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음악에는 ‘swag’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자신을 뽐내는 행동을 의미하기도 하고 자신감에서 흘러나오는 멋을 뜻하기도 합니다. 한국인 귀에는 이 단어 발음(스웩)이 마치 ‘수액’처럼 들려 종종 농담으로 쓰입니다.
여러분의 오늘 하루는 swag 넘치는 멋진 하루였나요? 만약 swag이 좀 부족했던 것 같다면 여기 여러분의 swag을 채워줄 ‘수액’이 있습니다. 봄철 아주 잠깐 나무가 허락하는 며칠만 만날 수 있는 귀한 몸이죠! 나무에서 흘러나오는 진정한 swag이랄까요?
사람 몸속엔 혈액
나무 몸속엔 수액
우리 몸속 혈관에 혈액이 흐르는 것처럼 나무 몸속 수관에도 수액이 흐릅니다. 사람 피가 A, B, O 등 다양한 혈액형으로 나뉘는 것처럼 나무 수액도 종류가 다양합니다. 고로쇠 물처럼 맑은 수액도 있고 고무나무에서 나오는 라텍스처럼 탁한 수액도 있습니다.
수액은 나무 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겨울 동안 잠들어 있던 세포를 깨우는 역할을 합니다. 영양도 공급하죠. 이 영양분 중에는 나무뿐 아니라 사람 몸에 이로운 성분도 많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옛날부터 다양한 나무 수액을 채취했습니다. 물처럼 마시기도 하고 요리나 가공 과정을 통해 다양한 식품으로 만들기도 했죠.
그런데 수액은 아무 때나 나무에 호스만 꽂으면 콸콸 쏟아지는 수돗물 같은 것이 아니라서 무척 귀합니다. 보통 봄에만 채취할 수 있고 그마저도 환경이 따라줘야 가능하죠. 그래서 나무가 뿜는 수액을 만날 수 있는 날짜는 사실상 1년에 한 달이 채 안 됩니다.
나무가 수액 채취를 허락하는 날은 일교차가 큰 날입니다. 차디찬 겨울이 끝나고 슬슬 봄기운이 돌기 시작할 때쯤이죠. 추운 밤이 지나고 해 뜨는 낮에 기온이 올라가면 나무줄기 속 물과 공기가 팽창합니다. 이러면 줄기와 가지 사이에 압력 차이가 생기죠. 수액은 압력이 높은 줄기에서 압력이 낮은 가지 쪽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수액 채취한 나무는 죽는다?
기술과 제도 개선으로 해결
이렇게 수액이 활발하게 이동할 때 나무 겉면에 생채기를 내거나 가지를 꺾으면 수액이 흘러나옵니다. 옛날에는 이 작업에 도끼나 낫을 사용했기 때문에 홈을 크게 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액을 채취한 나무가 병을 얻거나 죽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대에는 드릴을 사용해 작은 구멍만 뚫고 상처를 최소화합니다. 나무 건강에 아무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수액을 채취할 수 있죠. 산림청 수액 채취 관리 지침을 따라 수액 채취가 끝난 나무에는 상처가 아무는 약도 발라야 합니다. 그래서 요즘 생산되는 수액은 나무에 미안할 필요 없이 마음껏 마셔도 괜찮습니다.
경칩에 날 잡고 마신다!
뼈에 이로운 고로쇠물
국내에서 섭취할 수 있는 수액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고로쇠 수액입니다. 물처럼 마시거나 요리에 쓸 수 있기 때문에 고로쇠 물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한자 별칭은 골리수입니다. 뼈 골(骨), 이로울 리(利), 물 수(水)자를 써서 ‘뼈에 이로운 물’이라는 뜻이 담긴 이름이죠. 골리수를 점점 편하게 발음하다가 고로쇠로 변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고로쇠 수액은 2월 말부터 3월 초까지 채취합니다. 보통 그 중간쯤 되는 경칩에는 고로쇠 물을 마시는 전통 풍습이 있습니다. 고로쇠 수액에 들어있는 좋은 성분을 건강에 실질적인 영향이 있을 정도로 마시려면 하루에 6ℓ 이상은 마셔야 합니다. 그래서 건강 때문에 고로쇠 수액을 섭취하는 사람들은 아예 산지 지역에서 날을 잡고 많은 양을 마시기 위해 노력하기도 합니다.
채취한 고로쇠 수액을 하루 이틀 정도 뒀다 마시면 숙성된 진한 단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액은 금방 상할 수 있기 때문에 냉장 보관 시에는 2주 이내로, 실온 보관 시에는 가급적 빨리 마셔야 합니다.
마시지 말고 피부에 양보하세요~
화장품 업계 주목한 자작나무 수액
자일리톨이 들어간 껌이나 사탕을 드셔 보신 적 있나요? 자일리톨은 떡갈나무나 옥수수 같은 식물에서도 추출할 수 있지만 보통 자작나무 수액을 원료로 씁니다.
본래 자작나무는 핀란드, 러시아처럼 추운 곳에서 자라는 나무입니다. 한반도에서는 백두산 같은 북한 지방에서 원시림을 이루고 있습니다. 1970년대부터 남한에도 자작나무를 많이 심고 가꾼 덕분에 국내에서도 자작나무 수액을 먹을 수 있게 됐죠.
자작나무 수액은 ‘곡우물’이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24절기 중 여섯 번째 절기인 곡우에 마시는 물이라서 붙은 이름입니다. 곡우는 양력으로 4월 20일쯤인데요, 자작나무 수액 채취 시기는 보통 곡우 앞뒤로 10일 정도입니다.
2000년대 이후로는 자작나무 수액을 활용한 화장품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자작나무 수액은 피부 진정과 보습 효과가 뛰어나 화장품 원료로서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자작나무 수액 화장품 중 ‘라운드랩’이 2019년부터 출시하고 있는 기초 화장품 시리즈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많은 일반 소비자가 자작나무를 화장품 원료로 인지하는 계기가 됐죠. 2022년에는 SK 임업이 50년 동안 가꿔온 충청북도 충주시 자작나무 숲에서 채취한 자작나무 수액으로 비건 화장품을 만들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해외서 단연 으뜸인 단풍나무 수액
달콤한 메이플 시럽 만드는 원료죠
국내에서 생산, 소비하는 대표적인 나무 수액이 고로쇠와 자작나무 수액이라면, 해외에는 단풍나무 수액이 있습니다. ‘메이플 시럽’이라는 영어 이름으로 더 익숙한 식재료죠. 국기에 단풍잎이 있을 정도로 단풍나무를 사랑하는 캐나다는 12월 17일에 메이플 시럽의 날을 기념하기도 합니다.
거의 모든 단풍나무 종에서 수액을 얻을 수 있지만, 달콤한 메이플 시럽 원료로 쓰는 것은 단 세 종입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종은 설탕 단풍이라고 부르는 종이죠. 이름에서부터 달콤함이 풍겨옵니다. 설탕 단풍나무도 고로쇠나 자작나무처럼 일교차가 클 때 수액을 채취할 수 있습니다. 보통 겨울이나 봄입니다.
단풍나무 수액을 처음 먹기 시작한 사람은 아메리카 대륙에 살던 원주민이었습니다. 이들은 메이플 시럽을 채취하는 3월과 4월에 뜨는 달을 ‘설탕 달(sugar moon)’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으로 들어온 이주민에게도 메이플 시럽을 만드는 방법을 전수해줬죠. 그래서 메이플 시럽은 지금까지도 캐나다에서 명맥을 잘 이어오고 있습니다.
천연 미네랄, 프로롤리스…
수액마다 다양한 효능 있어
나무 종류에 따라 수액 효능도 천차만별입니다. 고로쇠 수액은 칼슘∙마그네슘∙칼륨 등 천연 미네랄이 풍부하게 들어있어 뼈 건강에 좋고 자작나무 수액에 있는 프로폴리스 성분은 봄철 알레르기 증상을 개선에 효과가 있습니다. 이 외에도 가래나무, 다래 덩굴, 노각나무, 박달나무 등 국내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식용 나무 수액은 각양각색 효능을 뽐냅니다.
귀한 만큼 확실한 가치가 있는 나무 수액! 내게 필요한 수액 성분은 무엇인지 알아보고 내 안에 swag을 채워보세요.
더농부 인턴 방정은
제작 총괄 : 더농부 에디터 나수연
nong-up@naver.com
더농부
참고=
문화일보, <<기고>수액 한잔으로 ‘봄’을 마시자>
브릿지경제, <골다공증 특효약 ‘고로쇠 수액’? … 일부에선 단순 천연음료 취급>
가톨릭평화신문, <눈 덮인 평원, 꼿꼿하게 선 자작나무>
아시아경제, <SK임업 자작나무수액으로 만든 친환경 화장품 ‘수페’ 올리브영 입점>
조선일보, <메이플 시럽이 항상 팬케이크를 기다려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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