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벼품종 “이젠 굿바이~”…‘수요자 참여형 국산벼 품종 개발사업(SPP)’이 뜬다! [재미있는 농업 이야기 68]

쌀 시장에서 ‘일본 품종은 밥맛이 좋다’는 고정관념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1970년대 밥맛은 비교적 떨어지지만 우리 민족의 배고픔은 해결해줄 수 있었던 ‘통일벼’가 정책적으로 농가에 보급됐다. 이 시기 고품질 밥에 대한 수요가 생기면서 ‘히토메보레’와 ‘고시히카리’, ‘아끼바레’(추청) 등 쌀 품종이 일본에서 들어왔다. 이런 배경에서 일본 품종이 상대적으로 맛있다는 인식이 퍼지게 됐다.

태풍이 지난 후 쓰러짐 없이 정상 생육 중인 국산 쌀 신품종 ‘해들’(왼쪽)과 쓰러짐이 나타난 일본 쌀 품종 ‘고시히카리’(오른쪽). ⓒ농촌진흥청

일본 품종은 국산 품종보다 15~20% 높은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어 경기와 충북 지역에서 재배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일본 품종은 병충해에 약하고 잘 쓰러져 재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최근 이상기후로 재배 현장에선 병해충 및 쓰러짐 피해가 속출해 유통업체는 품질 저하를 우려하는 상황이다. 또 정책적으로는 2024년까지 외래품종 1만㏊ 이하 감축을 목표로 한다.

이렇게 우리 쌀 산업은 대내외적으로 치열한 경쟁에 처해 있다. 대한민국 종자 주권을 강화하고 농업인과 유통업체, 소비자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외래 품종 대체 국산 벼 품종 개발 및 보급이 시급한 이유다. 농촌 환경 변화에 따른 구조조정으로 어려움에 직면해 있기도 해 앞으로 쌀 산업 경쟁력을 어떻게 키워갈지 세심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수한 신품종에도 농촌 반응 ‘싸늘’

“모두가 참여하는 SPP로 해결하자”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은 ‘수요자 참여형 벼 품종 개발’(SPP : Stakeholder Participatory Program, 수요자 참여형 벼 품종 개발 프로그램)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SPP는 육성자 중심으로 벼 품종을 개발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농업인과 소비자, 지자체, 유통업자 모두가 함께 벼 품종 개발에 직접 참여하는 방식이다.

‘수요자 참여형 벼 품종 개발’은 농업인과 소비자, 지자체, 유통업자 등 모두가 함께 벼 품종 개발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게티이미지뱅크

SPP는 국내 식량의 안정적 공급을 유지하면서 먹거리 중심축인 쌀 산업을 굳건히 지켜 나아가기 위한 전략이다. 벼 신품종 개발에서 생산·유통·판매·가공·소비와 관련된 이해 당사자가 신품종에 요구하는 우선순위가 다르다. 생산자, 즉 농업인은 편안하게 농사지을 수 있고 수량이 안정적인 품종을, 유통·가공업체는 쌀 수율이 높은 품종을, 소비자는 품질과 영양가가 높은 품종을 요구한다.

지금까지 정부기관 주도 벼 품종 개발로 많은 품종이 개발됐지만 신품종 보급 비율은 저조했다. 품종 선택 기준이 품종 본연의 우수성보다는 보조금 정책, RPC 관계자 등 다양한 주변 환경에 따라 선택돼 우수한 신품종이어도 생산 현장에서 바로 채택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하지만 수요자가 품종 개발에 직접 참여하면 품종에 대한 애착심과 지역별 스토리텔링이 제공돼 지역 특화와 조기 실용화에 강점이 생긴다.

이미 해외에서는 유사한 프로그램이 있다. 다국적 글로벌 기업이 현지 환경에서 직접 재배한 농업인의 의견을 수렴해 적합한 품종과 재배법 등을 추천함으로써 한정된 농지에서 수량성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국내에서 이뤄진 ‘수요자 참여형 벼 품종 개발(SPP)’ 사업의 대표적인 사례를 알아보자.

1. 이천의 자랑 ‘해들’·‘알찬미’

日 품종 100% 대체에 성공!

국산 쌀 신품종 ‘해들’의 수확기 모습. 해들은 개발 2년 만에 일본 쌀 품종 ‘고시히카리’를 100% 대체하는 데 성공했다. ⓒ농촌진흥청

첫 번째 SPP는 경기 이천시와 함께했다. 이천 지역 외래 벼를 대체하기 위해 국립식량과학원은 육성 벼 후기 세대 계통을 이천시 마장면에서 시험했다. 이천시에서 최종 선발된 품종 이름은 모두 지역 주민 공모를 거쳐 선정됐다. ‘해들’은 벼를 키우는 해, 벼가 자라고 여무는 들이라는 뜻이고, ‘알찬미’는 가을 햇살에 알이 꽉 차고 영양이 가득한 건강한 쌀이라는 의미다.

해들은 꽃이 일찍 펴 추석 전에 수확할 수 있는 조생종으로 일본 품종인 히토메보레와 고시히카리를 대체할 신품종이다. 2017년 소비자 밥맛 검정에서 고시히카리보다 맛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알찬미는 중생종으로 일본 품종인 아끼바레, 즉 추청을 대체할 신품종이다. 2017년 소비자 밥맛 검정에서 아끼바레보다 월등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해들과 알찬미는 쓰러짐과 병해에 강해 이천시 농업인으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은 품종이다. 해들은 개발 2년 만에 15년간 이천시에서 재배해온 고시히카리를 100% 대체했고, 알찬미는 이천시에서 30년 이상 재배된 추청을 100% 대체하는 데 성공했다.

2. 충남 아산시 ‘해맑은’

두 번째 SPP는 충남 아산시와 함께했다. 아산시는 오랜 기간 재배해온 ‘삼광’을 대체하고자 2018년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과 업무협약을 체결해 2019년 ‘해맑은’을 개발했다. 밥맛 평가에서 평가자의 52%가 해맑은이 더 맛있다고 평가해 19%를 차지한 삼광보다 높은 선호도를 보였다. 지역민이 명명한 해맑은은 깨끗한 물과 토양, 공기, 맑은 햇살로 생산된, 티 없이 맑고 환한 깨끗한 쌀이란 의미다.

3. 인천 강화군 ‘나들미’

세 번째 SPP는 ‘강화섬쌀’로 유명한 인천 강화군과 함께 수행했다. 오랜 기간 재배한 외래 벼 품종 아끼바레를 대체하고자 2020년 국립식량과학원과 SPP 연구 사업을 수행하였다. 2021년 개발된 품종 명칭은 전국 공모를 통해 ‘나들미’로 정했다. 강화군 나들길을 걷다 보면 보이는, 강화가 품고 길러낸 잘 익어가는 들판의 벼를 의미한다.

경기 이천에서 재배하는 국산 쌀 신품종 ‘해들’·‘알찬미’ 전용 포장재. ⓒ농촌진흥청

현장 중심 연구의 대표 사례인 SPP로 개발된 해들과 알찬미, 해맑은, 나들미가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가받는다. 품종 개발 단계부터 농업인과 쌀 산업체, 소비자가 함께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스토리텔링 덕분에 기존 브랜드 쌀 원료곡을 신품종으로 교체하는 것에 신뢰가 형성됐고, 지자체와 농산업체의 자발적이고 주도적인 보급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즉 품종이 우수할 뿐 아니라 그 지역에서 농사짓기 쉬운 품종 이름을 지역민이 짓는 과정이 핵심이다. 품종의 주인의식을 고취시키고 RPC와 해당 지자체의 헌신적 보급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이제 시작 단계인 수요자 참여형 벼 품종 개발이 변화하는 농업 환경 속에서 국내 안정적 식량 자급과 쌀 산업을 굳건히 지켜 나갈 밑거름이 되기를 기원한다.


글=현웅조 국립식량과학원 중부작물과 농업연구사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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