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석유자원을 원료로 한 화학소재 없이는 단 하루도 편히 살 수 없다. 플라스틱, 자동차 연료, 섬유 등 생활 전반에 걸쳐 석유자원으로 만들어진 제품의 홍수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플라스틱의 탄생은 인류 문명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았다. 그러나 과도하게 사용한 플라스틱은 세월이 흘러도 썩지 않는 엄청난 규모의 쓰레기를 양산했다. 게다가 플라스틱은 먼지처럼 작은 입자인 미세플라스틱으로 분해돼 계속해서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병든 지구를 살리고 환경친화적인 인류 문명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자연이 주는 자원을 이용하고 다시 자연으로 돌려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농업에서 나오는 부산물이나 바이오매스 자원은 석유자원을 대체할 구원투수로 나서고 있다.
바이오매스용 신작물 ‘거대억새’
수확량 많아 자원확보에 유리
넓은 의미의 바이오매스에는 살아있는 동물, 식물, 미생물 등 유기물이 포함된다. 즉 태양에너지에 의해 생산된 식물과 그 식물을 먹고 자란 동물의 잔해와 배설물까지 포함된다. 또한 가정에서 나오는 유기성 폐기물 등 모든 유기물체를 말한다.
바이오매스는 대부분이 1차 산업인 농업의 산물이며 보릿짚, 밀짚, 옥수숫대 등 농업부산물이 이에 해당한다. 이런 종류의 바이오매스를 섬유질계 자원으로 분류하는데, 전 세계적으로 매년 1,700억∼2,000억 톤이 생산되고 있다.
최근에는 거대억새와 같은 바이오매스용 신작물이 개발됐다. 억새는 다년생 작물이라 한번 심으면 매년 다시 재배해야 하는 번거로움 없이 다년간 수확할 수 있다. 수확량도 벼, 보리와 같은 작물에 비해 월등히 많아 바이오매스 자원확보 측면에서 우수성이 높다.
식물 바로 세우는 셀룰로오스와 리그닌
분리·분해하면 소재 원료·에너지원 가능
일반적으로 식물체에는 셀룰로오스가 35∼45% 포함돼 있는데 포도당이 선형으로 결합된 형태로 존재한다. 헤미셀룰로오스는 20∼30% 포함돼 있고 주로 자일로스와 같은 5탄당이 함유돼 있다. 리그닌은 15∼25%가 함유돼 있으며 폴리페놀계 방향족 화합물로 구성돼 있다. 식물체가 자라면서 쓰러지지 않고 하늘을 향해 똑바로 설 수 있는 것은 이러한 구성 요소들이 화학적으로 견고하게 결합해 있기 때문이다.
건물의 기둥과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높고 견고한 건물의 기둥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철근과 철사가 포함된 거푸 짚을 만들고 여기에 시멘트를 넣어서 결합시키듯이 식물체는 건물의 철근과 철사에 해당되는 셀룰로오스와 헤미셀룰로오스 그리고 시멘트에 해당되는 리그닌이 결합한 것이다.
바이오매스를 에너지원이나 화학소재의 원료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구성성분들을 분리하고 분자 단위로 분해해 원하는 형태의 원료로 다시 조립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바이오매스는 화학적으로 견고하게 결합돼 있어 각각의 성분들로 분리하기 위해서는 물리·화학적 및 생물학적 변환 과정이 필요하다.
바이오매스에 산성이나 알칼리성 촉매를 넣어 고온에서 가수분해시키면 물질이 분해되는데, 이때 온도나 반응시간을 조절하면 효과적으로 물질을 분리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산성 촉매를 넣고 가수분해하면 헤미셀룰로오스를 구성하는 자일로스가 잘 용해되고, 리그닌이 잘 용해되는 성질을 가진 알칼리성 촉매를 사용하면 리그닌으로부터 셀룰로오스와 같은 성분을 분리해낼 수 있다.
휘발유 대체하는 ‘바이오연료’
국내에도 보급될 수 있을까?
이렇게 분리한 셀룰로오스는 효소 촉매반응을 통해 포도당을 얻을 수 있다. 지금까지는 옥수수나 카사바 같은 전분작물에서 당을 생산했지만 이러한 작물은 주로 식용 및 사료용으로 이용된다. 그래서 최근에는 비식용의 섬유질계 바이오매스를 산업 원료용으로 사용하려는 연구가 주목 받고 있다.
섬유질계 바이오매스는 전분보다 단단하게 결합돼 있어서 포도당과 같은 단당으로 분해하기 위한 섬유소 분해 효소가 필요하다. 이러한 효소는 전분 분해효소보다 많은 양이 필요하고 가격도 비싼 편이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섬유소 분해 효소를 저렴하게 대량 생산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는 산업적으로 활용 가치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섬유질계 바이오매스로부터 생산된 당은 미생물을 키우는 데 사용될 수 있으므로 발효당이라고 부른다. 바이오화학 소재는 주로 미생물을 이용한 발효과정을 거쳐 생산하기 때문에 저렴하고 대량으로 공급 가능한 자원이 필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농업 바이오매스는 전분과 비교해 원료 확보가 용이한 장점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셀룰로오스로부터 전환된 당을 이용해 효모 균주를 발효시키면 에탄올이 생산되는데 이를 휘발유 대체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휘발유에 바이오에탄올을 의무적으로 일정량 혼합해 판매하도록 법이 제정돼 있다. 국내에서도 휘발유에 바이오에탄올 3%를 혼합한 연료(E3)를 보급하려는 정책이 제안되고 있으나 아직 시행되고 있지는 않다.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 정책에 따라 우리나라도 휘발유를 대체할 수 있는 바이오연료 보급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생분해성 플라스틱 개발
농산업 분야에서 활약 기대
섬유질계 바이오매스로부터 추출한 발효당은 바이오연료뿐만 아니라 생분해성 플라스틱 원료인 젖산(Lactic acid), 숙신산(Succinic acid) 등 유기산 생산에도 이용할 수 있다. 젖산은 화학반응을 통해 폴리젖산(Polylactic acid, PLA)이라는 고분자 물질로 합성될 수 있는데, 현재 생분해가 가능한 플라스틱의 원료로 주목받고 있다. 석유 원료로부터 합성한 플라스틱은 지금까지 다양한 용도로 개발됐지만 잘 분해되지 않고 사용량이 과다해 태평양에 플라스틱 쓰레기 섬이 생길 정도로 환경오염 주범이 됐다.
또한 미세플라스틱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다양한 병의 원인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따라서, 비닐봉지, 커피 컵 등 일상생활에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분해성 플라스틱 개발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농업부산물 등 바이오매스를 원료로 생산되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대표적인 친환경 바이오화학 소재로서 농산업 분야에서 활용 가치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바이오매스의 주요 성분인 리그닌도 지금까지는 주로 보일러용 연료에 혼합하는 저급 자원으로 취급됐으나, 앞으로는 친환경적인 플라스틱 원료, 접착제 및 자외선 차단제 등 다양한 산업 소재로 활용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석유화학산업은 에너지, 연료, 플라스틱, 섬유, 화장품, 세제 등 생활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처 왔지만, 석유 자원의 과다 사용으로 인한 지구온난화, 미세먼지 등 환경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전 지구적인 환경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지속 가능한 신재생에너지 자원으로 농업 바이오매스가 떠오르고 있다.
국내에서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계획이 수립됐으며 ‘화이트바이오: 보릿짚 등 재생 가능한 식물자원을 원료로 화학제품 또는 바이오연료 등을 생산하는 기술산업’ 분야에서는 석유계 플라스틱을 대체할 생분해성 플라스틱 개발을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바이오매스를 활용한 첨단 신소재 개발 및 국산화를 통해 신규 시장 개척과 경쟁력 향상에 이바지할 뿐만 아니라 기존 석유화학제품을 대체할 초대형 바이오화학 시장의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글=차영록 국립식량과학원 바이오에너지작물연구소 농업연구사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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