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in 시네마> 양파 속 비밀, ‘저도酒’로 밝혀낸다! 영화 ‘글래스 어니언’

*이 글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알코올 도수가 낮은 ‘저도주’가 주류(酒類) 문화의 주류(主流)가 되고 있습니다. 주축은 MZ세대입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취하는 술보다는 가벼운 술을 즐기는 사람이 늘어난 겁니다.

롯데칠성음료는 2022년 4월 소주에 와인과 탄산을 섞은 ‘별빛 청하 스파클링’을 출시했다. 도수는 7도로, 기존 청하(13도)보다 낮다. ⓒ롯데칠성음료

2022년 3월, 농림축산식품부는 ‘2021 주류 시장 트렌드 보고서’를 공개했습니다. 보고서엔 소비자 2000명이 꼽은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주류 트렌드’가 실렸는데, 저도주가 36.9%로 상위권에 올랐습니다. ‘본인이 선호하는 트렌드’ 항목에선 저도주 성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2020년 24.8%에서 2021년 30.3%로 높아졌습니다.

저도주 인기 배경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있습니다. 지난 2020~2021년,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으로 외부모임이 금지됐습니다. 갈 곳 없는 술꾼들은 집으로 향했죠. ‘홈술·혼술’이 유행하며 가볍게 마실 수 있는 술이 선호됐습니다. 주류업계 관계자도 농림축산식품부 조사에서 코로나19로 인해 혼술 문화가 퍼지며 저도주 소비가 늘어났다고 말했습니다.

주류업계도 저도주 생산에 힘쓰고 있습니다. 오비맥주는 2022년 5월 ‘호가든 페어(3.5도)’를 출시했습니다. 호가든 오리지널 제품(4.9도)보다 도수 낮습니다. 롯데칠성음료는 2022년 4월 ‘처음처럼 꿀주(15도)’와 ‘별빛 청하 스파클링(7도)’를 각각 선뵀습니다. 모두 기존 소주보다 도수를 낮춘 제품입니다. 이외에도 소주 도수를 내리거나, 무알코올·저알코올 술을 내놓는 등 저도주 생산라인을 강화하는 모습입니다.

저도주, 해외 시장 꽉 잡았다

집에서 마시는 칵테일 ‘RTD’

코카콜라는 잭 다니엘 테네시 위스키를 만드는 ‘브라운 포맨’과 손잡고 ‘잭콕 RTD’ 캔 음료를 출시했다. ⓒ코카콜라

해외에서도 다양한 저도주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RTD(Ready To Drink)’가 대표적입니다. ‘이미 준비된 음료’를 뜻하는데, 칵테일처럼 식당에서 만들어야 하는 음료를 캔·병·팩에 담아 파는 겁니다. 캔에 담겨 편의점에서 파는 모히토나 피나콜라타를 생각하면 됩니다.

유럽에선 코로나19 유행 동안 RTD 칵테일 수요가 많아졌습니다. 식당과 바에 가지 않고도 집에서 칵테일을 마시고 싶은 심리가 반영된 겁니다. RTD 칵테일이 유행하며 스위스에선 도수 높은 술 수요가 줄기도 했습니다.

코카콜라도 RTD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최근 코카콜라는 위스키 회사와 협업한 ‘잭콕 RTD 칵테일’ 출시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잭콕은 잭 다니엘에 콜라를 섞어 마시는 칵테일입니다. 위스키 풍미에 달콤한 콜라 맛을 느낄 수 있는 인기 칵테일이죠. 2023년부터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팔 예정입니다. 앞서 멕시코에서 2022년 6월부터 시범 판매했다고도 합니다.

맥주보다 가벼운 ‘하드셀처’

방심하단 알딸딸 ‘콤부차’

해외에서 판매하고 있는 콤부차. 알코올이 들어있어 ‘하드 콤부차’로 불린다. ⓒJuneShine, Lunabay

북미에선 RTD 중에서도 ‘하드셀처(Hard seltzer)’ 종류가 대세입니다. 하드(Hard)는 술, 셀처(Seltzer)는 탄산수라는 뜻입니다. 말 그대로 술이 들어간 탄산수인데, 과일 향을 첨가해 다양한 맛을 냅니다. 하드셀처는 저알코올, 저칼로리, 저탄수화물을 내세웁니다. 도수는 5% 내외에 칼로리도 맥주보다 낮죠. 하드셀처 1캔(335㎖) 기준 열량이 100㎉인데, 맥주는 평균 150㎉입니다.

‘콤부차’ 등도 저도주로 팔립니다. ‘콤부차가 술이라니?’라고 생각하실 분도 있겠습니다. 콤부차는 차에 설탕과 효모균을 넣어 발효시킨 음료입니다. ‘쾌변 물약’으로 불릴 만큼 장 건강과 소화에 좋습니다. 이때 일부 업체는 발효과정에서 생기는 알코올 도수를 3~4%로 높여 술로 만들기도 합니다. 해외에선 나름 대중적입니다.

명탐정 ‘브누아 블랑’이 돌아왔다

양파처럼 비밀스러운 <글래스 어니언>

넷플릭스가 독점 개봉한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 포스터. 영화 <007> 배우로 유명한 다니엘 크레이그가 탐정 ‘브누아 블랑’ 역을 맡았다. ⓒ넷플릭스

콤부차 술이 의외의 활약을 한 영화가 있습니다. 2022년 12월 23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추리 영화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Glass Onion)>입니다. 라이언 존슨 감독의 <나이브스 아웃(2019)> 후속작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을 가리켜 ‘양파 같다’고 합니다. 만약 영화 제목처럼 양파를 유리로 만들면 어떨까요? 아무리 겹겹이 쌓인 양파라도 알맹이가 빤히 보일 겁니다. 황석희 번역가에 따르면, 글래스 어니언은 ‘뻔히 보이는 곳에 숨겨진(Hidden in plain sight)’을 은유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등장인물은 저마다의 비밀을 가지고 한자리에 모입니다. 숨기는 것이 있는 만큼 모두 신중합니다. 독한 술로 고주망태가 돼 함부로 입을 놀리진 않죠. 대신 알코올이 들어간 콤부차, 위스키소다, 달콤한 칵테일 등 저도주를 마십니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과연 이들 중 낮은 도수에 홀려, 속내를 빤히 드러낸 ‘유리 양파’는 누구일까요?

“옆자리 친구도 믿을 수 없다”

억만장자를 둘러싼 수상한 인연

영화는 억만장자 마일스 브론이 자신의 친구들을 그리스에 있는 개인 섬으로 초대하면서 시작한다. ⓒ넷플릭스

영화는 4명의 친구가 수수께끼 상자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코네티컷 주지사이자 상원의원 후보인 ‘클레어 디벨라’, IT기업 ‘알파’의 과학자 ‘라이오넬 투생’, 인기 모델 ‘버디 제이’, 유튜브 크리에이터 ‘듀크 코디’는 힘을 합쳐 퍼즐을 풀죠. 열린 상자에서 등장한 건 네 사람의 친구이자 알파의 창립자인 억만장자 ‘마일스 브론’의 초대장입니다.

마일스는 친구들을 그리스에 있는 섬으로 초대합니다. 살인사건 퀴즈를 함께 풀며 주말을 보내자는 약속이었습니다. 억만장자 친구의 초대에 들뜬 넷은 흔쾌히 그리스로 향하죠. 하지만 상자는 4명에게만 보내진 게 아니었습니다. 모임 장소에 ‘카산드라 브랜드’, 그리고 세계적인 명탐정 ‘브누아 블랑’이 등장하자 모두가 경악합니다.

카산드라는 마일스와 함께 알파를 세운 공동창업자입니다. 마일스와 사업 방향을 놓고 충돌하다 소송까지 갔는데, 친구들이 마일스 편에 서며 패배했죠. 예전엔 친구였어도 지금은 악연에 불과합니다. 설상가상으로 마일스는 카산드라는 몰라도 블랑에겐 초대장을 보낸 적 없다고 말합니다.

악연의 등장과 초대받지 않은 명탐정.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도 친구들은 여행을 즐깁니다. 수영장에서 콤부차 술을 마시고 호화로운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죠. 화창한 그리스 휴양지에서 오직 블랑만이 수상한 낌새를 느낍니다.

카산드라가 마일스의 무모한 사업 계획에 반대하자, 마일스는 친구들에게 위증을 시켜 카산드라를 회사에서 쫓아낸다. ⓒ넷플릭스

팽팽한 분위기는 카산드라가 폭발하며 극으로 치닫습니다. 카산드라가 폭로한 바에 따르면, 친구들은 모두 마일스에게 후원받고 있습니다. 마일스는 클레어의 정치 자금을 지원합니다. 라이오넬의 상사기도 하죠. 경솔한 언행으로 연예계에서 매장된 버디가 패션디자이너로 재기할 수 있게 투자한 사람도, 트위치에서 쫓겨난 듀크가 유튜브에 정착하게 도운 친구도 마일스입니다.

이러한 도움은 곧 친구들의 약점이기도 합니다. 마일스는 얼마든지 클레어의 라이벌을 후원할 수 있고, 라이오넬을 회사에서 쫓아낼 수 있습니다. 버디는 마일스의 후원이 끊길 위험에 처했으며, 듀크도 채널 인기가 예전 같지 않습니다.

모두가 마일스에게 원한이 있는 상황에서 첫 번째 살인이 일어납니다. 놀랍게도 희생자는 듀크입니다. 문제는 그가 마일스가 마셨어야 할 술을 마시고 호흡곤란을 일으켰단 사실입니다. 즉, 살인마의 목표는 마일스였습니다.

섬이 어둠에 잠기고 혼란에 빠진 와중, 누군가의 총격으로 카산드라가 사망하기까지 합니다. 그 순간 블랑은 자신의 추리를 확신합니다. 그는 켜켜이 쌓인 양파 껍질을 모두 벗겨 알맹이를 확인합니다.

모두가 봤고, 모두가 놓쳤다

블랑이 밝혀낸 뻔뻔한 진실

카산드라는 이미 그리스 여행 2주 전 사망했다. 지금까지 관객이 카산드라로 알고 있던 사람은 그의 쌍둥이 여동생 헬렌이다. ⓒ넷플릭스

누군가 당긴 방아쇠는 카세트 플레이어의 ‘뒤로가기’ 버튼과도 같았습니다. 그의 죽음과 동시에 아무도 몰랐던 과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사실 카산드라는 이미 2주 전 사망했습니다. 섬에 온 사람은 그의 쌍둥이 동생 ‘헬렌 브랜드’입니다. 언니가 자살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 헬렌은 블랑을 찾아옵니다.

블랑은 범인을 찾기 위해 헬렌을 카산드라로 변장시키고 함께 섬으로 들어가죠. 블랑을 섬에 초대한 건 헬렌이었습니다.

카산드라는 죽기 전 소송 결과를 뒤집을 증거를 찾아냈습니다. 자신이 창업 아이디어를 적어둔 술집 냅킨을 집에서 발견했죠. 이 사실을 알아낸 마일스는 카산드라를 죽이고 자살로 위장합니다. 냅킨도 뺏어와 그리스 섬의 숙소에 숨깁니다.

마일스는 듀크의 총을 훔쳐 헬렌을 쏜다. 다행히 총탄은 가슴에 넣어둔 언니의 일기장에 맞았고, 헬렌은 블랑이 추리를 펼칠 동안 냅킨을 찾아 헤맨다. ⓒ넷플릭스

듀크를 죽인 범인도 마일스입니다. 마일스는 카산드라를 살해한 뒤 집에서 빠져나오다 듀크와 마주칩니다. 듀크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마일스의 화려한 파란색 페라리에 치일 뻔하죠. 이후 파티에서 듀크는 우연히 카산드라의 죽음을 알게 됩니다. 그는 이 사실을 이용해 ‘회사 채널을 통해 자신을 홍보해 달라’며 은근히 마일스를 협박합니다.

순순히 당할 마일스가 아닙니다. 그는 듀크의 파인애플 알레르기를 이용합니다. 자신의 술잔에 파인애플주스를 타서 먹이죠. 남들은 듀크가 실수로 마일스의 술을 마신 줄 알지만, 사실은 마일스가 듀크에게 자신의 잔을 건넨 겁니다.

영화는 마일스가 친구들에게 술을 건네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조명합니다. 카산드라에게도 뻔뻔하게 네가 좋아하지 않았냐며 ‘위스키 소다’를 건네주죠. 마일스의 행동에 익숙해진 관객은 화면 구석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는 살인을 눈치채지 못합니다. 듀크조차 말입니다.

진실은 이미 알려졌다?

‘콤부차’에 주목하세요

마일스가 늘 타고 다니는 화려한 파란색 페라리 모형에 콤부차가 담겨 있다. ⓒ넷플릭스

양파가 속내를 꼭꼭 숨긴다면, 술은 속을 보여줍니다. 영화에선 콤부차가 그 역할을 합니다. 진상을 은근슬쩍 드러내죠.

영화 초반, 모두가 수영장에서 노는 장면에서 블랑은 콤부차를 담아둔 파란색 페라리 모형을 보며 감탄합니다. 이때 듀크가 차를 가리키며 “나 쥐포 만들 뻔했잖아, 그날…”이라고 말하자, 마일스는 “앤더슨 쿠퍼 집에서”라며 말을 돌려버리죠. 사실 듀크는 ‘카산드라 집에서 네 차랑 부딪칠 뻔해서’라고 말하고 싶었을 겁니다.

카산드라, 아니 헬렌이 모두의 치부를 폭로하는 장면도 콤부차와 관련 있습니다. 헬렌은 사실 술김에 감정이 폭발했습니다. 도수 9도짜리 콤부차를 음료수로 착각하고 마셔버린 사정입니다. 그 덕분에 관객들은 마일스와 친구들이 평범한 관계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헬렌이 들고 있는 음료수는 평범한 콤부차가 아닌, 9도짜리 하드 콤부차다. ⓒ넷플릭스

마일스는 양파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탐정 블랑이 콤부차 탄산처럼 흐른 진실을 예리하게 잡아냈습니다. 그의 앞에서 마일스는 유리로 만든 양파에 불과했습니다.

영화도 관객에게 끊임없이 진상을 보여줍니다. 마일스가 듀크의 총을 훔치고, 그에게 자신의 잔을 건네는 장면이 보란 듯이 등장합니다. 심지어 블랑은 극 후반부에서 실수로 헬렌의 본명을 큰 소리로 부르기도 하죠. 마치 감독이 관객에게 ‘이것 봐, 이건 유리 양파야. 진실이 빤히 보이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 같은 영화입니다.

술자리가 많을 시기입니다. ‘마시고 죽자!’도 좋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도록 이야기 나누려면 덜 취하는 술이 좋겠죠. 가벼운 저도주로 즐기는 술자리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글래스 어니언처럼 흥미진진한 영화를 곁들인다면 더 즐거울 겁니다.


더농부 인턴 신유정

제작 총괄 : 더농부 에디터 나수연

nong-up@naver.com

더농부

참고=

CBR.com , <10 Clues Everyone Missed In Glass Onion>

KOTRA 해외시장뉴스, <미국, 코로나19 이후 가정에서의 주류 소비 증가>

KOTRA 해외시장뉴스, <스위스 주류 시장과 한국의 소주>

농림축산식품부, <2021년 주류 시장 트렌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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