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상상해볼까요? 여러분은 친구 혹은 가족과 함께 갈 국내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만약 전남 여수에 간다면 무엇을 먹을까요? 아마도 여수에서 유명한 게장이나 돌문어 요리를 먹겠지요. 강원도 속초에 간다면 오징어순대를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국내에는 각 지역에서 특히 유명한 음식들이 있기 마련이죠. 지역의 대표 음식은 어떻게 그 지역의 명물이 됐을까요? 유래를 살펴봤습니다.
‘옴팡집’에서 시작된 전주비빔밥
첫 번째 음식은 비빔밥입니다. ‘비빔밥’하면 어디가 떠오르시나요? 바로 전주입니다. ‘전주비빔밥’은 마치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비빔밥은 밥, 국, 반찬으로 이뤄져 있는 통상적인 한국인의 밥상에서 밥과 반찬을 비빈 것이죠. 1890년대 쓰인 ‘시의전서’에는 비빔밥을 처음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문헌에 등장한 시기는 이때지만 많은 연구자는 한국인의 밥상이 밥, 국, 반찬으로 구성되기 시작한 고려시대 중기 때부터 비빔밥이 등장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고많은 지역 중 전주에서 비빔밥이 유명해졌을까요? 그 이유는 1940년대 전주에 등장한 음식점 ‘옴팡집’ 때문입니다. 이곳은 백반과 비빔밥을 주메뉴로 하는 식당인데요. 비빔밥이 너무 맛있어서 그 명성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비빔밥은 버섯과 쇠고기를 장조림한 간장과 고깃국물로 밥을 비비고 나물을 얹어 만들었습니다. 반찬으로는 조기찌개와 전어구이, 각종 젓갈류와 고들빼기김치 등이 나왔다고 합니다. 다른 지역에서 손님이 오면 옴팡집으로 모시고 가기 바빴죠.
그렇게 옴팡집의 비빔밥은 입소문을 타고 전국적으로 알려집니다. 오죽하면 전주시에서 옴팡집 보호 특례 조치를 내릴 정도였으니 그 인기가 상상이 되시나요? 하지만 시대 흐름이 변하고 경영난이 닥치면서 옴팡집은 1961년에 문을 닫았습니다. 옴팡집은 그 후 찾아볼 수 없었지만, 덕분에 전주비빔밥의 명성이 알려지며 사람들은 ‘전주!’ 하면 ‘비빔밥!’을 떠올리게 됐죠.
1970년대 서울의 백화점에서 열린 지역 음식 판매장에 전주비빔밥이 소개되면서 명동 등 서울 곳곳에는 전주비빔밥 전문 식당들이 들어섰습니다. 그렇게 비빔밥은 전주의 공식적인 명물이 됐죠.
한국전쟁으로 탄생한 부산 돼지국밥
돼지국밥은 돼지 뼈로 낸 육수에 편육과 밥을 넣고 만든 부산 향토 음식입니다. 부산을 비롯해 밀양, 마산, 대구 등 경상도 각 지역에서도 돼지국밥을 흔하게 먹는데 조리법은 지역별로 조금씩 다릅니다.
부산 동구 범일동 ‘돼지국밥 골목’에 가면 남녀노소 국밥을 편하게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돼지국밥은 부산과 경상도에서 1950~1960대에 급속도로 확산했는데요. 돼지국밥의 유래에 대한 설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설은 소뼈를 우려먹는 설렁탕 대신 먹었다는 겁니다. 당시 6.25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먹을 것을 구하기 힘들었던 사람들은 그나마 구하기 쉬운 돼지 부산물로 설렁탕을 흉내 내려고 했다가 돼지국밥이 탄생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북한 피난민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설입니다. 1952년 개업한 돼지국밥 식당 ‘하동집’ 주인은 전쟁 당시 북한 피난민에 의해 북한 향토 음식인 순대국밥이 부산에 유입됐고, 순대 대신 편육을 넣어 현재의 돼지국밥 형태로 변형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모두 설로만 존재할 뿐 음식 유래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돼지국밥 탄생에 영향을 준 건 확실해 보입니다.
춘천 닭갈비의 유래는 ‘돼지 대신 닭’
닭갈비는 토막 낸 닭고기를 양념장에 잰 후 각종 야채와 떡볶이 떡과 함께 철판 위에서 볶은 요리입니다. 춘천에 여행 가면 당연하다는 듯이 막국수와 함께 닭갈비를 찾곤 하죠.
춘천을 대표하는 음식인 닭갈비도 등장 배경을 두고 다양한 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춘천시는 2005년, 1년여에 걸친 조사 끝에 닭갈비 유래를 제정하고 공고했습니다. 닭갈비의 유래는 1960년대 춘천의 어느 선술집에서 시작됩니다. 당시 그 가게에서는 돼지갈비를 구워 팔았는데요. 돼지고기를 구하기 어려워지자 돼지 대신 닭을 써서 돼지갈비처럼 구웠습니다. 그 메뉴는 손님들한테 좋은 반응을 얻었고 그게 닭갈비로 굳어졌습니다.
당시 돼지고기를 구하기 어려웠던 이유로는 비위생적으로 유통된 돼지고기로 인한 집단 식중독 등 각종 사고가 잦아 돼지고기를 멀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생겼기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시청이 지목한 닭갈비가 유래된 장소는 춘천 ‘닭갈비 골목’과 60~70m 정도 떨어진 곳인데 현재는 새 건물이 들어서 옛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재밌게도, 닭갈비에는 닭의 갈비 부위가 들어있지 않습니다. 닭가슴살이나 다리살을 양념에 잰 후에 야채와 함께 철판에 볶거나 숯불에 구워 먹죠. 황교익 음식 칼럼니스트는 엄밀히 말하면 ‘닭고기 야채볶음’이 맞는 표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갈비’라는 이름은 돈이 없지만 갈비를 먹는 것에서 위로를 받고자 했던 인간의 욕망이 투영돼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겨울’ 별미인 평양냉면
우리가 평양에 직접 가지는 못하지만, 국내에는 많은 평양냉면 음식점이 있습니다. 시원하고 담백한 평양냉면은 더운 여름이면 잘 떠오르죠. 하지만 냉면은 사실 겨울 음식입니다.
고려시대 중기 평양성 밖의 ‘찬샘골’이란 마을에서 유래했죠. 어느 날 주막집 주인은 한 노인으로부터 메밀이 건강에 좋다는 얘기를 듣고 주막에서 팔던 메밀칼제비 장국에 면을 삶고 찬물에 헹군 뒤 동치미 국물에 말아 먹었는데 그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동치미에 담근 메밀면’은 나중에 ‘국수’로 불리게 됐는데 평양성 안까지 소문나면서 ‘평양냉면’이라는 고려의 특식이 됐습니다.
이 무렵 평양을 여행한 실학자 유득공은 가을이면 ‘평양의 냉면과 돼지 수육값이 오르기 시작한다’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추울 때 먹는 냉면이 얼마나 유행했는지 짐작이 가시나요?
골목 이름까지 바꾼 안동찜닭
경상북도 안동에서 유래한 찜닭은 닭, 채소, 당면을 넣고 간장에 조린 향토 음식입니다. 안동찜닭은 앞서 소개한 음식보다 비교적 최근에 탄생했습니다. 안동의 ‘구시장’에는 1970년대부터 생닭이나 튀긴 통닭을 파는 ‘통닭골목’이 있었습니다. 당시 새로운 맛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나자 골목 상인들은 새로운 닭 요리를 개발했는데요. 그것이 바로 찜닭입니다.
찜닭은 1980년대에 등장해 매콤달콤한 맛과 푸짐한 양으로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구시장의 ‘통닭골목’은 ‘찜닭골목’으로 명칭을 바꿀 정도였습니다. 2000년 이후는 각종 미디어를 통해 전국적으로 유명해져 안동의 대표적인 향토 음식이 됐죠.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 음식에는 정겨운 유래가 담겨 있습니다. 기록이 명확하게 남아있지 않더라도 우리 역사, 문화와 함께 발걸음 해왔을 겁니다. 각 음식은 그 지역뿐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죠. 여러분이 사는 지역에서 명물이 된 음식은 무엇인가요?
더농부 인턴 박의진
제작 총괄 : 더농부 에디터 나수연
nong-up@naver.com
더농부
참고=
팔도식후경, <전주비빔밥>
전북도민일보, <옴팡집, 기록으로 맛보기>
향토문화전자대전, <돼지국밥>
동아일보, <[윤덕노의 음식이야기]<53>춘천 닭갈비>
경인일보, <[新팔도명물]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춘천 닭갈비’>
연합뉴스, <‘소울푸드’ 평양냉면의 어제와 오늘>
향토문화전자대전, <안동찜닭>
경향신문, <안동찜닭의 유래··· 음식기행, 안동여행의 목적으로 확장>
▽클릭 한 번으로 식탁 위에서 농부들의 정성을 만나보세요!▽
▽더농부 구독하고 전국 먹거리 정보를 확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