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in 시네마> 여름 제철 과일 살구가 생각나는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 이 글에는 일정 부분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음을 밝혀둡니다.

낮 최고 기온이 30도까지 오르는 더위가 찾아왔습니다. 6월에 접어들며 여름이 시작되는 모양새입니다. 여름의 시작점에 설 때면 언제나 떠오르는 영화가 있습니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 2017)입니다. 안드레 에치먼이 2007년 쓴 동명 소설을 각색한 영화입니다. 2018년 아카데미를 비롯한 여러 시상식에서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죠.

여름 이탈리아의 풍경이 아름답게 그려지는 가운데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과일 ‘살구’가 유독 눈에 띄는 영화입니다. 영화 흐름 자체가 빠른 수확을 맞이해 짧고 굵은 여름을 보내는 살구와 닮아 있어 여름의 초입새에 더욱 생각나지요. 이성이 아닌 동성에 이끌려 사랑에 빠지면서 이른 여름을 보내는 소년 ‘엘리오’(티모시 샬라메 분)가 이야기의 주된 축이라는 점도 눈길을 끕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스틸 사진. ©소니픽쳐스

엘리오와 올리버, 시작된 두 사람의 여름

영화는 1983년 여름 방을 정리하고 있는 17세 소년 엘리오의 모습에서 시작됩니다. 곧 자신의 방을 사용할 낯선 누군가를 위해서입니다. 엘리오의 아버지 ‘펄먼 교수’(마이클 스털버그 분)는 여름이면 젊은 학자를 자신의 연구 조교로 뽑아 가족 별장에 초대합니다. 그럴 때면 엘리오는 자기 방을 그 학자에게 내줘야 하죠. 여름휴가마다 불청객을 들이는 게 엘리오의 연례 행사인 셈입니다. 엘리오가 창 밖을 내려다보자 푸른 셔츠를 걸친 큰 키의 청년을 펄먼 교수가 마중하고 있습니다. 이번 여름에 초대된 이는 미국에서 온 24살 대학원생 ‘올리버’(아미 해머 분)입니다. 6주 동안 엘리오의 방을 사용할 예정입니다.

올리버는 특유의 친화력과 적극적인 태도, 매력적인 겉모습으로 이탈리아에 도착한 직후부터 인기인으로 거듭납니다. 테니스도 치고 수영도 합니다. 시내로 내려가 사람들과 카드 게임도 즐깁니다. 동네 사람들은 물론 엘리오의 부모님도 올리버가 마음에 드는 눈치입니다. 늦은 밤 파티에서 여자들과 춤을 추는 걸 보니 이성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계란을 먹는 올리버.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스틸 사진. ©소니픽쳐스

하지만 엘리오에게 올리버의 첫인상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얌전히 보낼 법한 첫 식사 자리에서 계란을 허겁지겁 먹어 치웁니다. 펄먼 교수의 일을 도울 때도 살구 주스를 벌컬벌컥 들이키죠. 자신과 달리 당당히 유대교 표식 목걸이를 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띕니다. 스스로를 유대인이자 미국인, 프랑스인, 이탈리아인이라고 소개하는 엘리오와는 다릅니다.

올리버의 말버릇도 신경을 거스릅니다. 올리버는 언제나 “나중에 봐!(Later!)”라고 말합니다. 헤어질 때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안녕’이나, ‘잘 가’라고 하지 않죠. 올리버는 늘 “나중에 봐!”를 외치며 시야 밖으로 사라집니다. 6주 뒤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주제에 이리 당당히 ‘다음’을 말한다니, 매 여름 새로운 사람을 맞이해 떠나보내는 일이 익숙한 엘리오에겐 그리 적절한 인사가 아닙니다.

엘리오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버지에게 올리버의 인사가 무례하고 거만하지 않냐고 묻습니다. 미국으로 떠날 때도 거만한 태도로 나중에 보자고 말할 거라면서요. 하지만 펄먼 교수는 아들 엘리오의 말을 부정합니다. “부끄러워서 그럴걸. 곧 좋아하게 될 거야.” 아버지의 말에 엘리오는 그저 침묵합니다. 그런데 펄먼 교수만의 특별한 감이 있었던 걸까요? 엘리오는 올리버와 수영을 갔다 온 이후 점차 가까워집니다. 올리버의 부탁에 엘리오가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하죠.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스틸 사진. ©소니픽쳐스

올리버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엘리오는 자신의 감정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감정이 단순한 우정이나 호감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결국 엘리오는 시내 광장에서 올리버에게 마음을 고백합니다. “정말 중요한 건 거의 모르는걸요.” 두 사람은 광장의 동상을 사이에 둔 채 수수께끼 같은 대화를 주고받습니다. 둥근 광장을 따라 걷던 두 사람이 다시 얼굴을 마주합니다. “이 얘긴 당신 아니면 아무한테도 못하거든요.” 올리버를 똑바로 올려다보며 엘리오가 말합니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이전보다 더욱 밀접한 관계가 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사랑을 나누죠. 함께 누워 서로의 이름을 바꿔 부르기로 약속하기도 합니다. 영화 제목이 ‘나를 너의 이름으로 불러줘’라는 뜻의 <Call Me by Your Name>인 이유입니다.

하지만 언젠가 끝나는 여름

여름의 시작에서 끝으로···

서로의 이름을 바꿔 부를 만큼 내밀해진 두 사람이지만 결국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올리버가 펄먼 교수의 연구 조교로 머무를 수 있었던 6주가 다 된 까닭입니다. 두 사람은 올리버가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로마 여행을 떠나 마지막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하지만 올리버는 결국 떠나야 할 사람입니다. 올리버를 공항으로 데려다줄 기차를 기다리며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포옹합니다. 올리버가 팔을 풀려고 하자 엘리오가 다시 한번 올리버를 껴안습니다. 올리버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 엘리오를 조금 더 세게 안아줍니다. 올리버의 품을 벗어난 엘리오가 이제 괜찮다는 듯 목을 매만지며 고개를 작게 끄덕입니다. 올리버가 기차에 오르자 곧 문이 닫힙니다. 엘리오는 역을 벗어나는 기차를 바라봅니다. 올리버가 잠시 손을 흔들더니 다시 객실 안으로 사라집니다. 올리버가 떠난 뒤로도 역에 가만히 앉아있던 엘리오가 집으로 전화를 겁니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데리러 올 수 있냐고 묻네요.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스틸 사진. ©소니픽쳐스

시간이 흘러 크리스마스가 됐습니다. 외출을 마치고 돌아온 엘리오의 귀에 전화벨 소리가 들립니다. 전화를 받자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올리버입니다. 올리버는 내년 봄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대화를 이어가던 엘리오가 대화를 끊더니 한 단어를 내뱉습니다. “엘리오?” 대답 없는 정적에 자신의 이름을 수차례 되뇝니다. “…올리버.” 길게 이어지는 깊은 숨소리 끝 수화기 너머 자신의 이름이 들립니다. 올리버는 모든 걸 기억하고 있다고 답합니다.

전화를 마친 엘리오가 천천히 벽난로 앞으로 다가갑니다. 쭈그려 앉습니다. 그리고 벽난로의 불꽃을 바라보며 조용히 눈물을 삼킵니다. 겨울까지 이어지던 엘리오의 늦은 여름이 결국 끝을 맞이했습니다.

6월, 여름을 알리는 과일 살구

제철은 여름의 절정에서 끝나…

영화가 흘러가는 130분 동안 잘 드러나진 않더라도 영화는 엘리오의 입장에서 전개됩니다. 엘리오의 시선을 빌려 스크린에 드문드문 나타나는 올리버의 모습이나, 빠르게 스크린을 거쳐가는 올리버의 물건들도 이를 보여줍니다. 영화의 시작을 알리고 끝을 마무리하는 인물이 엘리오라는 점도 주된 등장인물이 엘리오라는 점을 뚜렷이 할 것 같습니다.

수영을 하다 살구를 먹는 엘리오와 올리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스틸 사진. ©소니픽쳐스

영화 곳곳에서 등장하는 과일 ‘살구’ 역시 소년 엘리오를 나타낼 것 같습니다. 살구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 초반부 제시됩니다. 올리버와 일을 하던 펄먼 교수는 뜬금없이 살구의 어원을 얘기합니다. 그는 고고학자답게 살구를 뜻하는 ‘아프리콧(apricot)’이 아랍어에서 왔다고 설명합니다. 아랍어 관사 ‘알’이 붙은 단어라는 것이죠. 그런데 아직 대학원생인 올리버가 다른 의견을 제시합니다. 그는 살구라는 단어의 역사가 복잡하다며 라틴어 ‘프래코쿰(Praecoquum)’을 먼저 말합니다. 이후 비잔틴 제국이 쓰던 ‘프레코키아’가 아랍으로 가 ‘베리코키’가 됐고 마지막 ‘알 바르쿠크’로 자리했다고 하죠.

올리버가 처음 말했던 라틴어 프래코쿰은 ‘빨리 익는다’는 뜻의 ‘Praecox’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복숭아 중 일부 종류가 먼저 익는다고 해 생겨난 이름입니다. 아직 어린 소년이지만 올리버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고백하며 남들보다 이른 사랑을 시작하는 조숙한 소년 엘리오가 떠오르는 까닭입니다.

엘리오를 떠올리게 하는 살구. ©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살구처럼 이른 사랑을 시작한 탓인지 엘리오의 여름은 빠르게 흘러갑니다. 어떻게든 뜨거운 계절을 더 즐겨보고 싶지만 그럴 순 없습니다. 올리버와 함께 했던 로마 여행의 마지막 밤이 이를 보여줍니다.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둘을 부러워할 만큼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두 사람이지만 여행의 끝은 씁쓸합니다. 엘리오가 구토를 하기 때문이죠. 6주로 끝냈야 할 여름을 잡아 늘린 대가일 겁니다. 저물어가는 여름의 끝을 억지로 비틀었으니 탈이 나는 게 당연합니다.

조금만 더 함께 하려는 욕심에 그만 수확 시기를 넘겨 버린 셈입니다. 살구는 다른 과일보다 빨리 수확되기 시작하지만 제철 역시 짧습니다. 6월이면 수확되기 시작해 7월 중순이면 제철이 끝나죠. 올리버가 엘리오의 별장에 머무를 수 있었던 6주와 유사한 기간입니다. 올리버가 떠나는 기차역 엘리오가 마지막 포옹 끝 고개를 끄덕인 이유일 것입니다. 이제 정말 여름이 끝나가고 있다는 걸 인정한 모습입니다. 올리버는 그런 엘리오에게 희미하게 미소 짓습니다. 어떤 여름이든 끝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스틸 사진. ©소니픽쳐스

살구는 수확 시기가 짧은 탓에 통조림이나 말린 상태로 더 많이 유통된다고 합니다. 당장 먹는 살구보다는 오랜 기간 천천히 소비되는 살구가 더 많다는 뜻이겠죠. 여름을 지나 찾아온 첫 번째 겨울, 엘리오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다음 해에는, 또 그다음 해에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엘리오에게 언제 새로운 여름이 찾아올지 알 순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때까지는 통조림의 과일을 꺼내 먹듯 짧고도 뜨거웠던 여름을, 여름을 함께 보냈던 올리버를 추억하지 않을까요?


FARM 인턴 김동희

제작 총괄 : FARM 에디터 박상익

nong-up@naver.com

더농부

참고=

한국일보, <살구 이야기 “하루 3개 먹으면 눈이 밝아져요”>

evs-translation.com, <Apric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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