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륙과 바다의 종합 선물세트 : 경북 영덕&울진 [시인 이병철의 ‘길에서 부르는 노래’ – 8]

이병철 시인은 2014년 문예지 『시인수첩』의 신인상 시 부문, 『작가세계』의 신인상 문학평론 부문에 각각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젊은 문학인입니다. 그는 시 쓰기와 문학평론 외에도 강의, 낚시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창작의 고통과 삶의 무게가 다가올 때 어디론가 훌쩍 여행을 떠납니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자연을 만나고, 여행지의 정서와 감동을 사진과 글로 담고 있습니다. 더농부는 그가 풀어내는 ‘길에서 부르는 노래’를 격주로 전해드립니다. 젊은 시인이 한국의 명소와 맛집을 다니며 보고 느낀 것들을 함께 즐겨보시면 좋겠습니다.


누군가 내게 어떤 색을 가장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파란색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파란색 중에서도 어떤 파란색이냐고 다시 묻는다면 바다의 파란색이라고 할 것이다. 세상의 그 많은 바다 중에서 어느 바다가 그토록 아름다운 파란색을 지녔는지 궁금해 한다면 나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울진과 영덕 바다에 가보라고 말할 것이다.

영덕 해맞이공원에서 바라본 동해바다. ⓒ이병철

“대진 지나 명사 이십리의 풍경이 관광엽서처럼 펼쳐”진 “울진을 지나 양정, 봉평해수욕장을 지난 다음 죽변”에 가야겠다. 경주에서 동해로 가는 윤대녕의 소설 <신라의 푸른 길>과 같은 방향으로, 청송에서 영덕을 거쳐 울진 죽변으로 향하는 길, 칠월의 태양이 맹렬하게 쏟아졌다.

금강산도 식후경, 헛헛한 속을 달래려 강구항의 한 노포(老鋪)부터 찾았다. 청송식당은 1976년부터 장사를 했다. ‘할배 방앗간’과 ‘머리 만들기 미용실’, ‘마법의 빵’ 등 주변 가게들과 끼리끼리 정겹고 정다운 강구시장 안에 있다. 식당이 아니라 오래된 가정집을 연상케 하는 외관, 허름한 마당을 지나 허름한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면 허름한 냄새가 풍기는데 그 옛날 시골 할머니 집에 갔을 때 나던 따뜻한 내음이다. 이 집은 미주구리회 전문이다.

경북 지역에서는 물가자미를 미주구리라고 부른다. 주인 할머니께서 뼈회로 잘게 썬 미주구리회 한 접시와 특제 양념초장을 내오셨다. 초장을 회에 몇 국자 부어 젓가락으로 부지런히 무쳤다. 한 젓가락 크게 집어 입안에 들이니 뼈회의 고소함과 양념초장의 새콤달콤함, 그리고 고추의 알싸함, 쪽파와 양파의 아삭함이 한 번에 느껴졌다. 반쯤 먹고 나머지 반은 밥에 비벼 회덮밥으로 먹었다. 밥을 주문하니 “우리 집 반찬 좀 먹어보라”며 김치와 젓갈, 멸치조림, 감자 볶은 것, 된장국을 내어주셨다. 마음까지 새콤달콤해지는 아름다운 식사였다.

영덕 강구항 청송식당 주인 할머니가 정겨운 손길로 내놓은 미주구리회 무침 ⓒ이병철

축산항에서부터 고래불까지 이어지는 해파랑길은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 차창 너머로 푸른 그림들이 늘어선 화랑이 열린다.

자연이라는 거장의 작품들, 해맞이공원에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풍력발전단지의 거대한 풍차가 푸른 바람을 일으킬 때마다 몸이 떠오르고 등에서 날개가 돋아나는 것만 같았다. 영덕 바다의 푸른빛에는 보는 이로 하여금 수평선 끝까지 날아가고 싶게 만드는 아득한 신비감과 황홀감이 있다.

푸른빛에 넋을 잃는 사이 고래불에 도착했다.

고래불 해수욕장 입구에 설치된 조형물 ⓒ이병철

고래불이라는 지명은 고려 말의 대학자 목은 이색(李穡)에 의해 붙여졌다. 어린 시절 산에 올랐다가 바다에서 고래들이 흰 물줄기를 뿜으며 뛰노는 모습을 보고 “고래불”이라고 외쳤다 한다. ‘불’은 ‘뻘’의 옛말로 고래불은 고래뻘, 즉 고래가 드나드는 해안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고래가 놀지 않는 해안, 하지만 내 눈 앞에 펼쳐진 고래불 바다는 언젠가 돌아올 범고래, 혹등고래, 귀신고래를 향해 싱그러운 손짓을 하고 있었다. 영덕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대게지만, 먼 옛날 병곡 바다엔 대게만큼이나 고래가 우글거렸을 것이다.

그 많던 고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고운 모래와 푸른 파도가 아름다운 고래불 해변 ⓒ이병철

후포를 지나 울진에 들어서자마자 곧장 내륙으로 차를 몰아 금강송면 하원리로 갔다. 그곳에 부처의 그림자가 비치는 불영사가 있기 때문이다.

금강송면 하원리는 울진 바다로부터 불과 18km 떨어져 있지만, 천축산 소나무 숲의 울울창창함이 바다를 잠시 잊게 만든다. 수 만년 솔잎을 삼켜 온몸이 에메랄드빛으로 물든 불영사 계곡, 15km에 달하는 청동거울 물길은 웅장함과 세밀한 아름다움을 함께 뽐낸다. 계곡은 그저 바위와 물이 아니라 여울 소리, 물 내음, 새 소리, 나무 그늘, 수면에 비친 하늘, 나비 날개, 돌 틈으로 숨어드는 물고기가 한 몸을 이룬 유기체적 우주다.

불영사 진입로 구간에서는 물가로의 접근이 제한되지만 불영사 일주문을 나와 계곡 중류로 내려가면 누구나 그 차고 맑은 우주에서 탁족과 천렵을 즐길 수 있다.

불영사 계곡 에메랄드 물빛(왼쪽 위)과 천축산 울창한 소나무들(오른쪽 위). 불영사 일주문으로 들어서면서 속세와 잠시 이별한다. ⓒ이병철

불영사는 단정하고 아름다운 절이다. 규모가 큰데도 관리가 잘 되어 있는 점이 마음을 흡족게 했다. 미관을 해치는 현수막이나 공사 자재는 볼 수 없었고, 나무와 꽃, 채마밭을 가꿔놓은 섬세함만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두 번 놀라고 세 번째, 비구니 사찰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무릎을 쳤다. 구석구석 정갈함에는 다 이유가 있던 것이다.

특히 불영사는 사찰 음식이 맛있기로 유명하다. 매년 가을마다 사찰음식축제를 열어 사람들에게 건강한 자연 밥상을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불영사에선 스님들이 직접 농사를 지어 음식을 만드는데, 김치와 된장은 속인(俗人)들이 그 비법을 탐낼 정도라고 한다. 절의 회주인 일운스님은 사찰음식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이번엔 맛보지 못하고 일주문을 나서지만, 다음엔 꼭 먹어보리라, 다짐했다.

단아하고 정갈한 불영사 경내 ⓒ이병철

천축산 숲그늘에서 나와 다시 바다로 향했다. 송강 정철이 ‘관동별곡(關東別曲)’에서 “바다 밖은 하늘인데 하늘 밖은 무엇인가?”라고 노래한, ‘하늘의 끝’ 같은 바다가 울진 망양정에서 바라보는 동해다. 망양정에서 망망대해를 보며 정철은 ‘세상의 끝’, 즉 우주와 저승에 대한 상상을 했던 것이다. 망양정에 오르니 파도가 끊임없이 소나무 향기를 밀어 올렸다. 술 마신 것도 아닌데 향기에 취했을까? 아무리 눈을 씻어도 수평선이 희미했다. 어느 것이 바다고 어느 것이 하늘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19년 전 스무 살 여름, 학과에서 망양정으로 ‘신라의 푸른 길’이라는 문학 답사 기행을 왔다. 푸른 바다 앞에서 그 아이의 웃음은 더 눈부셨다. 그때 미친 듯 짝사랑하던 여학생은 지금 두 딸의 엄마가 됐다. 내가 정말 그 시간을 살았었나? 모든 게 꿈만 같다.

망양정 너머 동해의 부윰한 물금이 마음으로 스며들 때 비로소 알았다. 사랑과 미움이 한 몸이라는 것을, 그리움과 기다림도, 어제와 오늘도, 삶과 꿈도 모두 물거품이 된다는 것을.

관동팔경 중 하나인 울진 망양정에서 동해를 바라보았다. ⓒ이병철

드디어 전날 캠핑으로 꼬질꼬질해진 몸을 씻을 수 있게 됐다. 덕구온천리조트에 도착해 콘도 객실에 체크인하자마자 ‘대온천장&스파월드’로 내려갔다. 덕구계곡에는 4㎞의 송수관이 설치돼 있다. 이 송수관은 땅에서 솟는 온천수를 실어 나른다. 덕구온천리조트는 우리나라에서 단 한 곳뿐인 자연용출온천 관광 시설이다. 칼륨, 칼슘, 철, 중탄산, 불소, 나트륨, 마그네슘, 라듐, 황산염, 탄산, 규산 등이 함유되어 약알칼리성을 띠는 이곳의 온천수는 사철 자연용출온도 42.4℃를 유지한다. 그 물로 온천욕을 하면 신경통 완화 및 피부미용에 좋다고 한다.

행정안전부에서 지정한 ‘국민보양온천’ 시설인데, 까다로운 자격요건을 모두 충족했다. 인체유해성분 안전기준 25℃ 이상의 온천수를 하루 300t씩 양수할 수 있으면 ‘일반온천’으로 개발 및 이용이 가능하지만, ‘국민보양온천’의 기준은 훨씬 엄격하다. 온천수는 35℃ 이상이거나 25℃ 이상인 경우 유황과 탄산 등 인체에 유익한 성분을 1000㎎/ℓ 이상 함유하여야만 한다. 그 밖에도 주변에 빼어난 자연 경관이 있어야 하며, 숙박 및 편의 시설 등을 갖추어야 보양온천으로 인증 받을 수 있다.

덕구온천 노천탕에서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신나게 놀았다. ⓒ이병철

스파는 실내와 야외 시설로 나누어져 있는데, 수영모와 수영복을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야구모자와 반팔, 반바지도 허용된다. 다만 면 소재의 티셔츠는 지양하는 게 좋다.

인공 야자수와 분수, 선베드가 이국적 풍경을 연출하는 실내 스파에는 평일임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바깥으로 나가 노천 레몬탕과 녹차탕, 히노끼탕, 폭포수 냉탕에 번갈아 몸을 담갔다. 자연용출온천수는 몸 이곳저곳은 물론 그동안 도시에서 쌓인 피로와 불안, 근심들까지 깨끗하게 씻어주었다.

대게 빛깔로 익어가는 울진 죽변 저녁에서 대게를 먹기로 했다. ⓒ이병철

목욕을 마치고 대게를 먹으러 죽변항에 갔다. 죽변(竹邊)은 대숲의 기슭이다. 큰(大) 게가 아니라 다리 생김이 대나무를 닮아 대게다. 박달나무처럼 속이 꽉 차 살이 단단하면 박달대게다. 즉 박달대게 한 마리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심어진 셈이다.

‘뉴 태평양 대게 횟집’에서 대게와 오징어 회를 구입했다. 대게를 찌는 20분이 마치 20년처럼 느껴졌다. 대게가 상에 오르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나 묵언의 수행자가 된다.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대게가 상에 올랐다. 은빛 스테인리스 쟁반 위 크고 아름다운 선홍빛 대게가 내 눈엔 수평선을 가르고 솟아오르는 태양보다 장엄하다. 집게발 하나를 집어 들었다. 살이 꽉 차다 못해 흘러넘쳤다. 게 다리를 든 것인지 닭다리를 든 것인지 헷갈려 하면서 게살을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달달하고 짭조름한 육즙이 입 안에 팡팡 터졌다.

게살 한 입 먹고 소주 한 잔 마시다 보니 어느새 테이블엔 게 껍질과 빈 소주병만 쌓여 있었다. 대게 등짝지에 눌러 담은 내장 볶음밥까지 다 먹고서야 대게 탐미(耽味)와 탐식(貪食)을 마쳤다.

대게와 오징어와 도다리회로 차린 한상. 통통한 대게 살이 인상적이다. 이 먹방은 볶음밥까지 먹어야 끝이 난다. ⓒ이병철

그날 밤 꿈엔 어릴 적 겨울마다 동네에 오던 대게 용달트럭이 그리운 이들의 얼굴을 가득 싣고 탈탈탈, 엔진 소리를 내며 기어 왔다. 꿈속에서도 게 찌는 냄새가 나 코를 심하게 골았다. 잠귀로 들은 용달차 엔진 소리는 내 코 고는 소리였던 것이다.


글·사진=이병철(시인·문학평론가)

정리=더농부


▽클릭 한 번으로 식탁 위에서 농부들의 정성을 만나보세요!▽

▽더농부 구독하고 전국 먹거리 정보를 확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