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짬뽕·쫄면 원조는 모두 ‘면의 도시’ 이곳

2월은 졸업의 달입니다. 정든 학교를 떠나고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졸업식 날, 친구들과 울고 웃다 보면 어느새 배가 고파옵니다. 졸업식 날 점심 메뉴는 역시 짜장면이 가장 대표적이죠. 그런데 막상 짜장면을 먹으러 가면 새빨간 국물로 유혹하는 짬뽕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매력으로 마음속에서 치열한 대결을 벌이는 두 음식! 모두 인천시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일하면서 간단히 먹는 음식에서
특별한 날 찾는 고급 음식으로

1883년 인천항이 활짝 열렸습니다. 1876년 부산항, 1880년 원산항 이후로 조선의 세 번째 개항지였죠. 남해, 동해에 위치한 두 항구에 비교하면 독보적으로 청나라와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많은 청나라 상인이 인천으로 들어와 터전을 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다른 나라 땅에서 거주하는 중국인을 통틀어 ‘화교’라고 합니다.



1883년부터 화교가 모여 살던 지역은 현재 인천 차이나타운이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더농부

인천항은 다양한 국적, 신분의 사람들로 와글와글해졌습니다. 무역도 활발했죠. 항 근처에서 물건을 나르는 노동자들은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대부분 인천과 가장 가까운 중국 지역인 산둥 지방에서 넘어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쿨리’라고 불린 이 노동자들은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그래서 춘장에 면을 비벼 먹는 ‘작장면(炸醬麵)’을 많이 만들어 먹었습니다.

중국 발음으로 ‘자지앙미옌’이라고 하는 이 산둥 지역식 짜장면은 물기가 거의 없고 짠맛이 강한 음식입니다. 우리가 아는 짜장면과는 다르죠. 작장면이 노동자들에게 잘 팔리자 손수레 장사로 시작한 작장면 상인들이 작은 가게를 차리기 시작했습니다. 인천 개항장에 드나드는 다양한 나라 사람들도 이 작장면 맛을 보게 됐죠.

한국 최초로 짜장면을 판매한 식당 공화춘 건물은 짜장면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더농부

사업이 커지자 가게끼리 경쟁이 붙었습니다. 차별화를 위해 더 맛있고 더 고급스러운 작장면을 만들어냈죠. 작장면을 파는 대형 고급 청요릿집도 생겨났습니다. 1912년에 문을 연 ‘공화춘’을 시작으로 ‘중화루’, ‘동흥루’ 등이 상류층 사람들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중 짜장면이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한 곳은 공화춘이었습니다.

한국인 손님 잡아라!
생존을 위한 변화

드디어 한국식 짜장면 역사가 시작되는 걸까 기대하셨다면 아직 이릅니다. 한국식 짜장면은 1950년대 이후에 등장합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외국인 무역 규제가 강화됐습니다. 화교들은 까다로운 무역업에서 손을 떼고 너도나도 요식업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중국 음식점 수가 늘어나자 중국인을 주요 고객으로 삼는 식으로는 가게를 유지하기 어려워졌습니다. 한국인 고객을 많이 들여야 했죠.



1950년대 이후로 중국 요리를 판매하는 화교 식당은 한국인을 주요 고객으로 맞이하게 됐다. ©더농부

그래서 작장면을 한국인 입맛에 맞게 바꿨습니다. 원래 작장면에는 춘장을 볶은 기름도 면과 함께 비벼 먹었는데 기름을 따라내 버리고 느끼한 맛을 줄였습니다. 춘장을 볶고 난 뒤에는 야채와 물녹말도 넣어서 짠맛을 줄였죠. 나중에는 단맛까지 더하기 위해 캐러멜을 넣었습니다.

더불어 6·25 전쟁 이후 적국으로 간주하던 중국과 교류가 끊기면서 식당에서 중국 식재료를 쓸 수 없게 됐습니다. 한국 식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봄에는 양배추, 여름에는 호박, 가을 겨울에는 양파를 춘장에 넣어 볶았죠. 이렇게 지금 우리가 먹는 한국식 짜장면이 탄생했습니다.

짬뽕의 탄생 과정은
한∙중∙일의 ‘짬뽕’

짬뽕도 화교가 만든 음식입니다. 19세기 말 일본 나가사키에 살던 화교들은 국물에 면을 말아 먹는 일본 음식 ‘우동(うどん)’에 해산물을 넣었습니다. 오징어·굴·새우 등이 듬뿍 들어간 이 음식은 중국식 우동이라는 뜻의 ‘시나우동(支那餛飩)’이라고 불렸습니다. 1910년대에 들어서는 모든 것이 뒤섞여있다는 뜻을 가진 일본 속어 ‘쟌폰(チャンポン)’으로 바뀌었죠.

쟌폰이 한국으로 들어올 때 가장 먼저 거친 곳은 인천입니다. 1908년 10월 10일에 발행된 신문 조선신보(朝鮮新報)에는 한 인천 일본 음식점이 나가사키식 시나우동을 판다는 광고가 실려 있습니다. 인천항을 열자마자 나가사키와 상하이를 연결하는 정기 항로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쟌폰이 다른 곳보다 인천에 일찍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식 짬뽕은 빨간 국물이 특징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쟌폰은 짜장면처럼 한국에 온 이후에 현지화 과정을 거쳤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매콤한 맛을 위해 마른 고추와 고춧가루가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쟌폰은 닭 육수로 국물을 내지만, 한국식 짬뽕은 멸칫국물을 쓴다는 점도 차이점입니다.

일본에서 중국 사람이 만든 음식을 한국에 들여온 과정을 보니 정말 한∙중∙일의 ‘짬뽕’답죠? 화교 음식인 짜장면과 짬뽕의 짝꿍이 일본 음식 단무지라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당대 인천이 얼마나 다양한 나라의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었는지 느낄 수 있죠. 

쫄면의 탄생은 우연?
준비된 필연일 수도!

인천시 중구 경동에 위치한 냉면 공장인 ‘광신 제면’은 면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공장입니다. 반죽덩어리가 가는 체를 통과해 면의 모양으로 변신하는 곳이죠. 1970년대 초 어느 날, 이곳에서 일하던 직원이 냉면을 뽑으려다가 실수로 기계에 냉면을 뽑는 체보다 굵은 체를 끼웠습니다. 냉면에 쓰기엔 너무 굵은 면이 뽑혀 버렸죠.

버리기엔 아까웠던 면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근처 분식집에 보냈습니다. 그곳에서 이 면을 삶고 고추장 양념을 만들어 매콤달콤하게 버무렸습니다. 아삭한 야채 고명까지 올려 먹어보니 쫄깃한 면발과 어우러지는 맛이 훌륭했습니다. 이렇게 쫄면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 정설로 굳어졌습니다.



광신 제면 간판에는 ‘쫄면을 최초로 만든 곳’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더농부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두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먼저 냉면과 쫄면은 재료가 다릅니다. 냉면은 메밀로 만들고 쫄면은 밀로 만듭니다. 게다가 밀 반죽을 쫄면만큼 굵고 쫄깃하게 뽑으려면 일반 면보다 소다나 녹말가루를 많이 넣어야 합니다. 단순히 체만 갈아 끼운다고 냉면이 쫄면으로 변할 수는 없는 거죠.

Olive에서 방영하는 예능 프로그램 수요미식회 171화에 출연한 홍신애 요리연구가는 처음으로 쫄면을 만든 분식집 주방장을 인천 신포 시장에서 만나 쫄면 탄생의 다른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주방장은 신메뉴를 구상하다가 밀면과 비슷한 냉면을 만들어보고자 다양한 연구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굵은 면발을 뽑아봤는데 너무 질겨서 근처 분식집에 나눠줬습니다. 사람들은 이 면을 비빔국수처럼 만들어 먹었고 맛이 좋아 많은 사람이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아예 굵고 탄성 있는 쫄면을 생산하게 됐다는 것이 홍신애 요리연구가가 들려준 이야기였습니다.



쫄면의 대중화에 가장 크게 기여한 곳은 인천 신포시장 내 위치한 신포우리만두다. ©더농부

다양한 도시 중
왜 하필 인천?

과연 어떤 것이 진짜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쫄면이 인천에서 시작됐다는 것 하나는 확실하네요. 국민 음식인 짜장면, 짬뽕, 쫄면의 첫걸음이 모두 인천에서 이뤄졌다니 흥미롭습니다. 국내 세 번째 개항장으로서 다양한 외래문화와 식재료가 풍성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내고 거부감 없이 수용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일제가 한반도 수탈을 위해 1935년 11월 인천항에 만든 밀가루 공장이 광복 이후에는 ‘대한 제분’으로 바뀌어 1952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만한 요소입니다. 6∙25 전쟁 이후 폐허가 된 국내 밀가루 생산 시설 중에서 가장 먼저 공장을 복구하고 가동을 시작한 곳도 이곳이었죠. 당시 대한 제분은 단일 규모로 동양에서 가장 큰 제분 시설이었습니다.

닭강정 튀김가루를 올려주는 것으로 유명한 맷돌 칼국수와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경인면옥 ©더농부

이렇게 다양한 요소가 뒷받침된 결과로 인천은 짜장면, 짬뽕, 쫄면의 출발지일 뿐 아니라 칼국수 골목, 냉면 거리도 갖춘 면의 도시가 됐습니다. 밥보단 면이 끌리는 날 방문하기 딱 좋은 곳이죠? 인천 개항장 곳곳에서 면을 주제로 한 각종 체험도 운영하고 있으니 나들이 삼아 방문하기도 좋습니다. 맛있는 면 요리를 먹으면서 소중한 사람과 즐거운 날을 보내고 싶다면 면의 도시 인천을 추천합니다.


더농부 인턴 방정은
제작 총괄 : 더농부 에디터 나수연
nong-up@naver.com
더농부

참고=
한경산업, <[인천돋보기]⑩ 짜장면·짬뽕·쫄면 원조…누들플랫폼>
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 <인천역사문화총서 74 – 한국 최초 인천 최고 100선>
정연학, <니하오, 인천 차이나타운>
김윤식, <인천의 향토음식>
수요미식회 171화
기호일보, <인천과 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