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자동차 경적이 도시의 아침을 깨운다. 베란다에서 바라본 도시의 아침은 잿빛투성이다. 아내와 사별 후 평생 살아온 농촌을 떠나 도시에 정착했다. 도시는 낯설고 차가웠다. 수많은 군중 속에 있어도 나는 늘 고독하고 외로웠다. 마음을 붙이고 소통할 곳이 없었던 나는 베란다에 텃밭 농사를 지어보기로 결심했다. 과거 농사를 지으면서 일상이 충만했던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나는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베란다 텃밭을 가꾸는데 필요한 화분과 흙을 주문하고, 근처 시장에서 모종과 씨앗을 사 왔다. 처음으로 심은 작물은 몇 종류의 쌈 채소와 오이였다. 오랜 시간 농사를 지어봤지만, 베란다 텃밭은 분명 밭농사와는 결이 달랐다. 초보 농사꾼의 마음으로, 아는 것도 한 번 더 고민하면서 신중하게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베란다에서 짓는 농사이다 보니, 땅에서 농사를 지을 때보다 더 세심하게 살필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흙을 떠나 살았던 나는 베란다에 텃밭을 꾸리면서 다시금 흙을 만지게 됐다. 나는 흙 속에 씨앗과 모종을 심고, 그 위에 정성과 사랑을 불어넣었다. 하루 종일 도시 소음과 삶의 현장에서 시달리던 내게 베란다 텃밭은 생각지도 못한 큰 기쁨을 안겨줬다. 베란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내 안에서 보람과 충만감도 점차 커졌다.
흙 속에 심은 씨앗이 싹을 틔울 때의 기쁨은 밭에서 농사를 지을 때나 베란다에서 텃밭을 일굴 때나 다를 것이 없었다. 오매불망 노심초사했던 상추가 올망졸망 싹을 틔우고, 오이 모종이 세상을 향해 푸르른 줄기를 뻗어 올렸다. 나는 틈만 나면 베란다로 나가 시간을 보냈다. 농작물들이 자라는 모습을 처음 본 것도 아닌데, 베란다에서 농작물이 자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화분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이토록 탐스럽게 푸른 싹을 틔워준 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텃밭 가꾸는 재미에 푹 빠져 가지와 부추, 방울토마토 모종도 사다 심었다.
매일 아침 베란다 텃밭의 작물들을 확인하는 일은 어느새 나에게 중요한 일과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서너 평 남짓한 작은 베란다 텃밭인데도 나는 늘 분주하게 움직였다. 베란다 가득 피어오르는 푸성귀의 쌉쌀한 냄새는 행복 그 자체였다.
베란다 텃밭은 도시의 고독을 따스하게 감싸줄 아늑한 장소였다. 게다가 베란다 텃밭은 예상보다 훨씬 더 근사했다. 도시생활에 이미 익숙한 자녀들은 우리 집에 오면 푸른 정원이 있다며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베란다 텃밭에 가장 열광했던 건 어린 손주들이었다. 집에만 오면 베란다로 달려가 서로 물을 주겠다며 물조리개를 집어 들었고, 작물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관찰하고 사진을 찍었다. 또 텃밭에서 열매를 맺은 방울토마토와 가지 등을 직접 따보는 체험을 하면서 키즈 카페나 놀이터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색다른 시간을 갖곤 했다.
내가 직접 수확한 쌈 채소와 오이, 가지로 차린 식탁은 일상적인 한 끼와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근처 마트에만 나가도 수많은 채소를 쉽게 구입할 수 있는 도시에서, 직접 수확한 채소들이 안겨주는 기쁨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컸다.
베란다 텃밭 농사는 70대 노인인 나를 다시 한번 더 성장하게 했다. 쓸쓸한 노년의 시간을 외롭다고 절규만 하면서 황폐하게 흘려보내지 않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베란다에 텃밭을 가꾸면서, 그간 부유하듯 살아오던 나는 비로소 도시생활에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베란다 텃밭에 있으니 잿빛 도시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베란다에서 푸릇한 농작물들을 바라보자, 집 주변의 삭막한 아파트와 건축물들까지도 온통 따뜻하게 보였다. 도시의 구름도 농촌과 마찬가지로 아름답다는 것을, 도시의 숲속에서도 초록빛 나무들이 우거진다는 걸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 위 작품은 아그로플러스와 농촌진흥청이 공동주최한 ‘제6회 추억의 우리 농산물 이야기 공모전’ 수상작입니다.
글 = 김선규 씨(추억의 우리 농산물 이야기 공모전 우수상)
정리 = 더농부
nong-u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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