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蘭) 널 사랑해 [재미있는 농업이야기 87]

난(蘭)은 단어 자체가 주는 특별함이 있다. 동양 문화에서는 사군자의 하나다. 시(詩), 서(書), 화(畵)에 많이 등장하며 부귀, 지조, 그윽한 향기를 상징해 왔다. 동양에서 난초를 그릴 때는 내면의 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난을 그린다고 하지 않고 난을 ‘친다’고 표현했다. 난을 치는 행위는 선비의 정신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렇게 단정하고 청초한 매력을 뽐내는 난은 사실 극히 일부다. 지구상에는 놀랍도록 다양한 종류의 난이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날에는 번식이 어려워 고가에 거래됐고, 주로 특권층의 사랑을 받았다. 최근에는 대량증식이 가능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식물이 됐다.

모양도 성질도 제각각…난이 이렇게 많았난?

난은 800여 속 3만여 종을 포함하고 있다. 겉모습뿐 아니라 생육조건도 다양하다. 원예적으로는 동양란, 서양란으로 나눌 수 있다. 동양란은 난 종류 중 차지하는 비율이 낮다. 꽃뿐만 아니라 우아하게 휘어진 잎을 포함한 식물 전체가 모두 감상 대상인 것이 특징이다. 서양란은 일반적으로 열대·아열대가 원산지다. 보통 꽃이 크고 색이 화려하며 향이 강한 종류가 많다.

맨 왼쪽 온시디움은 지생란, 오른쪽 카틀레야와 팔레놉시스는 착생란이다. ©농촌진흥청

뿌리를 내리는 습성이나 줄기에 따라서도 난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뿌리를 땅에 내리는 난은 지생란, 나무나 바위에 붙어 사는 난은 착생란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지생란으로는 심비디움과 온시디움 등이 있고, 착생란으로는 카틀레야, 팔레놉시스 등이 있다.

한 포기에 한 줄기만 자라는 것은 단경성, 한 포기에서 여러 줄기가 자라나는 것은 복경성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단경성 난으로 팔레놉시스, 반다가 있고, 복경성 난으로는 카틀레야와 칼란세, 심비디움 등이 있다. 식물체 크기도 다양하다. 아주 작게는 3㎜부터 가장 큰 것은 30m까지 있다.

반다는 한 포기에 한 줄기만 자란다. ©농촌진흥청

어디에나 있지만 물을 좋아해

난은 종류가 다양한 만큼 지구상 거의 모든 지역에 서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지방을 제외한 열대우림에서 한대(寒帶)지방에 이르기까지 넓게 분포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대다수는 열대우림지역(80%)에 가장 많이 자생하고 아열대(20%), 온대지방(1.0~1.5%), 아한대 지역에 극소수가 분포한다.

밀토니옵시스는 산지에서 자생한다. ©농촌진흥청

난의 세계 3대 자생지로는 아프리카 중남부, 동남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중남미를 꼽을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대륙에 자리 잡고 있지만, 원예적인 가치가 높은 난은 대부분 강수량이 1,500~2,000㎜인 산림지대에 몰려있다.

우리나라 전역에서도 난 100여 종이 자라고 있다. 특히 제주도는 국내 난 중 약 70%가 집중적으로 자생하고 있어 난의 보고라 불린다. 대표적으로는 나도풍란, 풍란, 새우난초, 복주머니난, 해오라비난초 등이 있다.

오리, 발레리나, 원숭이까지 닮았다

신이 만든 한 떨기 예술 작품 그대로!

일반적인 난의 기본 구조는 잎과 줄기(벌브), 뿌리, 꽃이다. 종에 따라 모양이나 구조가 독특한 난도 있다. 난 꽃은 외떡잎식물 꽃 중에서 가장 진화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종에 따라서 혹은 같은 종일지라도 형태와 색상이 매우 다양하다.

Caleana major, Caladenia melanoma, Dracular simian은 독특한 생김새로 유명한 난이다. ©농촌진흥청

꽃이 표준형에서 벗어나 특이한 모습을 띠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오리 모양을 닮은 Caleana major, 발레리나 모양을 닮은 Caladenia melanoma, 원숭이 모양을 닮은 Dracular simian가 있다. 국내 야생 자원 중 해오라비 난초는 날개를 활짝 편 새의 모습을 닮았다. 독특한 자태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해오라비 난초는 백로과에 속하는 해오라비가 나는 모습을 닮았다. ©농촌진흥청

새로운 난 만들기…난제야 난제!

양란이 유럽에 건너간 이후 인공교배가 활발히 이뤄졌다. 전에 없던 새로운 종과 속이 세상에 소개됐다. 꽃의 색과 모양, 크기 등 여러 가지 요소가 다양해졌다. 연구 방향은 시대의 트렌드에 따라 달라졌다.

난은 꽃가루가 덩어리져 있다. 이를 화분괴라 부른다. 난을 교배하는 전통적인 방법은 화분괴를 암술머리에 삽입하는 것이다. 교배 후 수정이 돼도 종자가 성숙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린다.

난은 종자 성숙, 개발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농촌진흥청

다른 식물의 씨앗에는 영양분 저장소가 있다. 싹을 틔울 때 이 저장소에 있는 영양분을 사용한다. 그런데 난에는 영양분 저장소가 없다. 그래서 난을 발아시키려면 싹을 틔울 수 있는 환경을 인공적으로 만들어줘야 한다. 자연에서 번식한 난은 토양 속 난균(蘭菌, Mycorrhiza)의 영양물을 얻어 증식된 것이다.

난은 품종 개발은 보통 약 10년 정도 걸린다. 큰 기다림이 필요한 일이다. 이렇게 개발한 유망한 품종은 난 축제에서 소개하고 정보를 교류한다. 난 축제는 세계 곳곳에서 개최되고 있다. 유러피안 오키드쇼와 Kew 영국왕립식물원의 난 전시회, 뉴욕 오키드 쇼, 대만 국제 난 박람회(Taiwan International orchid show)나 일본의 그랑프리 국제 난 축제 등이 대표적이다.

Kew 영국왕립식물원의 난 전시회에서 다양한 난을 선보이고 있다. ©농촌진흥청

고상하게 감상만?…먹고 마시기도 OK

난을 ‘먹는다’, ‘마신다’고 하면 몹시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난을 약, 식재료, 향신료로 썼다.

난은 실용적 가치도 있는 식물이다. ©농촌진흥청

식용으로 가장 사랑받는 난은 바닐라 난이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바닐라 향은 바닐라 플라니폴리아(Vanilla planifolia)라는 난에서 유래된 것이다. 디저트. 커피 등의 대표적인 향신료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천연 바닐라빈 수요가 늘고 있다. 바닐라빈은 바닐라꽃을 자가 수정하고 나서 생긴 꼬투리를 가공해 만든다.

터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난초의 알뿌리로 전통차를 끓여 마셨다. 알뿌리를 말린 다음 가루 내 만드는 차다. 이 차는 감기 예방, 소화불량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석곡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지생란이 한방 약재로 쓰인다. 해독, 지혈, 고혈압 및 각종 염증 등에 효과가 있다. 그 밖에도 일부 서양란은 고급 향수 원료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밤에 다녀간 우렁각시?…공기 정화하는 난각시

난은 일반 식물과 생활 리듬이 다르다. ©농촌진흥청

난은 미세먼지를 비롯한 여러 유해 물질을 흡착·흡수해 제거할 수 있다. 특히, 탄산가스 제거에 효율적이다. 대부분 식물과 달리 밤에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낮에 광합성을 하는 식물을 ‘CAM 식물’이라고 한다. CAM 식물은 밤공기를 정화하는 능력이 우수하다.

대표적으로 호접란은 난 중에서 밤에 CAM 대사를 하는 성질이 가장 강하다. 실내 적응력이 뛰어나 초보자도 쉽게 키울 수 있다. 낮에 햇볕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두면 꽃을 오래도록 감상할 수 있다. 더불어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도 좋아져 공기 중에 있는 독성 물질 크실렌을 잘 제거한다.


글= 안혜련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화훼과 농업연구사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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