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라는 영원에 편입되다 : 전북 부안 위도 [시인 이병철의 ‘길에서 부르는 노래’ – 3]

이병철 시인은 2014년 문예지 『시인수첩』의 신인상 시 부문, 『작가세계』의 신인상 문학평론 부문에 각각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젊은 문학인입니다. 그는 시 쓰기와 문학평론 외에도 강의, 낚시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창작의 고통과 삶의 무게가 다가올 때 어디론가 훌쩍 여행을 떠납니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자연을 만나고, 여행지의 정서와 감동을 사진과 글로 담고 있습니다. 더농부는 그가 풀어내는 ‘길에서 부르는 노래’를 격주로 전해드립니다. 젊은 시인이 한국의 명소와 맛집을 다니며 보고 느낀 것들을 함께 즐겨보시면 좋겠습니다.


위도에는 동해와는 빛깔이 다른 서해만의 푸르름이 있다. 서쪽 파랑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병철

바다의 계절은 육지보다 한 걸음 느리다. 지상에 꽃이 피는 사월이 바다에겐 겨울이다. 특히 서해의 수온이 더디게 오르는데, 오월 중순쯤 비로소 서해에도 봄이 찾아온다. 유월이 되면 어느 시인은 “수국 한 알을 따서/ 착즙기에 넣고 즙을 짜서 마실 거”(이원하,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라고 했지만, 나는 유월이면 광어와 우럭과 농어가 뛰노는 갯바위로 간다. 부안 격포 바닷길을 달려 ‘고슴도치 섬’ 위도에 가는 것이다.

위도 갯바위에서 대광어를 낚았다. ⓒ이병철

위도 해역은 그야말로 황금어장이다. 광어, 우럭, 농어, 삼치, 민어, 백조기, 참돔, 감성돔, 장대, 쥐노래미, 갑오징어, 주꾸미, 문어 등이 계절을 달리하며 낚시꾼들의 손맛과 입맛을 돋운다. 낚시하기에 좋은 섬이지만 그냥 여행하기에도 아름다운 섬이다. 트래킹도 좋고, 캠핑을 즐기기에도 적합하다.

특히 파장금, 깊은금, 미영금, 벌금, 논금, 정금, 살막금, 도장금 등 지명에 금(金)자가 붙은 해변마다 고운 백사장으로 햇살에 제련된 금빛 파도가 맥주 거품처럼 밀려온다. 차르르르, 쌀 씻어 안치는 소리로 밀려오는 바다는 한적하고 평화롭다. 성수기에는 꽤 북적일 만도 한데, 십년 가까이 매해 여름 이 섬을 찾고 있지만 인파로 인한 복잡함을 겪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조용하고 깊은 휴식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위도의 황홀한 일몰 ⓒ이병철

부안 격포항 여객선 터미널에서 위도까지 가는 카페리 여객선이 매일 5~6회 운항한다. 뱃길은 50분밖에 되지 않는다. 육지에서 가까운 섬이지만 위도 바닷길에는 큰 상흔이 남아 있다. 1993년 서해페리호 침몰 참사로 무려 292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 집 건너 한 집씩 초상을 치른 섬마을 사람들은 가족을 집어삼킨 바다가 야속해 섬을 떠났다.

그나마 남은 이들도 평생 슬픔을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 30년 전 참사를 기억하는 육지 사람들은 위도에 가길 꺼려 하기도 한다. 하지만 깊은 상처일수록 사람의 손과 마음이 닿아야 한다. 고슴도치섬은 이제 가시를 다 감추고 부드러운 해풍과 영원에서 빌려 온 일몰로 방문객을 기다린다.

여름 갯바위 낚시는 고역이지만 그만큼 짜릿하다. 그 결과물까지. ⓒ이병철

여름철 갯바위 낚시는 고역이다. 더운 대낮에 산을 타고 넘어 포인트에 진입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낚시 장비와 각종 짐들을 갯바위까지 들고 옮기는 일은 이삿짐 나르는 것만큼 힘들다. 온몸이 땀에 젖고, 태양이 정수리에 전동드릴처럼 내리꽂힌다. 땡볕은 마치 나를 미워하는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내 목덜미를 때타월이나 사포로 미는 느낌이다.

낚시 준비를 마치고 땀이 좀 식을라치면 모기떼의 습격이 시작된다. 낚시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바닷물로 뛰어들어 해수욕이나 즐기고 싶다. 그런데 정말 말도 안 되게, 채비를 던져놓자마자 마음이 진정된다. 더위조차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상쾌함마저 느껴진다. 무슨 마법인가. 이쯤 되면 낚시는 마약이고 환각이며 울고 보채는 아이 앞에 틀어놓은 뽀로로와 마찬가지다.

자연산 광어는 배가 하얗다. ⓒ이병철

갯바위 루어 낚시는 힘들지만 짜릿하다. 11물때. 초들물 끝물부터 중들물 끝물까지 세 시간 낚시. 조류가 빨라 뻘물이 지는 상황이지만 1/2온스 지그헤드에 4인치 빨간색 웜으로 물색이 덜 탁한 곳을 공략해 광어 세 마리, 농어 한 마리, 쥐노래미 한 마리, 우럭 두 마리를 잡았다. 숙소에 가 생선을 횟감과 구이용, 그리고 탕거리로 손질해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위도에 올 때면 주로 ‘위도빌리지’ 펜션을 이용한다. 버섯 모양의 삼각형 펜션 건물들이 마치 동화 속 마을 같은 아기자기함을 자아낸다.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경관 또한 빼어나다. 잔디밭에 놓은 야외 테이블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식사를 할 수 있다. 식당과 호프집을 겸하고 있어서 식재료를 준비해 입도하지 못했을 경우 좋은 대안이 되어주기도 한다. 위도에는 하나로마트가 있긴 하지만 육류는 판매하지 않고, 채소나 과일도 가짓수가 적다. 그마저도 저녁 7시 전에 문을 닫는다. 그러니 위도에 오려거든 여객선 타기 전 격포항 인근 마트에서 장을 봐 들어오는 걸 추천한다.

절벽 위 카페 ‘쉐백’은 이곳이 지중해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이병철

생선회가 서늘하게 숙성될 동안 이 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찾는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서 지중해 풍광을 빚어내는 카페 ‘쉐백’이다. 그리스 산토리니 이아 마을이나 수니온을 연상케 하는 이 카페는 하얀색과 파란색으로 칠해진 건물 외벽부터 낡고 오래된, 손때 묻은 소품들로 채워진 내부, 그리고 통유리에 꽉 찬 바다까지 다 꿈결 같다. 이 아름다운 카페에 앉아 창밖의 서해를 바라보면, 서해가 동해 못지않게 푸르다는 사실에 감탄하게 된다. 백발이 근사한 사장님께서 내려주신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듣는 이곳이 바로 천국이다.

카페의 통유리창은 이 공간을 화랑으로 바꾼다. ⓒ이병철

카페는 시간과 시간 사이, 장소와 장소 사이에 잠깐 들르는 곳, 그래서 특별한 공간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카페는 아름답고, 아름다워서 무용하며, 무용하기에 가치 있는 곳이다. 카페는 풍경을 통유리창에 담아 전시하는 화랑이다. 시간이 느리게 가는 다른 행성이다. 사랑의 언어들이 노래처럼 흐르는 음악 감상실이다. 커피 향기와 빵 굽는 냄새가 함부로 엎질러진 부엌이다. 카페에서 우리는 휴식하고, 생각하고, 대화하고, 상상한다. 카페에서는 누구나 예술가가 되고, 철학가가 된다.

위도빌리지 펜션 야외 테이블에 풍성하게 차린 한상 ⓒ이병철

다시 펜션으로 와 한상 차려두고 술잔을 채운다. 회와 초밥, 그리고 매운탕까지 푸짐하다. 술잔에 노을이 따라 들어온다. 이런 노을을 마실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황홀한 금빛 석양 속에서 사람이 역광의 그림자로 지워질 때, 누구나 시인이 된다. “나는 고독의 친구 방황의 친구 상념 끊기지 않는 번민의 시인이라도 좋겠소. 나는 일몰의 고갯길을 넘어가는 고행의 방랑자처럼”(정태춘, ‘시인의 마을’) 노을이라는 영원에 편입되는 것이다.

위도에서는 대개 먹을거리를 준비해와 직접 음식을 해 먹곤 하지만 가끔은 사 먹기도 한다. 치도리의 ‘그래 그 집’은 위도에서 난 것으로 요리한 붕장어탕과 갑오징어볶음이 깊은 내공을 뽐낸다. 여객선이 들고나는 파장금항에는 ‘서울식당’이 있다. 이 집은 민박을 겸하면서 낚시 손님들을 배로 갯바위에 내려주기도 한다. 8천원짜리 백반을 주문하면 생선구이와 꽃게 된장국, 맛깔스런 젓갈 등이 푸짐하게 상에 오른다.

위도반점은 유명 중국집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이병철

낭만을 찾으려거든 역시 중국집이다. 위도에는 ‘위도반점’과 ‘환영반점’이 있는데, 위도반점은 웬만한 대도시의 유명 중국집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맛을 자랑한다. 식당에서 먹는 것도 좋지만 포장해서 해변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바다를 보며 먹는 건 황홀한 식사다. 짜장면과 탕수육은 역시 영원한 고전이다. 환영반점의 경우 군대나 학교에서 흔히 먹던 급식 짜장면을 낸다. 탕수육도 모양과 크기가 규격화된 냉동 시제품을 그냥 튀겨낸다. 뭐 이런 집이 다 있나 싶은데 짬뽕만큼은 혼자 장사하시는 할머니의 손맛이 예사롭지 않다.

환영반점 짬뽕은 여행자에게 추억을 선사할 맛이다. ⓒ이병철

바지락과 홍합, 오징어가 듬뿍 들어간 국물은 그야말로 진국이다. 짜장면과 탕수육은 정말 어이없는 수준이고, 통닭을 함께 파는 장사 솜씨도 서툴고 투박하지만 짬뽕만은 제대로라서 당황스럽다. 도대체 왜 맛있지? 국물까지 남김없이 들이켜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격포로 가는 여객선을 타기 전 허름한 섬마을 반점에서 먹는 짬뽕 한 그릇은 섬을 떠나는 여행자에게 얼큰한 추억을 선물한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인 조르바>에 이렇게 썼다. “따사로운 가을날 낯익은 섬의 이름을 외며 바다를 헤쳐 나가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쉬 천국에다 데려다 놓을 수 있는 것이어서 나는 좋아한다. 그곳만큼 쉽게 사람의 마음을 현실에서 꿈의 세계로 옮겨 가게 하는 곳은 없으리라”라고.

나는 이 계절 임수도, 형제섬, 왕등도, 식도 등 정겨운 섬의 이름을 외며 바다를 헤쳐 내 마음을 위도라는 천국에다 데려다 놓는다. 그곳만큼 쉽게 사람의 마음을 꿈의 세계로 옮겨 가게 하는 곳은 없다. 홍길동이 꿈꿨던 율도국이 바로 위도 아니던가.


글·사진=이병철(시인·문학평론가)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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