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속에 그려진 밀, 화가는 무얼 말하고 싶었을까? [재미있는 농업이야기 18]

서양의 회화가 종교적 주제만을 다룬 고전주의 미술의 틀을 깬 것은 바로크 시대에 이르러서였다. 이 시기 개인의 체험이나 정물화, 풍경화 등 자연을 다룬 작품 등 다양한 소재의 수많은 명화가 탄생했다. 풍경화는 바로크 시대 이전에는 성경이나 신화와 인물의 대상 뒤에 그려지는 배경에 불과했다. 16세기 네덜란드 플랑드르 풍경화는 인물에 의해 지배되는 부수적 배경이 아닌 독립 풍경화를 태동시켰다.

피테르 브뤼헐은 1500년대 중반 플랑드르 화가 중 최고의 풍경 화가이자 최초의 ‘농민화가’로 일컬어진다. 농촌의 삶과 농민의 깊은 심상을 예리하게 포착해 화폭에 그렸고, 애정과 유머를 담아냈다. 밀 수확 풍경을 담은 ‘추수하는 사람들 (The Harvests)’은 브뤼헐의 열두달 풍경 연작 중 하나로 여름철 밀 수확을 묘사한 8월에 해당한다. ‘계절’ 연작은 현재 5점만 보존되어 있는데, 우아한 디자인, 섬세한 색채, 생동감 넘치는 기법으로 예술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The Harvesters(추수하는 사람들). 피테르 브뤼헐

이탈리아 화가인 니콜로 델 아바테는 앙리 2세의 초청으로 프랑스의 퐁텐블로 궁전 장식에 참여했다. 그는 주로 넓은 풍경 속에 고전 신화를 그려 넣었다.

이 작품에서 니콜로는 그의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광활한 풍경 속에 신화가 아닌 밀을 타작하는 실제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농기구, 역동적인 사람들의 움직임, 가축과 밀 창고 등의 묘사를 통해 당시의 밀 타작 풍경을 엿볼 수 있다.

밀을 타작하는 사람들이 있는 풍경. 니콜로 델 아바테

노엘 쿠아펠은 프랑스 왕립 아카데미의 회원이자 프랑스 미술에서 바로크 양식을 장려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작품 속 알렉산드르 세베르(Alexandre severe)는 222년부터 235년까지 재위한 로마의 황제이다. 이 작품은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한 로마의 제도인 ‘소맥법’을 주제로 하고 있다.

소맥법은 기원전 123년, 그라쿠스에 의해 처음 시행되었다. 초기에는 빈민층에게 밀을 40% 정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후에는 한 달에 5모디우스의 밀을 무료로 나눠주는 배급권과 축제 행사장에 입장할 수 있도록 하는 입장권을 신청하도록 하였다. 이 제도를 통해 거대한 로마 제국은 기아로 고통받는 이 없이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료 수혜자가 점점 늘어나 아우구스투스 시대에는 그 수가 20만 명에 이르렀으며, 17세 이상의 로마 거주 시민권자들은 노동을 하지 않고도 밀을 제공받게 되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로마는 빵과 서커스가 있어 유지되었으나 또한 이 때문에 망했다는 평가도 존재하고 있다.

로마 민족에게 밀을 나누어 주는 알렉산드르 세베르. 노엘 구아펠

쿠르베는 19세기 프랑스 사실주의 화가로 정치와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가족, 친구, 길가에서 마주치는 사람 등 실제 인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쿠르베는 이 작품이 「마을의 젊은 처녀들」이란 작품과 연장선상에 있음을 언급한 바 있다. 두 작품 모두 화가 자신의 여자 형제들을 모델로 하여 그린 작품이지만, 각각 다른 면모를 읽어낼 수 있다. 「마을의 젊은 처녀들」에서는 가난한 소녀에게 자비를 베풀고 있는 여유를 지닌 중산 계층의 젊은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밀 터는 여인들. 쿠르베

반면, 이 작품에서는 프랑스 혁명의 결과로 땅의 소유권은 얻었을지라도, 여전히 여성에게는 가족의 빵을 굽기 위해 곡식알을 체에 거르는 힘들고 고된 노동이 존재하는 이면을 보여주고 있다. 또 쿠르베의 대표작인 「돌 깨는 사람들」과도 같은 맥락의 알레고리를 담고 있는데 「돌 깨는 사람들」이 남성의 노동에 포커스를 맞추었다면, 이 작품은 여성의 노동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작품 속 두 여성은 정제소로 보이는 공간에서 곡물을 체에 털고 나쁜 곡식알과 불순물을 골라내는 일을 하고 있다. 큰 체를 흔들고 있는 여성의 모습에서 힘들고 고된 느낌이 전해진다. 이러한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서 여성의 팔은 전체 신체에 비해 실제 비율보다 더욱 길고 굵게 묘사되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

밀을 주제로 한 그림이라면 누구나 고흐의 밀밭을 떠올릴 정도로 밀밭에 어울리는 황금빛과 역동성을 가장 잘 구사한 화가이다

고흐는 네덜란드 화가로 현대 미술사의 표현주의 흐름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까마귀가 있는 밀밭’은 고흐의 유작으로 특유의 굵고 힘이 넘치는 붓놀림이 인상적인 작품으로, 불안한 정신 상태와 심리적 혼란이 반영된 작품이다. 고흐는 ‘씨 뿌리는 사람(1888)’, ‘일출아래 밀밭(1889)’등 밀밭을 주제로 수십 점의 작품을 남겼는데 신앙심과 자연에 대한 열망, 노동에 대한 경탄,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함을 주고픈 의도 등에서 출발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처음으로 밀을 그린 것은 1885년, 네덜란드에서 그린 ‘밀 다발’ 이란 작품이었다. 이후 프랑스의 아를, 생제르맹, 오베르 쉬르 와즈를 돌며 더욱 색채감 있고 역동적인 작품을 탄생시켜 나갔다.

들판의 밀 다발(Sheaves of Wheat in a Field, 1885). 고흐

고흐가 그토록 밀밭에 몰두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젊은 나이에는 전도사이기도 했던 고흐가 자신의 신앙심, 종교에의 열망 그리고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시각을 예술로 표현하고자 하였음을 들 수 있다. 그는 마치 농부처럼 밀의 성장 과정을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밭에 씨를 뿌리는 자가 곡식을 거두는 것처럼, 영혼에 씨를 뿌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얻으리라”, “어린 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순수하고 부드러운 어떤 것을 나타내며, 잠들어 있는 어린아이에게서 느낄 수 있는 것과 흡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표현하고 있다.

또한 고흐는 농민들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화가인 ‘장 프랑수아 밀레’와 ‘쥘 브르롱’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들의 그림에서는 밀의 소리가 들린다.”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씨 뿌리는 사람(The Sower, 1888). 고흐

밀레를 너무나도 존경하였던 고흐는 그의 그림이었던 ‘씨 뿌리는 사람’을 그리기도 하였다. 고흐의 그림에 나타난 ‘씨 뿌리는 사람’에는 농부 뒤로 마치 광배와 같이 해가 떠 있어, 그가 얼마나 농부들의 삶을 존중하였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시선은 자연에의 열망으로 이어졌다. 고흐는 자신의 작품을 보는 이들이 자신이 그린 밀밭을 보면서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얻기를 그리고 삶의 이면을 되돌아보기를 원했다고 한다. 고흐는 그의 동생 테오에게 “자연, 지구의 구름, 노란빛 밀, 농경은 노동의 대상만이 아닌 편안함과 회복의 힘을 주는 것이다”라고 표현하였다.

밀밭 속의 농가(Farmhouse in a Wheat field, 1888). 고흐

그는 밀의 성장 과정을 통해 계절을 표현했는데, 각각의 계절에 적합한 구성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색조를 염두에 두면서 작업했다. 또한 사이프러스. 삼나무 등 주변의 자연환경과 밀밭의 색채의 조화를 다양하게 표현하였다. 고흐는 화가로서의 작업을 “내게 있어 습작을 하는 일은 밭에 파종을 하는 것과 같고, 그림을 그리는 일은 수확과도 같다”라는 말로 표현하곤 하였다고 한다.

생레미의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고흐는 자기 방의 창문을 통해 근처의 밀밭을 내다보면서 영감을 얻었다. 1889년 9월 초에서 11월 중순까지 하루의 서로 다른 순간들에 보인 경경을 4번이나 그렸다. 고흐의 눈에 비친 밀밭은 예술에의 열망이었고, 농민들에 대한 존경이었으며, 거대한 희망이었을 것이다.

양귀비와 종달새가 있는 밀밭(1887). 고흐

일몰 속의 밀밭(1888). 고흐

태양이 떠오르는 밀밭(Field of Spring Wheat at Sunrise, 1889). 고흐

떠오르는 달과 밀다발이 있는 풍경(Evening Landscape with Rising Moon, 1889). 고흐

비 내린 후의 밀밭(1890 네덜란드). 고흐

까마귀가 있는 밀밭(1890 네덜란드). 고흐

한낮의 낮잠(Noon: Rest from Work, 1890). 고흐

이 작품은 고흐가 밀레의 ‘낮잠’을 모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브라반드 지방에서 반 고흐는 농촌 생활의 모든 것을 연구했다. 쿠에스메스에서 광부들의 비참한 생활을 함께 했듯이, 농부들을 그린다는 것은 “그들처럼 느끼고 생각하면서 그들 중 한 명이 되기라도 한 듯 생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흐의 낮잠은 밀레의 평화를 받아들여 고흐의 다른 작품에서 보인 격정적인 붓 터치가 잦아들고 다채롭고 따뜻하게 표현되었다.

장 프랑수아 밀레

장 프랑수아 밀레는 프랑스의 농부를 가장 프랑스적으로 묘사한 화가라는 평가를 받은 화가다. 농촌 출신인 그는 “일생을 통해 전원밖에 보지 못했으므로 나는 내가 본 것을 솔직하게, 그리고 되도록 능숙하게 표현하려 할 뿐이다.”라고 이야기하였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만종’은 해가 질 무렵에 밀밭에 선 부부가 삼종기도를 올리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삼종기도는 천사가 마리아에게 성모 영보를 알리는 상황을 상기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서서 기도한다.

1865년 밀레는 “《만종》은 옛날에 할머니가 들에서 일하다가도 종이 울리면 일을 멈추고, 죽은 가엾은 이들을 위해 삼종기도 드리는 것을 잊지 않았음을 생각하면서 그린 그림이다.”라고 하여 어린 시절의 추억을 다룬 것임을 밝힌 바 있다. 광활하고 황량한 밀밭, 그들의 노동을 보여주는 흔적, 그리고 밀밭 한가운데에 서서 기도를 올리는 한 쌍의 농부가 자아내는 풍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그 고요함과 엄숙함을 느끼게 한다.

만종(The Angelus, 1859). 밀레

이삭 줍는 사람들(Les glaneuses, 1857). 밀레

‘이삭 줍는 사람들’은 1857년에 그려진 것으로 ‘만종’과 함께 밀레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 중 하나이다. 밀레의 주요 주제인 전원적 풍경과 농부의 노동이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이 작품은 여인들이 열심히 이삭을 줍는 모습을 전면에 배치함으로써 그의 의도를 어떤 작품보다 잘 보여주고 있다.

여인들의 등을 밝히는 햇빛은 신의 가호를 의미한다. 자연은 이처럼 신의 의지를 내포하는 현상으로 밀레의 그림에서 암시된다. 노동하는 여인들의 모습은 대지의 색조에 가까운데, 이를 통해 밀레는 상류층보다 이들에게 신의 축복이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넌지시 보여주고 있다.

원경에 보이는 저택과 말을 탄 사나이는 상류층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형상은 정확하게 나타나지 않는데 노동하는 농민에게 강조점을 부여함으로써 밀레는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멀리 쌓여있는 노적가리에 비해 여인들이 줍고 있는 이삭은 무척 소박하게 보인다. 이런 형상화를 통해 밀레는 궁핍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농민과 노동자의 처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밀짚을 잔뜩 실은 수레는 중세의 도상학으로 해석하자면, 덧없는 물질성을 뜻한다. 원래 건초 수레는 만인을 위한 신의 선물을 의미했지만 후일 덧없는 인간의 육체나 물질성을 뜻하게 되었다.

이 그림은 근대적 풍경을 담고 있지만 여전히 도상학적 해석의 여지를 남겨 두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수확한 곡식을 나누어 갖지 않고 혼자 독차지하는 상류층에 대한 비판은 중세에도 존재했는데 밀레는 이런 비판의 구도를 근대적 관점에서 재구성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밀을 주제로 한 풍경화는 이와 같이 서양의 주곡작물로서 세기의 천재화가들에 의해 생명과 노동, 자연과 신앙심의 표현을 담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글= 손지영 국립식량과학원 밀연구팀 농업연구관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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