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순정 [시인 이병철의 ‘길에서 부르는 노래’ – 14]

이병철 시인은 2014년 문예지 『시인수첩』의 신인상 시 부문, 『작가세계』의 신인상 문학평론 부문에 각각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젊은 문학인입니다. 그는 시 쓰기와 문학평론 외에도 강의, 낚시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창작의 고통과 삶의 무게가 다가올 때 어디론가 훌쩍 여행을 떠납니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자연을 만나고, 여행지의 정서와 감동을 사진과 글로 담고 있습니다. 더농부는 그가 풀어내는 ‘길에서 부르는 노래’를 격주로 전해드립니다. 젊은 시인이 한국의 명소와 맛집을 다니며 보고 느낀 것들을 함께 즐겨보시면 좋겠습니다.


세상이 미워질 때면 강원도로 간다. 도시에서 아등바등하는 내가 안쓰러워질 때면 강원도로 간다. 조르주 아감벤은 “영리함이 일정한 한계를 넘어서면 어리석음을 필요로 한다”고 했는데, 도시적 욕망이 임계점을 넘어선 시대에 우리는 어리석게 보일 만큼 단조로운 삶으로 회귀할 필요가 있다. ‘어리석음’이란 단어는 어디까지나 도시인 시선의 편협한 발화다.

어리석음의 진짜 의미는 순정함, 맑음, 느림, 정직함이다. 내가 느끼기에 강원도는 여름보다 겨울에 더 순정하다. 폭설과 추위 속에서 침묵은 더욱 깊어지고, 풍경은 마치 정지된 듯하다. 세상살이 추위를 피해 더 추운 곳으로 가는 사람의 마음을 차고 맑은 눈꽃으로 환하게 밝혀준다.

새해가 됐으니 강원도에서도 가장 말없이 우직한 땅 정선에 다녀와야겠다. 세찬 바람으로 마음에 낀 먼지를 날리려면 먼저 정선과 태백에 걸쳐 솟아 있는 함백산에 올라야 한다.

함백산의 탁 트인 장관이다 ⓒ이병철

함백산은 1572m의 고산이다. 백두대간 태백산맥의 우뚝 솟은 봉우리 중 하나로 장쾌하고 호방한 위엄을 뿜어낸다. 고려 유신들이 이성계에게 굴복하는 대신 함백산 기슭 두문동에 은거하면서 개경을 그리워한 것이 ‘두문불출(杜門不出)’의 유래다.

1960년대 탄광업이 부흥할 땐 전국 석탄 생산량의 30퍼센트 이상이 함백산 탄광에서 채굴됐다. 그때 탄광 지반이 무너져 광부들이 목숨을 잃는 일이 잦자 광부의 가족들이 함백산 기원단에서 무사 안전을 빌기도 했다. 함백산 기원단은 예로부터 하늘에 소원을 빌던 민간신앙의 성지였다고 한다.

눈꽃이 내려앉은 겨울 소나무가 장엄하게 보인다. ⓒ이병철

1천500m가 넘는 고봉인데도 만항재 기슭 ‘하늘 아래 첫 마을’ 만항마을이 있는 덕분에 도로를 이용해 1천300m까지 오를 수 있다. 정상까지 오르는 여러 코스가 있지만, 평소 낚시나 하지 등산은 잘 다니지 않는 나로서는 몇 시간이 걸리는 장거리 코스는 부담스럽다. 봄산이나 가을산이라면 모를까 제대로 된 등산화도, 피켈도, 아이젠도 없는 내게 설산은 더더욱 무리였다. 그래서 차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 1천300m 부근의 KBS 중계소까지 차를 몰고 간 다음 거기서부터 올랐다.

온통 흰 눈에 덮인 산은 파란 하늘과 그 색채가 대비되며 천연의 아름다움을 뽐냈다. 나무마다 눈꽃이 피어 있어서 장관이었다. 숫눈 밟는 소리와 바람 속에서 나비 떼처럼 부유하는 눈발의 날갯짓에 귀를 달래며 쉬엄쉬엄, 40분 만에 정상에 올랐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이런 가성비 등산이 최고다.

해발 1572m 함백산 정상. 세상의 모든 바람이 여기서 태어나는 듯했다. ⓒ이병철

함백산 정상에 바람이 얼마나 세게 부는지, 거짓말 안 보태고 정말 날아가는 줄 알았다.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다가 손이 미끄러져 핸드폰을 놓칠 뻔했는데, 놓쳤으면 전화기가 휴지처럼 멀리멀리 날아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리저리 두 뺨을 마구 후려치는 강풍이 오히려 고마웠다. 도시 생활의 아늑함에 나른했던 정신이 번쩍 깼기 때문이다.

함백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백두대간의 설경은 언젠가 ‘광부 화가’ 황재형 화백의 그림에서 본 것이었다. ‘산을 베고 산을 덮고’, ‘검은 울음’, ‘탄천의 노을’, ‘귀가’, ‘사망진단서’, ‘아랫목’, ‘이른 장마’, ‘광부초상’, ‘어머니’ 같은 그림들 앞에서 가슴 저리고 눈물 나는 걸 어쩌지 못하던 날이 있었다. 황재형 화백이 그려낸 태백산맥의 풍경과 탄광 속 광부들의 삶에는 꾸며지지 않은 날것의 숭고함과 감동이 있다. 황재형의 삶을 들여다보면 더 먹먹해진다.

황재형은 전남 보성 사람이다. 1952년 태어나 중앙대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20대에 이미 명성을 얻어 성공의 길을 걸을 수 있었음에도 돌연 태백 탄광촌으로 들어가 세상과 단절하며 살았다. 광부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캄캄한 갱도에 들어가 석탄을 캤다. 그러면서 광부들의 삶과 탄광촌이 쇠락하는 모습, 태백의 자연을 캔버스에 그렸다. 30여년을 광부 화가로 살았다.

황재형 그림, ‘산을 베고 산을 덮고’

“70년대 후반부터 소재를 얻기 위해 탄광촌에 드나들었는데 어느 날 문득 더 이상 관찰자로서만 그곳을 기웃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 길로 짐을 싸 황지로 가는 열차를 탔습니다. 제대로 광부를 그리기 위해선 나 스스로 광부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백, 정동, 구절 탄광 등을 전전하며 광부 생활을 시작했지요.”

그는 “막장에선 삶의 마지막 희망이 별처럼 빛난다”면서 흑탄더미 속으로 팔을 집어넣어 별처럼 빛나는 것들을 만지고 끌어안고 울어 삼켰다. “예술가는 죽는 날까지 자기 작품을 온몸으로 사는 것”이라는 신념대로 자기 삶을 탄광 속에 불꽃으로 던져놓고 그 광휘가 밝히는 사람과 자연의 얼굴을 그렸다. 함백산의 아름다운 설경은 1960~70년대 탄광 노동자들의 검은 눈물을 하얗게 지웠지만, 그림은 잊지 않았다. 재현을 통한 기억이야말로 예술의 존재 이유다.

차 대놓고 40분 걸어 올라간 정상에서 친구와 함께 전문 산악인인양 허세를 부리며 사진을 찍었다. 그마저도 품 너른 함백산의 넉넉한 배려라는 생각이 들어 감사했다. 내려올 땐 30분쯤 걸렸다. 1시간 만에 1572m 고봉을 오르내린 것이다. 그것도 등산은 등산이라고 허기가 졌다. 산에 다녀왔으니 막걸리를 마셔야 할 것 아닌가. 정선 읍내로 차를 몰았다.

왼쪽부터 정선 고택 상유재의 정겨운 처마와 마루, 수령이 600년이나 된 뽕나무, 투박하지만 따뜻한 구들장 옛방이다. ⓒ이병철

하룻밤 묵어갈 곳은 정선의 이름난 고택인 상유재(桑惟齋)다. 무려 고려 말기에 지어졌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89호로 지정된 이 집에는 수령이 600년도 넘는 뽕나무가 있다. 뽕나무 상(桑)과 생각할 유(惟)를 써서 상유재인데, 뽕나무를 생각하는 집이면서 뽕나무처럼 생각하는 집이다.

600년을 살아온 뽕나무의 느긋한 지혜를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자 1시간 속성 산행이 더욱 우스워져 스스로 웃음이 났다. 늦은 오후의 정선 읍내를 느릿느릿 걷는 동안 이곳 출신인 전윤호 시인의 시집 <정선>에 등장하는 공설운동장, 솔밭, 역전 다리 같은 장소들을 애틋한 마음으로 지났다.

마침내 말 한 번 걸어보려

검은 교복 입고 뒤쫓던

역전 다리 위 백 미터

어두운 공설운동장에서

한 시간 미리 도착하고도

딱 그만큼 달아나버린 정신줄

목사님이 신자가 아니면 사귀지 말래

저주처럼 붉은 십자가에

돌팔매질하던 거리

나이 먹고 친구로 만나도

같이 마시고 함께 취해도

저만치 앞서 걷는 그녀와의 사이

작심하고 달려도 평생 건너지 못한

아우라지 건너편 솔밭 같은

백 미터 그 지긋지긋한

부탁받은 척 흰 봉투 들고

망설이며 서 있는 장례식장 안내판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이별과의 거리

—전윤호, 「백 미터」

콧등치기 국수. 순메밀면이 뚝뚝 끊어지며 콧등을 때린다고 해서 콧등치기다. ⓒ이병철

정선 아리랑시장에 있는 ‘팔도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수수부꾸미, 메밀전병, 배추전, 빈대떡 구성의 모둠전과 산초두부, 콧등치기국수에 곤드레막걸리와 황기막걸리를 먹고 마셨다.

왼쪽부터 수수부꾸미와 메밀전병, 배추전, 빈대떡, 산초두부와 막걸리, 정선 아리랑 노래비 모습이다. ⓒ이병철

겨울에 봄을 데리고 오는 강원도의 마음이 저녁 술상 위에 참 다정했다. 투박한데 따스한 풍경들, 단순하고 억세지만 정직한 음식들……. 막걸리 사발에 어리비치는 형광등 불빛이 마치 아우라지 강물에 반짝이는 윤슬 같았다. 기분 좋게 취해서는 읍내의 정선아리랑 노래비 앞에 서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흥얼거렸다.

상유재의 밤 또한 수수하면서 섬세했다. 댓돌 위 고무신 옆에 운동화를 벗어두고, 창호지 문틈으로 황소바람이 들어오다 나가는 방에 이불을 깔았다. 뜨끈한 아랫목에 등을 대고 누우니 고작 한 시간 등산에 곤죽이 된 몸이 재생되는 느낌이었다, 겨울바람에 얼어붙은 몸과 막걸리에 흥건히 젖은 마음을 말리면서 단잠을 잤다. 문밖에는 겨울바람 소리가 매서웠지만 꿈결은 고요하기만 했다. 저녁에 마신 막걸리 때문인지 뽕나무를 생각하는 방 안에서 자꾸만 뽕, 뽕,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아니다.

병방치 스카이워크 전망대에서 본 동강 밤섬의 한반도 지형이다. 스카이워크 유리가 맑았더라면 꽤 무서웠겠다. ⓒ이병철

다음날 아침, 개운하게 기지개를 켜고는 병방치 스카이워크 전망대에 올랐다. 아침 운동으로 이만한 게 없다. 강화유리로 된 스카이워크를 걸어서, 동강 물줄기가 한반도 모양의 밤섬 둘레를 말굽쇠처럼 감싸 안아 흐르는 절경을 내려다봤다.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겨울 정선은 어느 시간 어느 장소라도 눈과 귀와 마음을 씻어준다.

오대산 월정사 경내의 고즈넉한 오후 ⓒ이병철

병방치 전망대에서 내려와 이번엔 오대산으로 향했다. 서울로 가는 길에 들르니 동선이 자연스럽다. 월정사 경내의 고요함과 전나무 숲길의 소슬함이 번갈아 가며 마음에 평화를 안쳤다.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던 추억의 휴대전화 광고가 떠올랐다. 사진을 찍어야 해서 스마트폰은 꺼두지 못했지만, 세속의 욕망만큼은 잠시 내려놓고 여유롭게 걸었다.

그런데 육욕은 어쩔 수가 없어서, 점심 무렵이 되자 마음에 안쳐진 평화에서 부글부글 흰 김이 피어올랐다. 배고프다는 신호다.

강원도 영월 순정식당이다. 푸짐한 염소전골 한 냄비에 몸과 마음이 위로받는다. ⓒ이병철

뭘 먹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강원도 영동지방 내륙에 올 때면 꼭 들르는 영월 한반도면의 ‘순정식당’으로 곧장 차를 몰았다. 염소전골을 전문으로 하는 노포다. 국내산과 수입산 염소고기를 섞어 쓰지만, 그 덕분에 양이 푸짐하다. 맛은 말할 것도 없다. 염소를 좋아하는데, 여러 곳을 다녀봤지만 여기가 제일 맛있다. 맛있고 정겹다. 보양식은 원래 몇 계절 미리 먹는 거라더라. 들어와 앉기만 해도 벌써 건강해지는 느낌이 드는 집이다.

버너에 전골이 끓는 동안 밑반찬과 고봉밥을 내어주시는 할머니 손등 위로 문틈을 비집고 들어온 봄을 빌려온 햇살이 잠시 내려앉았다. 아, 그마저도 순정이었다.


글·사진=이병철(시인·문학평론가)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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