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저녁을 먹고 온 가족이 동네 한 바퀴 산책을 하러 나섰다.
저녁으로 고기를 배불리 먹기도 했고, 여유로운 주말 저녁이어서 우리 가족은 마음이 통했다. 아파트 뒤편으로 나 있는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니 동네 주말 텃밭이 보였다. 가을이라서 그런지 밭에는 배추와 무가 많이 보였다.
잠시 쉴 겸 우리는 텃밭 구경을 하면서 내가 초등학교 때 했던 주말농장 이야기를 꺼냈다. 친할머니 댁과 외할머니 댁이 모두 도시에 있다 보니 농촌에 갈 기회가 없어 엄마, 아빠는 텃밭을 분양받아 경험해 볼 수 있게 해주셨다. 사실 엄마, 아빠도 농사가 이때 처음이셨는지 첫해에는 시행착오를 많이 겪으신 것 같다.
그때는 어려서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집 가까이에 텃밭이 있어서 시간 날 때마다 우리 가족은 도시락을 싸서 텃밭에 자주 갔었는데, 매번 소풍 가는 것 같아 즐거워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봄에 아빠가 땅을 파서 고랑을 만드셨던 것, 텃밭에 물을 줄 때 물 호스를 이리 흔들며 장난쳤던 것, 물에 젖은 흙을 손으로 만지며 둑을 쌓았던 것, 다 같이 시장에 가서 모종을 사고 맛있는 국수를 먹었던 기억도 난다.
텃밭에 다녀온 날이면 흙으로 뒤범벅이 된 옷이며 신발까지 엄마가 해야 할 빨래가 엄청나게 많아져서 내가 딱히 농사에 도움이 되진 않았던 것 같은데 그래도 그냥 나는 엄마, 아빠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이렇게 우리 가족이 텃밭에 풀도 뽑고, 물도 주면서 텃밭을 가꾸다 보니 어느새 텃밭에 방울토마토, 고추, 상추 등 수확할 것들이 많이 생겼었다. 그때 나는 편식을 해서 야채를 잘 안 먹었는데도 내가 직접 심고, 물 주고 했던 것은 잘 먹었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한참 동안 옛 추억을 떠올리며 대화를 마무리하려는데 엄마가 갑자기 감자 이야기를 꺼내셨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나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아 자세히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엄마, 아빠는 시장에서 감자를 사다가 심었는데, 똑같이 심은 다른 것은 싹이 났는데, 감자만 아무리 기다려도 싹이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하루, 이틀 계속 기다려 봐도 감자는 아무 소식이 없었고 우리 가족은 별별 생각을 다 했다고 했다.
“혹시, 우리가 잘못 심었나?”
“안에서 썩었나?”
그래서 “그냥 이쯤에서 포기하고, 차라리 감자 대신 다른 것을 심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고 했다. 그런데 일주일 뒤, 텃밭에 가보니 신기하게도 감자에 싹이 나 있어 그날 엄마, 아빠는 감자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고 했다.
감자가 싹을 틔우기 위해 땅속에서 애쓰고 있는 것도 모르고, 빨리 자라지 않는다고 조급해하면서 포기하려고 했던 것이 너무 미안했고, 제각각 싹이 나는데 걸리는 시간이 다 다르니, 기다리며 지켜봐 줘야 한다는 것을 깨달으셨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 아빠는 그때 결심을 했다고 했다. 나에게도 이 감자처럼 빨리 보여주지 않는다고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싹을 틔울 때까지 참고 기다려 주는 부모가 되어 주기로 말이다.
그래서일까? 엄마, 아빠는 항상 나에게 “괜찮아, 잘될 거야”라는 말을 자주 하신다. 그럼 나는 조급해졌던 마음이 이상하게 편해진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다 감자 덕분인 것 같아 갑자기 감자에게 고마운 생각이 든다.
나는 아직 내 꿈을 틔우기 위해 땅속에서 열심히 애쓰고 있는 중학생이다. 하지만 내 꿈을 띄울 때까지 나를 믿고 기다려 주시는 부모님이 계신다고 생각하니 힘이 난다. 솔솔 부는 가을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오늘따라 행복하다.
※ 위 작품은 아그로플러스와 농촌진흥청이 공동주최한 ‘제6회 추억의 우리 농산물 이야기 공모전’ 수상작입니다.
글 = 김도영 씨(추억의 우리 농산물 이야기 공모전 우수상)
정리 = 더농부
nong-u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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