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산청에 7,00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 바나나 농장이 있다. 지리산 자락 산청에 바나나 농장이 있다는 것도 신기한데 유기농 바나나를 키우는 농장이라고 한다. 바로 산청군 생비량면에서 강승훈 대표(40)가 운영하고 있는 ‘올 바나나’다. 강 대표는 내륙 바나나 재배 1호 농가이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유기농 바나나를 재배하고 있다.
산청군 산청읍과 인접한 생비량면은 대부분의 땅이 밭과 산이다. 청정한 자연환경에 힘입어 유기농업이 유리한 지역이기도 하다. 강승훈 대표는 이곳에서 황무지에서 싹을 틔우듯 ‘올 바나나’를 정성껏 키워냈다. “국내 바나나 산업 진흥을 위해선 바나나 농가들이 늘어나야 한다”며 ‘올 바나나’의 도약 기반을 차근차근 다져오고 있는 강 대표를 농장에서 만났다.
수입산과 달리 방부제 없는 국내산!
여기에 유기농 더하려 산청에 왔죠
강승훈 대표는 제주도에서 태어나고 4살부터 경남 진주에서 자랐다. 부모님은 진주에서 파프리카 농장을 운영했다. 베트남에서 전자 관련 회사를 다니다 가업을 잇기 위해 돌아온 그는 5년 동안 부모님 농장에서 농사일을 배웠다. 파프리카는 농업인들 사이에서 고소득을 내는 작물로 유명하지만 당시 그의 눈에는 한계가 보였다.
“지금도 파프리카는 유망한 작물입니다. 하지만 파프리카 농장은 지속적으로 많아지고 있죠. 일본으로의 수출량이 많은 작물이다보니 대외적인 이슈에 따라 판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10년, 20년 후에도 안정적으로 재배할 대체작물을 고민한 계기죠.”
강 대표는 부모님 농장에서 바나나를 길렀던 기억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경상남도 지역에서 바나나 재배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시도한 사람이 없을 뿐이었다. 무엇보다 내륙에서 자란 바나나라면 방부제를 잔뜩 묻히고 온 수입산이나 바다를 건너오는 제주도산보다 매력적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바나나 농장을 지을 땅을 찾으려고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다 산청에 터를 잡았다. 그런만큼 산청의 입지 여건에 대한 자랑이 쏟아졌다. “일단 위치가 좋습니다. 20분만 나가면 진주 시내로 연결돼 도시와 농촌 생활이 모두 가능하죠. 농장이 위치한 생비량면은 경남고속도로와 연결돼 어느 지역이든 하루면 유통이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산청이 가진 이미지에 끌리긴 했지만요. 산 좋고 물 맑은 곳에서 자란 유기농 바나나를 소비자의 식탁에 올리고 싶었습니다. 방부제 없는 국산 바나나가 깨끗한 자연환경에서 자란다면 더할나위 없이 믿고 먹을 수 있는 제품이 될거라고 믿었죠.”
시행착오 말로 다할 수는 없지만…
노하우 쌓여 이제는 베테랑 농부
뭐든지 처음은 어려운 법이다. 강승훈 대표도 그랬다. 2017년에 처음 바나나 나무를 심었을 때만 해도 국내 바나나 농가는 고작 한 두 군데뿐이었다. 그마저도 바다 넘어 제주도에 있었다. 그는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날아가 선배 농가들에게 재배법을 배웠다. 농장을 시작할 때 필요한 어린 바나나 나무도 멘토의 농장에서 구했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열대과일은 우리나라에서의 표준 재배법이 없다. 고추, 토마토 등 많이들 기르는 작물은 농업 관련 기관에서 영농기술을 보급하지만 바나나는 달랐다. 강 대표는 밤낮으로 인터넷에 바나나 재배법을 검색했다. 관련 자료들을 하나씩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영어로 된 자료를 읽고 필요하면 번역기를 돌려가며 공부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야심 차게 시작한 그였지만 지금까지 겪은 시행착오에 대해 말하자면 밤을 새울 수도 있을 정도다. “첫 해에는 벌레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말그대로 농장으로 벌레들이 ‘헤쳐 모여’ 했죠. 2018년도 5월에 수확하려 전년도 6월부터 애써 기른 나무에 봄이 되자 온 들판의 나방들이 알에서 깨어나 몰려들었습니다. 유기농 재배니 살충제를 칠 수도 없었죠. 궁여지책으로 유기농 인증을 받은 약재를 3일에 한 번꼴로 농장에 뿌렸습니다.”
새벽부터 일어나 약재를 뿌리기 시작하면 5시간 정도가 걸렸다.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튀어나왔지만 이를 악물고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는 오기로 버텨냈다.
올해 6년차에 접어드는 그는 노하우를 터득한 베테랑 농부가 됐다.
첫 번째 노하우는 닭이다. 넓은 농장에서 일하다 보니 쓸쓸함을 느껴 몇 마리 풀어둔 것이 시작이었다. 생각보다 바나나 나무와 닭은 찰떡궁합이었다. 닭은 해충을 잡아먹고 똥을 싸면 바나나 나무는 양분을 먹고 자라 건강해졌다. 농장 구경을 온 손님들도 닭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재미있어 한다.
두 번째 노하우는 천적곤충이다. 천적곤충은 작물에 해가 되는 해충을 잡아먹는 곤충이다. 유기농 재배를 하며 자연스럽게 자연이 가진 힘으로 농작물을 관리하는 법을 알게 됐다. 이제는 일년에 유기농 약재 한 두번이면 충분하다.
마지막 노하우는 클로렐라 배양액이다. 식물성 플랑크톤의 일종인 클로렐라를 배양해 바나나 나무에 뿌린다. 아마 바나나 재배에 클로넬라를 사용하는 농가는 올 바나나가 유일할 것이라 설명하는 강승훈 대표는 클로렐라를 사용한 뒤로 바나나 육질이 단단해지고 나무가 건강해졌다며 웃어보였다.
국내 바나나는 유망한 틈새작물
바나나 재배하는 후배 많아졌으면…
강승훈 대표는 국내산 바나나는 수요가 분명히 존재하는 작물이라고 말했다. 다만 수요에 부응할 수 있을 정도로 공급 규모가 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도 대형마트나 업체들이 원하는 물량을 우리 농장의 수량만으로는 다 공급할 수가 없어요. 수요는 있는데 공급이 못 따라가는 상황이죠. 바나나를 재배하는 국내 농가가 늘면 그만큼 공급 가능한 수량이 늘어나니 서로 협력해 더 큰 납품 계약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친환경 급식, 유기농산물 판매장, 대형마트 등 국내산 바나나를 원하는 수요자는 늘 있습니다. 다만 그들이 원하는 시기에 공급해줄 수 있어야 하죠.”
바나나를 내륙에서 기르면 소득은 얼마나 될까? 월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2022년 기준으로 연평균 매출을 내보면 매월 평당 12~13만 원 정도의 수익이 난다고 강승훈 대표는 설명했다. 운영비는 월평균 4~5만 원 정도 들었지만 갑자기 오른 전기세 때문에 앞으로는 더 오를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바나나 농사는 많은 인력이 필요 없다. 나무가 알아서 잘 자라기 때문이다. 운영비의 대부분도 난방비로 지출된다. 올 바나나는 7,000평 규모의 농장을 운영하기 위해 3명의 직원과 강승훈 대표만 일하고 가끔 부모님이 도와주시거나 바쁠 시기에는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한다.
생산자가 많지 않은 국내산 바나나는 아직 도매시장에서 정식 경매 품목으로 등록되지 않았다. 대신 인터넷 판매나 친환경 급식, 대형마트 등과의 납품 계약이 주된 판로다. 앞으로 바나나를 재배하는 국내 농가들이 늘어나 재배 노하우도 공유하고 프리미엄 바나나 시장을 확대하고 싶다는 강승훈 대표의 바람대로 곳곳에서 달큼한 바나나 향기가 풍기기를 바라본다.
더농부 에디터 장지영
nong-u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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