에 거래됩니다.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도입하면 2022년엔 195만t 전체를 우유업계가 정상 가격에 사들인다는 겁니다.

김인중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은 “우유업계는 음용유 195만t을 정상 가격으로 사고 가공유 10만t은 초과 원유 가격보다 높은 가공유 가격으로 살 전망”이라며 “낙농가 소득은 줄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생산비 오르는데 ‘800원’ 가격표

가공유 600원, 가격 경쟁력 있나

낙농가가 정부 개선안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입니다. 사료 가격 급등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 놓인 낙농가. 생산비 이하 수준인 가공유로 소득을 보전하라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설명합니다.

ℓ당 원유 생산비는 2021년 기준 843원이다. 2022년 들어 사료 가격이 급등해 원유 생산원가가 1000원을 넘어섰다고 추정한다. ⓒ게티이미지뱅크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ℓ당 원유 생산비는 843원을 기록했습니다. ‘800원’ 가격표가 붙을 가공유는 2021년 기준으로 작은 순익조차 없는 셈입니다. 하물며 2022년 1~5월 젖소용 배합사료 평균 가격은 2021년 같은 기간보다 15% 올랐고 조사료 가격은 50% 가까이 올랐습니다. 현장에서는 이미 생산원가 1000원을 넘어선 농가가 부지기수라는 이야기가 파다합니다.

800원에 가공유를 낼 수 없는 환경이라면 농가는 가공유 물량만큼 생산량과 생산 기반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입니다. 2022년엔 음용유와 가공유 물량이 각 195만t, 10만t이지만 정부는 단계적으로 180만t, 40만t까지 조정할 전망입니다. 생산비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늘어난 가공유 물량만큼 총 원유 생산량이 줄어든다는 겁니다.

우유업계가 국내산 가공유를 구매할지도 불분명한 상황입니다. 정부가 가공유 실구매가격을 600~700원 수준으로 맞추겠다는 안을 냈을 때 우유업계는 가공유 가격 인하 폭이 부족하다며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이창범 유가공협회장은 “국제 원유 가격에 비해 정부가 제시한 가공유 가격은 부담스러운 수준”이라고 하소연했습니다.

우유대란 10년 만…소비자 ‘벌벌’

협상 진통으로 ‘밀크플레이션’ 우려

서울 시내 한 마트에 원유 수급 부족을 알리는 안내문이 2011년 8월 4일 붙었다. 우유업계와 원유 가격을 협상하던 낙농가는 3일 원유 공급을 중단했다. ⓒ뉴시스

전문가들은 10여년 만에 우유대란 경고등이 켜졌다고 경고합니다. 2011년에도 원유 가격 협상을 두고 낙농가와 우유업계 사이 대립이 극심했습니다. 당시 낙농가는 공급 중단을 실행에 옮겼는데요. 전체 생산량 5200t 중 90%에 달하는 4750t 공급을 끊었습니다. 다행히 우유업계 재고 덕에 직접적인 소비자 피해로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8월 우유대란’이 우려스럽습니다. 협상이 지지부진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 몫으로 돌아올 텐데요. 원유 수급이 불안정해지면 밀크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흰 우유뿐 아니라 빵, 버터, 치즈, 커피, 아이스크림 등 식료품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합니다. 불이 붙은 물가에 우유대란이 부채질하진 않을까 걱정입니다.


FARM 인턴 전영주

제작 총괄 : FARM 에디터 박상익

nong-up@naver.com

더농부

참고=

한국경제TV, <첨예한 우유 갈등…밀크플레이션 덮치나>

한국경제신문, <시장원리 무시한 ‘原乳값 연동제’ 8년 만에 폐지>

한국농정신문, <‘기본기’ 없는 용도별 차등가격제 시행한들 소용 있을까?>

이데일리, <원윳값 산정 제도 개선 두고..낙농가 vs 유업계 갈등 장기화>

뉴시스, <농식품부, 낙농제도 개편 갈등 봉합 행보…낙·축협 조합장과 머리 맞대>

서울경제, <“차등가격제는 말살 정책” 뿔난 낙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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