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수 있는 음식의 마지노선 : 일산 옛날 홍두깨 손칼국수 [이용재의 식당 탐구 – 3]

이용재 음식평론가는 한국 식문화를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비평가입니다. 식재료, 조리도구, 조리 문화, 음식과 관련한 문화 콘텐츠까지 우리가 잘 몰랐던, 혹은 우리가 쉽게 지나쳤던 것들을 친절하게 설명해 줍니다. 앞으로 이용재 평론가가 격주로 더농부에 ‘식당과 음식 이야기’를 펼칩니다. 맛있는 한 끼에서 그가 얻은 통찰을 함께 나눠 보실까요?


낯선 곳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좋은 냄새를 맡았다. 달큰한 디포리의 냄새가 덩치 큰 주상복합 건물의 1층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마침 점심때이기도 했지만 없던 허기마저도 끌어낼 만큼 유쾌한 냄새였다. 냄새에 이끌려 발걸음을 옮기니 작은 칼국수집이 하나 나타났다. 잔치국수 3000원, 칼국수, 수제비 4000원. 음식값은 선불입니다.

밥값을 선불로 내는 음식점을 대체로 좋아하지 않지만 발을 들여놓으니 단박에 이해가 됐다. 원체 좁은 공간에 최대한으로 식탁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고, 벽에는 빙 둘러 1인용 식탁마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 가운데 주방 바로 앞에 계산대를 겸한, 음식이 잠깐 머무르는 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음식이 나오면 마지막으로 김가루를 뿌려 마무리하는 공간이었다.

그 공간의 벽에는 김치공장의 사진이 여러 장 붙어 있었다. 중국의 김치공장이었다. 아무래도 단가를 맞추려면 그럴 수밖에 없겠지? 이해를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는 정황이었다. 하지만 음식점 측에서도 중국산을 향한 불신을 헤아리고 있는지 공장 전경의 사진을 첨부파일처럼 전시해 놓고 있었다.

이곳 김치는 중국산을 표시하면서도 청결한 생산을 강조하는, 나름의 방어 전략이 돋보인다. ⓒ이용재

어차피 선불이니 주문과 계산을 하러 가면 좋으나 싫으나 한 번씩은 눈길을 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흰 가운을 입고 머리에는 망을 쓴 이들이 일사불란하게 포기김치의 속을 채우는 광경의 사진 옆으로는 공장의 체계적인 관리나 위생 등을 보증하는 인증서 같은 것들이 붙어 있었다. 이 음식점을 찾는 이들이 과연 그런 것들까지 속속들이 신경을 쓸지는 모르겠지만 나름의 세심함이랄까, 방어 전략이 돋보였다.

칼국수 하나 주세요. 앞에서 말한, 음식이 잠깐 머무르는 탁자에는 덩치가 만만치 않은 카드기가 놓여 있지만 왠지 이런 가격이라면 음식값을 현금으로 내주는 게 예의일 것 같은 압박을 가볍게 느낀다. ‘현금 결제 부탁드립니다’라는 문구도 붙어 있다. 지폐를 내밀면 거스름돈이 접객하는 이의 앞치마 주머니에서 바로바로 나오는 형국이 왠지 명동칼국수의 체계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단 두 사람만이 일한다. 그렇게 접객원 한 명에 주방의 조리 전담이 한 명 더, 그게 전부이다.

일산의 옛날 홍두깨 손칼국수 전경. ⓒ이용재

상호는 ‘손칼국수’이지만 유리를 붙여 훤히 들여다 보이는 주방에는 제면기가 놓여 있다. 이것이 인터넷의 밈으로나 접해온 ‘기계 손 냉면’ 같은 것인가? 하여간 그 덕분인지, 은근히 기다려서 받은 칼국수의 면은 꽤 곱고 가지런했다. 굳이 추측한다면 끝에서 살짝 힘이 느껴지는 게 전분을 조금 더한 것 같은 밀가루 면은 길고 하늘하늘해 가벼운 젓가락질에도 한뭉터기씩 딸려 올라온다. 그래서 약간 세심하게 분배해서 먹어줘야 할 필요가 있다. 매끄럽게 잘 딸려 온다고 면만 줄창 건져 먹다 보면 맨 처음 이곳으로 발걸음을 이끈, 달큰한 냄새의 국물만 남아 균형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자칫 우악스럽게 건져 먹다 보면 국물을 편하게 떠먹기 어려울 정도로 여전히 뜨거울 때 면을 다 먹어버리는 불상사가 벌어져 버린다.

수제비는 칼국수와 같은 두께 반죽을 숟가락에 딱 담길 만큼 크기로 썰었다. ⓒ이용재

그런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수제비를 선택하는 게 현명하다. 칼국수와 같은 두께의 반죽을 숟가락에 딱 담길 만한 크기의 정사각형으로 썰어 국물에 끓였다. 덕분에 수제비 한 점을 숟가락으로 뜨면 딱 적당한 만큼의 국물이 함께 딸려온다. 엄청나게 깊은 맛을 표방하는 국물은 아니지만 일단 냄새로 사람을 홀렸던 달콤함에 한 숟가락 듬뿍 얹어 내주는 김가루의 감칠맛이 가세해 아쉽지는 않다.

한 숟가락에 한 점씩 수제비 반죽을 떠먹다 보면 국물의 온도가 서서히 내려가 차차 편안해진다. 같은 국물에 같은 반죽이지만 칼국수를 선택했을 때에는 맛볼 수 없는 경험이다. 공장 전경 사진과 인증서 등으로 위생을 강조한 김치는 덕분인지 깔끔하다는 느낌은 주지만 아무래도 음식값을 감안할 때 엄청난 맛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두꺼운 밑동보다는 하늘하늘한 윗둥 쪽에 간이 더 잘 배어 있어 음식의 균형을 잡아주는데 제 몫을 한다.

옛날 홍두깨 손칼국수의 숨은 별미는 콩국수다. ⓒ이용재

여름이고 1000원을 더 쓸 용의가 있는 이들에게는 옛날 홍두깨 손칼국수의 숨은 별미 콩국수가 기다리고 있다. 받아 국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놀랐다. 와, 이렇게 균형이 잘 맞는 콩국물은 처음인데? 그도 그럴 것이, 시중의 콩국물 대부분은 걸쭉하다 못해 뻑뻑하다. 그것이 음식값을 제대로 하는 유일한 길이라 믿기 때문에 때로 편하게 마시기도 어려울 만큼 뻑뻑한 것에 간도 제대로 해서 내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의 콩국물은 다르다. 무엇보다 단가를 맞추기 위한 결정이었겠지만 일단 적당히 묽어서 소위 ‘목넘김’이 매우 좋다. 단가를 맞추기 위한 움직임이 역설적으로 음식의 균형을 아주 잘 맞춰주는 형국이다.

콩국물에 간이 아주 적극적으로 잘 돼서 고소한 콩맛도 한결 더 자기 목소리를 편하게 잘 낸다. 국물이 그렇다 보니 하늘하늘하고 야들야들한 칼국수면과 정말 잘 어울린다. 묽은 칼국수 국물과 달리 콩국물에는 아무래도 점성이 있다 보니 면에 적당히 딸려 와 맛의 경험이 한층 더 풍성해진다. 오이채는 풍성하지도 곱지도 않지만 향으로는 콩국물을, 아삭함으로는 면의 야들야들함을 열심히 거든다. 마지막으로 한주먹 정도 얹어 낸 얼음이 국물 군데군데에 시원함의 방점을 찍어준다.

그런 콩국수가 이제는 6000원이다. 원래 5000원이었지만 요즘의 뛰어오르는 물가를 반영해 1000원씩 올랐다. 그래도 그 돈으로 관성적으로 맛을 낸 음식이 아닌, 요즘 찾아보기 힘든 고민의 산물을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놀랍다. 칼국수와 수제비 또한 5000원이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너무 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음식값이 싸다고 좋은 건 아니다. 아니, 사실 너무 싸다면 오히려 경계해야 한다.

이곳에서는 최선을 다해 먹을 수 있는 마지노선에 놓인 음식을 판다. ⓒ이용재

요즘처럼 살기 힘든 현실에 싼 가격은 사실 공공연한 결핍을 의미할 수 있다. 그리고 사실 그 결핍이 공공연하다면 차라리 다행일 것이다. 아니라면, 그래서 음식이 오히려 멀쩡하거나 맛있기까지 하다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균형을 맞출 수 없는데 사람을 갈아 넣어서 해결하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싼 음식을 좋아하지 않고 싸지만 맛있는 음식을 만나면 되려 슬퍼진다. 음식평론가로서 그런 음식을 ‘가성비(가격 대 성능비)’가 좋다며 엄지손가락을 바짝 세우고 치켜세워 주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런 현실 속에서 이곳 옛날 홍두깨 손칼국수의 음식이 참으로 흥미롭다고 느꼈다. 이제 6000원인 콩국수는 확실히 맛있지만 5000원인 칼국수와 수제비는 맛있음과 그저 그럼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작두를 타고 있다.

한 끼 풍족하게 먹었다고 느낄 만큼 양이 많지도 않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하게도 인간을 향한 품위는 잃지 않는다. 이 한 그릇의 음식이, 가격을 감안할 때 빼어날 거라 보장은 해주지 않지만 그래도 먹고 일어섰을 때 최소한의 대접은 받았다는 인상을 안긴다. 그것은, 비싸지만 돈값을 못하고 어떻게 할 줄도 모르는 음식이 넘쳐나는 현실에서 굉장히 큰 업적이다. 이곳에서는 최선을 다해 먹을 수 있는 마지노선에 놓인 음식을 팔고, 그 사실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

오늘 탐구해 본 식당

1. 옛날 홍두깨 손칼국수

031-907-8855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중앙로1275번길 38-10

<가격>

잔치국수 4000원

칼국수 5000원

수제비 5000원

콩국수 6000원


글·사진=이용재(음식평론가·번역가)

정리=더농부


▽클릭 한 번으로 식탁 위에서 농부들의 정성을 만나보세요!▽

▽농촌 V-LOG부터 먹거리 정보까지 꿀잼 영상 가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