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하제면소 : 미스터리 칼국수 [이용재의 식당 탐구 – 10]

이용재 음식평론가는 한국 식문화를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비평가입니다. 식재료, 조리도구, 조리 문화, 음식과 관련한 문화 콘텐츠까지 우리가 잘 몰랐던, 혹은 우리가 쉽게 지나쳤던 것들을 친절하게 설명해 줍니다. 앞으로 이용재 평론가가 격주로 더농부에 ‘식당과 음식 이야기’를 펼칩니다. 맛있는 한 끼에서 그가 얻은 통찰을 함께 나눠 보실까요?


파주 교하제면소는 돼지뼈 국물에 칼국수를 말아낸다. ⓒ이용재

돼지등뼈를 좋아한다. 일단 돼지고기치고도 저렴해서 한 보따리 사도 지갑이 많이 축나지 않는다. 원래 엄청 풍성한 부위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격 덕분에 갈음이 된다. 푹 삶으면 어렵지 않게 발라낼 수 있는 살로는 나름 뼈에 붙어 있는 고기의 진한 맛을 즐길 수 있다. 기름을 걷어내고 균형을 좀 맞춰주면 국물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어린 시절 추억의 음식 가운데 하나로 돼지뼈 국물로 끓인 콩비지가 있어서 겨울이면 가끔 흉내를 내본다. 한편 카레를 끓여도 좋다. 뼈에서 살을 꼼꼼히 발라낸 뒤 채소와 함께 끓인 카레에 더해 마무리한다. 고춧가루 양념을 풀면 감자탕의 기초가 된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이런 돼지뼈 국물에 칼국수를 말아내는 곳이 있다. 바로 파주 교하동의 교하제면소다. 업장에 도착하면 음식을 채 생각하기도 전에 시스템부터 눈에 들어온다. 음식점보다도 더 커 보이는 공간을 대기실로 삼고 카카오톡을 통한 호출 시스템으로 관리를 하고 있었다. 이런 방문자 관리 시스템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일상으로 비집고 들어온 이후 한층 더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드러내 놓고 고급을 표방하지 않는, 말하자면 일상에 가까운 한식당에서 활용한다는 점이 왠지 좋아 보였다. 한편 교외이므로 가능한 상황일 수도 있겠지만 넉넉하게 마련해 놓은 대기 공간도 훌륭했다. 한식당은 대체로 대기 공간에 인색하다. 적절한 대기 공간을 마련해 놓지 않아 길거리는 물론 식사를 하고 있는 식탁 옆에 서 있는 경우가 얼마나 허다한가? 작다면 작을 설정이지만 고민의 흔적이었기에 음식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기에 충분했다.

식당 위에 적힌 제면순수령. 국수는 물과 소금 밀가루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용재

시스템을 통해 대기하고 있다가 자리를 잡고 앉으면 가장 먼저 업장의 ‘제면순수령’이 눈에 들어온다. ‘국수는 물과 소금 밀가루만으로 만들어야 한다.’ 독일의 맥주순수령에서 착안한 듯한, 고작 한 줄짜리 제면순수령에서 행간을 읽는다. ‘아, 면에 소금 간을 확실히 하겠구나.’ 소금 간이라면 당연히 하는 것 아니냐고 으레 넘겨짚기 쉽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요즘의 한식은 전반적으로 소금 간에 인색하고 매운맛에 후하다. 같은 자극은 아니지만 고춧가루를 비롯한 매운맛으로 혀를 자극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특히 국수류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면의 반죽에 소금 간이 되어 있지 않아 국물과 묘하게 맛이 겉돈다. 칼국수는 물론, 평양냉면도 대체로 그렇다. 국수, 좀 더 크게 보아 밀가루 음식 전체에서 소금의 역할은 맛의 차원을 넘어서 매우 중요하다. 밀가루의 탄성, 즉 쫄깃함을 책임지는 단백질인 글루텐에게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소금 간을 하지 않음으로써 잃는 건 비단 간뿐이 아니다.

교하제면소 김치는 겉절이라고 불러달라기엔 너무나 겸손할 정도의 잘 익은 맛을 보여준다. ⓒ이용재

이처럼 접객과 제면순수령으로 높아진 음식에 대한 기대를 먼저 식탁에 등장하는 김치가 일단 최선을 다해 채워준다. 딱 먹음직스러울 정도로만 빨간 배춧잎을 입에 넣고 씹으면 매운맛보다 신맛과 감칠맛이 먼저 혀를 반겨준다. 보기 드물게 잘 익어 맛이 제대로 든 김치를 대체 언제 먹어봤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김치에 대한 기억은 빨갛고 자욱한 고춧가루로 점철되어 있다. 이렇게 맛이 잘 든 김치를 교하제면소에서는 ‘겉절이’라 부른다니 지나친 겸양은 아닐까 생각하는 사이 칼국수가 식탁에 등장한다.

일단 ‘센터피스’라고 할 수 있는 돼지 등뼈가 시선을 사로잡는데 맛을 보면 그저 장식이 아니다. 살점이 젓가락으로도 발라낼 수 있을 정도로 푹 익었으면서도 뼈에 고스란히 잘 붙어 있다. 그게 뭐 대단한 장점이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요즘 경향을 생각해 보면 확실한 미덕이다. 요즘 음식점들은 모양을 살리기 위해 뼈에 붙은 고기를 푹 익히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센터피스를 지나 ‘본체’인 칼국수를 맛보면 면은 훌륭하지만 국물은 아쉽다. 일단 면은 제면순수령에서 소금을 언급하였듯 김치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고도 즐길 수 있을 만큼 간이 적극적으로 잘 되어 있다. 그동안 간이 안 된 면에 익숙해진 입맛이라면 조금 짜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국물과 면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사실 이 정도가 적당하다. 한편 소금을 적극적으로 써 글루텐도 잘 발달했는지 얇고 야들야들하면서도 나름의 힘을 지닌 면의 질감도 훌륭하다.

반면 국물은 너무 돼지뼈에만 기댔는지 두께와 짜임새가 부족했다. 서두에서 잠깐 언급했듯 돼지뼈는 그 자체로 깊은 맛을 내주지 않는다. 그래서 균형을 맞춰줄 필요가 있는데 그런 과정을 세밀하게 거친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면에서 우러나온 전분이 불어넣는 두께 덕분에 약간의 착시 현상은 느낄 수 있다.

비빔국수는 산뜻한 맛을 자랑하지만 고기 소보로는 다소 퍽퍽한 것이 단점으로 작용한다. ⓒ이용재

칼국수에서 국물이 아쉽다면 이를 아예 들어내면 어떤 음식이 될까? 많은 국수-냉면 포함-집에서 물국수와 일대일 대응하는 비빔국수를 고안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본다. 핵심은 양념장의 농도와 짜임새로, 대체로 지나치게 뻑뻑하거나 고춧가루의 쓴맛이 강한 가운데 이를 국물만큼 많이 끼얹어 내 식사의 끝에서는 미각을 거의 파괴하다시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교하제면소의 비빔국수는 성공적이다. 국물 대신 초고추장 양념장을 면에 자작하게 부어 내는데 전반적으로 매우 산뜻하다. 일단 양념이 묽고 유연한 편이라 야들야들한 면과 잘 어우러지는 한편, 매운맛이 과하지 않고 신맛과 살짝 올라오는 단맛에 주로 기댄다.

이처럼 비빔국수가 맛의 균형과 전반적인 완성도에서 칼국수보다 낫다고 느끼는 가운데, 분명한 단점은 있으니 바로 고기 ‘소보로’이다. 칼국수의 ‘센터피스’인 뼈에 대응시키기 위해 다진 돼지고기를 볶아 일종의 건더기로 활용하는데, 그 자체로는 간도 적극적으로 잘 되어 있고 맛도 좋지만 기름기가 없는 부위인지라 퍽퍽하다. 뼈칼국수를 표방하는 음식점이라면 사실 비빔국수에도 뼈에서 발라낸 고기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칼국수에 딸려 나오는 등뼈의 살코기가 얼마나 부드럽게 잘 삶아졌는지 맛본 뒤라면 비빔국수의 고기 소보로는 다소 아쉽게 다가온다.

만두는 믿기 힘들 정도로, 각종 냉면집의 크고 싱겁고 퍽퍽한 만두들이 석고대죄를 해야 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이용재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두가 있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나는 이 만두를 여러 번 먹었지만 아직까지 믿지 못하고 있다. 한식 만두가 정말 이럴 수도 있구나. 과연 이 만두는 음식점에서 직접 만드는 걸까? 혹시 외주를 주는 것은 아닐까? 적당히 힘이 있는 피 속에 입자감이 살아 있는 고기와 간이 분명한 채소가 씹히니, 흔히 먹을 수 있는 한식 만두의 약점을 한입에 모두 보완해 준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잘 만든 만두가 가격마저 믿을 수 없는 6개 5500원이다. 왕관을 씌워서 한국 만두 개선 캠페인에 홍보대사로 내세우고 싶은 욕구를 감출 수 없는, 완성도 높은 만두를 칼국숫집에서 먹고 있다니. 한국의 모든 만두, 특히 각종 냉면집의 크고 싱겁고 퍽퍽한 만두들이 석고대죄를 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만두다.

교하제면소를 다녀오고 나면 며칠 동안은 머리가 복잡해진다. 일단은 그런 만두를 먹었다는 사실을, 곧 이곳 음식 맛의 표정을 믿을 수 없어 복잡해진다. 그리고 그것은 완성도에 대한 찬사와는 결과 방향성이 조금 다르다. 이곳은 어찌해서 간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을까? 양식도 아니고 한식, 그것도 면이라면 기존의 셀 수 없이 많은 예들이 거의 반사적으로 한 방향으로 맛의 설계를 몰고 갈 가능성이 높다. 그런 힘에 이끌리지 않으려면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어야만 할 텐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교하제면소는 여러모로 나에게 미스터리한 음식점이다.

교하제면소

경기 파주시 탄현면 평화로 725

0507-1444-8994

<메뉴>

뼈칼국수 1만원

비빔칼국수 1만원

고기만두 5500원

<영업시간>

오전 11시30분~오후 8시30분

주문마감 오후 2시30분, 오후 7시30분

(휴식시간 오후 3시 30분~5시)

월요일 휴무


글·사진=이용재(음식평론가·번역가)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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